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탈코리아=바르샤바(폴란드)] 홍재민 기자= 축구 심판은 인간이다. 당연히 실수를 저지른다. 노력하지만 에러율 ‘제로’ 달성은 불가능하다.
유로2012 조별리그 일정이 종료되었다. 8강 진출팀도 모두 가려졌다. 21일부터는 ‘죽느냐 사느냐’의 단판승부가 펼쳐진다. 치열한 토너먼트 일정을 하루 앞둔 20일 폴란드 바르샤바는 숨고르기에 들어간 느낌이었다. 대회 개막 후 처음 경기가 없는 ‘축구 휴일’이다. 길거리는 물론 팬존(Fan Zone)에서도 축구 유니폼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일종의 폭풍전야라고 불러도 좋을 것 같다.
그러나 바르샤바국립경기장에는 많은 취재진이 바쁘게 움직였다. 이날 오후 유럽축구연맹(UEFA)가 주최하는 심판 관련 기자회견이 잡혀있었기 때문이다. 조별리그 24경기 판정 평가와 토너먼트 경기에 투입될 심판진이 발표되는 자리였다. 기자회견장 안으로 들어가자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축구 심판 피에루이지 콜리나였다. 그가 오늘 발표의 주인공이었다. 2005년 현역 심판에서 물러난 콜리나는 현재 UEFA의 심판위원장을 맡고 있다.
이 자리는 대회 전부터 계획되어있었다. 평소 언론은 심판 관련 기자회견이나 행사에 높은 우선순위를 두지 않는다. 하지만 이날은 달랐다. 공교롭게도 전일 우크라이나와 잉글랜드의 D조 3차전에서 결정적인 골라인 오심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기자회견장에 참석한 취재진 모두 마치 청문회에 온 듯한 표정들이었다. 더군다나 이날 발표자가 칼날 판정의 대명사 콜리나다. 관심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필자도 콜리나가 이런 곤란한 상황을 어떻게 헤쳐나갈지 호기심이 컸다.
편안한 트레이닝복 차림의 콜리나가 드디어 직접 설명회를 진행했다. 이탈리아어 액센트가 강하게 섞여있었지만 그는 놀랄 만큼 정확한 영어 문장과 단어를 구사했다. 그 동안의 심판 준비와 6심제 정착을 위한 노력을 설명했다. 이어 “지금 언론이 좋아하시는 숫자를 말씀 드리겠다”라며 여유를 뽐냈다. 콜리나는 “조별리그 24경기에서 부심에 의해 총 302개의 판정이 내려졌다. 그 중 289개가 옳았고, 13개가 틀렸다. 95.7%의 정확도를 나타냈다”고 밝혔다.
콜리나는 열변을 토했다. 그는 “스페인-크로아티아 경기에서 나온 득점 상황을 보자. 파브레가스에서 이니에스타로, 이니에스타에서 헤수스 나바스로 패스가 연결되었다. 1초도 되지 않은 순간에 부심은 두 번의 결정적 오프사이드 판정을 내렸고 둘 다 옳았다”고 강조했다. 6심(골에어리어 전담 심판 2인) 효과도 설명했다. 콜리나는 “24경기 중 6심이 판정을 도운 경우가 16회 있었다. 이 중 세 번이 득점 관련 상황이었다. 독일-포르투갈, 이탈리아-크로아티아는 옳았지만 우크라이나-잉글랜드 경기 판정은 틀렸다”고 말했다. 이어 “느린 그림을 보면 알겠지만 공중에 떠있는 상태에서 몇 센티미터밖에 넘어가지 않았다. 유일한 실수였고 인간으로선 판독해내기가 대단히 힘든 상황이었다”고 강변했다.
이외에도 콜리나는 많은 상황을 예시로 들면서 심판 판정을 설명했다. 마치 프로 바둑 기사에 의한 복기를 보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선수, 패스, 상황 그리고 판정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구체적인 예제로서 설명을 하니 청문회로 시작된 기자회견 분위기는 어느새 ‘콜리나 초청 특별강연회’로 흘러갔다. 그리스의 한 기자가 손을 들어 “6심을 보면 아무런 동작을 취하지 않는다”고 질문하자 콜리나는 머뭇거림 없이 즉답했다.
“한번은 영국 TV 해설자가 클로즈업된 6심을 보면서 ‘도대체 6심은 저기서 뭐 하는 것이냐?’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축구 규정은 UEFA가 아니라 국제축구평의회(IFAB)가 결정한다. IFAB의 규정에 따르면 6심은 어떠한 동작도 취할 수 없도록 규정되어있다. 6심의 책임은 오로지 마이크로폰을 통해 주심에게 상황을 설명 및 전달해주는 것뿐이다. 나는 이탈리아 사람이니까 말과 몸짓이 동시에 나오지만 6심은 그렇게 하지 못하도록 되어있다.”
