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대전, 이상학 기자] KBO리그 통산 100승과 함께 괴물 투수가 미소를 되찾았다. ABS(자동투구판정시스템)에 멘탈이 흔들렸지만 이제는 아무렇지 않게 웃어넘긴다. 우리가 알던 류현진(37·한화 이글스)으로 금방 돌아왔다. 통산 100승과 함께 ABS 논란도 극복했다. 

류현진은 지난달 30일 대전 한화생명이글스파크에서 열린 프로야구 SSG와의 홈경기에 선발등판, 6이닝 7피안타 2볼넷 1탈삼진 2실점(1자책) 퀄리티 스타트로 한화의 8-2 승리를 이끌었다. 시즌 2승째로 KBO 역대 33번째 통산 100승 클럽에 가입했다. 김시진(전 삼성·186경기), 선동열(전 해태·192경기)에 이어 역대 3번째 최소 경기 100승. 

통산 100승이 걸린 경기이기도 했지만 지난 경기에서 불거진 ABS 논란으로 어느 때보다 류현진에게 이목이 집중된 날이었다. 지난달 24일 수원 KT전에서 류현진은 ABS 판정에 여러 번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고개를 갸웃하면서 덕아웃을 향해 볼 판정이 맞는지 물어보기도 했다. 5회 삼진을 잡고 마운드를 내려오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기도 했다. 

평소 마운드에서 표정 변화가 별로 없고, 덤덤하게 던지는 류현진이었기에 낯선 모습들이었다. 이튿날 류현진은 취재진을 마주한 자리에서 ABS에 대한 불만을 제기했고, 이에 KBO가 ABS 투구 추적 데이터를 공개하며 반박하기도 했다. 

그만큼 류현진도 심리적으로 쫓기고 있었다. 12년 만에 돌아온 KBO리그에서 뭔가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누구보다 컸을 텐데 뜻대로 풀리지 않았다. 개막 초반 무서운 상승세를 타던 한화도 4월 들어 5연패, 3연패, 6연패를 반복하며 순위가 1위에서 8위까지 급추락했다. 팀 성적과 부진과 맞물리면서 류현진도 예민해졌다. 공 하나하나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모습이 잦아졌다. 

하지만 KBO가 이미 ABS를 도입한 이상 바뀌는 것은 없다. 최원호 한화 감독은 30일 경기 전 “선수들이 구장 성향을 빨리 파악해서 적응하는 수밖에 없다. 구장마다 선수들이 느끼는 존의 변화로 인해 투수와 타자 다 혼란스러운 건 사실이다. 하지만 제도가 시행이 된 만큼 선수들이 거기에 맞춰서 해야 한다”며 “류현진도 ABS에 너무 신경을 많이 쓰면 오히려 역효과가 난다. 어느 정도 일정 부분 받아들이고, 거기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해야 더 좋은 경기력이 나오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최원호 감독 말대로 이날 경기에서 류현진은 ABS에 흔들리지 않고 투구에만 집중했다. 스트라이크 같은 볼이 몇 개 있었지만 웃어넘겼다. 5회 한유섬 상대로 던진 7구째 바깥쪽 낮은 커브와 6회 고명준 상대로 던진 3구째 바깥쪽 직구가 ABS 존에서 살짝 벗어났지만 당황하지 않았다. 잠시 멈칫하긴 했지만 이내 미소를 머금고 다음 투구를 준비했다. 

5회 한유섬에겐 볼넷을 허용하며 1사 1,2루가 됐지만 다음 타자 기예르모 에레디아를 3루 병살타로 유도하며 이닝을 끝냈다. 6회 고명준 상대로도 풀카운트가 됐지만 2루 땅볼을 이끌어내며 선발투수로서 임무를 완수했다. 이날 최고 시속 149km, 평균 145km 직구(52개) 중심으로 체인지업(20개), 커브(18개), 커터(13개)를 구사한 류현진은 병살타 1개 포함 땅볼 아웃만 12개나 잡아낼 만큼 범타 유도 능력이 빛났다. 

류현진이 ABS에 반응하지 않고 웃어넘긴 것은 박승민 투수코치의 한마디가 있었다. 류현진은 “박승민 코치님이 ‘다른 투수들도 내색 안 하고 던지는데 네가 (볼 판정에) 내색하면…’이라고 한 번 말씀하셨다”며 웃은 뒤 “돌아보면 내가 그거에 너무 신경 쓰면서 볼넷을 주고 어렵게 된 경기가 많았다. 오늘은 정말 (ABS에) 최대한 내색하지 않으려 했다”고 말했다. 

보더라인에 절묘하게 걸치는 공을 잘 던지는 류현진이라 ABS의 칼같은 판정이 아쉬울 순 있다. 육안으로 볼 때 스트라이크 같은 볼이 여러 개 있었다. 아무리 멘탈이 강한 류현진이라도 그도 사람이 때문에 당황할 수 있고, 불만을 나타낼 수도 있다. 다만 존재감이 워낙 큰 선수이다 보니 작은 반응 하나라도 팀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류현진 같은 선수가 흔들리면 팀 전체가 동요할 수 있다. 박승민 코치의 한마디에 류현진도 자신을 돌아보며 마음을 다잡았다. 

류현진답게 빠르게 원래 모습으로 돌아와 덤덤하고 차분하게 던졌다. 오히려 웃어넘길 정도로 여유도 보였다. 6회 마지막 이닝을 마치고 덕아웃으로 향하면서 박기택 주심에게 고명준 상대 공이 스트라이크가 아닌지 가볍게 물어봤지만 어필한 건 아니었다. 류현진은 “마지막 이닝이라 내려오면서 살짝 물어봤는데 (박기택 심판이) 피하시더라”며 또 한 번 웃음을 터뜨렸다. 

2전3기 끝에 100승 고지를 밟고 아홉수도 탈출했다. 류현진은 “100승이 조금 신경 쓰이긴 했지만 마음 편하게 먹었다. 대전 홈팬들 앞에서 달성해 조금 더 뜻깊다”며 총 투구수 103개로 토론토 블루제이스 소속이었던 2021년 8월22일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전(7이닝 105구) 이후 982일 만에 100구 넘게 던진 것에 대해서도 “선발투수라면 그 정도는 던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경기 흐름에 따라 선발이라면 던져야 할 개수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앞으로 또 이루고 싶은 개인 목표는 한미 통산 200승이다. KBO리그 통산 100승, 메이저리그 통산 78승으로 한미 통산 178승을 기록 중인 류현진은 200승까지 22승 남았다. 내년 시즌 중으로 달성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그는 “한미 통산 200승은 빨리 하고 싶다”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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