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탈코리아] 지난 3월, J는 한 기사를 읽었다. 원로 야구인 김소식 씨가 부산 구덕야구장이 있던 터를 찾아 구덕야구장을 추억하는 내용이었다. 부산에 전차가 다니던 시절의 야구 이야기, 지금은 고인이 된 선수들이 그라운드에서 펼친 백구의 향연. 이제는 흙으로 사라져버린 그 모습. 이를 회상하며 눈물짓는 한 야구인의 회한
(참고기사) 스타뉴스 ‘老야구인’ 김소식, “아듀, 구덕야구장!..그동안 고마웠소!”
사실 J는 구덕야구장에 대해 잘 모른다. 구덕야구장을 홈구장으로 쓰던 롯데 자이언츠는 그가 태어나기도 전에 사직야구장으로 이사했으니 딱히 관심을 가질 이유가 없었다. 학생 야구선수였다면 그 그라운드를 자주 밟아봤을 터였다. 부산에 20년을 넘게 살았지만, 대학교에 진학하기 전에 구덕야구장을 방문한 기억은 한 손에 꼽았다.
J는 기사를 보자마자 필요 이상의 사명감을 느꼈다. 평소 ‘부산야구의 적자(適子)’는 아니더라도 부산야구의 형님의 ‘할부지’의 9촌 동생의 손자를 자처하는 J였기 때문일 것이다. 토요일 오후 3시, 그날의 업무가 끝나자마자 J는 가방을 챙겨 집을 나섰다. 구덕야구장은 그의 집에서 버스 한 대만 갈아타면 갈 수 있다. 버스를 타고 나선 J는 그의 부모님이 사내연애를 하던 시절 자주 찾은 국밥집에서 늦은 점심을 해결한 후 구덕야구장에 도착했다.
구덕야구장, 불과 2년 전에는 J가 뻔질나게 드나들었던 그라운드였다. 대학 동아리 야구와 사회인야구를 하면서 J는 구덕야구장을 자주 찾았다. 최동원이 한국시리즈 완투승을 거뒀던 마운드에서 10실점을 하며 물러나기도 했고, 김용희가 철벽같이 지키던 3루에서 더그아웃으로 ‘나로호’를 쏘기도 했다. 최동원의 친구 이만수와 함께 사진을 찍고 덕담을 들었던 곳도 바로 구덕야구장이다. 경기에서 이기면 그라운드에 난입해 선수에게 뽀뽀까지 하던 ‘아재’들만큼은 아니어도 J에겐 구덕에 대한 추억이 남아 있다.
시내버스의 안내방송이 구덕운동장 도착을 알릴 때 J는 벨을 눌렀다. K리그2 경기가 있던 그 날의 구덕은 생각보다 을씨년스럽지 않았다. 여기저기 부산 아이파크와 성남 FC의 팬들이 제 갈 길을 찾아가고 있었다. 야구장은 보이지 않았다. 이미 철거가 완료된 야구장은 가림판으로 가려진 상태였다. 정문 옆에 있던 매표소만이 과거 구덕의 영광을 말해주는 듯했다.
철거된 야구장의 모습. 정상적인 루트로는 도저히 볼 수 없었다. 휘어진 가림판 틈으로 볼 수는 있었지만, 그것은 관음증 환자의 모양새나 다름없었다. J는 고민했다. 결국, 그는 ‘개구멍’을 택하기로 했다. 학창시절 군자는 아니었던 J는 큰길 대신 개구멍으로 다니곤 했다. 공사장에도 개구멍이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던 J는 경기장을 돌아 선수단 출입구였던 곳에 도착했다. 과연 그곳엔 공사장과 연결된 통로가 있었다.
J는 1년 전에도 구덕야구장에 몰래 들어갔던 적이 있었다. 철거가 시작되기 전, 마지막 모습을 담고 싶다는 생각에 다짜고짜 경기장 안으로 들어간 것이다. 관계자가 저지하긴 했지만 통사정 끝에 구덕의 마지막 순간을 휴대폰 카메라로 담을 수 있었다. 벌써 8개월이나 지난 기억을 떠올리며 J는 개구멍으로 들어갔다.
