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한 그녀’ 정지소 “청춘, 젊은이에게 주기 너무 아깝고만!” [김재동의 나무와 숲]
입력 : 2024.12.26기사보내기 :  트위터  페이스북

[OSEN=김재동 객원기자] 쭈글거리고 검버섯 핀 제 얼굴은 새삼스러울 게 없어야 마땅하다. 평생을 그 얼굴로 살아왔을 테니. 하지만 오말순(김해숙 분)은 본인의 그런 얼굴을 마주하고 절망에 찬 비명을 지른다.

KBS 2TV 수목드라마 ‘수상한 그녀’(허승민 극본, 박용순 연출)는 오말순의 그런 비명으로 시작됐다.

제 얼굴 보고 절망의 비명을 올린 일흔 셋 오말순의 사연은 무엇일까?

팔자 기박한 오말순의 평생은 소설책 한 보따리 꾸릴만 하다. 엄마 없이 주정뱅이 아버지 슬하에서의 어린 시절, 서방은 나 어린 말순에게 딸 하나 덜렁 남겨두고 세상을 떴고 그 딸 하나 업고 세파를 헤쳐온 말순의 나날은 전쟁이었다.

그리고 이제는 늘그막. 평생 따라붙던 ‘억척’과 작별을 고할만큼 여유로운 노후가 예비돼 있다. 그녀의 자랑 ‘오말순 소머리국밥집’도 성실했던 주방장에게 넘겼다. 이제 번듯한 대기업 상무자리에 오른 딸 반지숙(서영희 분)과 능력은 좀 덜하지만 사람은 착한 사위 최민석(인교진 분),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친구같은 외손녀 최하나(채원빈 분)와 알콩달콩 여생을 즐길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다.

그 계획에 찬물을 끼얹은 것은 외손녀 최하나의 폭탄선언이었다. 대학을 안간다고. 엄마처럼 공부 잘하는 딸로 사는 것 하나도 행복하지 않다고. 난 내가 하고 싶은 것 하고 살 거라고. 오말순의 잘못이라면 손녀 편 들어 말 한마디 건넨 것 뿐이었다. “그렇다고 잡아두기만 하믄 단가?”

그 한마디가 반지숙의 발작버튼을 눌렀다. “나 그렇게 안키우셨잖아요. 감싸기는커녕 애비 없는 것 티 내면 안된다고 무섭게 잡으셨잖아!” 이 공없는 소리에 말순도 발끈한다. “평생 국밥만 말다 인생 후루룩 말아먹은 내가 안됐지.” 티격태격 끝에 반지숙의 입에서 나와선 안될 말이 나왔다. “솔직히 따로 살았으면 적어도 오늘 같은 일 없었겠죠. 너무 오래 살긴 했어요. 우리.”

그 길로 뛰쳐나온 집. “쓸 데 없이, 쓸 모 없이 너무 오래 살았어!” 자책하며 걷는 밤길에 비까지 내리고 택시 운전사가 비맞으면 골병든다고 부득불 청하는 바람에 올라탄 택시다. 그 택시를 집어탄 곳이 경복궁 건춘문앞. 건춘(建春)은 ‘봄이 시작된다’는 의미다.

택시기사가 틀어준 심수봉의 ‘백만송이 장미’를 들으며 슬몃 잠이 드는 말순. “먼 옛날 어느 별에서 내가 세상에 나올 때 사랑을 주고 오라는 작은 음성 하나 있었지~”

잠에서 깼을 땐 장소는 사진관으로, 택시기사는 사진사가 되어 영정사진을 찍어준다. “청춘은 두 번 오지 않는다”란 말을 남기며 셔터를 누르는 순간 청춘이 돌아왔다.

돌아온 청춘의 정체는 에밀리(정지소 분). 젊은 시절 오말순의 얼굴을 똑 빼닮은 유니스엔터의 데뷔조 메인 보컬 에밀리였다.

에밀리는 유니스엔터의 책임프로듀서 대니얼 한(진영 분)이 LA서 발굴한 교포. 데뷔조 걸그룹 엘리먼트에 합류했지만 수진(현재연 분) 등의 따돌림에 잠적한 상태였다.

마침내 에밀리를 찾아낸 대니얼. 하지만 에밀리의 상태가 이상하다. 뽀글머리 아줌마 파마에 촌티 풀풀 나는 패션센스, 촌할머니 화법까지. 오말순으로서도 생면부지 대니얼의 상태가 의심스럽다. 영락없는 변태로 퇴치하려는데 보여주는 동영상 하나. 자신을 쏙 빼닮은 에밀리가 기타를 치며 자신의 18번 ‘얼굴’을 부르고 있다. 게다가 억지로 쥐어준 명함속 유니스엔터는 손녀 최하나가 꿈꾸던 기획사였다.

최하나의 오디션 합격을 조건으로 다시 유니스 엔터에 복귀한 오말순. 그 곳에서 73세 오말순 본인의 모습을 마주한다. 아마도 오말순이 에밀리가 된 순간 에밀리는 오말순으로 서로의 영혼이 뒤바뀐 설정으로 보인다.

두 사람의 확인 절차는 수진의 개입으로 불발로 끝난다. 결국 드라마의 첫 장면은 에밀리의 몸으로 한껏 청춘을 구가하던 오말순이 73세 본인의 몸을 되찾고 절규하는 시점이었던 모양.

나문희 심은경 주연의 영화 ‘수상한 그녀’를 원작으로 한 이 드라마는 12부작으로 확대되며 보다 풍성한 에피소드를 첨가했다.

‘평생 국밥만 말다 인생 후루룩 말아먹은’ 오말순에게 주어진 빛나는 청춘의 시간은 갈피 잃은 에밀리의 인생을 안돈시키며 서로의 제 자리를 찾아주는 결말로 진행될 것이 예상된다.

‘청춘은 젊은이에게 주기 너무 아깝다’는 말이 있다. 그 귀한 시간의 소중함은 늙고나서야 알 수 있다는 의미의 반어다.

‘사랑을 주고오라’는 인생의 소명을 조망할 드라마 ‘수상한 그녀’의 유쾌한 앞으로가 기대된다.

/zaitung@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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