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탈코리아] 5월 5일은 어린이날이다. 1922년 소파(小波) 방정환 선생의 주도로 시작된 어린이날은 지난 1946년부터 오늘날의 5월 5일로 굳혀졌다. 그동안 사회의 관심에서 벗어났던 ‘어린이’에 대한 존중과 사랑에서, 그리고 어린이들을 사랑했던 방정환 선생을 기리기 위해 시작된 어린이날은 많은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고 있다.
KBO 리그도 어린이와 빼놓을 수 없는 인연을 가지고 있다. 초기 캐치프레이즈였던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에서도 볼 수 있듯이 KBO 리그는 창립 초기부터 어린이들을 잡기 위해 많은 애를 썼다. 각 구단은 어린이 회원을 유치해 많은 선물을 나눠줬고, 어린이 팬들은 구단 점퍼를 입었다는 거로도 세상을 다 가진 듯 기뻐했다.
또한 1996년부터 잠실 라이벌인 LG 트윈스와 두산 베어스가 어린이날에 정기전 아닌 정기전을 펼치는 등 어린이날에는 항상 빅매치를 편성했다. 야구가 없는 월요일이 어린이날이면 일정을 변경해서라도 경기를 진행하곤 했다.
이렇듯 KBO와 각 구단은 40년 동안 어린이 팬을 잡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왔다. 그러나 막상 어린이날 경기만 시작하면 눈을 뜨고 볼 수 없는 경기력을 보여주며 어린이 팬에게 일찌감치 인생의 쓴맛을 맛보게 했던 팀들도 있었다. 빨리 집에 가자며 울어대는 아이와 이를 혼내는 부모님의 소리가 야구장에 울려 퍼지며 분위기가 더욱 가라앉곤 했다.
그렇다면 역대 어린이날 경기에서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지 못했던 팀은 누가 있었을까.
1984년 삼미 슈퍼스타즈
삼미 슈퍼스타즈는 1982년 첫 어린이날 경기에서는 롯데 자이언츠를 만나 홈런 포함 3안타 4타점을 몰아친 양승관의 활약 속에 16대 10으로 대승을 올린 경험이 있었다. 그러나 2년 만에 열린 어린이날 경기에서 삼미는 많은 인천 어린이들을 울리고 말았다.
삼미는 1984년 어린이날 광주 무등야구장에서 해태 타이거즈와 맞대결을 펼쳤다. 경기 전까지 7경기에 등판했지만 승리 없이 2패만을 기록 중이던 방수원을 만났기 때문에 삼미의 승리 확률은 높아 보였다. 방수원 본인마저도 ‘4이닝만 잘 막으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방수원은 이전까지의 방수원이 아니었다. 절묘한 컨트롤로 스트라이크존 안팎을 찌른 방수원은 6회, 7회, 8회까지도 볼넷만 3개를 내줬을 뿐 단 하나의 안타를 허용하지 않았다. 그사이 해태는 김종모와 유승안이 홈런을 터트리며 방수원의 어깨를 가볍게 했다.
9회에도 올라온 방수원은 삼미 타자들을 꽁꽁 틀어막으며 결국 노히트 노런이라는 대업을 완성했다. KBO 리그가 시작된 후 599경기 만에 처음으로 나온 기록이었다. 1982년에도 삼성 황규봉에게 8회까지 퍼펙트로 묶여 있다가 9회 겨우 탈출했던 삼미는 결국 어린이날 대기록의 희생양이 되며 인천 어린이들을 고개 숙이게 만들었다.
1997년 LG 트윈스
LG 트윈스는 이미 1991년 어린이날에도 빙그레 이글스를 상대로 14회 연장 끝에 끝내기 홈런으로 졌던 기억이 있었다. 그러나 차라리 지루한 1점 차 승부는 양반으로 보일 정도로 1997년 삼성 라이온즈와의 어린이날 시리즈는 LG에는 악몽과도 같은 기억이었다.
시리즈 첫날이었던 5월 3일 LG는 삼성 양준혁에게 2루타 빠진 사이클링 히트를 내주는 등 좀처럼 분위기를 올리지 못하며 3대 9로 패배했다. 하지만 다음날 LG는 6점 차 정도면 오히려 잘 막았다고 할 정도로 처참하게 무너졌다.
