[행정척척박사] 2-41. 문화예술 공공 지원 명암
입력 : 2024.07.20기사보내기 :  트위터  페이스북
[스타뉴스 | 채준 기자]
/사진제공=pixabay
/사진제공=pixabay

정부를 비롯한 공공의 문화예술에 대한 지원의 명분은 이루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

일찍이 1960년대 보몰과 보웬이 이른바 비용질병(cost disease)론으로 이론적 토대를 마련한 이래 래리 드보어를 비롯해 많은 학자들에 의해 문화예술에 대한 공공 지원의 근거는 지속적으로 보완되어 왔다. 기실 문화예술에 대한 공공의 지원은 서양의 경우 그리스·로마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니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그동안 대한민국은 문화예술 공공 지원이 지속적으로 증가해 온 몇 안 되는 국가로서의 위상을 누려왔다. 물론 만족스러운 수준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그런 점에서 수십 년 만에 문화예술 정부 지원이 감소된 올해는 기록적인 해다. 하지만 국제적인 상황을 보면 그리 이상한 일도 아니다.

'팔길이 원칙'으로 유명한 영국은 마가렛 대처가 집권한 때부터 정부의 지원을 축소하기 시작했고, 우리가 예술지원의 교과서로 종종 인용하는 프랑스도 그 뒤를 따랐다. 오페라의 본고장 이태리는 공공 공연장에 대한 지원이 감소하면서 오페라 가수의 출연료가 체불되기도 한다는 소식이 들려온 지도 한참 전이다. 사정이 좀 낫다고 알려진 독일은 물론 동유럽 등 나머지 유럽 국가들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제공=pixabay
/사진제공=pixabay

미국은 1960년대 국립예술기금(NEA)을 시작으로 민간에 의존하던 문화예술 후원을 정부 차원으로까지 확대하기도 했다. 하지만 예술의 정치화(politicization) 논란 등이 일면서 정부 지원 확대 기조는 이내 꺽여버렸다. 이후 미국에서 정부 차원의 지원이 증가했다는 증거를 찾기는 쉽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문화예술에 대한 정부를 비롯한 공공 차원의 지원을 지속적으로 확대해온 우리는 그나마 다행이 아닐 수 없다. 최근 들어서는 촘촘한 복지에 대한 관심이 사회적 관심이 커지면서 예술인에 대한 복지 차원의 지원도 강화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기도 하다. 물론 바람직한 현상이다. 그런데 빛이 밝으면 어둠이 짙어지기 마련. 정부의 지원이 확대되자 한 편에서는 부작용도 나타나고 있다.

예술경영학자 번스(William Byrnes)는 '정부실패(Government Failure)'를 주장한 바 있다. 그에 따르면 정부가 예술을 지원하면 평범한 예술을 양산하기 쉽다. 이는 문화예술에만 해당되지는 않겠지만 '보상의 숨은 비용 효과(Hidden cost of rewards)'로 설명된다.

무엇인가를 하려는 욕구가 강한 사람에게 그 일을 하도록 보상금을 지불하면 오히려 처음의 욕구가 감소할 수 있다는 거다. 다시 말해 정부의 지원금은 창의성을 높이기는커녕, 오히려 약화시키는 부작용을 유발할 수 있다. 게다가 정부의 지원금은 소수의 의사결정권자들에 의해 향방이 결정되는 집중화 경향을 보인다. 그러다 보면 지원의 혜택이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돌아가는 불합리한 상황이 발생하고, 이는 소수에 의한 문화권력 독점으로 이어진다.

번스가 지적한 부작용 중에서 간과할 수 없는 또 하나의 문제는 민간과 기업 영역의 사회 공헌 축소 가능성, 나아가 민간 부문이 약화되거나 기반을 아예 상실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미 현장에서는 이러한 우려들이 현실화 되고 있다. 민간 문화예술 활성화를 위한 지원이 오히려 민간의 경쟁력과 자생력을 약화시키는 건 참으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필자의 제자 A씨는 석사를 졸업하자마자 지역 문화예술을 살려보겠다는 나름의 사명감으로 자신의 고향인 작은 시에 내려갔다. 그곳 역시 다른 중소도시나 농어촌 지역과 마찬가지로 문화예술이 활성화되어 있다고 말하기 어려운 지역이다. 민간이 운영하는 문화공간이 하나도 없고, 민간에 의한 문화 프로그램도 거의 찾기 어려웠다. 지역의 문화기획자가 적은 터에 얼마나 가상하냐며 필자도 '세상 물정 모르는' 박수를 보냈다.

/사진제공=pixabay
/사진제공=pixabay

A씨는 작은 규모의 복합문화공간부터 만들기로 했다. 지역에 도움이 될만한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운영할 요량이었다. 소액이라도 입장료와 관람료를 받으면 초반 적자는 면키 어렵더라도 어느 정도는 끌어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시작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지자체나 지역의 문화재단과 가격 경쟁이 아예 되지 않았다. 웬만한 프로그램을 저렴한 가격은 고사하고 대부분 무료로 운영하고 있었다. 주민들도 재단이 주최하는 공연과 전시의 무료 입장을 당연시 했다. 시민의 세금으로 운영하는데 유료는 어불성설이라는 인식은 문화예술 자체를 공짜를 당연히 여기는 풍토로 이어졌다. 알고 보니 재단에서 운영하는 문화공간들도 모두 원래는 민간에서 운영했으나, 수지가 안 맞아 폐업한 것을 재단에서 인수해 운영하고 있었다.

A씨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재단의 프로그램을 훨씬 뛰어넘는 양질의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거다. 그러나 이 역시 현실과 맞지 않았다. 양질의 프로그램을 하려면 그만큼 비용이 더 드는데 이를 충당할 길이 없었다. 게다가 예술가들을 섭외하기도 쉽지 않았다. 출연료를 더 비싸게 받고자 했기 때문이다. 공공에서 운영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하면 공신력이라도 얻을 수 있지만 민간은 그런 간접적인 이익도 없을뿐더러 영리를 취한다는 게 대략 그 이유였다.

구축효과(Crowding-out effect)라는 말이 있다. 내수 진작을 위한 정부지출 확대로 인해 민간투자가 위축되는 부작용을 가리킨다.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막상 체감하게 되는 지역 문화예술 현장의 구축효과는 훨씬 심각했다.

A씨는 요즘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A씨가 할 수 있는 건 하릴없이 문화재단의 사업에 이러구러 지원해서 선정된 프로그램만 진행하는 것이다. 그런데 임대료와 전기세 그리고 본인의 생활비는 어떻게 충당할지는 여전히 고민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다시 수도권으로 올라가 일자리를 찾아봐야 한다. 또 하나 있다! 그동안의 경험을 살려 지역 문화재단의 직원이 되는 것! 정부 혹은 공공의 지원은 민간의 자생력을 살리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A씨의 주장을 들으며 세상 물정 모르고 박수 쳤던 손이 부끄러워졌다.

-김선영 홍익대 대학원 문화예술경영학과 교수

문화체육 전문 행정사법인 CST는
문화예술, 콘텐츠, 저작권, 체육, 관광, 종교, 문화재 관련 정부기관, 산하단체의 지원이나 협력이 필요한 전반 사항에 대해서 문서와 절차 등에 관한 행정관련 기술적인 지원을 포괄적으로 펼치고 있다.
[행정척척박사] 2-41. 문화예술 공공 지원 명암



채준 기자 cow75@mtstarnews.com



ⓒ 스타뉴스 & starnewskorea.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늘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