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수원, 고성환 기자] 형은 MVP를 차지했고, 동생은 평균 26.6점을 몰아쳤다. 허웅(31, 부산 KCC)과 허훈(29, 수원 KT)이 마지막까지 역대급 형제대결을 썼다.
부산 KCC는 5일 오후 6시 수원KT아레나에서 열린 2023-2024시즌 정관장 프로농구 챔피언결정전(7전4선승제) 5차전에서 수원 KT를 88-70으로 제압했다.
이로써 KCC는 시리즈 전적 4승 1패로 우승을 차지하며 통산 6번째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지난 2010-2011시즌 이후 13년 만의 정상이다.
정규시즌 5위 팀 우승이라는 새로운 역사도 탄생했다. KCC는 개막 전부터 큰 기대를 모았지만, 주축 선수들의 부상과 호흡 문제로 생각보다 강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전창진 감독도 팬들의 비판을 피하지 못했다.
결국엔 해피엔딩을 맞았다. KCC는 시즌 막판부터 화력을 뽐내기 시작하더니 플레이오프(PO) 무대에서 진짜 날개를 펼쳤다. 6강 PO에서 서울 SK를 가볍게 눌렀고, 4강 PO에서는 정규시즌 챔피언 원주 DB도 잡아냈다. 그리고 KT까지 물리치며 가장 높은 곳에 올라섰다.
이번 챔프전은 프로농구 최초 형제대결이기도 했다. 허웅과 허훈이 적으로 만나 뜨거운 맞대결을 펼쳤다. 둘 다 시리즈 내내 맹활약하며 볼거리를 더했다.
마지막에 웃은 쪽은 허웅이었다. 허웅은 우승뿐만 아니라 현장 기자단 투표에서 84표 중 31표를 획득하며 MVP까지 손에 넣었다. 2위 라건아(27표)를 4표 차로 따돌리며 영광의 주인공이 됐다. 아버지도 아들도 챔프전 MVP를 수상한 건 허재 전 감독과 허웅 부자가 최초다.
허웅은 마지막까지 MVP의 자격을 보여줬다. 그는 5차전에서 33분 25초 동안 21점 4어시스트 4리바운드를 기록하며 팀 내 최다 득점을 올렸다. 후반에는 KT의 맹추격을 뿌리치는 귀중한 득점을 추가한 뒤 크게 포효하기도 했다. 허웅은 이번 PO 기간 12경기에서 평균 31분 57초를 뛰며 평균 17.3점, 4.2어시스트로 존재감을 뽐냈다.
꿈을 이룬 허웅은 경기 종료 버저가 울리기 전에도 눈물을 흘렸다. 그는 "잘 때도 기도할 만큼 너무 우승을 하고 싶었다"라며 "10년 동안 챔프전을 한 번 빼고는 다 TV로 봤다. 선수라면 누구나 있고 싶은 자리다. 10년 동안의 꿈과 노력이 현실이 되는 모습을 보며 흘린 행복한 눈물이었다"라고 감격을 전했다.
승자가 있으면 패자도 있는 법. 형은 기쁨의 눈물을 쏟았지만, 동생은 허탈하게 고개를 떨궈야 했다. 허훈은 개인 성적만 보면 형보다도 나았지만, 팀 패배를 막지 못하며 아쉬움을 삼켰다.
허훈의 챔프전 활약은 정말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았다. 2차전부터 4경기 연속 풀타임을 뛰었고, 심한 감기로 링거 투혼을 펼치면서도 KT 공격을 이끌었다. 송영진 감독에 따르면 목소리도 제대로 안 나올 정도였지만, 코트에만 들어가면 펄펄 날았다.
허훈은 이번 시리즈에서 평균 36분 36초를 소화하며 평균 26.6점, 6어시스트를 기록했다. 특히 부산에서 열린 3차전과 4차전에서 각각 37점, 33점을 터트리며 국내 선수 최초로 챔프전 두 경기 연속 30점+라는 대기록도 세웠다. 우승 팀이 아닌 허훈이 MVP 투표에서도 21표나 획득하며 3위에 오른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하지만 너무나 외로웠다. 허훈은 5차전에서도 29점을 퍼부었지만, 동료들의 지원이 부족했다. 믿었던 패리스 배스마저 갈수록 힘이 빠졌다. 결국 허훈은 생애 처음으로 밟은 챔프전 무대에서 트로피를 들어 올릴 수 없었다.
분명한 건 허훈의 투혼이 없었다면 이토록 치열한 형제대결은 성사될 수 없었다. 하마터면 챔프전 자체가 시시하게 끝날 수도 있었다. 허웅도 경기를 마친 뒤 "어제 링거도 같이 맞았다. 잠도 못 자서 안쓰러울 정도였는데 경기장에선 내색도 않고 최선을 다하더라. 농구에 대한 진심이 보여서 감동받았다. 나를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라고 감탄했다. 승부는 갈렸지만, 모두가 박수를 보낼 수밖에 없었던 '형제의 난'이었다.
/finekosh@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