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뉴스 장윤호 스타뉴스 대표]
다저스 시절의 마이크 피아자. /AFPBBNews=뉴스1 |
한때 박찬호의 배터리 메이트로 한국 팬들에게도 익숙한 얼굴인 마이크 피아자(47)가 4번째 도전 만에 야구 명예의 전당 멤버로 선출됐다. 미국야구기자협회(BBWAA) 멤버들의 투표에서 총 83%의 득표율을 기록, 4번째 도전 만에 75%의 커트라인을 넘어서, 첫 도전에서 99.3%의 역대 최고 득표율을 기록한 켄 그리피 주니어와 함께 뉴욕 쿠퍼스타운에 있는 야구 명예의 전당에 입성하게 됐다.
피아자의 커리어 성적만을 살펴보면 그가 명예의 전당에 오를 자격이 있다는 사실엔 의문이 없다. 생애 통산 427홈런과 통산타율 0.308 기록을 갖고 있는 피아자는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고의 공격형 포수였다. 16년 빅리그 커리어 동안 12번이나 올스타로 꼽혔고 2,127안타와 1,335타점을 기록한 피아자는 역대 메이저리그 포수 가운데 홈런과 장타율 1위, 타율과 타점 2위, 출루율 3위, 안타수 4위에 올라 있다.
지난 1988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무려 62라운드에 전체 1,390번째로 LA 다저스에 지명된 피아자는 또 명예의 전당 멤버 중 드래프트에서 가장 늦게 지명된 선수라는 또 하나의 기록을 추가했다. 메이저리그에서 신인 드래프트 제도가 시작된 1965년 이후 지난해까지 가장 늦게 지명된 선수로 명예의 전당에 오른 선수는 존 스몰츠로 그는 1985년 22라운드에 전체 574번째로 지명된 기록을 갖고 있었는데 피아자는 이번에 스몰츠의 기록을 완전히 압도했다.
사실 62라운드에 지명된 선수라면 메이저리그에 올라온 것 자체가 뉴스 일 것이다, 그런데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으니 어떻게 보면 ‘인간 승리’라고도 할 수 있다. 지난해까지는 드래프트 전체 지명 1위 선수 가운데 단 한 명도 명예의 전당에 오른 선수가 없었고 이번에 그리피 주니어가 처음으로 전체 1번 지명 선수의 체면을 살렸는데 하물며 62라운드, 1,390번째 지명 선수라면 더 이상 말할 필요도 없다.
그나마 그가 62라운드에라도 지명을 받은 것은 그의 부친이 절친한 친구였던 전 다저스 감독 토미 라소다에게 아들이 지명을 받기만 해도 큰 영광이라며 ‘청탁’을 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라소다 감독은 단순히 피아자에게 지명의 기쁨을 안겨준 것에서 그치지 않고 당시 1루수였던 그에게 포수로 포지션 변경을 제안하고 그를 커리어를 이끌어주기 시작했다. 메이저리그까지 오려면 특수 포지션인 캐처가 훨씬 더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였고 피아자는 이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천성적으로 연습벌레였던 그는 4년 뒤인 1992년 시즌 막판에 마침내 다저스의 부름을 받았고 이어 1993년 내셔널리그 신인왕에 오르며 본격적으로 선수로서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는 약 6년여동안 다저스에서 팬들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는 슈퍼스타로 활약했다.
하지만 피아자의 명예의 전당 입성 소식이 전해진 날 다저스는 그 소식을 전하는 보도자료를 내보내긴 했으나 전혀 흥분감이나 열정이 느껴지진 않았다. 다저스 팬들의 반응도 과거 팀의 최고 인기스타가 명예의 전당에 들어간 사실에 대해 전혀 흥분하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사실 피아자가 배리 본즈, 로저 클레멘스 등과 마찬가지로 스테로이드 의혹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단지 그것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것보다는 피아자가 다저스와 결별하는 과정에서 배신감을 느낀 나머지 완전히 다저스와 등을 돌렸고 그동안 다저스에 대해 불편한 감정을 여과없이 드러내오며 아직까지 그 앙금이 남아 있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아왔기 때문이다.
피아자는 8일(한국시간) 기자회견을 통해 자신은 이번 명예의 전당 입성에 뉴욕 메츠의 모자를 쓰고 들어가겠다고 발표했다. 사실 명예의 전당에 입성할 때 선수가 자신이 뛰었던 팀 가운데 어느 팀 모자를 쓰느냐 하는 문제는 선수 당사자가 아닌 명예의 전당이 결정한다. 그렇기에 전 시카고 컵스 외야수 안드레 도슨은 명예의 전당에 시카고 컵스 모자를 쓰고 가길 원했으나 명예의 전당은 훨씬 긴 기간을 뛴 몬트리올 엑스포스의 모자를 쓰는 것으로 결정했다.
하지만 피아자는 지난 2013년 발간한 자서전에서 “만약 명예의 전당이 전화를 걸어와 다저스 모자를 쓰라고 한다면 난 아무 모자도 쓰지 않고 들어가겠다고 말하겠다”면서 “내 머리에 영원히 ‘LA’ 글자가 박혀있는 것은 도저히 참을 수 없다”고 못 박았다. 죽어도 다저스 모자는 쓰지 않겠다는 것이다. 다저스에서 그처럼 팬들의 사랑을 많이 받았던 선수가 공개적으로 하는 말이라고는 믿겨지지 않을 정도다.
사실 피아자 입장에서 보면 1998년 다저스가 자신이 원했던 계약을 주지 않고 대신 그를 당시 플로리다 말린스로 트레이드한 것에 대해 분노를 느낄 만 하다는 사실은 이해가 된다. 하지만 당시 트레이드는 그때 다저스를 소유했던 팍스사 중역들에 의해 이뤄진 것으로 지금의 다저스는 이미 구단주만 두 번이나 바뀐 상태다. 당시 그를 내보낸 팀의 주역들이 이미 오래전 다저스를 떠났고 세월도 무려 20년 가까이 흘렀다, 그럼에도 아직도 그때의 분을 못 참아 다저스에 대해 가시 돋친 말을 쏟아내고 심지어는 구단과 팬, 빈 스컬리까지도 자신을 버렸다는 말을 서슴지 않는 피아자에 대해 다저스 팬들은 옛 정을 전혀 느낄 수가 없는 것이다. 실제로 피아자는 은퇴 이후 단 한 번도 다저스테디움을 찾지 않았다.
이처럼 자신의 옛 팀에 대해 공공연하게 적대감을 드러내온 그가 메츠 모자를 쓰고 명예의 전당에 들어가겠다고 했을 때 다저스 팬들의 반응은 “네 맘대로 해라” 정도밖에 나올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실제로 어떤 모자를 쓰느냐에 대한 결정권은 명예의 전당이 갖고 있지만 피아자가 메츠에서 뛴 기간(7년)과 홈런수가 다저스 시절보다 많기에 그의 소원은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피아자의 명예의 전당 입성은 다저스 팬들에게 축하의 시간이 되었어야 했다. 하지만 필드 안에서 보여줬던 화끈하고 파워풀한 스윙과는 딴판으로 마치 어린애처럼 유치하기 짝이 없는 그의 깊은 감정의 골은 다저스 팬들에게 씁쓸하고 불편한 느낌만을 안겨줬다.
장윤호 스타뉴스 대표 changyh218@mtstar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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