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경 ''잠깐은 빨리 끝났으면 했지만, 점점 해내고 싶었던 시즌이었다''
입력 : 2021.03.31기사보내기 :  트위터  페이스북
[스포탈코리아=계양] 김동윤 기자=뜻하지 않은 악재에 잠시 주춤했던 김연경(33)은 새로이 마음을 다잡아 인천의 마지막 밤을 아름답게 장식했다.

흥국생명은 30일 인천 계양체육관에서 열린 도드람 2020-2021 V리그 여자부 챔피언 결정전 3차전에서 GS 칼텍스에 세트 전적 2-3(23-25, 22-25, 25-19, 25-17, 7-15)으로 패했다. 시리즈 전적은 0승 3패였지만, 홈팬들이 보는 앞에서 기록한 마지막 1패는 아쉬움보다 박수가 절로 나오는 명승부였다.

흥국생명은 1, 2차전을 치르는 동안 22득점 이상을 기록한 세트가 없었다. 하지만 이날은 달랐다. 브루나 모라이스(19득점), 이주아(11득점), 이한비(8득점) 등 어린 선수들이 힘을 냈고, 리더이자 에이스인 김연경은 27득점으로 이들을 이끌었다.

특히 4세트에서 김연경은 GS 칼텍스의 블로킹에 아랑곳하지 않고 양 팀 통들어 최다인 7득점을 기록했다. 계양체육관에 모인 이들이 한순간 4차전을 떠올리게 만든 압도적인 존재감이었다. 비록 경기는 패했지만, 김연경이 보여준 투지와 경기력은 흥국생명 팬들의 아쉬움을 덜어줬고, GS 칼텍스 팬들에게는 긴장감과 더 큰 짜릿함을 안겼다.

경기 후 만난 김연경은 "2차전까지 1세트도 따지 못하고 경기를 내줘 질 땐 지더라도 물고 늘어지는 경기를 하고 싶었다. 져서 아쉽지만, 끝까지 최선을 다했고, 노력해준 동료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다"고 경기 소감을 밝혔다.

GS 칼텍스의 우승이 확정된 직후 흥국생명의 어린 선수들은 눈물을 터트렸다. 김연경은 어린 후배들을 하나하나 감싸 안으면서 위로했다. "2차전 끝나고 선수들에게 '여기까지 온 것만으로도 잘했다'고 얘기해줬다"고 말한 김연경은 "GS 칼텍스가 실력 면에서 우리보다 낫지만, 플레이오프를 하다 보니 욕심이 생겼다. 그래서 선수들에게 '잘했다, 우리 열심히 했다'고 격려해줬다"며 후일담을 전했다.

경기 후 김연경은 고생한 어린 선수들을 하나하나 안아줬다

김연경과 흥국생명의 2020-2021시즌은 시작과 끝이 매우 달랐다. 김연경과 이다영의 합류로 흥국생명은 전승 우승 가능성이 진지하게 얘기됐던 강력한 우승 후보였다. 하지만 이재영-이다영 쌍둥이 자매의 과거 학교 폭력 논란과 팀 내 불화설 탓에 사회적으로 큰 관심을 끌 정도로 홍역을 치렀다.

김연경은 "동료들이 많이 도와줬고 후배들 덕에 견뎌낼 수 있었다. 어려움을 딛고 챔피언 결정전에 왔다는 것만으로도 잘했다고 생각한다. 내 배구 인생에 있어 마음이 무겁고 책임감을 많이 갖게 된 시즌이지만, 마무리가 내 나름대로는 잘됐다고 생각한다"고 다사다난했던 올 시즌을 돌아봤다.

한국에 돌아온 것을 후회하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어려운 질문이다"라고 잠시 숨을 고른 김연경은 "괜히 왔다는 생각보다는 빨리 시즌이 끝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잠시 했다"며 솔직한 심정을 털어놓았다. 그렇지만 "어느 시점이 지나고서는 남은 날짜를 세기보다는 좀 더 잘 해내고 싶었다. 그렇게 마음을 먹고 보니 시즌이 빨리 갔다"며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였다.

도쿄올림픽을 염두에 두고 국내 복귀를 선언했던 만큼 김연경의 시선은 벌써 올림픽을 향해 있었다. 하지만 그 전에 함께 고생한 동료들을 챙기면서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김연경은 "아직 시즌이 끝났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내일도 운동해야 할 것 같다. 일단은 선수들과 술 한잔하면서 지금까지 있었던 일에 대해 얘기하는 시간을 갖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많이 쉬지는 못할 것 같다. 그래도 1~2주는 편하게 쉬고, 다시 몸을 만들어서 올림픽을 준비하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2020-2021시즌 종료 후 김연경의 거취는 한국 여자배구계의 최대 관심사 중 하나다. 그런 만큼 김연경도 이번 챔피언 결정전에 각별한 심정을 나타냈고, 배구팬들의 관심도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

김연경은 "향후 거취에 대한 생각은 지금까지 전혀 안 하고 있었다. 올해는 천천히 시간을 두고 생각하려 했다. 이번 시즌 중에도 제의는 많이 왔는데 이제 막 시즌이 끝났으니 쉬면서 폭넓게 생각할 예정이다"라고 말을 아꼈다.

다사다난한 시즌이었음에도 오랜만의 V리그 복귀가 싫지만은 않았던 것은 어떤 상황에서든 아낌없는 응원을 보내준 팬 덕분이었다. 김연경은 "많은 분들이 잘할 때나 못할 때나 항상 내 편에서 응원을 많이 해주셔서 큰 힘이 됐다. 이번 3차전도 비록 10%의 관중만이 함께했지만, 충분히 감동적이었다. 응원해주신 분들 덕분에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다"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

또 하나의 '원팀(One-Team)' 흥국생명은 올 시즌 V리그의 또다른 주인공이었다

사진=한국배구연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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