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샤바 통신] '눈물 날 정도로' 잘하는 스페인과 이탈리아
입력 : 2012.06.11기사보내기 :  트위터  페이스북
기사 첨부이미지
[스포탈코리아=그단스크(폴란드)] 홍재민 기자= 최근 두 대회 월드컵 챔피언끼리 맞붙었다. 수준 높은 플레이는 당연하다. 하지만 현장에서 본 스페인과 이탈리아는 정말 해도 너무할 정도로 잘했다.

바르샤바 중앙역에서 새벽 기차를 타고 그단스크로 이동했다. 아는 거라곤 민주화 영웅 레흐 바웬사밖에 없는 폴란드 북부 해안 도시다. 하지만 낯선 땅의 무지(無知)는 큰 의미가 없었다. 관광 중심인 구시가지를 점령한 스페인과 이탈리아 팬들 자체가 이날의 최고 볼거리였기 때문이다. 다만 이상할 정도로 스페인 팬들 숫자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금색 외벽이 인상적인 ‘아레나 그단스크’에 도착해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붉은색 스페인 팬들은 지정 구역 외에도 경기장 곳곳을 차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탈리아 팬 구역에는 빈자리가 눈에 띄게 많았다. 승부조작 등으로 어수선한 국내 축구 상황을 말해주는 듯했다.

스페인과 이탈리아는 조별리그 첫 경기에서 모두 변칙 전술을 선택했다. 빈센테 델 보스케 감독은 최전방 공격수가 없는 ‘제로톱’ 전술을 들고 나왔다. 4-3-3 포메이션의 최전방에 세스크 파브레가스가 섰다. 부스케츠와 파브레가스 둘 중 하나를 버려야 하는 고민에서 엉뚱하게 페르난도 토레스가 희생되고 말았다. 이탈리아의 체사레 프란델리 감독은 스리백 전술을 꺼내 들었다. 다니엘레 데 로시가 중앙 수비수를 맡았다. 3-5-2 전술에서 공격은 안토니오 카사노와 마리오 발로텔리의 몫이었다.

결과부터 말하면 맞대결은 1-1 무승부로 끝났다. 기록지 상으로는 당연히 득점이 터진 후반전이 더 재미있었다. 하지만 ‘아레나 그단스크’에 모인 3만9천여 관중은 전반 내내 그라운드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 양팀 공히 전반전 전술 완성도가 더 뛰어났다. 여섯 명의 스페인 미드필더들은 정교한 숏 패스로 주도권을 잡았다. 이탈리아는 견고했다. 안드레아 피를로를 중심으로 클라우디오 마르키시오와 티아고 모타가 스페인의 패스 줄기를 차례차례 끊어냈다. 개인기 면에서는 스페인이 앞섰지만 경기를 읽는 능력에선 이탈리아가 탁월했다.

개인과 팀의 전술 조화가 승리를 만든다. 전반 45분간 양팀은 두 가지 요소를 완벽에 가깝게 소화해냈다. 다비드 실바와 파브레가스의 콤비 플레이와 피를로-모타의 협력 압박은 부분 전술의 정수였다. 스페인의 허리는 유기적이고 이탈리아의 허리는 조직적이었다. 이탈리아 전술은 일견 ‘닥치고 수비’ 식으로 폄하될 수도 있다. 하지만 스페인이 볼을 잡고 하프라인을 넘어올 때 이탈리아의 수비는 정삼각형 대형을 유지해 공간을 없애버렸다. 이런 전술 조직을 90분 내내 유지할 수 있는 팀은 지구상에 그리 많지 않다.

물론 후반전에도 양팀의 환상 축구는 그대로 이어졌다. 전반전과 비교한다면 경기장 밖 머리 싸움이 재미를 더했다. 이탈리아는 최전방 투톱을 모두 바꿨다. 그 중 한 명이었던 안토니오 디나탈레가 선제골을 넣으며 프란델리 용병술을 빛냈다. 하지만 3분 뒤 스페인의 파브레가스가 동점골을 작렬시켰다. ‘제로톱’ 전술이 의미를 찾는 순간이었다. 델 보스케 스페인 감독은 한 골 뒤진 상황에서 골잡이가 아니라 헤수스 나바스를 투입시키는 용단을 내렸다. 미드필더 동료들에게 순위가 밀린 페르난도 토레스가 후반 29분에야 겨우 투입될 수 있었다. 뛰어서 다행이지만 토레스의 속이 편할 리 없다.

종료 휘슬이 울리자 양팀 반응은 극명하게 갈렸다. 스페인 선수들은 고개를 숙이고 승리 실패를 아쉬워했다. 그러나 이탈리아 주장 지안루이지 부폰은 동료들과 일일이 포옹을 나누며 기뻐했다. 프란델리 감독도 흡족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환호하는 이탈리아 팬들과 한숨을 내쉬는 스페인 팬들의 표정이 극명히 대비되었다.

국가대표팀과 K리그 현장에서 따분할 정도로 자주 듣는 말이 바로 “스페인 축구를 하고 싶다”는 지도자들의 바람이다. 평소 TV화면으로 바르셀로나와 스페인 대표팀의 축구와 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한다. 눈 앞에서 펼쳐진 스페인과 이탈리아의, 믿을 수 없을 만큼 높은 수준의 축구는 너무나 감동적이었다.

오늘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