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신 타이거스 출신 투수 오쿠무라 다케히로 이야기
[OSEN=백종인 객원기자] 오쿠무라 다케히로(45)라는 인물이 있다. 전직 프로야구 투수다. 인기 팀 한신 타이거스에서 뛰었다. 하지만 이름을 아는 팬은 거의 없다. 1군 무대에 선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는 입지전적인 기록을 남겼다. 프로야구 선수 출신 중 최초로 공인회계사(CPA) 시험에 합격했다는 사실이다. 일본도 다르지 않다. CPA는 변호사, 의사와 함께 3대 국가 자격시험으로 꼽힌다. 그만큼 어렵다. 합격률은 6~10% 정도로 알려졌다.
그 역시 많은 좌절을 겪어야 했다. 생각해 보시라. 고등학교가 최종 학력이다. 게다가 야구만 열심히 했다. 시험과는 거리가 먼 이력이다. 거듭된 실패는 당연한 과정이다. 그러나 쓰러지지 않았다. 계속 싸웠다. 무려 9수 끝에 인간 승리의 주인공이 됐다.
고교 때 꿈은 고시엔 대회 출전이다. 그걸 위해 학교도 옮겼다. 기후현에 있는 공립학교다. 하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지역 예선에서 번번이 탈락했다.
졸업 후가 걱정이다. 사회인 팀으로 가야 하나. 고민할 무렵이다. 드래프트에서 덜컥 지명을 받았다. 한신이 188cm의 키를 눈여겨본 것이다. 순위는 낮다. 6번째다(당시 2순위가 이가와 게이). 그래도 그게 어딘가. 모교와 고향에는 플래카드가 걸렸다.
당연히 2군에서 시작했다. 펄펄 끓는 열정을 태웠다. 던지고, 또 던졌다. 그러다가 탈이 났다. 팔꿈치 인대가 상했다. 수술과 재활로 1년을 쉬었다. 3년째, 4년째도 비슷하다. 부상이 거듭된다. 어깨 통증에, 갈비뼈 피로 골절이 겹쳤다.
그다음은 뻔한 결말이다. 전력 외 통보, 쉬운 말로 하면 방출이다. 겨우 22세 때였다.
한 가닥 희망이 남는다. 구단은 새 일자리를 제안한다. ‘배팅볼 투수’였다. 생각하고 말고 없다. 일단 OK다.
그러나 그게 간단치 않다. 팔이 힘든 것은 참을 수 있다. 마음이 문제다.
“타자들 치기 좋은 공을 던져주는 게 일이다. 그런데 막상 얻어맞으면 기분이 나쁘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자꾸 힘이 들어가더라. 자꾸 깊은 곳으로 던지게 되더라. 배트를 수도 없이 부러트렸다.”
당시 그의 심정이다. 누가 곱게 보겠나. 그 일마저 1년 만에 잘렸다. 가느다란 야구와의 연줄이 완전히 끊어졌다.
이후는 파란만장, 좌충우돌, 우여곡절의 시기다. 친구 음식점에서도 일하고, 호텔 레스토랑도 전전했다. 직접 식당을 해볼까, 조리사 자격증도 준비했다.
퀭한 눈으로 살던 2~3년이다. 어느 날 여자 친구가 책 하나를 툭 던지고 간다. ‘자격증 가이드’라는 제목이다. 두께가 무려 7cm나 됐다고 한다.
“‘무슨 자격증이나 하나 따라’ 하는 뜻이 아니었다. 여친은 그냥 ‘세상에 이렇게 많은 일이 있으니까, 걱정하거나 조바심 내지 마라’는 말을 하고 싶었다고 하더라.”
무심코 넘기다가 ‘공인회계사’라는 곳에 꽂혔다. 마침 고교 시절이 떠오른 것이다. 고시엔은 못 갔다. 하지만 남은 게 있다. 부기(bookkeeping) 자격증이다. 당시 학교 방침이었다. ‘야구부 활동을 하려면 2급까지는 따야 한다.’ 덕분에 1학년 때 3급, 2학년 때 2급에 합격했다.
“그 무렵이다. 거울을 보다가, 옆머리 한편이 허전한 것을 발견했다. 500엔 동전만 한 크기였다. 스트레스 탓에 원형탈모가 생겼던 것이다.”
물론 주방보조 일은 계속했다. 택배 아르바이트, 심야 PC방 근무도 했다. 생활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계속 야구가 떠올랐다.
“채소나 과일 껍질을 벗겨낼 때는 ‘이거 커브 던질 때 손목 회전과 비슷한데’ 하는 느낌이 든다. 씨를 아슬아슬하게 빼낼 때는 ‘아웃 코스 꽉 찬 승부구 던지는 느낌이야’라는 생각에 헛웃음도 나왔다.”
CPA 준비도 비슷하다. 1차는 단답형, 2차는 논술 형식으로 이뤄진다. 단답형은 70점을 넘겨야 통과된다.
“만점을 받으려고 욕심 내면 그르친다. 결국 볼넷을 남발해서 자멸하는 이치다. 30%는 틀려도 된다는 뜻이다. 승부하지 말아야 할 타자와 무리하면 안 된다. 효율적인 관리가 필요하다는 점을 떠올렸다.”
야구가 확률이나 통계에 민감한 종목이라는 점도 작용했다.
“어차피 야구 선수는 숫자와 친밀도가 높다. 그 점이 CPA를 준비하는데 거부감을 덜어줬다. 확률론에 따라 사안을 판단하고, 정리하는 것도 회계 업무에 도움이 된다.”
힘들 때마다 스스로를 자극했다.
“주방 일을 할 때 시급이 900엔(약 8500원)이었다. 동기생 이가와는 이미 한신의 에이스가 됐다. 그 친구 연봉을 떠올리며, 나 자신을 채찍질했다.”
그래도 쉽지 않다. 9년간 9번을 실패했다. 1차에는 붙었는데, 2차에서 실패한 것도 여러 차례다. 그 사이 (경력을 위해) 입사 원서도 수없이 냈다. 30군데 넘는 곳에서 거절당했다.
그때마다 그를 일으킨 사람이 있었다. 바로 그 여자친구다. “’여기서 쓰러지면 앞으로 당신의 인생은 없다. 합격하기 전까지는 절대 그만 두면 안 된다.’ 그렇게 딱 부러지게 잘라 말했던 것이 컸다. 이내 정신 차리고 책상 앞에 앉을 수 있었다.”
조금씩, 아주 조금씩 가까워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결국 10년을 채워서야 뜻을 이뤘다. 그의 나이 34세 때였다(2013년).
현재는 자신의 법인을 설립했다. 회계사 외의 일에도 열정적이다. 젊은 계층, 특히 프로야구 선수들의 ‘세컨드 라이프’를 위한 상담과 강연, 저술 활동을 열심히 하고 있다.
(NPB 출신 공인회계사는 또 한 명 있다. 라쿠텐 투수였던 이케다 준이 2023년 자격시험에 합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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