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재민의 축구話] 실수로 희비 교차한 노스웨스트 더비
입력 : 2012.01.31기사보내기 :  트위터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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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탈코리아] 경제학에는 완전시장(Perfect market)이란 개념이 있다. 가격 형성을 위한 모든 환경이 이론대로 충족된다는 전제에서만 가능한 이론인 탓에 실현 가능하진 않지만 현실 속 시장을 분석하는 출발점이 되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

스포츠도 마찬가지다. 모든 선수가 동일한 심리/체력 조건에서 이론과 훈련을 100% 발휘한다면 항상 완벽한 경기력을 발휘할 수 있다. 상대팀이 전력 분석 데이터대로만 나오고 자기 팀 선수들이 작전 지시를 완벽하게 수행하면 이 세상 모든 축구 감독은 백전백승 천하무적의 명장이 될 것이다. 완벽한 공격은 언제나 골을 뽑아낼 것이며 완벽한 수비는 항상 무실점 행진을 벌일 것이다. 잘 알다시피 현실 속에서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완전시장처럼 완벽한 플레이를 기준으로 현실 속 플레이를 평가할 뿐이다. 실제로 축구에서는 공격을 잘해서 득점을 얻기보다 수비가 실수를 저질러서 실점을 허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지난 주말 리버풀의 홈구장 안필드에서는 리버풀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가 잉글리시 FA컵 32강전에서 맞붙었다. 경기가 있기 전, 양팀의 노림수는 뻔했다. 케니 달글리시 감독으로서는 맨유의 괴멸된 수비진으로 하여금 실수를 저지르도록 부추겨야 했다. 맨유의 입장에서는 앞선 조직력을 바탕으로 중원에서 볼 점유율을 높게 가져가면서 경기를 유리하게 이끌어가 공격 빈도수를 최대한 높여야 했다. 선수단 변화가 잦은 리버풀은 맨유에 비해 팀 플레이의 정교함이 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맨유가 먼저 실수를 저질렀다. 전반 21분 코너킥 수비 상황에서 골키퍼 다비드 데 헤아는 미숙한 공중 볼 처리로 실점을 헌납했다. 자기가 책임져야 할 영역에서 공중으로 날아오는 볼에 손을 대기는커녕 점프도 하지 못하고 다니엘 아게르에게 완벽한 헤딩슛 기회를 내줬다. 맨유는 이미 알려진 약점 탓에 실점을 허용했고, 리버풀은 그곳을 정확히 찔러 득점을 얻을 수 있었다.

한 골 뒤진 맨유의 알렉스 퍼거슨 감독은 측면에 있던 박지성과 중앙의 라이언 긱스의 위치를 맞바꿨다. 측면 공격을 강화시켜 공격력을 높이고자 한 전술 변화였다. 그러나 측면에 선 긱스는 젊은 윙백 마틴 켈리의 에너지 넘치는 수비에 꽉 막혀 기를 펴지 못했다. 이날 리버풀은 쓰리백으로 경기를 시작했다. 켈리의 뒤에는 대인방어에 일가견이 있는 마르틴 스크르텔이 버티고 있었다. 두 명의 파워 넘치는 수비수를 39세의 긱스가 제쳐내기는 버거웠다.

잘 막나 싶었지만 엉뚱하게도 반대편 측면 수비에서 구멍이 났다. 왼쪽 윙백으로 배치된 호세 엔리케를 맨유의 라이트백 하파엘이 완벽하게 뚫어냈다. 대인방어 실패라는 개인적 측면과 윙백 포지션이라는 부득이한 위치선정이라는 전술적 측면이 동시에 유발시킨 수비 실수였다. 투지 넘치는 땅볼 크로스가 위험지역으로 들어가는 동안 리버풀은 박지성을 자유롭게 놔두는 두 번째 수비 실수를 저질렀다. ‘빅매치의 사나이’라는 캐릭터를 입증하듯 박지성의 논스톱 슈팅은 정확한 임팩트와 함께 팀의 동점골로 이어졌다. 리버풀의 선제 득점과 마찬가지로 맨유의 동점골도 공격 성공이 아니라 수비 실패로 만들어진 결과물이었다.

