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뉴스 | 김우종 기자]
ABS(자동 투구 판정 시스템), 이른바 '로봇 심판'의 볼 판정 하나에 37세 베테랑 정훈(롯데 자이언츠)이 그 자리에서 털썩 주저앉았다.
29일 사직 NC-롯데전.
롯데가 3-1로 앞서고 있는 8회말. NC는 투수를 한재승에서 김재열로 교체했다. 선두타자 전준우는 7구 승부 끝에 볼넷으로 출루했다. 롯데는 전준우를 대주자 황성빈으로 교체하며 NC 내야진을 압박했다. 다음 타자 노진혁은 좌익수 플라이 아웃.
이어 정훈이 타석에 들어섰다. 볼카운트 1-1에서 3구째 헛스윙하는 과정에서 황성빈이 2루 도루에 성공했다. 롯데가 승리 점수를 올릴 수 있는 절호의 득점 기회가 왔다. 4구째는 볼. 그리고 5구째. 김재열의 123km 커브가 포물선을 그리면서 몸쪽 높은 코스로 향했다.
공이 미트에 꽂혔고, 뒤이어 유덕형 주심이 스트라이크 콜을 하며 삼진 아웃을 선언했다. 이 볼 판정 하나에 정훈은 다리에 힘이 풀린 듯 그 자리에 잠시 털썩 주저앉았다. 이어 아쉬운 표정을 가득한 채로 더그아웃으로 향했다.
정훈으로서는 아쉬울 법도 했지만, 이제는 ABS 시대였다. 더 이상 항의할 주체도 없었다. 주심은 ABS 음성 신호를 전달받은 대로 판정을 했을 뿐이었다. 중계 화면에는 롯데 팬들도, 김태형 롯데 감독도 아쉬워하는 모습이 그대로 잡혔다.
앞선 장면에서도 비슷한 코스로 들어간 공이 스트라이크로 판정돼 타자가 아쉬움을 표출한 적이 있었다. 롯데가 0-1로 뒤지고 있던 4회말. 2사 1루에서 롯데 나승엽이 타석에 들어섰다. NC 투수는 선발 김시훈. 그리고 초구로 선택한 112km 커브가 포물선을 그린 뒤 바깥쪽 높은 코스로 들어갔다. 이번에도 유덕형 주심은 스트라이크 콜을 했다. 그러자 나승엽이 다소 황당하다는 듯 타석에서 잠시 발을 뺀 뒤 헛웃음을 지어 보였다. 아무래도 나승엽은 높으면서 멀었다고 판단한 듯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ABS는 스트라이크로 판정했다.
정훈과 나승엽 모두 아쉬움을 드러낸 이유가 있었을 터다. 일단 중계방송에 나오는 KBO ABS 존(2D 화면)에는 스트라이크 존에 걸치지 않았다. 지난 시즌처럼 사람 심판이었을 경우, 스트라이크가 아닌 볼로 판정했을 가능성이 높은 공들로 보였다. 공교롭게도 두 장면의 구종 모두 높은 쪽 커브로 같았다. 타자로서는 치기 어렵거나, 쉽게 배트가 나가기에 어려운 공으로 판단했을 가능성이 높다. 반대로 투수 입장에서는 절묘하게 스트라이크 존에 걸치도록 던진 공으로 볼 수도 있었다.
KBO가 발표한 ABS 관련 운영 개요 및 시행세칙에 따르면 스트라이크 존 설정은 '홈 플레이트 중간 면과 끝면 두 곳'에서 상하 높이 기준을 충족해야 스트라이크로 판정한다. KBO는 "2024시즌 적용될 ABS의 좌우 기준은 홈 플레이트 양 사이드를 2cm씩 확대해 적용한다. 이 같은 설정은 규칙상의 스트라이크 존에 대한 ABS의 정확한 판정으로 볼넷이 증가하는 현상에 대해, 존의 급격한 변화로 인한 현장의 시행착오를 최소화하기 위해 심판과 선수단이 인식하고 있는 기존의 스트라이크 존과 최대한 유사한 존을 구현하기 위한 조정"이라면서 "MLB 사무국이 마이너리그에서 ABS를 운영할 때 양 사이드 2.5cm씩 확대 운영한 사례 등을 참고했다"고 밝혔다.
