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탈코리아=그단스크(폴란드)] 홍재민 기자= 힘센 형들에게 실컷 두들겨 맞았다. 하지만 아일랜드 팬들은 여전히 행복하다. 행복은 성적 순이 아니다. 때로는 이기는 것보다 즐기는 것에 더 행복할 때도 있다.
대회 7일차 행선지는 폴란드 북부 아름다운 항구도시 그단스크였다. 기차의 마주앉은 자리에 백발의 스페인 어르신이 계셨다. 1970년 멕시코 월드컵 이후 모든 월드컵과 코파 아메리카를 현장 관전했다는 축구 역사의 산 증인이었다. 현장에서 직접 본 1970년 펠레의 월드컵 결승전 골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존경심이 저절로 생겨났다. 다섯 시간의 여행이 어르신의 인생 이야기로 지루하지 않았다.
스페인 팬들이 그단스크 거리를 점령했을 거란 생각은 여지없이 빗나갔다. 시내 중심가는 온통 녹색으로 물들어있었다. 수 만의 아일랜드 팬들은 24년만의 유로 출전을 마음껏 즐겼다. 점심식사를 위해 찾은 식당 직원의 첫 마디는 “맥주 없어요”였다. 맥주광(狂) 아일랜드 팬들 덕분에 맥주가 동이 나버린 것이다.
아일랜드는 1988년 대회 이후 지금까지 유로 본선 무대를 밟지 못했다. 그 동안 월드컵은 세 번이나 나갔지만 유로에선 구경꾼 신세였다. 유럽 팬 입장에선 사실 월드컵보다 유로 대회가 피부로 와 닿는다.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현장 관전이 가능한 덕분이다. 월드컵과 달리 출전선수들 대부분 낯익은 선수들이라서 더 친근할 수밖에 없다. 그런 축구 페스티벌에서 24년이나 외면당한 설움이 얼마나 컸겠는가?
점심을 간단히 해치운 뒤 다시 경기장으로 가는 기차를 타기 위해 중앙역으로 갔다. 플랫폼으로 올라가는 계단부터 아일랜드 팬들로 가득 찬 덕분에 녹색 부대 틈에 제대로 끼었다. 사람이 너무 많아 주최 측에서 플랫폼 진출을 조절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계단 중간에 선 채로 영어 특유의 유머가 넘치는 아일랜드의 응원가와 구호를 바로 옆에서 듣고 있자니 괜히 아일랜드 서포터가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다들 너무 행복했다. 첫 판부터 3-1로 패했고, 조금 후면 ‘외계팀’ 스페인을 상대해야 한다는 걱정 따위는 없었다. 최근 인기 서포팅인 ‘포즈난’(뒤로 돌아 어깨동무를 하고 자기 자리에서 들썩이는 동작. 맨체스터 시티 팬들도 애용한다)이 난데없이 계단에서 펼쳐졌다. 더블린에서 먼 길을 날아와 도착한 그단스크에서 이들 모두 ‘풋볼 피버’의 화신이 되어있었다. 한 아일랜드 팬과 짧은 대화를 나눴다. 여행 경로를 묻자 그는 “아일랜드 경기를 다 본다. 8강, 4강, 결승까지 다 볼 거다”라며 즐거워했다. 필자가 “그럼 당신 지금 스페인 따라다니는 거냐?”라고 장난을 쳤다. 아일랜드 팬은 동양인 기자의 짓궂은 농담에 크게 웃었다. 행복한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아일랜드는 참가에 의의를 둬야 한다. 조 배정이 처음부터 너무 험난했다. 스페인, 이탈리아, 크로아티아 모두 아일랜드에는 넘기 힘든 벽들이다. 이번 대회 다크호스가 될 수 있을 거라는 개막 전 기댄는 조별리그 첫 경기부터 속절없이 무너졌다. 크로아티아에 아일랜드는 실력차를 절감하며 3-1로 패했다. 세트피스에서 한 골을 만회하긴 했지만 크로아티아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그게 아일랜드의 현실이었다.
