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LB 초점] 은퇴도 각오한 데스몬드의 옵트 아웃, 누구도 그를 조롱할 순 없다
입력 : 2021.02.22기사보내기 :  트위터  페이스북
[스포탈코리아] 김동윤 기자=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을 이유로 시즌을 포기했던 이안 데스몬드(35, 콜로라도 로키스)가 올 시즌도 뛰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22일(한국 시간) 데스몬드는 자신의 SNS를 통해 "지난 몇 달 동안 많은 생각을 한 결과, 일단 2021년 시즌을 포기하기로 결정했다. 현 상황에서는 야구를 하고 싶은 마음보다 가족과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고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이어 "내 선택은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칠 것이다. 긍정적인 반응도, 부정적인 반응도 있겠지만 난 그것을 감수하려 한다. 어떤 것보다 내 마음을 무겁게 하는 선택이지만, 내 마음을 따르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또한, 자신의 선택을 이해하고 지지해준 콜로라도 선수들과 구단에 고마움을 나타내면서 자신 역시 "멀리서나마 콜로라도를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도울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겠다"고 약속했다.

만약 이번 시즌도 뛰지 않지 않는 것이 확정될 경우 데스몬드는 FA가 될 가능성이 높다. 2017년 콜로라도와 5+1년 7,000만 달러 계약을 맺었고, 보장 계약은 올해가 마지막이다. 2022년 1,500만 달러 규모의 구단 옵션은 실행되지 않을 확률이 높다.

일각에서는 이대로 데스몬드가 은퇴할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콜로라도 시절 성적이 좋지 않았고, 2년의 실전 공백이 있는 만 36세의 FA 선수에게 계약을 제의할 팀은 많지 않다.

데스몬드는 이제 5명의 아이를 둔 아버지가 됐다

데스몬드의 시즌 포기를 위해 많이 고민했다는 사실을 두고 미국 메이저리그 팬들 사이에서는 배부른 고민이 아니냐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심지어 그중에는 시즌을 포기하는 대신 연봉을 받지 않는다는 사실을 잊은 채 데스몬드를 조롱하는 팬들도 있었다.

하지만 데스몬드의 가족 구성원을 봐도 데스몬드를 조롱할 이유는 없다. 지난해 옵트 아웃을 결정할 당시, 아내는 이미 다섯째 아이를 임신 중이었고, 가장 어린 자녀는 만 2세에 불과했다. 그리고 얼마 전 태어난 다섯째 아이는 데스몬드에게 코로나 19가 더욱 크게 다가올 수밖에 없는 이유다. 데스몬드의 가족은 세계보건기구(WHO)가 발표한 코로나 19 고위험군에 속한다.

갑작스럽게 부성애가 발휘된 것도 아니다. 데스몬드는 첫째가 태어날 당시 메이저리그 역사상 처음으로 육아 휴가를 신청한 선수였다. 데스몬드의 사례는 현재 메이저리그 선수들은 팀 사정에 구애받지 않고 아이의 탄생을 지켜보러 갈 수 있게 한 뜻깊은 선례가 됐다.

그리고 데스몬드의 옵트 아웃은 단순히 자신의 가족을 위해서가 아니라 좀 더 깊은 고민 끝에 나온 결정이었다. 지난해 코로나 19와 함께 미국 내 가장 큰 이슈였던 흑인 인권 운동과 워싱턴 내셔널스 시절 인연을 맺은 한 아이의 이른 죽음은 데스몬드가 진지하게 해야 할 일을 고민하게 했다.

흑인 아버지와 백인 어머니를 부모로 둔 데스몬드는 어린 시절부터 흑인과 백인 모두의 입장에 공감하려 노력했다. 그러나 뿌리 깊은 인종 차별은 아무렇지도 않게 일상 속에 존재했고, 흑인 스타 선수들이 활약한 메이저리그에서도 만연했다.

여기에 과거 인연을 맺었던 앙투안 로치(18)란 아이의 죽음이 데스몬드가 앞으로 해야 할 일을 구체화했다. 가난한 흑인 가정에서 태어난 로치는 내셔널스 유스 아카데미를 다니기 시작한 12세가 돼서야 정식 교육을 받고, 끼니를 거르지 않으면서 야구 선수의 꿈을 꿀 수 있었다.

그러나 죽음이 익숙한 동네에서 살던 로치는 고작 만 18세의 나이에 자신보다 어린 청소년의 총에 맞아 유명을 달리했다. 지난해 옵트 아웃 당시 데스몬드는 앙투안의 얘기를 전하면서 "내 아이들과 앙투안을 구분 짓는 유일한 것은 돈이다. 왜 우리 사회는 모든 아이들에게 가능한 한 최고의 교육을 제공하려 노력하지 않는가"라며 씁쓸해했다.

데스몬드의 고민은 행동으로 이어졌다. 이미 'End NF with Ian Desmond'라는 프로젝트를 통해 신경섬유종을 앓고 있는 어린이들을 지원하고 있는 데스몬드는 지난해 12월 '뉴타운 커넥션(Newtown Connection)'이라는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뉴타운 커넥션' 프로젝트는 데스몬드의 고향인 새러소타시 내 청소년들이 경제적 상황, 운동 능력 등에 구애받지 않고 야구와 관련된 일을 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이다. 향후 여러 도시와 연계해 생계가 어려운 아이들에 대한 지원의 폭을 넓힐 예정이다.

데스몬드의 사려 깊은 결정과 행동은 많은 이들의 공감을 불러왔고, 그 결과 데스몬드는 지난해 로베르토 클레멘테 상의 콜로라도 대표로 선정됐다. 로베르토 클레멘테 상은 많은 선행을 베풀다 세상을 떠난 故 클레멘테를 기려 매년 지역 사회에 헌신과 사람을 돕는 메이저리그 선수들에게 주는 상이다.

데스몬드의 선택은 콜로라도 구성원의 지지를 받았다

데스몬드는 야구 선수로서, 콜로라도 구성원으로서 자신의 역할도 잊지 않았다. 옵트 아웃을 선언했지만, 꾸준히 몸 관리를 했고 코로나 19 추이에 따라 팀에 합류할 가능성을 열어뒀다.

또한, 콜로라도 전담 기자 토마스 하딩에 따르면 데스몬드는 '놀란 아레나도 트레이드'로 인한 후폭풍을 잠재우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하딩 기자는 "데스몬드는 문자메시지를 통해 흔들리는 콜로라도 선수들이 계속해서 집중할 수 있도록 격려했고, 선수단에 안정을 가져다준 핵심 선수였다"고 얘기했다.

이렇듯 팀을 위한 데스몬드를 2년 연속 시즌을 포기했다는 이유로 비난한 콜로라도 구성원은 없었다. 버드 블랙 감독은 "데스몬드의 선택은 돈과 관련된 일이 아니다. 진심에서 우러나온 결정이며, 이 선택은 데스몬드 자신을 괴롭게 했다"며 콜로라도 구성원의 입장을 대변했다.

데스몬드의 선택은 결코 가볍지도, 자신의 가족만을 위한 것은 아니었다. 되려 메이저리그 선수가 경기장 밖에서 보여줄 수 있는 또 다른 역할에 충실했다. 누구보다 많은 고민을 하면서 주어진 권리를 행사한 데스몬드에게 비난 혹은 조롱할 권리는 그 누구에게도 없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첼시 데스몬드 공식 S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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