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탈코리아=그단스크(폴란드)] 홍재민 기자= 음모론은 결국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스페인과 크로아티아 팬들의 경기 전 기분 좋은 합창 소리도 함께 사라졌다.
“아리베데르치 이탈리아(Arrivederci Italia)!” 여름 땡볕이 내리쬐던 18일 오후 내내 폴란드 북구 해안도시 그단스크에선 이 소리가 울려 퍼졌다. 영어 ‘굿바이’에 해당하는 이탈리아어 표현이다. 우리 식으로 바꾸면 “잘 가세요, 이탈리아”란 의미다. 저녁 경기를 앞둔 스페인과 크로아티아 팬들은 그단스크 길거리에서 마주칠 때마다 약속이나 한 듯 “아리베데르치 이탈리아”를 연호했다. 경기장으로 가는 기차 플랫폼에는 “2-2, 안녕 이탈리아(Ciao Italia)”라고 쓰여진 커다란 플래카드가 걸려 눈길을 끌었다.
유로2012를 열심히 ‘팔로잉’하는 독자께선 무슨 의미인지 금방 아실 것이다. C조 마지막 경기를 앞둔 상태에서 스페인과 크로아티아가 승점 4점(1승1무)으로 이탈리아(승점 2점, 2무)에 앞서있었다. 공교롭게 마지막 매치업이 스페인-크로아티아, 이탈리아-아일랜드로 예정되어있었다. 이탈리아의 경기 결과를 봐야 하지만, 만약 이날 스페인과 크로아티아가 2-2로 비긴다면 8강 동반 진출이 가능한 상황이다. 가뜩이나 유럽 팬들 사이에선 별 인기가 없는 이탈리아인 탓에 스페인과 크로아티아 팬들은 경기 전부터 더욱 합심(合心)할 수 있었다.
물론 두 팀의 좋았던 두 경기 결과도 팬들의 분위기를 부추겼다. 스페인은 자타공인 최강이다. 이탈리아와 1-1로 비겼지만, 다음 경기에서 아일랜드를 4-0으로 대파했다. 크로아티아는 첫 경기에서 아일랜드를 3-1로 꺾었고, 두 번째 경기에서 강호 이탈리아와 1-1로 비겼다. 8강행(行)을 자신할 수 있는 구석이었다. 더군다나 양국 축구 팬들 사이엔 다보르 수케르라는 걸출한 스타를 공유한다. 크로아티아의 축구 영웅 수케르는 세비야(1991~1996)와 레알 마드리드(1996~1999)에서 활약했다. 양국 팬들 모두 수케르를 “우리 선수”라고 불러도 좋을 만한 배경이다.
팬들의 즐거운 분위기는 경기가 치러지는 ‘아레나 그단스크’ 주변에서도 이어졌다.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축구 팬’ 마놀로 씨(氏)가 등장해 스페인 팬들을 즐겁게 했다. 올해로 63세인 마놀로 씨는 1982년 자국 개최 FIFA월드컵부터 지금까지 스페인 대표팀의 모든 경기를 현장에서 직접 관전한 ‘레전드 팬’이다. 독감 탓에 놓쳤던 2010 남아공 월드컵 첫 경기 파라과이전이 그의 유일한 ‘결장’이다. 트레이드마크와도 같은 북을 든 그를 발견한 스페인 팬들은 모두 “마놀로!”라고 외치며 앞다투어 기념촬영을 요청했다. 스타플레이어 부럽지 않은 인기였다. 크로아티아 팬들도 신기한 표정으로 마놀로 씨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느라 정신이 없었다.
경기가 시작되었다. 전반전이 진행되는 동안 ‘아리베데르치 이탈리아’가 정말 실현되려는 듯했다. 이상할 정도로 스페인은 크로아티아의 페널티박스 안으로 진입하지 못했다. 크로아티아는 무게중심을 허리 아래로 내려 버텼다. 경기는 정체되었다. 설상가상 전반 7분 모든 시선이 관중석 쪽으로 향했다. 크로아티아 관중석 상단에서 한 몰지각한 팬이 홍염을 그라운드 쪽을 향해 던진 홍염이 아래쪽 관중석으로 떨어졌다. 하마터면 부상자가 나올 수 있었던 위험천만한 상황이었다. 다행히 부상자는 없었지만 홍염이 꺼지지 않아 경기장 전체가 웅성거렸다. 이상한 낌새를 알아차린 주심이 잠시 경기를 중단했다.
재미도 감동도 없던 전반전이 끝나고 후반전이 시작되었다. 크로아티아가 앞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타 구장에서 이탈리아가 아일랜드에 1-0으로 앞서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대로 끝나면 크로아티아는 탈락한다. 슬라벤 빌리치 크로아티아 감독은 공격수를 총동원해 스페인 골문을 노렸다. 후반 14분 결정적 기회를 얻었다. 페널티박스 안 오른쪽에서 루카 모드리치가 환상적인 오른발 아웃프런트 크로스를 올렸다. 반대편에는 이반 라키티치가 자유로운 상태였다. 골이다 싶었지만 스페인 수문장은 바로 이케르 카시야스였다. 세계 최고 골키퍼다운 방어로 카시야스는 크로아티아의 희망을 꺾었다.
