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유수연 기자] 배우 유태오가 '패스트 라이브즈' 작품 비하인드를 전했다.
29일 서울 종로구 소격동의 한 카페에서는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 배우 유태오의 인터뷰가 진행됐다.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는 서울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첫사랑 ‘나영’과 ‘해성’이 24년 만에 뉴욕에서 다시 만나 끊어질 듯 이어져온 그들의 인연을 돌아보는 이틀간의 운명적인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패스트 라이브즈’는 한국계 캐다나인 셀린 송이 감독 및 각본을 맡은 첫 번째 연출작으로, 지난해 세계 3대 영화제 중 하나인 제73회 베를린 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됐고, 제58회 전미비평가협회상 작품상 및 제33회 고섬 어워즈 최우수 작품상 등을 수상했다.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엔 작품상, 각본상 후보에 올랐고,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에는 남우주연상(유태오)을 포함해 외국어영화상, 오리지널 각본상 등 3개 부문 후보에 오른 바 있다.
이같은 성과를 거둔 후 국내 개봉만을 앞둔 소감에 대해 유태오는 “개인적으로 기분이 너무 좋다. 드디어 보여줄 수 있어 설레고, 동시에 두렵기도 하다. 아시다시피 제살아온 뒷배경이 다국적이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평범한 한국 남자를 표현했어야 했다. 그 안에서 저의 어휘력이 스스로 부족하게 느껴졌다. 그래도 그 안에서 감독님이 무언가를 봤으니 캐스팅 해주셨고, 표현력을 믿어주신 것 아니겠나, 싶었다. 해외에서도 반응이 좋았지만, 고향에서 어떻게 봐주실지 두렵기도, 설레기도 하다"라고 전했다.
이어 "그 전에 ‘미나리’도 뒤늦게 한국에서 개봉하게 되지 않았나. CJ에서 개봉을 전략적으로 영리하게 하는 것 같다. 해외에서 흥행의 파동과 평론가의 긍정적인 평을 입소문 퍼지게 한 다음, 기대감을 크게 만드는 전략. 오스카 후보도 감사하게 작품상으로 올라가게 되었다. 10일 시상식인데, 6일 개봉 아닌가. 월드컵도 아니고, 사람을 긍정적으로 긴장하게 만드는 느낌이 있다”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배우 유태오는 ‘패스트 라이브즈’를 통해 혜성 역을 맡아 열연, 한국 배우 최초로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BAFTA) 남우주연상에 노미네이트 되며 큰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이에 유태오는 “후보 되었다고 해서 개봉에 기대가 더 크진 않다. 영화를 만들 때는 결과주의적인 생각으로 하지는 않았다. 촬영 과정이 6~7주였고, 촬영이 끝나면 제가 할 일은 다 끝나지 않았나. 시나리오를 처음 읽었을 때의 감수성이 오로지 잘 전달되었다는 느낌뿐이었지. 나머지는 다 마케팅 요소일 뿐이다. 상 타고, 그런 게 그렇지 않나. 제작자분들과 배급사 분들이 좋아하지 않겠나”라고 너스레를 떨며 웃었다.
또한 시상식을 떠올리며 “솔직히 그 자리에 있을 때까지는 실감이 안 났다. 저는 앞뒤가 없고 현재에 사는 사람이라, ‘그렇구나’ 싶었다. 그런데 막상 가보니 그날 아침에 매니저가 소감을 준비해 놓았냐고 묻더라. 절대 안 될 거로 생각했는데. 그 두 시간 동안 우리 차례가 올 때까지 혼자 긴장해서, 무슨 말을 어찌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이후 킬리언 머피가 되고 나서 너무 안심했다"라고 웃었다.