이어 "상·하단 기준은 홈 플레이트의 중간 면과 끝면 두 곳에서 공이 상하 높이 기준을 충족하여 통과해야 스트라이크로 판정된다. 포수 포구 위치, 방식 등에 상관없이 좌우, 상하 기준을 충족하여 통과했는지 여부에 따라 스트라이크가 판정된다"고 설명했다. 결국 이날 경기도 만만약 기계에 오류가 난 것이 아니라면, ABS는 홈 플레이트 중간 면과 끝 면을 모두 통과했다고 판단해 스트라이크 콜을 한 것이다.
스트라이크 존 상단은 지면 기준 선수 신장의 56.35%를 적용하며 하단은 선수 신장의 27.64%를 적용한다. 이에 신장 180cm 선수를 예로 들면 상단은 101.43cm, 하단은 49.75cm를 적용하게 되는 것이다. 타격 자세는 따로 고려하지 않는다. 타격 자세에 따라 스트라이크 존이 달라지면 이를 악용하는 사례가 나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 스파이크의 높이 역시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신장은 맨발 기준으로 측정했다.
KBO 리그가 세계 최초로 도입한 ABS는 선수들과 야구 팬들로부터 큰 호평을 받고 있다. 무엇보다 일관성 있는 판정과, 선수와 심판간 감정싸움이 사라진 모습에 팬들은 대환영하고 있다. 이제 ABS 시대 이전으로는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말까지 나온다.
현장에서는 키가 큰 타자들이 높은 코스 공략에 애를 먹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LG 홍창기(신장 189cm)는 지난 27일 잠실 삼성전에서 5회 삼성 선발 원태인의 바깥쪽 높은 슬라이더에 배트를 내지 못한 채 삼진을 당했다. 또 롯데 레이예스(신장 196cm)는 23일 SSG와 개막전에서 1회 김광현의 3구째 바깥쪽 높은 속구가 스트라이크로 판정되자 놀라며 주심을 바라보기도 했다. 홍창기와 레이예스 모두 ABS 존에 살짝 걸치거나 들어온 공들이었다.
앞서 시범경기 동안 염경엽 LG 감독은 "ABS는 타자들보다 투수한테 유리할 것 같다"면서 "다만 (시범경기) 한 경기를 해보니까 (홍)창기의 경우, 높은 코스로 들어온 볼 2개가 칠 수 없는 공이었는데 스트라이크가 선언됐다. 그런 부분은 수정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는 견해를 밝혔다.
김우종 기자 woodybell@mtstar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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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훈(오른쪽)이 29일 사직 NC전에서 8회말 1사 후 루킹 삼진을 당한 뒤 주저앉은 채 아쉬워하고 있다. /사진=티빙 중계화면 갈무리 |
29일 사직 NC-롯데전.
롯데가 3-1로 앞서고 있는 8회말. NC는 투수를 한재승에서 김재열로 교체했다. 선두타자 전준우는 7구 승부 끝에 볼넷으로 출루했다. 롯데는 전준우를 대주자 황성빈으로 교체하며 NC 내야진을 압박했다. 다음 타자 노진혁은 좌익수 플라이 아웃.
이어 정훈이 타석에 들어섰다. 볼카운트 1-1에서 3구째 헛스윙하는 과정에서 황성빈이 2루 도루에 성공했다. 롯데가 승리 점수를 올릴 수 있는 절호의 득점 기회가 왔다. 4구째는 볼. 그리고 5구째. 김재열의 123km 커브가 포물선을 그리면서 몸쪽 높은 코스로 향했다.
공이 미트에 꽂혔고, 뒤이어 유덕형 주심이 스트라이크 콜을 하며 삼진 아웃을 선언했다. 이 볼 판정 하나에 정훈은 다리에 힘이 풀린 듯 그 자리에 잠시 털썩 주저앉았다. 이어 아쉬운 표정을 가득한 채로 더그아웃으로 향했다.
정훈으로서는 아쉬울 법도 했지만, 이제는 ABS 시대였다. 더 이상 항의할 주체도 없었다. 주심은 ABS 음성 신호를 전달받은 대로 판정을 했을 뿐이었다. 중계 화면에는 롯데 팬들도, 김태형 롯데 감독도 아쉬워하는 모습이 그대로 잡혔다.