경기 종료가 가까워질수록 크로아티아 선수들의 마음이 조급해졌다. ‘월드 챔피언’ 스페인이 상대 약점을 놓칠 리가 없었다. 후반 44분 세스크 파브레가스가 아크 정면에서 환상적인 로빙 패스를 앞으로 넣었다. 오프사이드 트랩에 실패한 크로아티아 수비수들 모두 멍하니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페널티박스 내에 이니에스타와 헤수스 나바스 그리고 크로아티아 골키퍼 스티페 플레티코사 세 명뿐이었다. 골키퍼를 앞에 둔 이니에스타가 오른쪽으로 내줬고, 나바스는 아무도 없는 골문 안으로 볼과 함께 들어갔다. 결승골이었다. 스페인은 계속 가고 크로아티아는 멈췄다. 양국 팬들을 하나로 뭉치게 해준 ‘아르베데르치 이탈리아’ 합창은 실패로 끝나버렸다. 경기 후 깨져버린 양국 합심을 슬퍼하듯 폭우가 쏟아졌다. 축구의 신이 화라도 난 듯 영화에서나 등장할 법한 번개의 섬광도 여기저기서 번쩍거렸다.
물론 음모론 따위는 없다. 경기 후 기자회견장에 들어선 빈센테 델 보스케 감독은 한숨을 쉬며 음모론을 일축했다. 답답했는지 “비기려고 하는 경기가 훨씬 어렵고 위험하다”는 말을 보탰다. 그의 말이 맞다. 비기려고 노력할 바에 차라리 이기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편이 훨씬 편하고 깔끔하다. 비록 크로아티아 팬들은 눈물을 흘려야 했지만 그들이 응원한 선수들은 그라운드 위에서 최선을 다했다. 빌리치 감독의 “스페인 같은 팀에 진 걸 난들 어떡하겠는가?”라는 말이 정확한 상황 설명 및 평가일 것이다. 음모론은 분명히 엉뚱하고 지나친 상상의 부작용이었다. 하지만 그 덕분에 최소한 경기 전까지는 스페인과 크로아티아 팬들은 한 마음이 되어 축구의 기쁨을 실컷 즐길 수 있었다.
“아리베데르치 이탈리아(Arrivederci Italia)!” 여름 땡볕이 내리쬐던 18일 오후 내내 폴란드 북구 해안도시 그단스크에선 이 소리가 울려 퍼졌다. 영어 ‘굿바이’에 해당하는 이탈리아어 표현이다. 우리 식으로 바꾸면 “잘 가세요, 이탈리아”란 의미다. 저녁 경기를 앞둔 스페인과 크로아티아 팬들은 그단스크 길거리에서 마주칠 때마다 약속이나 한 듯 “아리베데르치 이탈리아”를 연호했다. 경기장으로 가는 기차 플랫폼에는 “2-2, 안녕 이탈리아(Ciao Italia)”라고 쓰여진 커다란 플래카드가 걸려 눈길을 끌었다.
유로2012를 열심히 ‘팔로잉’하는 독자께선 무슨 의미인지 금방 아실 것이다. C조 마지막 경기를 앞둔 상태에서 스페인과 크로아티아가 승점 4점(1승1무)으로 이탈리아(승점 2점, 2무)에 앞서있었다. 공교롭게 마지막 매치업이 스페인-크로아티아, 이탈리아-아일랜드로 예정되어있었다. 이탈리아의 경기 결과를 봐야 하지만, 만약 이날 스페인과 크로아티아가 2-2로 비긴다면 8강 동반 진출이 가능한 상황이다. 가뜩이나 유럽 팬들 사이에선 별 인기가 없는 이탈리아인 탓에 스페인과 크로아티아 팬들은 경기 전부터 더욱 합심(合心)할 수 있었다.
물론 두 팀의 좋았던 두 경기 결과도 팬들의 분위기를 부추겼다. 스페인은 자타공인 최강이다. 이탈리아와 1-1로 비겼지만, 다음 경기에서 아일랜드를 4-0으로 대파했다. 크로아티아는 첫 경기에서 아일랜드를 3-1로 꺾었고, 두 번째 경기에서 강호 이탈리아와 1-1로 비겼다. 8강행(行)을 자신할 수 있는 구석이었다. 더군다나 양국 축구 팬들 사이엔 다보르 수케르라는 걸출한 스타를 공유한다. 크로아티아의 축구 영웅 수케르는 세비야(1991~1996)와 레알 마드리드(1996~1999)에서 활약했다. 양국 팬들 모두 수케르를 “우리 선수”라고 불러도 좋을 만한 배경이다.