경기 막판까지 1-1 동점 상황이 지속되자 퍼거슨 감독이 다시 한번 포메이션을 바꿨다. 폴 스콜스를 빼고 하비에르 에르난데스가 투입되면서 4-2-3-1 전형은 4-4-2로 전환했다. 박지성과 긱스는 다시 자리를 맞바꿨다. 오랜 시간 한 팀에서 함께 호흡을 맞춘데다 전술 수행 능력이 뛰어난 두 선수가 있었기에 퍼거슨 감독은 달글리시 감독보다 선택의 폭이 넓었다. 리버풀도 디르크 카윗, 찰리 아담, 크레익 벨라미를 연속 투입함으로써 결승골을 노렸다. 이날 비기게 되면 올드 트라포드 원정에서 재경기를 치러야 한다는 배경이 달글리시 감독으로 하여금 막판 총공세 결단을 내리게 했다.

리버풀의 공격 축구가 성공을 거두진 못했지만 상대가 자멸해준 덕분에 궁극적 목적을 달성할 수 있었다. 후반 정규시간 종료 1분을 남겨놓고 페페 레이나의 골킥이 앤디 캐롤의 머리를 스쳐 카윗에게 정확히 연결되었다. 올 시즌 후보로 전락한 카윗은 깔끔한 마무리로 맨유의 희망을 꺾어버렸다. 전반전 데 헤아에 이어 실점을 헌납한 인물은 다름아닌 파트리스 에브라였다. 수비수를 자기 앞에 둬야 한다는 수비의 기본 중 기본을 잊은 에브라는 카윗보다 3~4미터나 앞서있었다. 에브라는 날아가는 볼보다 당연히 느리다. 영국 축구식으로 표현하자면 ‘School boy mistake’을 저지른 셈이다. 그라운드 위의 에브라는 고개를 떨궜고 관중석의 수아레스는 환호성을 질렀다.

리버풀은 맨체스터의 시끌벅적한 두 팀을 모두 대회에서 탈락시키는 개가를 올렸다. 팀의 기둥 스티븐 제라드가 아직 정상 컨디션을 온전히 회복하지 못한 상태에서 맨시티와 맨유를 꺾었다는 사실은 자신감을 얻기에 충분한 결과다. 특히 공격수 1호가 관중석에 앉아있고 공격수 2호는 골대 맞히기 신공만 갈고 닦는 답답한 상황이었기에 맨유의 결정적 수비 실수가 더없이 고맙고 짜릿할 따름이다. 반면 퍼거슨 감독으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결과였을 것이다. 1군 대부분이 부상으로 쓰러진 공백을 이만큼 메울 수 있는 팀은 프리미어리그에서도 맨유가 유일하다. 그러나 퍼거슨 감독의 ‘완전축구’의 꿈은 실수에 의해 깨져버렸다.

올 시즌 우승 후보들의 실수가 두드러진다. 그렇게 강해 보이던 맨시티와 맨유가 하위권 팀들에게 발목을 잡힌다. 액면가로만 보면 전혀 뒤질 것 없는 첼시는 지금 4위권 수성을 위해 허우적거린다. 아스널은 시즌 초반 승점을 다 날려먹었고 리버풀은 강팀에 강하고 약팀에 약한 모습을 드러내며 좌충우돌하고 있다. 어찌 보면 토트넘이 가장 안정적인 경기력을 유지하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저마다 완전축구를 추구하고 있지만 현실 속 실수들 덕분에 올 시즌 프리미어리그 대권 경쟁이 유난히 흥미진진해질 것 같다. 리버풀과 맨유가 지난 주말 몸소 입증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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