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탈코리아] 김현서 기자= “대한민국의 선발 투수는 구! 대! 성!”
2000년 시드니 올림픽 일본과의 동메달 결정전. 21년이라는 긴 시간이 지났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올림픽 최고의 명승부 중 하나로 꼽고 있다. 그리고 이 레전드 경기를 이야기할 때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있다. 대한민국의 마운드를 홀로 책임졌던 각본 없는 드라마의 주인공, 구대성(52)이다.
그는 숙명의 라이벌인 일본을 상대로 선발 등판해 9회까지 무려 155구를 던지며 완투승을 거뒀다. '대성불패'라는 그의 별명에 걸맞게 한국 야구에 올림픽 사상 첫 메달을 선물했다. 당시 정상적인 몸 상태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보여준 최고의 경기력은 지금까지도 많은 야구팬의 입에 회자되고 있다.
시드니 올림픽 외에도 2006 WBC에서 활약하며 4강 진출에 기여했고, 친정팀 한화에 구단 역사상 유일한 한국시리즈 우승(1999년)을 안기기도 했다.
한국 야구사에 큰 족적을 남긴 구대성은 현역 은퇴 후, 질롱코리아 초대 감독을 맡아 1년여간 팀을 이끌었고 이후 호주 유소년 대표팀 코치로 활동하며 지도자 경험을 쌓았다. 최근에는 자신의 야구 인생을 다룬 자전적 에세이를 출간해 작가로 변신하기도 했다.
‘불패’라는 단어와 가장 잘 어울리는 야구인, 구대성 감독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화상 통화를 통해 근황을 물어봤다. 현재 구대성 감독은 호주 시드니에 거주 중이다.
Q. 오랜만입니다. 요즘 어떻게 지내시나요?
“요새는 다 비슷한 것 같아요. 코로나 때문에 움직이기가 힘드니까요. 집에 많이 있는 편이에요.”
Q. 작년에 대상포진으로 많이 힘드셨다고 들었는데, 현재 건강 상태는 어떠신가요?
“나이 먹으면 다 비슷한 것 같아요. 거기에 하던 운동까지 안 하다 보니 몸이 약해졌던 것 같은데 지금은 운동을 다시 시작해서 전보다는 훨씬 좋아졌어요.”
Q. 호주 생활은 어떠신가요?
“일단 여기가 외국이니까 제가 영어를 능숙하게 하지 못해서 딸과 아들한테 도움을 많이 받고 있죠.”
Q. 딸은 승무원이고, 아들은 학생으로 알고 있어요.
“네, 딸은 승무원인데 (코로나19로 인해) 비행이 멈춰서 함께 지내고 있고, 아들은 일반 학생이에요.”
Q. 요즘 야구인 2세가 많은데, 아들을 야구 선수로 키울 생각은 없으셨나요?
“아들이 어렸을 때는 생각을 해보긴 했는데, 그래도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을 하도록 두는 게 제일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운동하고는 거리가 멀기도 했고요. (웃음)”
Q. 얼마전에 감독님의 야구 인생을 다룬 자서전이 출간됐잖아요. 저도 읽어봤는데 재밌는 이야기들이 많더라고요. 책을 내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먼저 출판사로부터 연락을 받았는데 처음에는 제의를 거절했어요. 자서전을 내기에는 나이가 60, 70대가 아니기 때문에 안 되겠다고 말씀드렸는데, 가족들이~ 가족들은 책을 냈으면 좋겠다고 하더라고요. ‘또 언제 제 이름으로 된 책이 나오겠느냐’고 가족들이 권유를 하더라고요. 그래서 출판사에 다시 하겠다고 말씀드렸고 [구대성은 지지 않는다]라는 책이 완성됐어요.”
Q. 글 쓰는 게 어렵진 않으셨나요?
“너무 어려웠어요. 야구를 하는 게! 결승전에서 던지는 게! 더 쉬운 것 같아요.(웃음) 쓰고 지우고, 또 쓰고 지우고… 너무 힘들었어요.”
Q. 자서전을 보면, 저를 포함해 야구팬이 잘 몰랐거나 잘못 알고 있는 부분들이 상당히 많더라고요. 그중에서 몇 가지만 여쭤보려고 합니다.
첫 번째는 메츠 시절 부상 이유가 ‘잠바 속 쇠공’으로 알려져 있는데, 사실은 다르더라고요?
(*2005년 뉴욕 메츠 시절, 구대성은 MLB 전설의 투수 랜디 존슨 상대로 2루타 때려낸 뒤 보내기 번트 때 3루를 지나 홈까지 쇄도하다 어깨 부상을 입었다.)
"투수들이 안타를 치고 나가면 잠바를 입게 되는데 (당시) 잠바 안에는 공이 없었어요. 제가 야구공보다 조금 작은 쇠공을 항상 지니고 다니긴 했는데 (홈 쇄도할 때) 공은 안 들어있었고요. 슬라이딩하면서 왼쪽 어깨뼈에 멍이 들었던 거예요. 공은 없었어요.”