팬들의 즐거운 분위기는 경기가 치러지는 ‘아레나 그단스크’ 주변에서도 이어졌다.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축구 팬’ 마놀로 씨(氏)가 등장해 스페인 팬들을 즐겁게 했다. 올해로 63세인 마놀로 씨는 1982년 자국 개최 FIFA월드컵부터 지금까지 스페인 대표팀의 모든 경기를 현장에서 직접 관전한 ‘레전드 팬’이다. 독감 탓에 놓쳤던 2010 남아공 월드컵 첫 경기 파라과이전이 그의 유일한 ‘결장’이다. 트레이드마크와도 같은 북을 든 그를 발견한 스페인 팬들은 모두 “마놀로!”라고 외치며 앞다투어 기념촬영을 요청했다. 스타플레이어 부럽지 않은 인기였다. 크로아티아 팬들도 신기한 표정으로 마놀로 씨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느라 정신이 없었다.
경기가 시작되었다. 전반전이 진행되는 동안 ‘아리베데르치 이탈리아’가 정말 실현되려는 듯했다. 이상할 정도로 스페인은 크로아티아의 페널티박스 안으로 진입하지 못했다. 크로아티아는 무게중심을 허리 아래로 내려 버텼다. 경기는 정체되었다. 설상가상 전반 7분 모든 시선이 관중석 쪽으로 향했다. 크로아티아 관중석 상단에서 한 몰지각한 팬이 홍염을 그라운드 쪽을 향해 던진 홍염이 아래쪽 관중석으로 떨어졌다. 하마터면 부상자가 나올 수 있었던 위험천만한 상황이었다. 다행히 부상자는 없었지만 홍염이 꺼지지 않아 경기장 전체가 웅성거렸다. 이상한 낌새를 알아차린 주심이 잠시 경기를 중단했다.
재미도 감동도 없던 전반전이 끝나고 후반전이 시작되었다. 크로아티아가 앞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타 구장에서 이탈리아가 아일랜드에 1-0으로 앞서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대로 끝나면 크로아티아는 탈락한다. 슬라벤 빌리치 크로아티아 감독은 공격수를 총동원해 스페인 골문을 노렸다. 후반 14분 결정적 기회를 얻었다. 페널티박스 안 오른쪽에서 루카 모드리치가 환상적인 오른발 아웃프런트 크로스를 올렸다. 반대편에는 이반 라키티치가 자유로운 상태였다. 골이다 싶었지만 스페인 수문장은 바로 이케르 카시야스였다. 세계 최고 골키퍼다운 방어로 카시야스는 크로아티아의 희망을 꺾었다.
경기 종료가 가까워질수록 크로아티아 선수들의 마음이 조급해졌다. ‘월드 챔피언’ 스페인이 상대 약점을 놓칠 리가 없었다. 후반 44분 세스크 파브레가스가 아크 정면에서 환상적인 로빙 패스를 앞으로 넣었다. 오프사이드 트랩에 실패한 크로아티아 수비수들 모두 멍하니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페널티박스 내에 이니에스타와 헤수스 나바스 그리고 크로아티아 골키퍼 스티페 플레티코사 세 명뿐이었다. 골키퍼를 앞에 둔 이니에스타가 오른쪽으로 내줬고, 나바스는 아무도 없는 골문 안으로 볼과 함께 들어갔다. 결승골이었다. 스페인은 계속 가고 크로아티아는 멈췄다. 양국 팬들을 하나로 뭉치게 해준 ‘아르베데르치 이탈리아’ 합창은 실패로 끝나버렸다. 경기 후 깨져버린 양국 합심을 슬퍼하듯 폭우가 쏟아졌다. 축구의 신이 화라도 난 듯 영화에서나 등장할 법한 번개의 섬광도 여기저기서 번쩍거렸다.
물론 음모론 따위는 없다. 경기 후 기자회견장에 들어선 빈센테 델 보스케 감독은 한숨을 쉬며 음모론을 일축했다. 답답했는지 “비기려고 하는 경기가 훨씬 어렵고 위험하다”는 말을 보탰다. 그의 말이 맞다. 비기려고 노력할 바에 차라리 이기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편이 훨씬 편하고 깔끔하다. 비록 크로아티아 팬들은 눈물을 흘려야 했지만 그들이 응원한 선수들은 그라운드 위에서 최선을 다했다. 빌리치 감독의 “스페인 같은 팀에 진 걸 난들 어떡하겠는가?”라는 말이 정확한 상황 설명 및 평가일 것이다. 음모론은 분명히 엉뚱하고 지나친 상상의 부작용이었다. 하지만 그 덕분에 최소한 경기 전까지는 스페인과 크로아티아 팬들은 한 마음이 되어 축구의 기쁨을 실컷 즐길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