4일 경기에서 신인 장문석이 선발로 등판한 LG는 1회부터 김한수의 밀어내기 볼넷과 정경배의 만루홈런으로 5점을 내줬다. 장문석이 2회에도 흔들리자 LG는 베테랑 차동철을 급하게 투입했지만 정경배에게 또다시 만루홈런을 헌납하는 굴욕을 맞이했다. 4명의 투수가 9개의 홈런을 내주면서 LG는 5대 27로 참패했다. 이는 2021년 오늘까지도 깨지지 않는 최다 실점 기록이었다.
앞선 2경기에서 36점을 내준 LG는 어린이날에도 무기력하게 패배했다. 에이스 김용수가 3이닝 6실점으로 빠르게 내려온 LG는 2번째 투수 김기범마저도 이승엽에게 만루홈런을 허용, 1이닝 7실점으로 주저앉았다. 결국 LG는 어린이날도 1대 13으로 지면서 어린이날 대구 3연전에서 무려 49점이나 내주고 말았다.
1998년 롯데 자이언츠
롯데는 1998년 창단 후 처음으로 마산야구장에서 어린이날 시리즈를 진행했다. 어린이날 당일 쌍방울 레이더스와 상대하게 된 롯데는 경기 초반부터 뜨거운 타격을 보여줬다. 1회 말 박정태의 3점 홈런으로 선취점을 낸 롯데는 3회에도 2번 손인호부터 7번 조경환까지 6타자가 연속으로 출루하며 4점을 추가로 올렸다. 비록 5회 초 쌍방울 김기태에게 3점포를 허용하기는 했지만 롯데는 7회 초 시작까지 7대 4로 앞서고 있었다.
하지만 쌍방울도 만만찮았다. 4회 올라온 김유진이 3.1이닝 동안 무실점으로 틀어막으며 추격의 발판을 마련했다. 여기에 7회 김기태의 유격수 땅볼과 8회 이근엽의 적시타로 쌍방울은 한 점 차까지 쫓아왔다. 8회까지 7점을 내준 선발 문동환을 9회에도 올린 롯데는 선두타자 김실이 안타를 치고 나가자 그제야 가득염으로 바꿨다.
하지만 가득염은 무사 만루 위기를 만든 후 (훗날 롯데 감독이 되는) 조원우에게 밀어내기 볼넷을 내주며 끝내 동점을 허용했다. 이어 (훗날 롯데 3루 코치가 되는) 윤재국의 우익수 희생플라이가 나오며 롯데는 결국 6점의 리드를 지키지 못하며 충격의 역전패를 당했다.
<마산시 체육사>(2004)에서는 “1998년 5월 5일 롯데가 쌍방울에 역전패당했을 때 마산 관중들은 이전처럼 흥분하지 않고 조용히 지켜보기만 했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어린이들과 함께 경기장을 찾았던 ‘마산아재’들이 속으로도 흥분하지 않았을지는 여러분의 상상에 맡긴다.
2004년 한화 이글스+KIA 타이거즈
일방적인 폭격이 아닌 타격전으로서는 어린이날 시리즈 역사상 최고 수준의 경기였다. 이날 대전과 광주 어린이들은 인생의 희로애락을 단 4시간 20분 만에 모두 느껴볼 수 있었다.
초반 분위기는 한화가 가져왔다. 한화는 1대 2로 뒤지던 2회 초 이영우와 김태균이 각각 스리런 홈런을 터트리며 한 이닝에만 6점을 올렸다. 그러나 이 분위기는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2회 말 곧바로 2점을 따라간 KIA는 3회 말 장성호의 만루홈런 등을 묶어 무려 7점을 내 역전에 성공했다. 양 팀은 4회 사이 좋게 3득점을 하며 경기 절반인 5회까지 이미 14대 10을 만들었다.
6회 말 KIA가 한 점을 추가하며 승부가 기우는 듯 보였지만 한화의 화력도 매서웠다. 7회와 8회 각각 2점을 올리며 무섭게 따라간 한화는 9회 초 이영우가 KIA 마무리 신용운에게 가운데 담장을 넘어가는 동점 솔로홈런을 때려내며 결국 15대 15 동점을 만들었다. KIA가 9회 말을 무득점으로 마감하자 ‘경기 시작 후 4시간이 지나면 새 이닝에 들어갈 수 없다’라는 당시 리그 규정에 따라 결국 경기는 무승부로 끝을 맺었다.