두 번째 경기였던 스페인전 90분도 아일랜드로서는 악몽이었다. 마치 프로팀을 상대하는 동네 축구팀 같았다. 경기 시작 4분만에 선제골을 허용했다. 몸값이 900억원에 달하는 페르난도 토레스였다. 프리미어리그에서 잔뼈가 굵은 리차드 던이었지만 토레스의 끈기에 뒤를 내주고 말았다. 이후 아일랜드는 수비에서 다소 힘을 냈다. 다행히 전반전을 1-0인 상태로 마칠 수 있었다.
아쉽게도 너무 잔인한 후반전 45분이 기다리고 있었다. 다비드 실바, 토레스 그리고 세스크 파브레가스에게 차례차례 당했다. 힘써볼 여지가 없었다. 완패였다. 참패였다. 명장 지오바니 트라파토니의 지도력도 소용없었다. 스페인 공격수들의 움직임을 쫓아다니기도 벅찼다. 창의적인 움직임과 간결한 패스 연결을 쫓아다니다가 밸런스를 잃고 뒤뚱거렸다.
아일랜드 팬들은 후반 중반 이후 4-0 참패 분위기가 짙어지자 응원보다 판정에 대한 불만을 터트렸다. 주심에 대한 욕설이 여기저기서 튀어 나왔다. 후반 40분이 넘어갔다. ‘그단스크 아레나’ 관중석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던 ‘그린 보이스’들이 양팔을 앞으로 뻗었다. 그리고 노래 불렀다.
아덴라이 평원 위에 누워
우리는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작은 새들을 봤지
우리의 사랑은 날개를 달았고 꿈을 꾸고 노래를 불렀지
이제는 너무나 외로워진 아덴라이 평원에서
셀틱의 응원가로 유명한 ‘아덴라이 평원(The Fields of Athenry)’였다. 19세기 아일랜드 대기근을 소재로 한 소설 속 주인공을 위한 노래다. 저항정신을 상징하듯 경기에서 패한 선수들을 격려할 때 자주 불려진다. 주심의 경기 종료 휘슬이 길게 울린 뒤에도 아일랜드 팬들은 참패 당한 선수들을 위해 이 노래를 어루만졌다. 아무도 결과에 불평하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 아일랜드의 유로2012는 아덴라이 평원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대회 7일차 행선지는 폴란드 북부 아름다운 항구도시 그단스크였다. 기차의 마주앉은 자리에 백발의 스페인 어르신이 계셨다. 1970년 멕시코 월드컵 이후 모든 월드컵과 코파 아메리카를 현장 관전했다는 축구 역사의 산 증인이었다. 현장에서 직접 본 1970년 펠레의 월드컵 결승전 골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존경심이 저절로 생겨났다. 다섯 시간의 여행이 어르신의 인생 이야기로 지루하지 않았다.
스페인 팬들이 그단스크 거리를 점령했을 거란 생각은 여지없이 빗나갔다. 시내 중심가는 온통 녹색으로 물들어있었다. 수 만의 아일랜드 팬들은 24년만의 유로 출전을 마음껏 즐겼다. 점심식사를 위해 찾은 식당 직원의 첫 마디는 “맥주 없어요”였다. 맥주광(狂) 아일랜드 팬들 덕분에 맥주가 동이 나버린 것이다.
아일랜드는 1988년 대회 이후 지금까지 유로 본선 무대를 밟지 못했다. 그 동안 월드컵은 세 번이나 나갔지만 유로에선 구경꾼 신세였다. 유럽 팬 입장에선 사실 월드컵보다 유로 대회가 피부로 와 닿는다.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현장 관전이 가능한 덕분이다. 월드컵과 달리 출전선수들 대부분 낯익은 선수들이라서 더 친근할 수밖에 없다. 그런 축구 페스티벌에서 24년이나 외면당한 설움이 얼마나 컸겠는가?