마지막으로 조별리그에서의 판정에 만족하느냐는 단도직입적인 질문이 던져졌다. 콜리나는 여유 있는 미소를 지으며 “만약 당신이 축구 선수인데 패스 성공률이 95.7%였다. 스트라이커가 슛을 때려서 95.7%가 골인, 아니 골대 안으로 들어갔다고 생각해보자. 내 생각에는 매우 만족스러워할 것 같다. 제발 오심에 대해서만 말하지 말고 대부분 정확하게 내려지는 판정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달라”고 대답했다. 늑대 이빨을 드러내고 달려들었던 전세계 취재진과의 정면대결에서 ‘외계인’ 콜리나가 완승을 거두는 순간이었다. 그라운드 위에서 칼날 같은 판정으로 전세계 축구 팬들의 사랑을 받았던 그의 모습이 눈에 선하게 떠올랐다.
기자회견이 끝나고 경기장을 떠났다. 시내로 들어가는 버스가 인파가 몰린 한 고급 호텔 옆을 지나갔다. 호기심이 발동해 정거장에서 내려 쫓아가봤다. 인파의 정체를 쉽게 알 수 있었다. 여기저기서 포르투갈 국기가 보였기 때문이다. 21일 바르샤바에서 체코와 8강전을 치르는 포르투갈 대표팀의 도착을 기다리는 팬들이었다. 호텔 입구에서 30여 미터 이상 떨어진 임시 펜스 탓에 팬들은 버스에서 내려 호텔 안으로 들어가는 호날두를 2~3초 정도 바라보는 데에 만족해야 했다. 적지 않은 팬들은 언제 모습을 드러낼지 모를 호날두를 하염없이 기다렸다.
그 모습을 보면서 조금 전 콜리나 심판위원장의 말이 떠올랐다. “경기 중 선수들이 최고의 경기를 펼칠 수 있도록 심판들은 최선을 다하고 있고, 나는 심판들이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슈퍼스타들이 더욱 ‘슈퍼’하게 될 수 있도록 심판들이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세상의 사랑과 관심과 추앙은 언제나 슈퍼스타들 독차지다. 곧 막이 오를 축구의 최고봉 유로2012 토너먼트 경기에서 심판진의 활약에 주목해보자.
유로2012 조별리그 일정이 종료되었다. 8강 진출팀도 모두 가려졌다. 21일부터는 ‘죽느냐 사느냐’의 단판승부가 펼쳐진다. 치열한 토너먼트 일정을 하루 앞둔 20일 폴란드 바르샤바는 숨고르기에 들어간 느낌이었다. 대회 개막 후 처음 경기가 없는 ‘축구 휴일’이다. 길거리는 물론 팬존(Fan Zone)에서도 축구 유니폼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일종의 폭풍전야라고 불러도 좋을 것 같다.
그러나 바르샤바국립경기장에는 많은 취재진이 바쁘게 움직였다. 이날 오후 유럽축구연맹(UEFA)가 주최하는 심판 관련 기자회견이 잡혀있었기 때문이다. 조별리그 24경기 판정 평가와 토너먼트 경기에 투입될 심판진이 발표되는 자리였다. 기자회견장 안으로 들어가자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축구 심판 피에루이지 콜리나였다. 그가 오늘 발표의 주인공이었다. 2005년 현역 심판에서 물러난 콜리나는 현재 UEFA의 심판위원장을 맡고 있다.
이 자리는 대회 전부터 계획되어있었다. 평소 언론은 심판 관련 기자회견이나 행사에 높은 우선순위를 두지 않는다. 하지만 이날은 달랐다. 공교롭게도 전일 우크라이나와 잉글랜드의 D조 3차전에서 결정적인 골라인 오심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기자회견장에 참석한 취재진 모두 마치 청문회에 온 듯한 표정들이었다. 더군다나 이날 발표자가 칼날 판정의 대명사 콜리나다. 관심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필자도 콜리나가 이런 곤란한 상황을 어떻게 헤쳐나갈지 호기심이 컸다.
편안한 트레이닝복 차림의 콜리나가 드디어 직접 설명회를 진행했다. 이탈리아어 액센트가 강하게 섞여있었지만 그는 놀랄 만큼 정확한 영어 문장과 단어를 구사했다. 그 동안의 심판 준비와 6심제 정착을 위한 노력을 설명했다. 이어 “지금 언론이 좋아하시는 숫자를 말씀 드리겠다”라며 여유를 뽐냈다. 콜리나는 “조별리그 24경기에서 부심에 의해 총 302개의 판정이 내려졌다. 그 중 289개가 옳았고, 13개가 틀렸다. 95.7%의 정확도를 나타냈다”고 밝혔다.