이어 "어떻게 보면 연기자 선배 아닌가. 20년 전부터 그 배우의 작품을 공부했고, 다른 배우들도 마찬가지"라며 "수상 이후 킬리언 머피에게 직접 가서 ‘당신이 되어 너무 좋다. 옛날부터 모든 영화를 챙겨보았고, 당신 연기의 학생이다’라고 말을 건넸다"라고 떠올렸다. 또한 "그렇게 킬리언 머피에게 용기 내어 인사하니, 정말 고맙게도 포옹해 주더라. 그러면서 '크리스토퍼 놀란을 만났냐'며 '소개해 줄까?' 하더니 제 손을 잡고 그 앞에 세워서 인사시켜 주더라. 놀란 감독도 저희 영화를 보았다고 해서 ‘너무 팬이다. 메멘토부터 많은 작품을 봤다. 한국 배우 필요하면 언제든지 오디션에 불러달라’고 했더니, ‘내가 당신 연기하는 걸 봤으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해주시더라"라고 덧붙였다.
작품 참여 비하인드도 전했다. 유태오는 “한국에서 제작사와 감독님이 캐스팅 디렉터를 통해 해성 역을 찾겠다고 했지만, 당연히 저에게 보내지 않았다. 우리나라에서는 저를 아무도 평범한 한국 남자로 보지 않기 때문"이라며 "그래도 매니저는 ‘태오는 무언가가 있다’고 해서 마지막으로 제 이름을 올렸다고 한다. 제가 대본을 받고 시나리오를 읽고, 공식적인 오디션을 모두 겪었다. 테이프를 보내고 2주 뒤에 2차 오디션으로 ‘줌’ 화상 채팅을 한다더라. 대부분 1차 때 준비했던 장면을 다시 보여주는데, 저는 그 장면도 하고 나머지 시나리오 장면을 모두 시키더라. 이 긴 시나리오를 서너 번을 연기하고, 세 시간이 지났다. 그렇게 시간이 흐를수록 자신감이 생겼다. 감독님이 뭔가 보고 싶은 모습이 있어서, 내가 마음에 들어서 보는구나, 하는 자신감이 있었다. 그렇게 2차가 끝나고 잊어버렸는데 2주 후, 제가 청룡 신인상을 받은 날에 이 영화에 캐스팅이 됐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회상했다.
이어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인연’이라는 요소는 동양 철학적이고, 흔히 매일 쓰이는 말 아닌가. 이 요소를 서양 관객들에게 설명하고, 로맨스로 편하게 이해할 수 있게끔 하는 시나리오 작가로서의 실력이 멋있었다. 마지막 장면에 남아있는 여운 때문도 있었다. 글로 읽었는데도 눈물이 핑 돌았었다. 연출만 잘 된다면, 사람을 감동하게 할 수 있겠다고 생각해서 너무 하고 싶었다”라고 “다만 제가 선택당하는 직업이라. 조금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더불어 CJ와 A24이 공동 제작인데, 이게 가장 저에게 큰 긴장감이었다. 이 시점에 한국 소재 중심으로 만든 영화를 두 회사가 합작했다는데, 그 주연이 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니 ‘정신 차리고 제대로 해야겠다’는 책임감을 느꼈다”라고 떠올렸다.
셀린 송 감독과 호흡을 맞춘 소감도 전했다. 유태오는 셀린 송에 대해 "멋있는 감독이다. 단칼인 면이 있다. 사실 자신의 주관이 강하고, 비전이 강한 사람이면 너무 편하다. 무엇을 원하는지 아니까. 감독님은 많은 선택을 해야 하는데, 이건 좋고, 이건 싫어. 라는 이야기를 너무 빨리해 주시는 거다. 가끔 다른 촬영 현장에서 ‘한번 더해 봐’, ‘이렇게 해봐’라고 하는 이유를 생각해 보면, 스스로 뭘 원하는지 모르는 분들이 많이 시켜서 건져보려고 하는 것 같다. 그것이 필요할 때도 있지만, 편한 입장에서 생각해봤을 때는, 무언가를 원하는지를 잘 아는 상황이 너무 좋았다"라고 전했다.