점심을 간단히 해치운 뒤 다시 경기장으로 가는 기차를 타기 위해 중앙역으로 갔다. 플랫폼으로 올라가는 계단부터 아일랜드 팬들로 가득 찬 덕분에 녹색 부대 틈에 제대로 끼었다. 사람이 너무 많아 주최 측에서 플랫폼 진출을 조절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계단 중간에 선 채로 영어 특유의 유머가 넘치는 아일랜드의 응원가와 구호를 바로 옆에서 듣고 있자니 괜히 아일랜드 서포터가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다들 너무 행복했다. 첫 판부터 3-1로 패했고, 조금 후면 ‘외계팀’ 스페인을 상대해야 한다는 걱정 따위는 없었다. 최근 인기 서포팅인 ‘포즈난’(뒤로 돌아 어깨동무를 하고 자기 자리에서 들썩이는 동작. 맨체스터 시티 팬들도 애용한다)이 난데없이 계단에서 펼쳐졌다. 더블린에서 먼 길을 날아와 도착한 그단스크에서 이들 모두 ‘풋볼 피버’의 화신이 되어있었다. 한 아일랜드 팬과 짧은 대화를 나눴다. 여행 경로를 묻자 그는 “아일랜드 경기를 다 본다. 8강, 4강, 결승까지 다 볼 거다”라며 즐거워했다. 필자가 “그럼 당신 지금 스페인 따라다니는 거냐?”라고 장난을 쳤다. 아일랜드 팬은 동양인 기자의 짓궂은 농담에 크게 웃었다. 행복한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아일랜드는 참가에 의의를 둬야 한다. 조 배정이 처음부터 너무 험난했다. 스페인, 이탈리아, 크로아티아 모두 아일랜드에는 넘기 힘든 벽들이다. 이번 대회 다크호스가 될 수 있을 거라는 개막 전 기댄는 조별리그 첫 경기부터 속절없이 무너졌다. 크로아티아에 아일랜드는 실력차를 절감하며 3-1로 패했다. 세트피스에서 한 골을 만회하긴 했지만 크로아티아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그게 아일랜드의 현실이었다.
두 번째 경기였던 스페인전 90분도 아일랜드로서는 악몽이었다. 마치 프로팀을 상대하는 동네 축구팀 같았다. 경기 시작 4분만에 선제골을 허용했다. 몸값이 900억원에 달하는 페르난도 토레스였다. 프리미어리그에서 잔뼈가 굵은 리차드 던이었지만 토레스의 끈기에 뒤를 내주고 말았다. 이후 아일랜드는 수비에서 다소 힘을 냈다. 다행히 전반전을 1-0인 상태로 마칠 수 있었다.
아쉽게도 너무 잔인한 후반전 45분이 기다리고 있었다. 다비드 실바, 토레스 그리고 세스크 파브레가스에게 차례차례 당했다. 힘써볼 여지가 없었다. 완패였다. 참패였다. 명장 지오바니 트라파토니의 지도력도 소용없었다. 스페인 공격수들의 움직임을 쫓아다니기도 벅찼다. 창의적인 움직임과 간결한 패스 연결을 쫓아다니다가 밸런스를 잃고 뒤뚱거렸다.
아일랜드 팬들은 후반 중반 이후 4-0 참패 분위기가 짙어지자 응원보다 판정에 대한 불만을 터트렸다. 주심에 대한 욕설이 여기저기서 튀어 나왔다. 후반 40분이 넘어갔다. ‘그단스크 아레나’ 관중석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던 ‘그린 보이스’들이 양팔을 앞으로 뻗었다. 그리고 노래 불렀다.
아덴라이 평원 위에 누워
우리는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작은 새들을 봤지
우리의 사랑은 날개를 달았고 꿈을 꾸고 노래를 불렀지
이제는 너무나 외로워진 아덴라이 평원에서
셀틱의 응원가로 유명한 ‘아덴라이 평원(The Fields of Athenry)’였다. 19세기 아일랜드 대기근을 소재로 한 소설 속 주인공을 위한 노래다. 저항정신을 상징하듯 경기에서 패한 선수들을 격려할 때 자주 불려진다. 주심의 경기 종료 휘슬이 길게 울린 뒤에도 아일랜드 팬들은 참패 당한 선수들을 위해 이 노래를 어루만졌다. 아무도 결과에 불평하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 아일랜드의 유로2012는 아덴라이 평원에서 벌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