한화는 6명의 투수가 마운드에 올라왔지만 마무리 권준헌(0.2이닝 무실점)을 제외하면 모두 실점을 기록했고, KIA 역시 유동훈, 이강철, 신용운 등 필승조를 총투입하고도 끝내 리드를 지켜내지 못했다. 2021년 현재 KBS 해설위원으로 한솥밥을 먹고 있는 김태균(한화)과 장성호(KIA)는 나란히 3안타 7타점을 기록하며 팀 타선을 이끌었다.
2011년 두산 베어스
두산은 2020년까지 LG와의 어린이날 경기에서 통산 14승 10패를 거뒀다. 이는 두산을 응원하는 어린이 팬들은 적어도 어린이날에는 웃을 날이 많았다는 걸 의미한다. 그러나 이런 두산도 감독이 자진사퇴하게 만들었던 어린이날 경기가 있었다.
2011시즌 두산과 LG는 시즌 초부터 상위권 경쟁을 했다. 어린이날 시리즈 전까지 두산은 13승 8패 1무로 2위, LG는 13승 11패로 공동 3위에 올랐다. 시리즈 첫 2경기에서 1승씩을 거둔 양 팀은 어린이날 최후의 승부를 펼쳤다.
경기는 7회까지 팽팽하게 흘러갔다. LG가 1회 초 이진영과 이병규의 적시타로 2점을 먼저 냈지만 두산도 3회 말 김동주의 적시타로 동점을 만들었다. 이후 두 점을 더 내며 양 팀은 7회 말까지 4대 4 접전으로 흘러갔다. 그러나 8회 초 LG 선두타자 이병규가 2루수 실책으로 출루한 이후 경기의 흐름이 완전히 달라졌다.
LG는 8회 1사 만루 찬스에서 박경수의 적시타로 5대 4 리드를 잡았다. 이어 이대형의 1타점 적시타와 이진영의 3타점 2루타가 나오며 멀리 달아났다. 여기에 다시 타석이 돌아온 이병규의 ‘라뱅 쓰리런’까지 터지면서 결국 2011년 어린이날 매치는 LG가 두산에 12대 4로 승리했다.
이날 경기 이후 두산은 5월에만 4연패와 3번의 3연패를 겪으며 추락을 시작했다. 경기 내외로 팀이 흔들리면서 좀처럼 치고 나가지 못했다. 결국 어린이날 경기 이후 구단에 사의를 표명했던 김경문 감독은 구단의 만류에도 6월 13일 사퇴를 선택했다.
야구공작소
양철종 칼럼니스트
KBO 리그도 어린이와 빼놓을 수 없는 인연을 가지고 있다. 초기 캐치프레이즈였던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에서도 볼 수 있듯이 KBO 리그는 창립 초기부터 어린이들을 잡기 위해 많은 애를 썼다. 각 구단은 어린이 회원을 유치해 많은 선물을 나눠줬고, 어린이 팬들은 구단 점퍼를 입었다는 거로도 세상을 다 가진 듯 기뻐했다.
또한 1996년부터 잠실 라이벌인 LG 트윈스와 두산 베어스가 어린이날에 정기전 아닌 정기전을 펼치는 등 어린이날에는 항상 빅매치를 편성했다. 야구가 없는 월요일이 어린이날이면 일정을 변경해서라도 경기를 진행하곤 했다.
이렇듯 KBO와 각 구단은 40년 동안 어린이 팬을 잡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왔다. 그러나 막상 어린이날 경기만 시작하면 눈을 뜨고 볼 수 없는 경기력을 보여주며 어린이 팬에게 일찌감치 인생의 쓴맛을 맛보게 했던 팀들도 있었다. 빨리 집에 가자며 울어대는 아이와 이를 혼내는 부모님의 소리가 야구장에 울려 퍼지며 분위기가 더욱 가라앉곤 했다.
그렇다면 역대 어린이날 경기에서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지 못했던 팀은 누가 있었을까.
1984년 삼미 슈퍼스타즈
삼미 슈퍼스타즈는 1982년 첫 어린이날 경기에서는 롯데 자이언츠를 만나 홈런 포함 3안타 4타점을 몰아친 양승관의 활약 속에 16대 10으로 대승을 올린 경험이 있었다. 그러나 2년 만에 열린 어린이날 경기에서 삼미는 많은 인천 어린이들을 울리고 말았다.
