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이후광 기자] 2021년 이후 3년 만에 또 한 명의 ‘이틀 휴식한’ 타이브레이커 영웅이 탄생하는 것일까.
프로야구 KT 위즈의 토종 에이스 고영표는 지난 28일 수원KT위즈파크에서 열린 2024 신한 SOL뱅크 KBO리그 키움 히어로즈와의 시즌 최종전에 깜짝 구원 등판해 5이닝 1피안타 무사사구 4탈삼진 1실점 48구 역투로 팀의 10-7 승리이자 공동 5위 확보를 이끌었다.
고영표는 1-6으로 뒤진 4회초 2사 1, 2루 위기에서 주권에 이어 마운드에 올랐다. 2023년 4월 2일 수원 LG 트윈스전 이후 545일 만에 구원 등판이었다. KT 이강철 감독은 경기 전 총력전의 일환으로 21일 수원 SSG 랜더스전을 끝으로 휴식 중이었던 고영표의 중간 투입 계획을 밝혔었다. 타이브레이커 성사 시 선발 등판이 유력한 고영표가 마운드에서 불펜피칭을 하는 개념이기도 했다.
고영표는 등판과 함께 김건희를 루킹 삼진으로 잡고 위기를 수습했다. 이어 5회초 5구 삼자범퇴, 6회초 12구 삼자범퇴, 7회초 6구 삼자범퇴, 8회초 11구 삼자범퇴 완벽투를 펼치며 9회초 선두타자 박수종에게 좌전안타를 맞을 때까지 13타자 연속 범타 행진을 펼쳤다. 그 사이 타선도 힘을 내면서 10-6으로 앞선 채 9회초를 맞이했다. 승리가 절실한 이 감독은 당초 계획과 달리 감이 좋은 고영표를 9회까지 그대로 밀어붙였다.
고영표는 박수종의 안타로 처한 무사 1루에서 김태진을 중견수 뜬공, 이주형을 2루수 땅볼 처리, 상황을 2사 2루로 바꿨다. 이어 마무리 박영현과 교체되며 경기를 마쳤다. KT는 10-7로 승리하며 공동 5위를 확보했고, 고영표는 2016년 8월 16일 광주 KIA 타이거즈전 이후 2965일 만에 구원승을 맛봤다.
경기 후 만난 고영표는 “승리해서 기분이 좋다. 좋은 투구를 펼칠 수 있어 다행이었다”라며 “마운드에서 아웃카운트 1개를 잡고 내려갔는데 감독님이 길게 갈 수도 있으니 준비하라고 하셨다. 그 다음 이닝부터 밸런스가 좋게 이어져서 길게 던질 수 있었다. 내일이 없는 경기였기에 현재 컨디션이 좋은 선수를 계속 쓰는 게 승리 확률을 높일 수 있다. 내 컨디션이 좋아서 승리에 기여할 수 있었다”라고 승리 소감을 전했다.
5년 총액 107억 원 다년계약 첫해를 맞아 고영표는 부상과 부진을 거듭했다. 시즌 2경기 등판 후 팔꿈치를 다쳐 두 달 넘게 전열에서 이탈했고, 복귀 후에도 잦은 기복을 보이며 팀에 보탬이 되지 못했다. 지난해 28경기 12승 7패 평균자책점 2.78로 호투한 그는 올해 18경기 6승 8패 평균자책점 4.95의 아쉬움을 남겼다. 소화 이닝도 174⅔이닝에서 100이닝으로 급감했다.
고영표는 “개인적으로 아쉬운 시즌이다. 이닝을 많이 소화하지 못했다. 리그의 여러 변화된 부분에 적응하는 데 조금 어려움을 겪었다. 또 내 구위가 시즌 도중 떨어졌던 게 아쉬웠다”라며 “부상이라는 게 굉장히 위험하다는 걸 느낀 시즌이기도 했다. 올 시즌을 다시 돌아보면서 교정을 할 생각이다”라고 되돌아봤다.
그래도 최종전 깜짝 구원승을 비롯해 9월 들어 4경기 2승 2패 평균자책점 2.74로 에이스의 면모를 되찾았다. 고영표는 “오늘 경기는 밸런스도 괜찮았고, 공의 힘도 느껴졌다. (장)성우 형도 그렇게 느꼈는지 패스트볼 위주의 볼배합을 요구했다. 시즌을 치르면서 계속 밸런스가 잡히는 느낌이다. 부상이 있었고, 늦게 시동이 걸려 늦게나마 컨디션이 올라오는 거 같다”라고 바라봤다.
고영표의 다음 미션은 타이브레이커 선발 등판이다. 30일 인천 SSG 랜더스-키움 히어로즈전에서 SSG가 승리할 경우 공동 5위를 이뤄 내달 1일 KBO리그 사상 첫 5위 결정전이 열리는데 이강철 감독은 선발투수로 고영표를 낙점했다. 고영표는 부진 속에서도 올해 SSG 상대 4경기 3승 1패 평균자책점 2.08의 강세를 보였다. 지난해 또한 3경기 3승 평균자책점 2.05로 강했다.
고영표는 “감독님이 계속 상황을 지켜보시면서 내가 SSG에 강하니 준비를 해달라고 말씀해주셨다. 그래서 오늘 경기 1이닝을 말씀하셨는데 길게 던지게 됐다. 상황이 바뀌면 선수가 그때그때 적응을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고영표가 10월 1일 5위 결정전에 출격할 경우 29일과 30일 이틀밖에 쉬지 못하고 마운드에 올라야 한다. 물론 28일 투구수가 48개에 불과했지만, 어쨌든 홀로 5이닝을 책임졌다. 이에 대해 고영표는 “문제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되면 내가 잘 던질 수 있는 컨디션을 만들어야 한다. 난 그런 의지가 있고, 나가서 잘할 수 있다”라고 투혼을 약속했다.
KT는 3년 전 KBO리그 사상 첫 1위 결정전에서 승리한 뒤 한국시리즈를 제패하며 창단 첫 통합우승을 달성했다. 타이브레이커 당시 이틀밖에 쉬지 못한 윌리엄 쿠에바스가 선발 등판해 7이닝 무실점 역투로 영웅이 됐다.
시간이 흘러 공교롭게도 2021년과 상당히 비슷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타이브레이커가 성사될 경우 고영표가 제2의 쿠에바스가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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