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하수정 기자] 같이 호흡을 맞춘 동료 이현욱의 말을 빌리자면, 영화 '설계자'에는 역대 가장 차가운 참치캔이 등장한다. 그만큼 강동원이 감정을 절제하고 대사까지 줄이면서 열연을 펼쳤다.
'설계자'(각본감독 이요섭, 제공배급 NEW, 제작 영화사 집)는 의뢰받은 청부 살인을 완벽한 사고사로 조작하는 설계자 영일이 예기치 못한 사건에 휘말리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2009년 개봉했던 홍콩영화 '엑시던트'를 원작으로 하고 있으며, 한국 버전으로 리메이크했다. 당시 '엑시던트'는 유수의 영화제에 초청됐고, 베니스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하는 등 뛰어난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세상의 모든 사건, 사고에는 우연과 필연이 존재하지만, 그 뒤에는 설계자가 있을 수도 있다. 강동원은 극 중 조작된 사고 현장에 늘 존재하는 설계자 영일로 분해 열연했다. 그동안 신학생이자 보조 사제, 꽃미남 사기꾼, 가짜 퇴마사 등 한 번도 겹치는 캐릭터가 없었는데, 이번에도 새로운 역할로 돌아왔다.
영일과 호흡을 맞추는 삼광보안 팀원 베테랑 재키(이미숙 분), 변신의 귀재 월천(이현욱 분), 막내 점만(탕준상 분) 등이 의뢰받은 청부 살인을 실행하는 장면은 잘 짜여진 범죄물 같다. 그러나 불의의 사고로 사망한 팀원 짝눈(이종석 분)의 존재가 드러나고 중반부를 거쳐 후반부로 갈수록 서로를 의심하는 심리극의 모습도 보였다가, 보험 전문가 이치현(이무생 분)이 등장하면서 사건은 더욱 복잡하게 꼬여간다. 가벼운 범죄물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특히 강동원은 최대한 대사를 줄이고 대신 눈과 표정으로 감정을 내비친다. 특별히 발성에 신경 썼고, 기존 작품들과 비교해 낮은 음성과 날카로운 눈빛이 돋보인다. 영일에게 팀원들은 가족이나 다름없는데, 믿고 일하는 존재에서 점점 의심하고, 하나 둘 멀어지게 된다. 동생 짝눈도 실체를 알 수 없는 청소부에 의해 죽었다고 믿는다.
이 과정에서 강동원의 외면도 조금씩 달라진다. 비주얼은 바싹 말라가는 나무를 보는 듯하고, 죽은 짝눈을 계속 떠올리며 심리적인 지배를 받는다. 자신의 믿음이 깨지고, 깊어지는 내적 혼란에 점점 미쳐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앞서 그가 '영일'을 두고 "지금까지 연기한 캐릭터 중 가장 차갑고 건조한 인물"이라고 말한 이유가 충분히 이해되는 대목이다.
'설계자'는 원작인 홍콩영화의 핵심 줄거리를 그대로 가져왔고, 원작의 내용을 충분히 살리면서, 곁가지를 붙이지 않는 깔끔한 전개로 총 러닝타임은 100분이 채 넘지 않는다.
5월 29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9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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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영화 포스터 및 스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