'해성'을 소화하기 위해 노력했던 유태오의 뒷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어떤 캐릭터든 간에, 차이점과 공통점이 있지 않나. 저는 항상 연기할 때 캐릭터와 저의 공통점 하나를 찾고 밀고 나가는 편이다. 일단 복합적으로 봤을 때, 해성이는 자신의 상황에서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여야 했다. 그 안에서 아련도 있고, 한도 있다. 일반인이라면 누구나 그 감수성을 알지 않나. 저도 다국적 문화이긴 하지만, 그 점에서는 공감이 되었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그런 ‘멜랑꼴리’한 감정을 많이 느꼈던 사람 중 하나다. 배우가 ‘멜랑꼴리’한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인데, 저는 그걸 누구보다 잘 표현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저는 그 캐릭터를 표현하는데 가장 적합한 악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라고 설명했다.
극 중 한국어 대사를 소화하기 위한 노력도 쏟았다. 유태오는 "원래 언어 치료와 스피킹 코치를 하는 선생님이 계신다. 코치님과 연기를 운동선수처럼 접근한다. 선수가 금메달 땄다고 해서 운동을 안 하지 않는 것처럼, 저는 작품이 있던 간, 없던 간, 매주 선생님을 만난다. 준비한 작업이 있으면 계속 연습하고, 없으면 소설이나 다른 시나리오를 읽는 공부를 한다"라며 "특별히 작품이 들어왔을 때 선생님과 연습하는 것도 있지만, 문장 안의 뉘앙스 등을 모두 연습한다. 어떤 배경이 있는지 등을 설명해 주신다. 하지만 제가 항상 생각해야 할 것은, 외국인들에게 외국 시장에서 한국 사람이 로맨틱하게 보이는 것이 어떤 소리와 발음일까 와 한국인들의 인식을 동시에 생각하며 타협점을 찾아야 한다. 왜냐하면, 너무 한국인들에 맞춰 연기하면 외국 사람들은 우스꽝스럽게 볼 수 있다. 반대로 외국인만을 생각하고 연기하면 한국에서 연기 비평을 들을 수 있다. 그 안에서 어떤 모음의 발음을 집어 유니버설하게 할 수 있을까를 생각했다"고 전했다.
배우 유태오의 개인적인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극 중 표현되는 군 생활에 대해 언급하자 유태오는 "여름 방학마다 독일에서 농구 선수 한 달 합숙 훈련을 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15살 때, 한양대학교를 갔었다. 90년도 중후반 시절 한양대 합숙 훈련이 군대보다 더 극단적인 걸로 유명했다. 독일의 교육을 받으면서 문화 충격을 받았던 순간이었다. 일단, 단체 기합을 받는 것. ‘머리 박아!’ 하면 머리를 박는 것. 왜 박는지는 모르겠는데. 농구만 사랑해서 오는 사람에게 많은 폭언과 폭행이 있었다"라고 고백해 놀라움을 자아냈다.
다만 그는 "제가 이상하게 사디스트인 면이 있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다음에 또 가겠다고 했다. 그렇게 3년간 훈련을 받고, 삼성에서 선수 제안을 받았지만, 부상으로 가지 못했다"라고 너스레를 떨며 "이후 독일에 가도 교포들과 잘 지내긴 했지만, 항상 어디로 가나 제가 항상 아웃사이더처럼 느껴졌다. 항상 예외적인 경험을 겪어왔다. 그래서 작품 속 군대가 낯설지 않은 경험이었고, 어떤 우리나라 사람보다 집요하게 갈 수 있는 자신이 있는 사람"이라고 자부했다.