Q.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면, 홈으로 쇄도하시겠습니까?
“아니요. 절대 안 합니다. 그때 행동을 후회만 하는 건 아닌데요. 그래도 안 할 겁니다. 앞으로 (이런 상황이 생긴다면) 후배들한테도 하지 말라고 얘기하고 싶어요. 야구를 2~3년 정도 더 할 수 있었는데 그거 하나로 1년 만에 미국 생활을 접어야 했으니까요.”
Q. 그리고 당시에 마이크 피아자 선수가 한 내기도 화제가 됐었는데, 100만 달러를 기부했나요?
(* 당시 메츠 포수였던 마이크 피아자가 동료 데이빗 라이트에게 구대성이 안타를 치면 자선단체에 100만 달러를 기부하겠다고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제가 그 전 경기 타석에서 서서 삼진을 먹었거든요. 그래서 그 다음 경기에서 그런 대화를 했더라고요. 아마 내기는 했는데 내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선수끼리 그냥 내기한 것뿐이지, (100만 달러를) 내지는 않았고요. 그냥 좋은 해프닝으로 끝났어요. (웃음) ”
두 번째는 류현진 선수에게 가르쳐주신 체인지업이 송진우 감독님한테 배운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 부분도 사실과는 다르더라고요.
“진우 형이 체인지업을 가르쳐줬는데요. 그 체인지업을 어느 정도 쓰다가 김시진 코치님이 알려주신 방법으로 바꿔서 던졌어요. 제가 미국에 있을 때, 현대 유니콘스가 플로리다로 스프링 캠프를 오면서 저도 합류해서 같이 훈련을 했는데 그때 당시 현대 투수 코치였던 김시진 코치님이 “내가 알고 있는 체인지업이 있는데, 그걸 한 번 해보겠느냐”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저는 좋다고 했고 코치님이 두 가지 체인지업을 가르쳐주셨어요. 제가 던졌던 체인지업하고는 다르더라고요.
이후 김시진 코치님한테 배운 체인지업을 류현진 선수한테 알려주면서 야구공 실밥 108개를 다 잡아보라고 했어요. 선수들한테 공의 실밥이 몇 개냐고 물어보면 거의 몰라요. 꿰매는 방식이 다 다르기 때문에 어느 부분을 잡느냐에 따라 던지는 공 방향이 달라질 수 있거든요. 현진이한테 잘 떨어지는 위치를 찾아서 연습하고 시합 때 바닥에 던지더라도 타자를 상대로 꼭 테스트해보라고 알려줬는데, 워낙 습득력이 좋아서 1주일 만에 마스터했던 것 같아요."
세 번째는 KBO 복귀에 관한 질문인데요. 자서전에서 '한국으로 돌아가 경험을 전수해주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셨어요. 지도자로 복귀하실 생각이 있으신가요?
“제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기 때문에 뭐라고 말씀을 드릴 순 없고요. 어떤 팀이든 저를 원하는 팀이 있다면, (한국에 가서) 후배들을 가르쳐주고 싶죠. 기회가 된다면 언제든지요”
Q. 한화가 아닌 다른 팀이라도요?
“네, 다른 팀이라도. 저는 한국 사람이고 한국 선수들은 모두 제 후배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어떤 선수든 가르쳐 달라고 하면 얼마든지 알려줄 수 있습니다."
Q.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서전에서 뽑은 ‘한국야구 드림팀 멤버’를 두고 팬들 사이에서 논란(?)이 있었는데요?
(*투수 선동열/ 포수 강성우/ 1루수 김태균/ 2루수 김재걸/ 3루수 김동주/ 유격수 이종범/ 좌익수 이병규/ 중견수 정수근/ 우익수 박재홍/ 지명타자 이승엽)
“저도 반응을 봤습니다. (웃음) 제가 야구했던 시절을 생각하며 뽑은 팀이었어요. 선동열 감독님을 뽑은 이유는 우리나라 최고의 국보급 투수시잖아요. 저하고도 3년인가 4년인가 야구를 같이 했었기 때문에 그 안에서 뽑았던 거고요. 김태균 선수를 (1루수로) 뽑은 게 말이 많은데 수비와 방망이의 조화를 보고 뽑았던 거예요. 이승엽 선수를 (1루수가 아닌) 지명 타자로 뽑은 이유는 방망이가 워낙 뛰어나니까 중심으로 잡았던 거고요. 우리나라의 해결사잖아요.
Q. 생각보다 팬들의 반응을 잘 알고 계시네요?
“여기서도 반응을 다 보고 있습니다. (웃음)”
-‘대성불패’ 구대성 감독님 인터뷰는 2편으로 이어집니다.
영상=전수연PD
사진= 살림출판사, 게티이미지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