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조형래 기자] “어른이 되는 과정이겠죠.”
두산 베어스는 올해 향후 마운드 10년을 이끌어 갈 에이스급 재목을 얻었다. 신인드래프트 전체 2순위로 김택연을 지명하면서 밝은 미래를 꿈꿨다. 지난해 WBSC U-18 야구 월드컵에서 5연투 혹사에 시달리기도 했지만 두산은 김택연을 세심하게 관리하면서 1군 데뷔를 준비했다.
김택연은 프로야구 정규시즌에서 본격적으로 선을 보이기 전, 미국 메이저리그의 관심을 사로잡았다. 이미 스프링캠프 연습경기, 시범경기부터 압도적인 구위를 선보였는데 지난달 18일 열린 MLB 월드투어 서울시리즈 스페셜매치, LA 다저스와의 경기가 최고점이었다.
김택연은 이날 ⅔이닝 2탈삼진 무실점 완벽투를 펼쳤다. 2-4로 뒤진 6회말 마운드에 오른 김택연은 빅리그 통산 159홈런을 때려낸 테오스카 에르난데스를 상대로 93.7마일(150.8km) 포심패스트볼을 가운데에 던져 헛스윙 삼진으로 유도했다. 이후 지난해 내셔널리그 신인왕 투표 3위에 오른 제임스 아웃맨도 풀카운트 끝에 92.5마일(148.9km) 포심 패스트볼을 한가운데로 꽂아넣으며 헛스윙을 유도했다.
이 경기가 끝나고 다저스 데이브 로버츠 감독은 인상적인 한국 선수를 꼽아달라는 질문에 “우완투수 1명이 있었는데 아웃맨이 말하기를 정말 멋진 피칭을 했다고 하더라. 스트라이크존 상위 부분에서 강속구를 던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팔을 정말 잘 쓰는 선수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름은 정확히 기억이 안 난다”라고 말했다. 김택연을 지칭한 칭찬이었다.빅리그가 인정했다고 하지만 결국 프로야구에서 뚜껑을 열어봐야 했다. 이벤트 매치와 정규시즌은 다르다는 것을 이승엽 감독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지난달 23일 열린 NC와의 개막전을 앞두고 “고척에서 스페셜매치를 할 때 많은 관중들 앞에서 공을 던졌지만 그래도 국내 개막전은 응원 문화나 분위기가 다르다”라며 “경기 상황이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되도록이면 여기 분위기에 스며들고 차분하게 등판을 할 수 있게끔 최대한 편한 상황에서 등판시키려고 한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개막전인 23일, 김택연은 마운드에 올라야 했다. 그리고 첫 타자로 현역 최다안타(2429안타)이자 통산 최다안타(2504안타) 기록을 넘보는 손아섭을 맞이했다. 빅리그가 인정한 슈퍼 루키라고 할 지라도 ‘안타 장인’ 손아섭의 벽을 넘서는 것은 쉽지 않았다. 1볼 1스트라이크에서 3구째 148km 하이패스트볼을 던졌다. 김택연의 힘 있는 직구에 타자들은 그동안 헛스윙으로 일관했지만 손아섭은 달랐다. 손아섭은 이 공을 놓치지 않고 밀어쳐서 좌측 담장 상단을 맞는 큼지막한 2루타를 만들었다.
김택연은 적지 않게 당황했다. 뒤이어 등장한 맷 데이비슨에게는 스트레이트 볼넷을 허용했고 이후 박건우에게는 피치클락 위반 경고까지 받는 등 좌전 안타를 맞았다. 우선 무사 만루에서 김성욱을 유격수 땅볼로 유도해 실점과 아웃카운트를 맞바꿨다. 1사 1,3루에서는 서호철에게 패스트볼 연속 4개를 뿌린 뒤 118km 커브로 헛스윙 삼진을 유도했다. 2사 1,3루를 만들었다.
마지막 고비를 넘기지 못했다. 2사 1,3루에서 만난 김형준에게 다시 몸에 맞는 공으로 내줘 2사 만루 위기가 이어졌고 김주원에게 밀어내기 볼넷을 허용했다. 계속된 2사 만루에서는 박민우를 중견수 뜬공으로 겨우 잡아내면서 데뷔 첫 경기 첫 이닝을 마쳤다. 1이닝 2피안타 2볼넷 1탈삼진 2실점. 2-0 상황에서 마운드에 올라왔지만 2실점 하면서 블론세이브를 범했다. 이날 경기 이후 김택연은 슈퍼 루키의 씩씩했던 모습이 사라졌다. 27일 KT전에서 1이닝 2볼넷 1탈삼진 1실점(비자책점)을 기록했고 29일 KIA전에서는 ⅓이닝 1볼넷 1탈삼진을 기록했다. 결국 30일 1군 엔트리에서 말소됐고 2군에서 재조정 과정을 밟고 있다.
김택연은 지난 4일 이천 베어스필드에서 열린 퓨처스리그 고양 히어로즈와 경기에서 구원 투수로 등판해 1이닝 동안 2피안타 2볼넷 2탈삼진 2실점을 기록했다. 여전히 영점이 잡히지 않은 듯한 모습.
이승엽 감독은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는 생각으로 김택연을 지켜보고 있다. 재능 자체를 인정하기 때문에 멘탈적인 안정을 찾기를 바라고 있다. 이승엽 감독은 김택연의 개막전 첫 등판, 첫 타자가 손아섭이었다는 것을 상기시키면서 “첫 게임에서 손아섭 선수에게 2루타를 맞았다. 시범경기 때는 헛스윙을 했던 공인데 맞아나가니까 조금 당황했던 것 같다”라면서 “아무래도 지금은 영점을 못 잡는다고 봐야할 것 같다. 스트라이크만 편하게 던질 수 있으면 아주 좋은 투수다. 그 부분만 보고 있고 다른 얘기들을 안하고 있다. 투수코치가 스트라이크를 강조하는데, 스트라이크만 던질 수 있으면 공략하기 쉽지 않은 투수다”라고 설명했다.
현재 영점을 다시 조정하는 과정에 대해 이 감독은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라고 설명하면서 “아주 쎈 예방주사를 맞았다. 시즌 초반에 이렇게 된 것은 팀적으로나 본인에게나 긍정적으로만 생각하려고 한다. 아직 야구할 날이 많다. 괜찮다”라면서 김택연이 다시 편하게 강속구를 뿌릴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릴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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