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탈코리아] 오상진 기자= 2021년 연초부터 스포츠계가 폭력 이슈로 뜨겁다. 여자배구에서 시작된 논란은 남자배구로 불이 옮겨 붙었고 봇물터진 학교폭력 폭로 러시가 연일 이어지고 있다. 여기에 지도자의 선수 폭행 전력까지 재조명되어 폭력 이슈는 쉽게 사그라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다른 종목에서 불붙은 논란이지만 야구계도 신경을 곤두세우지 않을 수 없다. 불과 몇 개월 전까지만 해도 논란의 스포트라이트를 야구계가 받았으며 이번 배구계의 논란 속에서도 '학교폭력'이라는 키워드를 다루는 뉴스에는 야구선수의 이름이 자주 등장하고 있다.
야구를 포함한 스포츠계의 폭력은 어제 오늘의 문제 아니다. 하지만 논란이 일어날 때는 순간일 뿐 이내 잠잠해졌다가 잊힐만 하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다. 폭력 문제가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반복되는 이유는 무엇때문일까?
먼저 징계 만능주의를 이유로 들 수 있다. 결과만을 따져 책임을 묻고 징계를 내리기에 급급하다 보니 문제가 발생한 원인과 과정을 돌아볼 여유가 없어진다. 처벌과 징계가 두려워 문제를 집단 밖으로 드러내지 않고 은폐하려는 경향도 생긴다. 그러다보면 집단의 목표를 위해 피해를 당하고도 쉽게 사실을 밝힐 수 없는 상황이 만들어지곤 한다.
또 애매한 수위의 징계가 주는 역효과도 무시할 수 없다. 폭력으로 물의를 일으킨 선수는 구단, 협회 등에서 내린 징계를 소화하고 나면 시나브로 본인의 자리로 복귀한다. 피해자의 몸과 마음에 새겨진 상처는 평생을 따라다니는데 용서한 적 없는 가해자가 당당하게 보란 듯이 성공가도를 달린다. 야구계는 최근에야 학교폭력으로 논란이 된 선수에 대해 처음으로 지명 철회라는 철퇴를 내린 사례가 있다. 그러나 이전에는 논란이 있음에도 수억원의 계약금을 받고 프로 구단에 입단하거나 징계 기간이 끝난 뒤 아무 일 없었다는 그라운드에 복귀하는 일이 흔치 않게 있었다. 가해자의 진심어린 반성과 사과, 타의가 아닌 자의에 의한 피해자의 용서와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오로지 논란을 수습하기 위해 내린 징계는 오히려 적당한 선에서 면죄부를 주는 셈이 된다.
또다른 이유는 스포츠계에 만연해있는 폭력에 대한 가벼운 인식이다. 흔히 말하는 "나 때는 말이야..."라는 시대착오적 인식은 폭력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쉽다. '예전에는 더 심한 폭력은 비일비재했으니 지금 정도는 충분히 견딜만해'라는 식의 문제가 아니다. 그러한 인식은 시대가 흐르면서 많은 부분 희석돼 왔으며 폭력없이 올바르게 선수를 가르치는 지도자들도 많다.
진짜 중요한 것은 '폭력=틀린 것'이라는 것을 인식을 공유하는 것이다. 가끔 선수들이 '견디기 힘들었지만 정신력으로 버텼다', '우리 땐 그런 문화가 있었다'라고 과거의 일을 웃으며 이야기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이러한 태도는 잘못하면 폭력이라는 심각한 문제를 가볍게 여길 수 있는 여지를 준다. '이미 지난 일이니 괜찮아',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니까 괜찮아', '나만 폭력을 휘두르지 않으면 돼'가 아니라 폭력은 잘못됐다고 단호하게 입장을 밝힐 수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지도자가 선수들 가르칠 때 "시대가 바뀌었기 때문에 폭력은 안된다"라고 한다면 얼마나 설득력을 가질 수 있을까? "그 때는 그랬다면서 지금은 왜 안되나요?"라고 반문한다면 뭐라고 답할 수 있을까. 폭력은 지금도 틀리고 그때도 틀렸다. 어떠한 경우에도 수단과 방법이 될 수 없다. 때문에 지도자, 선수 등을 비롯한 모두가 폭력은 정당화될 수 없다는 인식을 가지는 게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다른 종목에서 불붙은 논란이지만 야구계도 신경을 곤두세우지 않을 수 없다. 불과 몇 개월 전까지만 해도 논란의 스포트라이트를 야구계가 받았으며 이번 배구계의 논란 속에서도 '학교폭력'이라는 키워드를 다루는 뉴스에는 야구선수의 이름이 자주 등장하고 있다.