삼미는 1984년 어린이날 광주 무등야구장에서 해태 타이거즈와 맞대결을 펼쳤다. 경기 전까지 7경기에 등판했지만 승리 없이 2패만을 기록 중이던 방수원을 만났기 때문에 삼미의 승리 확률은 높아 보였다. 방수원 본인마저도 ‘4이닝만 잘 막으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방수원은 이전까지의 방수원이 아니었다. 절묘한 컨트롤로 스트라이크존 안팎을 찌른 방수원은 6회, 7회, 8회까지도 볼넷만 3개를 내줬을 뿐 단 하나의 안타를 허용하지 않았다. 그사이 해태는 김종모와 유승안이 홈런을 터트리며 방수원의 어깨를 가볍게 했다.
9회에도 올라온 방수원은 삼미 타자들을 꽁꽁 틀어막으며 결국 노히트 노런이라는 대업을 완성했다. KBO 리그가 시작된 후 599경기 만에 처음으로 나온 기록이었다. 1982년에도 삼성 황규봉에게 8회까지 퍼펙트로 묶여 있다가 9회 겨우 탈출했던 삼미는 결국 어린이날 대기록의 희생양이 되며 인천 어린이들을 고개 숙이게 만들었다.
1997년 LG 트윈스
LG 트윈스는 이미 1991년 어린이날에도 빙그레 이글스를 상대로 14회 연장 끝에 끝내기 홈런으로 졌던 기억이 있었다. 그러나 차라리 지루한 1점 차 승부는 양반으로 보일 정도로 1997년 삼성 라이온즈와의 어린이날 시리즈는 LG에는 악몽과도 같은 기억이었다.
시리즈 첫날이었던 5월 3일 LG는 삼성 양준혁에게 2루타 빠진 사이클링 히트를 내주는 등 좀처럼 분위기를 올리지 못하며 3대 9로 패배했다. 하지만 다음날 LG는 6점 차 정도면 오히려 잘 막았다고 할 정도로 처참하게 무너졌다.
4일 경기에서 신인 장문석이 선발로 등판한 LG는 1회부터 김한수의 밀어내기 볼넷과 정경배의 만루홈런으로 5점을 내줬다. 장문석이 2회에도 흔들리자 LG는 베테랑 차동철을 급하게 투입했지만 정경배에게 또다시 만루홈런을 헌납하는 굴욕을 맞이했다. 4명의 투수가 9개의 홈런을 내주면서 LG는 5대 27로 참패했다. 이는 2021년 오늘까지도 깨지지 않는 최다 실점 기록이었다.
앞선 2경기에서 36점을 내준 LG는 어린이날에도 무기력하게 패배했다. 에이스 김용수가 3이닝 6실점으로 빠르게 내려온 LG는 2번째 투수 김기범마저도 이승엽에게 만루홈런을 허용, 1이닝 7실점으로 주저앉았다. 결국 LG는 어린이날도 1대 13으로 지면서 어린이날 대구 3연전에서 무려 49점이나 내주고 말았다.
1998년 롯데 자이언츠
롯데는 1998년 창단 후 처음으로 마산야구장에서 어린이날 시리즈를 진행했다. 어린이날 당일 쌍방울 레이더스와 상대하게 된 롯데는 경기 초반부터 뜨거운 타격을 보여줬다. 1회 말 박정태의 3점 홈런으로 선취점을 낸 롯데는 3회에도 2번 손인호부터 7번 조경환까지 6타자가 연속으로 출루하며 4점을 추가로 올렸다. 비록 5회 초 쌍방울 김기태에게 3점포를 허용하기는 했지만 롯데는 7회 초 시작까지 7대 4로 앞서고 있었다.
하지만 쌍방울도 만만찮았다. 4회 올라온 김유진이 3.1이닝 동안 무실점으로 틀어막으며 추격의 발판을 마련했다. 여기에 7회 김기태의 유격수 땅볼과 8회 이근엽의 적시타로 쌍방울은 한 점 차까지 쫓아왔다. 8회까지 7점을 내준 선발 문동환을 9회에도 올린 롯데는 선두타자 김실이 안타를 치고 나가자 그제야 가득염으로 바꿨다.
하지만 가득염은 무사 만루 위기를 만든 후 (훗날 롯데 감독이 되는) 조원우에게 밀어내기 볼넷을 내주며 끝내 동점을 허용했다. 이어 (훗날 롯데 3루 코치가 되는) 윤재국의 우익수 희생플라이가 나오며 롯데는 결국 6점의 리드를 지키지 못하며 충격의 역전패를 당했다.