야구장은 철거가 끝난 상태였다. 과거 구덕야구장의 외야석 뒤에 있던 나무만이 외롭게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누군가 이곳이 야구장 터라고 말해주지 않으면 어떻게 이곳에 야구장이 있었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 J는 문득 슬퍼졌다. 그가 저장강박증이 있거나, 혹 고고학을 전공했기 때문일까. 그렇진 않았다. 그는 그저 슬펐다.더 볼만한 것은 없었다. 골재업자라도 흙 바닥만 계속해서 보고 있진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J는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서 한참을 바닥만 바라봤다. 그것이 그 나름의 야구장과 이별의식이 아니었을까. 겨울의 끝자락이었지만 햇빛은 따사로웠다. 텅 빈 구덕야구장, 이제는 흙더미가 있는 공사현장의 빈자리를 햇빛이 채우고 있었다.
몇 장의 사진을 더 찍은 후 J는 야구장 뒤편에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아파트로 갔다. 아파트 1층에는 야구용품점이 여럿 있는데, 그는 항상 한 곳에서 글러브를 사 갔다. 이곳에 다시 글러브를 사러 오지 않을 것 같다는 기분이 든 걸까. J는 가게에 들어가 아주머니께 오랜만에 인사했다.
"뭐 한다고 왔노?"
"그냥 야구장 구경하러 왔어요"
"야구장 다 철거했는데 뭐 볼기 있다고…"
볼 것 없는 구덕야구장 철거현장. 짧은 만남을 뒤로하고 J는 서대신동을 떠났다.
‘영원한 건 없다고 / 입버릇처럼 넌 말했었지 / 멀어지는 기억을 잡으려고 애쓰지 말라고’(윤상 ‘영원 속에’)로 시작하는 J의 플레이리스트 속 노래. 말마따나 영원한 건 없었다. 기억도 멀어지는 듯했다.
그렇지만 ‘내가 사는 이곳엔 / 너의 흔적이 너무 많아서.’ J가 사는 이 곳엔 구덕의 흔적이 너무많았다. 옷장, 사진첩, 책장 속에도 기억들이 남아있었다. 아직 보내지 못한 야구장의 기억이 방 한편, 마음 한편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구덕야구장이여, 안녕!
야구공작소
양정웅 칼럼니스트 / 에디터=조예은
(참고기사) 스타뉴스 ‘老야구인’ 김소식, “아듀, 구덕야구장!..그동안 고마웠소!”
사실 J는 구덕야구장에 대해 잘 모른다. 구덕야구장을 홈구장으로 쓰던 롯데 자이언츠는 그가 태어나기도 전에 사직야구장으로 이사했으니 딱히 관심을 가질 이유가 없었다. 학생 야구선수였다면 그 그라운드를 자주 밟아봤을 터였다. 부산에 20년을 넘게 살았지만, 대학교에 진학하기 전에 구덕야구장을 방문한 기억은 한 손에 꼽았다.
J는 기사를 보자마자 필요 이상의 사명감을 느꼈다. 평소 ‘부산야구의 적자(適子)’는 아니더라도 부산야구의 형님의 ‘할부지’의 9촌 동생의 손자를 자처하는 J였기 때문일 것이다. 토요일 오후 3시, 그날의 업무가 끝나자마자 J는 가방을 챙겨 집을 나섰다. 구덕야구장은 그의 집에서 버스 한 대만 갈아타면 갈 수 있다. 버스를 타고 나선 J는 그의 부모님이 사내연애를 하던 시절 자주 찾은 국밥집에서 늦은 점심을 해결한 후 구덕야구장에 도착했다.
구덕야구장, 불과 2년 전에는 J가 뻔질나게 드나들었던 그라운드였다. 대학 동아리 야구와 사회인야구를 하면서 J는 구덕야구장을 자주 찾았다. 최동원이 한국시리즈 완투승을 거뒀던 마운드에서 10실점을 하며 물러나기도 했고, 김용희가 철벽같이 지키던 3루에서 더그아웃으로 ‘나로호’를 쏘기도 했다. 최동원의 친구 이만수와 함께 사진을 찍고 덕담을 들었던 곳도 바로 구덕야구장이다. 경기에서 이기면 그라운드에 난입해 선수에게 뽀뽀까지 하던 ‘아재’들만큼은 아니어도 J에겐 구덕에 대한 추억이 남아 있다.
