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린 베이스볼? ‘이여상 사건’ 뒤에 약물 불감증 보인다
입력 : 2019.07.04기사보내기 :  트위터  페이스북
[스포탈코리아] 이은경 기자= 전직 프로야구 선수 이여상이 자신이 운영하던 유소년 야구교실의 학생들에게 스테로이드 등 불법약물을 투약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 사건이 야구계 전체에 큰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지난 2일 식품의약품안전처 위해사범중앙조사단은 이여상이 유소년 야구 선수들에게 불법 유통되는 아나볼릭 스테로이드 등을 주사하고 판매한 혐의로 구속 수사 중이라고 발표했다. 발표 내용에 따르면, 해당 야구단 선수 7명을 대상으로 도핑 테스트를 한 결과 2명은 금지약물 양성 확정 판정이 나왔고 나머지 5명은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무서운 부작용 따위 상관하지 않아

국제반도핑기구(WADA)는 스테로이드 계열 약물과 호르몬제를 철저하게 금지하고 있다. 약물의 힘을 빌려 경기력을 향상시키는 게 스포츠정신에 어긋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런 약물을 사용할 때 선수의 건강에 치명적인 위해를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성장이 진행 중인 어린 선수들이 스테로이드를 잘못 복용할 경우 성장이 멈춰버리거나 성기능에 장애가 생길 수도 있는 등 부작용이 무시무시하다. 과거 스테로이드를 복용했던 운동 선수들이 젊은 나이에 심장마비로 급사하는 경우도 있었다.

유소년 야구교실 운영자가 어린 선수들에게 ‘좋은 학교나 팀에 들어갈 수 있다’고 유혹해서 불법 약물을 투약한 것은 그래서 더 충격적이다.
도핑 양성 확정 판정을 받은 유소년 선수들은 대한체육회로부터 4년간 선수자격이 정지되는 징계를 받을 수 있다. 유소년 선수에게 4년 자격정지는 운동을 그만두라는 사형선고나 다름 없다.

“프로 선수들도 비밀로 다 하는 것” 꼬드겨

식약처의 조사 과정에서 밝혀진 바에 따르면 이여상은 불법 유통되는 약물을 구입했고, 이렇게 손에 넣은 약물을 자신이 임의로 섞어서 유소년 선수들에게 투약했다. 이여상의 달력에는 지난해 5월부터 빼곡하게 어떤 선수에게 어떤 약물을 얼마나 투약했는지에 관한 메모가 적혀 있었다. 이여상은 유소년 선수들에게 “몸이 좋아지는 약”이라며 투약을 권했고, 이를 판매하면서 1억6,000만원 상당의 이득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한 피해 선수의 아버지는 “아이가 주사를 맞고 아프다고 하자 소염진통제를 먹으면 된다고 오히려 호통을 쳤다”며 “프로 선수나 운동 선수들이 너무 좋아서 비밀로 자기들끼리 공유하는 약이라고 했다”는 증언을 했다. 식약처는 향후 이여상 야구교실 출신의 현직 프로 선수 2명에 대한 참고인 조사도 할 예정이다.
만일 ‘프로 선수들이 비밀로 불법약물을 공유한다’는 말이 사실이라면 이번 유소년 야구교실의 약물 파문이 단순히 이여상 개인의 일탈이 아닌 한국 야구계 전체에 큰 파문을 일으킬 수 있다.



KBO 도핑 테스트의 허술한 역사

KBO는 지난 2007년부터 도핑테스트를 시작했다. 그러나 약물복용에 대한 징계 강도가 낮고, 선수들이 약물에 대한 경각심이 없어 보인다는 비난이 끊임없이 나왔다. 2007년 MVP까지 받았던 두산 투수 리오스가 이듬해인 2008년 일본에 갔다가 약물 양성반응이 나와 떠들썩했던 일도 있다. 리오스는 KBO에서 도핑 테스트를 받은 적이 없었다.

두산의 김재환은 2군 시절이던 2011년 국제대회에 출전했다가 도핑 양성반응 결과가 나왔다. 이에 대한 리그에서의 징계는 10경기 출장 정지. 2015년 한화 최진행은 스테로이드제 복용 사실이 적발됐지만 이보다 조금 더 늘어난 30경기 출장정지를 받았다.

팬들의 비난이 이어지자 2016년부터는 도핑 관리를 한국도핑방지위원회(KADA)로 넘겼고, 출장정지를 72경기까지 늘렸다. 2017년 삼성 최경철이 도핑 양성반응으로 시즌 절반에 해당하는 72경기 출장 정지를 당한 첫 선수로 기록됐다.

WADA에서 내리는 현재 세계 스포츠에서의 일반적인 약물 징계는 어떨까. 2014년 수영 선수 박태환이 도핑 양성반응으로 18개월 자격정지를 받은 바 있다. 1년 반 동안 대회에 나가지 못했고 아시안게임 메달을 모두 박탈 당했지만 전세계 수영팬 반응은 올림픽 출전에 지장이 없도록 감안해서 내린 징계라며 비난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2014년 1월 배드민턴의 이용대는 도핑 양성도 아닌데 도핑 테스트를 하는 사람들이 무작위로 찾아갈 수 있게 소재지를 제대로 입력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도핑 테스트 회피’ 혐의가 적용돼 1년 자격정지 징계를 받았다가 극적으로 구제되기도 했다.
정부가 개입해 의도적으로 약물을 투약한 게 밝혀진 러시아의 경우 최대 12년의 자격 정지 징계를 받은 선수도 있다. 국제육상경기연맹(IAAF)은 국제대회에 러시아 육상의 참가를 금지해버렸다.

KBO는 올해 “클린 베이스볼을 더욱 강조할 것”이라고 했다. 정당한 사유 없이 윤리-도핑 교육에 불참하면 벌금 등 징계를 강화한다고도 했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것은 따로 있다. 과연 선수들은 도핑에 대한 경각심이 있느냐 하는 점이다.

이여상은 돈을 벌겠다는 욕심에 눈이 멀어 그저 혼자 엇나간 행동을 한 걸까. 아니면 한국 야구에서 대스타는 아니었어도 엘리트 코스를 잘 밟아왔던 자신의 길을 돌아봤을 때 ‘이 정도는 큰 문제가 안 된다’는 생각을 한 게 아니었을까. 이여상은 야구교실을 홍보하며 자신이 ‘프로 선수 출신’임을 강조했고, 유소년 선수의 부모들도 그런 부분 때문에 아이들을 믿고 맡겼다. 혹시 이여상은 약물 불감증을 바로 그 프로에서 배운 게 아닐까. 그 부분이 지금이라도 한국 야구계가 밝혀내야 하는 문제다.

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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