<마산시 체육사>(2004)에서는 “1998년 5월 5일 롯데가 쌍방울에 역전패당했을 때 마산 관중들은 이전처럼 흥분하지 않고 조용히 지켜보기만 했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어린이들과 함께 경기장을 찾았던 ‘마산아재’들이 속으로도 흥분하지 않았을지는 여러분의 상상에 맡긴다.
2004년 한화 이글스+KIA 타이거즈
일방적인 폭격이 아닌 타격전으로서는 어린이날 시리즈 역사상 최고 수준의 경기였다. 이날 대전과 광주 어린이들은 인생의 희로애락을 단 4시간 20분 만에 모두 느껴볼 수 있었다.
초반 분위기는 한화가 가져왔다. 한화는 1대 2로 뒤지던 2회 초 이영우와 김태균이 각각 스리런 홈런을 터트리며 한 이닝에만 6점을 올렸다. 그러나 이 분위기는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2회 말 곧바로 2점을 따라간 KIA는 3회 말 장성호의 만루홈런 등을 묶어 무려 7점을 내 역전에 성공했다. 양 팀은 4회 사이 좋게 3득점을 하며 경기 절반인 5회까지 이미 14대 10을 만들었다.
6회 말 KIA가 한 점을 추가하며 승부가 기우는 듯 보였지만 한화의 화력도 매서웠다. 7회와 8회 각각 2점을 올리며 무섭게 따라간 한화는 9회 초 이영우가 KIA 마무리 신용운에게 가운데 담장을 넘어가는 동점 솔로홈런을 때려내며 결국 15대 15 동점을 만들었다. KIA가 9회 말을 무득점으로 마감하자 ‘경기 시작 후 4시간이 지나면 새 이닝에 들어갈 수 없다’라는 당시 리그 규정에 따라 결국 경기는 무승부로 끝을 맺었다.
한화는 6명의 투수가 마운드에 올라왔지만 마무리 권준헌(0.2이닝 무실점)을 제외하면 모두 실점을 기록했고, KIA 역시 유동훈, 이강철, 신용운 등 필승조를 총투입하고도 끝내 리드를 지켜내지 못했다. 2021년 현재 KBS 해설위원으로 한솥밥을 먹고 있는 김태균(한화)과 장성호(KIA)는 나란히 3안타 7타점을 기록하며 팀 타선을 이끌었다.
2011년 두산 베어스
두산은 2020년까지 LG와의 어린이날 경기에서 통산 14승 10패를 거뒀다. 이는 두산을 응원하는 어린이 팬들은 적어도 어린이날에는 웃을 날이 많았다는 걸 의미한다. 그러나 이런 두산도 감독이 자진사퇴하게 만들었던 어린이날 경기가 있었다.
2011시즌 두산과 LG는 시즌 초부터 상위권 경쟁을 했다. 어린이날 시리즈 전까지 두산은 13승 8패 1무로 2위, LG는 13승 11패로 공동 3위에 올랐다. 시리즈 첫 2경기에서 1승씩을 거둔 양 팀은 어린이날 최후의 승부를 펼쳤다.
경기는 7회까지 팽팽하게 흘러갔다. LG가 1회 초 이진영과 이병규의 적시타로 2점을 먼저 냈지만 두산도 3회 말 김동주의 적시타로 동점을 만들었다. 이후 두 점을 더 내며 양 팀은 7회 말까지 4대 4 접전으로 흘러갔다. 그러나 8회 초 LG 선두타자 이병규가 2루수 실책으로 출루한 이후 경기의 흐름이 완전히 달라졌다.
LG는 8회 1사 만루 찬스에서 박경수의 적시타로 5대 4 리드를 잡았다. 이어 이대형의 1타점 적시타와 이진영의 3타점 2루타가 나오며 멀리 달아났다. 여기에 다시 타석이 돌아온 이병규의 ‘라뱅 쓰리런’까지 터지면서 결국 2011년 어린이날 매치는 LG가 두산에 12대 4로 승리했다.
이날 경기 이후 두산은 5월에만 4연패와 3번의 3연패를 겪으며 추락을 시작했다. 경기 내외로 팀이 흔들리면서 좀처럼 치고 나가지 못했다. 결국 어린이날 경기 이후 구단에 사의를 표명했던 김경문 감독은 구단의 만류에도 6월 13일 사퇴를 선택했다.
야구공작소
양철종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