시내버스의 안내방송이 구덕운동장 도착을 알릴 때 J는 벨을 눌렀다. K리그2 경기가 있던 그 날의 구덕은 생각보다 을씨년스럽지 않았다. 여기저기 부산 아이파크와 성남 FC의 팬들이 제 갈 길을 찾아가고 있었다. 야구장은 보이지 않았다. 이미 철거가 완료된 야구장은 가림판으로 가려진 상태였다. 정문 옆에 있던 매표소만이 과거 구덕의 영광을 말해주는 듯했다.
철거된 야구장의 모습. 정상적인 루트로는 도저히 볼 수 없었다. 휘어진 가림판 틈으로 볼 수는 있었지만, 그것은 관음증 환자의 모양새나 다름없었다. J는 고민했다. 결국, 그는 ‘개구멍’을 택하기로 했다. 학창시절 군자는 아니었던 J는 큰길 대신 개구멍으로 다니곤 했다. 공사장에도 개구멍이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던 J는 경기장을 돌아 선수단 출입구였던 곳에 도착했다. 과연 그곳엔 공사장과 연결된 통로가 있었다.
J는 1년 전에도 구덕야구장에 몰래 들어갔던 적이 있었다. 철거가 시작되기 전, 마지막 모습을 담고 싶다는 생각에 다짜고짜 경기장 안으로 들어간 것이다. 관계자가 저지하긴 했지만 통사정 끝에 구덕의 마지막 순간을 휴대폰 카메라로 담을 수 있었다. 벌써 8개월이나 지난 기억을 떠올리며 J는 개구멍으로 들어갔다.
야구장은 철거가 끝난 상태였다. 과거 구덕야구장의 외야석 뒤에 있던 나무만이 외롭게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누군가 이곳이 야구장 터라고 말해주지 않으면 어떻게 이곳에 야구장이 있었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 J는 문득 슬퍼졌다. 그가 저장강박증이 있거나, 혹 고고학을 전공했기 때문일까. 그렇진 않았다. 그는 그저 슬펐다.더 볼만한 것은 없었다. 골재업자라도 흙 바닥만 계속해서 보고 있진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J는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서 한참을 바닥만 바라봤다. 그것이 그 나름의 야구장과 이별의식이 아니었을까. 겨울의 끝자락이었지만 햇빛은 따사로웠다. 텅 빈 구덕야구장, 이제는 흙더미가 있는 공사현장의 빈자리를 햇빛이 채우고 있었다.
몇 장의 사진을 더 찍은 후 J는 야구장 뒤편에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아파트로 갔다. 아파트 1층에는 야구용품점이 여럿 있는데, 그는 항상 한 곳에서 글러브를 사 갔다. 이곳에 다시 글러브를 사러 오지 않을 것 같다는 기분이 든 걸까. J는 가게에 들어가 아주머니께 오랜만에 인사했다.
"뭐 한다고 왔노?"
"그냥 야구장 구경하러 왔어요"
"야구장 다 철거했는데 뭐 볼기 있다고…"
볼 것 없는 구덕야구장 철거현장. 짧은 만남을 뒤로하고 J는 서대신동을 떠났다.
‘영원한 건 없다고 / 입버릇처럼 넌 말했었지 / 멀어지는 기억을 잡으려고 애쓰지 말라고’(윤상 ‘영원 속에’)로 시작하는 J의 플레이리스트 속 노래. 말마따나 영원한 건 없었다. 기억도 멀어지는 듯했다.
그렇지만 ‘내가 사는 이곳엔 / 너의 흔적이 너무 많아서.’ J가 사는 이 곳엔 구덕의 흔적이 너무많았다. 옷장, 사진첩, 책장 속에도 기억들이 남아있었다. 아직 보내지 못한 야구장의 기억이 방 한편, 마음 한편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구덕야구장이여, 안녕!
야구공작소
양정웅 칼럼니스트 / 에디터=조예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