한동안 국내 작품에서 모습을 보기 힘들었던 유태오. 그는 노아 센티네오 등과 함께 '더 리크루트2'에 출연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작품 참여 비하인드에 "‘세상에서 가장 나쁜 소년’ 후 심리적으로 힘들어서 쉬어야겠다 했고, 미국 파업도 있어서 1년 반 정도 본의 아니게 쉬게 되었다. 일단 방송 연기 순발력을 조금 더 배우자는 마음이었는데 갑자기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더 리크루트’의 오디션이 들어오게 된 거다. 극 중 요원으로 등장해 영어도 한국 연기도 하는데, 나중에 작품 기획 만들고 싶은데, 노아 센티네오가 그걸 지금 하고 있어서 ‘가서 배워야겠다’ 싶었다. 노아가 팔로우 수가 150만이 넘는다. 세계 시장을 위해 제가 옆에서 조연으로 붙어있으면 좋지 않을까? 하는 인기 요소를 바라는 마음도 있었다. 앞으로의 미래, 산업주의적인 이유도 있었다"라고 덧붙였다.
또한 그는 그간 자신의 커리어에 대해 "복은 너무 있는 것 같다. 제가 제 커리어를 보더라도, 제가 장편 영화 데뷔작이 2003년에 찍고 2005년에 개봉한 게 있다. 그게 칸에 들어갔었다. 제가 나오는 장면이 두 개밖에 없는데. 정말 뭔지 모르겠다. 너무 감사하다. 선택을 계속 받는 입장에서, 고맙다. 오디션을 열심히 보고, 연기에 집중하고, 어떻게 발전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을 뿐인데, 영화제에서 좋아하는 소재를 다루는 감독님들의 레이다에 어떻게 걸려들어 갔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떻게 운명처럼 하게 되었다"라고 웃었다.
특히 유태오는 '패스트 라이브즈'를 '나의 인생을 바꿔준 작품'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먼저 객관적인 포인트로는, 제 위치, 제 커리어에 이 작품이 어떤 영향을 끼칠지 알고 있었다. 관객과 평론가들이 이 영화를 보고, 제 마음의 움직임을 똑같이 느낀다면, 많은 사람들이 저를 볼 거고, 그 이후 세계적 커리어가 어찌 바뀔지에 대한 예감이 왔었다. 아직도 열심히 새 테이프를 찍으며 오디션을 준비하지만, 다른 점은, 95%는 먼저 오퍼가 들어온다. 선택할 수 있는 너무나 감사한 상황이 펼쳐졌다. ‘패스트 라이브즈’에서 제 연기를 보고 들어오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주관적인 포인트는, 제가 지난 20년 동안 연기를 하며 학교에서 배우고 경험으로 쌓았던 방식으로 모든 역할을 접근했었다. 어떤 캐릭터, 어떤 장르다, 라는 점에서 접근하고, 누가 어떻게, 질문하고, 시나리오 분석하고, 어디에 어떻게 몰입하지? 내 인생에 뭐가 있었지? 하는 기술적인 접근이 있었다. (하지만) ‘패스트 라이브즈’의 해성은 ‘인연’이라는 철학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소화해야만 여한이 없는 연기가 나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양, 철학적인, 불교적인 이야기를 믿어야겠다는 셈이 되었다"고 전했다.
그는 "그러다 보니 이 영화가 끝나고 나니 세상을 다르게 보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연기 해야 하는 캐릭터도 인연이라면, 이런 철학으로 보면 새로운 캐릭터가 아니, 이미 제가 살던 삶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접근하니 복잡해지더라. 캐릭터들의 영혼을 믿어야 하는가에 대한 생각이 들고, 내 인생이 어떤 운명인가라는 생각도 들었다"라며 "더불어 조금 더 본능적으로 연기가 바뀐 것 같다. 전 작품이 ‘연애대전’이었다. 로맨틱 코미디였는데, 웃음을 자극해야 하다 보니 결과적인 연기를 했다. 배우 입장에서 어떤 캐릭터가 먹히는지를 알게 되면, 똑같은 기술을 써서 상업 요소에 기대어 연기할 것인가, 혹은 매너리즘을 포기하고 새로운 것을 탐구할 것인가 갈등에 서게 된다. 저는 그중에서 새로운 것을 선택하게 됐다. 저에게 솔직하기 위해서는 그렇게 해야 했다"라고 덧붙였다.
한편 ‘패스트 라이브즈’는 오는 3월 6일(수) 국내 개봉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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