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멜버른(호주), 이상학 기자] “양상문 코치님이 가르쳐주신 대로 던져보니까…”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의 특급 신인 투수 정우주(19)는 전주고 시절 최고 시속 156km까지 뿌린 우완 파이어볼러다. 182cm, 88kg으로 엄청나게 큰 체구는 아니지만 부드러운 투구폼에서 팔 스윙이 빨라 큰 힘 들이지 않고 150km대 강속구를 펑펑 꽂는다.
다른 해였더라면 무조건 1라운드 전체 1순위로 지명될 초대형 유망주이지만 키움의 선택은 덕수고 좌완 정현우였다. 정현우도 최고 시속 152km까지 던지는 좌완 강속구 투수로 제구나 변화구 구사 능력 등 전체적인 완성도 면에서 정우주보다 높게 평가됐다.
정우주도 파이어볼러치곤 공이 날리지 않고 제구가 안정적이다. 그러나 강속구의 위력을 배가 시킬 수 있는 변화구가 마땅치 않았다. 정현우가 포크볼이라는 수준급 결정구가 있는 반면 정우주는 확실하게 쓸 수 있는 변화구가 없었다. 전체 1순위를 놓친 결정적인 이유였다.
하지만 2순위로 한화에 온 것이 정우주에겐 행운이 될 것 같다. 한화의 호주 멜버른 스프링캠프에서 정우주는 변화구로 커브를 집중 연마하고 있다. 원래도 커브를 던졌지만 플러스 구종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번 캠프에서 정우주의 불펜 피칭을 보면 커브가 12시에서 6시 방향으로, 홈플레이트 앞에서 꺾이는 낙폭이 상당하다.
커브 그립을 바꾼 것이 주효했다. 원래는 너클커브처럼 검지손가락 끝을 구부려 잡았는데 지난해 일본 미야자키 마무리캠프 때부터 양상문 코치의 조언을 받아 검지와 중지에 실밥을 걸쳐 잡는 그립으로 바꿨다. 국내 최고 투수 전문가로 꼽히는 양상문 코치는 트랙맨 수치를 근거로 정우주에게 커브에 변화를 줘야 할 이유를 설명했다. 바꾼 그립으로 연습하면서 커브의 각이 몰라보게 좋아졌다. 정우주는 “양상문 코치님이 가르쳐준 방식으로 던져 보니 커브 제구 잡기가 수월하고, 회전도 이전보다 잘 먹는다. 계속 연습을 하다 보니 커브 던지는 감이 잡혔다”고 말했다.
양상문 코치는 정우주에 대해 “김택연(두산)이나 박영현(KT)처럼 힘으로 밀어붙이는 투수다. 공이 밑에서부터 힘 있게 차고 올라오는 스타일이다. 그런 공에 타자를 잡아낼 수 있는 변화구 하나 있으면 김택연, 박영현 같은 투수가 될 수 있다”며 “커브가 많이 좋아졌다. 당장 선발로 던질 게 아니기 때문에 직구, 커브 2개 구종으로도 올해는 불펜에서 충분히 잘 쓸 수 있을 것이다”고 평가했다. 커브를 자기 것으로 만든다면 정우주의 잠재력이 폭발할 수 있다.
캠프에 들어와서 불펜 피칭을 3차례 소화하면서 투구수를 50개로 끌어올린 정우주는 “프로에서 첫 캠프인데 고교 때보다 확실히 체계적이고, 훈련 분위기가 다르다. 불펜 피칭이 점점 좋아지고 있지만 아직 많이 부족하다. 투구시 왼발이 크로스되며 팔이 잘 안 넘어오는 부분을 신경 쓰고 있다”고 밝혔다.
내야수를 한 경험으로 팔 스윙이 간결하고 빠른 정우주는 공이 포수 미트에 꽂히는 소리부터 다르다. 박영현과 김택연처럼 수직 무브먼트가 좋아 볼끝이 묵직하다. 정우주 역시 “박영현 선배님, (김)택연이 형의 공은 TV 중계로만 봐도 위력적이다. 저도 그렇게 던질 자신 있다”며 패기를 보였다.
미래에는 선발로 던져야 할 투수이지만 프로 첫 해는 불펜으로 시작한다. 안우진(키움), 원태인(삼성), 곽빈(두산) 등 현재 KBO리그를 대표하는 젊은 선발투수들도 시작은 불펜이었다. 정우주는 “고교 때부터 선발이 꿈이었지만 지금은 시켜주시는 대로 해야 한다. 불펜에서 어떤 보직이든 맡은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1순위로 키움에 지명된 ‘라이벌’ 정현우는 전면 리빌딩으로 외국인 투수를 한 명만 쓰는 팀 기조에 의해 선발 기회를 꾸준하게 받을 가능성이 높다. 신인왕 경쟁에 있어 정우주가 조금 불리하지만 불펜으로 경쟁력을 보여주면 또 모른다. 커브를 제대로 장착하면 짧은 이닝 힘을 압축해 쓸 수 있는 불펜으로 강속구의 장점을 극대화해 더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다.
정우주는 “신인왕에 대한 욕심이 없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그거에 집중하면 중요한 것을 놓칠 수 있다. 무조건 팀 성적이 우선이다. 우승이 더 큰 목표다. 한국시리즈에 가면 전승 말고 4승1패로 한화 이글스 홈구장에서 우승하고 싶다”고 말했다. 올해부터 한국시리즈 홈-원정 경기 포맷이 2-2-3에서 2-3-2로 변경됨에 따라 한화가 4승1패로 홈에서 우승하기 위해선 플레이오프에서 올라와 5차전에 끝내야 하다. 이 같은 설명에 살짝 당황한 정우주는 “그럼 6차전 가서 4승2패로 우승하겠다”며 빙긋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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