콜리나는 열변을 토했다. 그는 “스페인-크로아티아 경기에서 나온 득점 상황을 보자. 파브레가스에서 이니에스타로, 이니에스타에서 헤수스 나바스로 패스가 연결되었다. 1초도 되지 않은 순간에 부심은 두 번의 결정적 오프사이드 판정을 내렸고 둘 다 옳았다”고 강조했다. 6심(골에어리어 전담 심판 2인) 효과도 설명했다. 콜리나는 “24경기 중 6심이 판정을 도운 경우가 16회 있었다. 이 중 세 번이 득점 관련 상황이었다. 독일-포르투갈, 이탈리아-크로아티아는 옳았지만 우크라이나-잉글랜드 경기 판정은 틀렸다”고 말했다. 이어 “느린 그림을 보면 알겠지만 공중에 떠있는 상태에서 몇 센티미터밖에 넘어가지 않았다. 유일한 실수였고 인간으로선 판독해내기가 대단히 힘든 상황이었다”고 강변했다.
이외에도 콜리나는 많은 상황을 예시로 들면서 심판 판정을 설명했다. 마치 프로 바둑 기사에 의한 복기를 보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선수, 패스, 상황 그리고 판정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구체적인 예제로서 설명을 하니 청문회로 시작된 기자회견 분위기는 어느새 ‘콜리나 초청 특별강연회’로 흘러갔다. 그리스의 한 기자가 손을 들어 “6심을 보면 아무런 동작을 취하지 않는다”고 질문하자 콜리나는 머뭇거림 없이 즉답했다.
“한번은 영국 TV 해설자가 클로즈업된 6심을 보면서 ‘도대체 6심은 저기서 뭐 하는 것이냐?’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축구 규정은 UEFA가 아니라 국제축구평의회(IFAB)가 결정한다. IFAB의 규정에 따르면 6심은 어떠한 동작도 취할 수 없도록 규정되어있다. 6심의 책임은 오로지 마이크로폰을 통해 주심에게 상황을 설명 및 전달해주는 것뿐이다. 나는 이탈리아 사람이니까 말과 몸짓이 동시에 나오지만 6심은 그렇게 하지 못하도록 되어있다.”
마지막으로 조별리그에서의 판정에 만족하느냐는 단도직입적인 질문이 던져졌다. 콜리나는 여유 있는 미소를 지으며 “만약 당신이 축구 선수인데 패스 성공률이 95.7%였다. 스트라이커가 슛을 때려서 95.7%가 골인, 아니 골대 안으로 들어갔다고 생각해보자. 내 생각에는 매우 만족스러워할 것 같다. 제발 오심에 대해서만 말하지 말고 대부분 정확하게 내려지는 판정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달라”고 대답했다. 늑대 이빨을 드러내고 달려들었던 전세계 취재진과의 정면대결에서 ‘외계인’ 콜리나가 완승을 거두는 순간이었다. 그라운드 위에서 칼날 같은 판정으로 전세계 축구 팬들의 사랑을 받았던 그의 모습이 눈에 선하게 떠올랐다.
기자회견이 끝나고 경기장을 떠났다. 시내로 들어가는 버스가 인파가 몰린 한 고급 호텔 옆을 지나갔다. 호기심이 발동해 정거장에서 내려 쫓아가봤다. 인파의 정체를 쉽게 알 수 있었다. 여기저기서 포르투갈 국기가 보였기 때문이다. 21일 바르샤바에서 체코와 8강전을 치르는 포르투갈 대표팀의 도착을 기다리는 팬들이었다. 호텔 입구에서 30여 미터 이상 떨어진 임시 펜스 탓에 팬들은 버스에서 내려 호텔 안으로 들어가는 호날두를 2~3초 정도 바라보는 데에 만족해야 했다. 적지 않은 팬들은 언제 모습을 드러낼지 모를 호날두를 하염없이 기다렸다.
그 모습을 보면서 조금 전 콜리나 심판위원장의 말이 떠올랐다. “경기 중 선수들이 최고의 경기를 펼칠 수 있도록 심판들은 최선을 다하고 있고, 나는 심판들이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슈퍼스타들이 더욱 ‘슈퍼’하게 될 수 있도록 심판들이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세상의 사랑과 관심과 추앙은 언제나 슈퍼스타들 독차지다. 곧 막이 오를 축구의 최고봉 유로2012 토너먼트 경기에서 심판진의 활약에 주목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