야구를 포함한 스포츠계의 폭력은 어제 오늘의 문제 아니다. 하지만 논란이 일어날 때는 순간일 뿐 이내 잠잠해졌다가 잊힐만 하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다. 폭력 문제가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반복되는 이유는 무엇때문일까?
먼저 징계 만능주의를 이유로 들 수 있다. 결과만을 따져 책임을 묻고 징계를 내리기에 급급하다 보니 문제가 발생한 원인과 과정을 돌아볼 여유가 없어진다. 처벌과 징계가 두려워 문제를 집단 밖으로 드러내지 않고 은폐하려는 경향도 생긴다. 그러다보면 집단의 목표를 위해 피해를 당하고도 쉽게 사실을 밝힐 수 없는 상황이 만들어지곤 한다.
또 애매한 수위의 징계가 주는 역효과도 무시할 수 없다. 폭력으로 물의를 일으킨 선수는 구단, 협회 등에서 내린 징계를 소화하고 나면 시나브로 본인의 자리로 복귀한다. 피해자의 몸과 마음에 새겨진 상처는 평생을 따라다니는데 용서한 적 없는 가해자가 당당하게 보란 듯이 성공가도를 달린다. 야구계는 최근에야 학교폭력으로 논란이 된 선수에 대해 처음으로 지명 철회라는 철퇴를 내린 사례가 있다. 그러나 이전에는 논란이 있음에도 수억원의 계약금을 받고 프로 구단에 입단하거나 징계 기간이 끝난 뒤 아무 일 없었다는 그라운드에 복귀하는 일이 흔치 않게 있었다. 가해자의 진심어린 반성과 사과, 타의가 아닌 자의에 의한 피해자의 용서와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오로지 논란을 수습하기 위해 내린 징계는 오히려 적당한 선에서 면죄부를 주는 셈이 된다.
또다른 이유는 스포츠계에 만연해있는 폭력에 대한 가벼운 인식이다. 흔히 말하는 "나 때는 말이야..."라는 시대착오적 인식은 폭력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쉽다. '예전에는 더 심한 폭력은 비일비재했으니 지금 정도는 충분히 견딜만해'라는 식의 문제가 아니다. 그러한 인식은 시대가 흐르면서 많은 부분 희석돼 왔으며 폭력없이 올바르게 선수를 가르치는 지도자들도 많다.
진짜 중요한 것은 '폭력=틀린 것'이라는 것을 인식을 공유하는 것이다. 가끔 선수들이 '견디기 힘들었지만 정신력으로 버텼다', '우리 땐 그런 문화가 있었다'라고 과거의 일을 웃으며 이야기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이러한 태도는 잘못하면 폭력이라는 심각한 문제를 가볍게 여길 수 있는 여지를 준다. '이미 지난 일이니 괜찮아',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니까 괜찮아', '나만 폭력을 휘두르지 않으면 돼'가 아니라 폭력은 잘못됐다고 단호하게 입장을 밝힐 수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지도자가 선수들 가르칠 때 "시대가 바뀌었기 때문에 폭력은 안된다"라고 한다면 얼마나 설득력을 가질 수 있을까? "그 때는 그랬다면서 지금은 왜 안되나요?"라고 반문한다면 뭐라고 답할 수 있을까. 폭력은 지금도 틀리고 그때도 틀렸다. 어떠한 경우에도 수단과 방법이 될 수 없다. 때문에 지도자, 선수 등을 비롯한 모두가 폭력은 정당화될 수 없다는 인식을 가지는 게 무엇보다도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