앞선 장면에서도 비슷한 코스로 들어간 공이 스트라이크로 판정돼 타자가 아쉬움을 표출한 적이 있었다. 롯데가 0-1로 뒤지고 있던 4회말. 2사 1루에서 롯데 나승엽이 타석에 들어섰다. NC 투수는 선발 김시훈. 그리고 초구로 선택한 112km 커브가 포물선을 그린 뒤 바깥쪽 높은 코스로 들어갔다. 이번에도 유덕형 주심은 스트라이크 콜을 했다. 그러자 나승엽이 다소 황당하다는 듯 타석에서 잠시 발을 뺀 뒤 헛웃음을 지어 보였다. 아무래도 나승엽은 높으면서 멀었다고 판단한 듯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ABS는 스트라이크로 판정했다.
정훈과 나승엽 모두 아쉬움을 드러낸 이유가 있었을 터다. 일단 중계방송에 나오는 KBO ABS 존(2D 화면)에는 스트라이크 존에 걸치지 않았다. 지난 시즌처럼 사람 심판이었을 경우, 스트라이크가 아닌 볼로 판정했을 가능성이 높은 공들로 보였다. 공교롭게도 두 장면의 구종 모두 높은 쪽 커브로 같았다. 타자로서는 치기 어렵거나, 쉽게 배트가 나가기에 어려운 공으로 판단했을 가능성이 높다. 반대로 투수 입장에서는 절묘하게 스트라이크 존에 걸치도록 던진 공으로 볼 수도 있었다.
KBO가 발표한 ABS 관련 운영 개요 및 시행세칙에 따르면 스트라이크 존 설정은 '홈 플레이트 중간 면과 끝면 두 곳'에서 상하 높이 기준을 충족해야 스트라이크로 판정한다. KBO는 "2024시즌 적용될 ABS의 좌우 기준은 홈 플레이트 양 사이드를 2cm씩 확대해 적용한다. 이 같은 설정은 규칙상의 스트라이크 존에 대한 ABS의 정확한 판정으로 볼넷이 증가하는 현상에 대해, 존의 급격한 변화로 인한 현장의 시행착오를 최소화하기 위해 심판과 선수단이 인식하고 있는 기존의 스트라이크 존과 최대한 유사한 존을 구현하기 위한 조정"이라면서 "MLB 사무국이 마이너리그에서 ABS를 운영할 때 양 사이드 2.5cm씩 확대 운영한 사례 등을 참고했다"고 밝혔다.
ABS 운영 개요도. /그래픽=KBO 제공 |
스트라이크 존 상단은 지면 기준 선수 신장의 56.35%를 적용하며 하단은 선수 신장의 27.64%를 적용한다. 이에 신장 180cm 선수를 예로 들면 상단은 101.43cm, 하단은 49.75cm를 적용하게 되는 것이다. 타격 자세는 따로 고려하지 않는다. 타격 자세에 따라 스트라이크 존이 달라지면 이를 악용하는 사례가 나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 스파이크의 높이 역시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신장은 맨발 기준으로 측정했다.
KBO 리그가 세계 최초로 도입한 ABS는 선수들과 야구 팬들로부터 큰 호평을 받고 있다. 무엇보다 일관성 있는 판정과, 선수와 심판간 감정싸움이 사라진 모습에 팬들은 대환영하고 있다. 이제 ABS 시대 이전으로는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말까지 나온다.
현장에서는 키가 큰 타자들이 높은 코스 공략에 애를 먹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LG 홍창기(신장 189cm)는 지난 27일 잠실 삼성전에서 5회 삼성 선발 원태인의 바깥쪽 높은 슬라이더에 배트를 내지 못한 채 삼진을 당했다. 또 롯데 레이예스(신장 196cm)는 23일 SSG와 개막전에서 1회 김광현의 3구째 바깥쪽 높은 속구가 스트라이크로 판정되자 놀라며 주심을 바라보기도 했다. 홍창기와 레이예스 모두 ABS 존에 살짝 걸치거나 들어온 공들이었다.
앞서 시범경기 동안 염경엽 LG 감독은 "ABS는 타자들보다 투수한테 유리할 것 같다"면서 "다만 (시범경기) 한 경기를 해보니까 (홍)창기의 경우, 높은 코스로 들어온 볼 2개가 칠 수 없는 공이었는데 스트라이크가 선언됐다. 그런 부분은 수정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는 견해를 밝혔다.
티빙 로고. /그래픽=티빙 제공 |
2024 ABS 스트라이크 존 기준. /그래픽=KBO 제공 |
2024 ABS 스트라이크 존 기준. /그래픽=KBO 제공 |
2024 ABS 스트라이크 존 기준. /그래픽=KBO 제공 |
김우종 기자 woodybell@mtstar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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