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수원, 고성환 기자] 세상엔 형만한 아우도 있는 법이다. 허훈(29, 수원 KT)이 '형' 허훈(31, 부산 KCC) 앞에서 날개를 펼쳤다.
수원 KT는 29일 오후 7시 수원KT아레나에서 열린 2023-2024시즌 정관장 프로농구 챔피언결정전 2차전에서 부산 KCC를 101-97로 물리쳤다.
이로써 KT는 1승 1패로 시리즈 균형을 맞추며 반격의 서막을 알렸다. 이날도 패했다면 2패를 떠안고 부산 원정을 떠나야 했지만, 귀중한 1승을 챙기며 한숨 돌렸다. 역대 챔프전에서 1차전을 패한 뒤 2차전을 승리한 팀이 우승할 확률은 46.2%(총 13회 중 6회)였다.
패리스 배스가 경기를 바꿔놨다. 전반은 KCC의 분위기였다. 알리제 드숀 존슨이 2쿼터에만 24점을 몰아치며 챔프전 한 쿼터 최다득점 기록을 세웠다. 하지만 전반 무득점에 묶였던 배스가 후반에만 36점을 퍼부으며 역전승을 이끌었다.
하지만 허훈의 활약도 결코 빼놓을 수 없다. 그는 40분 풀타임을 내리 뛰면서 22점 10어시스트를 올렸다. '적장' 전창진 KCC 감독도 경기 후 "허훈이 대단하더라. 그런 정신력이라니"라며 감탄할 정도였다.
형제 대결에서도 승리한 허훈이다. 허웅 역시 4쿼터 들어 10점을 올리며 승부처에서 존재감을 드러냈지만, 전반에는 조용했다.총 16점 4어시스트로 준수한 기록을 남기긴 했으나 '동생' 허훈에 비하면 모자란 게 사실이었다.
지난 1차전과는 반대였다. 당시엔 허웅이 17점 4스틸로 KCC의 승리를 이끌며 허훈(12점 4어시스트)에 판정승을 거뒀다. 허웅이 허훈의 공을 스틸한 뒤 3점 플레이를 완성하며 크게 포효하는 장면도 연출됐다. 프로농구 최초의 챔피언결정전 형제 대결이라는 타이틀에 어울리는 맞대결이었다.
홈 팬들 앞에서 고개를 떨궜던 허훈은 그야말로 이를 갈고 나왔다. 그는 배스가 초반 침묵할 때도 KCC 골밑을 휘저으며 차곡차곡 점수를 쌓았다. 그런가 하면 센스 있는 패스로 문성곤의 3점슛을 어시스트하고 연달아 좋은 수비로 공격권을 가져오는 등 사실상 홀로 1쿼터를 이끌었다.
허훈은 고비에서도 빛을 발했다. 그는 끌려가던 3쿼터에서 60-60 균형을 맞추는 득점을 올렸고, 배스와 호흡을 맞추며 맹활약을 이어갔다. 종료 직전에도 천금 같은 자유투 득점을 추가하며 승부에 쐐기를 박았다. 사실상 경기의 시작과 끝을 책임졌던 허훈이다.
물론 배스가 36점을 맹폭하긴 했지만, 허훈이 없었다면 그가 활약하기도 전에 KT가 무너졌을 가능성이 크다. 경기 후 배스도 "내가 전반에 최악의 모습을 보였다. 허훈이 좋은 모습을 보여주면서 나를 잡아줬다. 그 덕분에 힘을 얻고 후반에 잘할 수 있었다"라며 허훈에게 공을 돌렸다.
형제 대결이라는 타이틀이 허훈에게는 부담감이 아니라 또 하나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 그는 승리 후 "많은 관심을 주신다. 행복하다. 많이 누릴 수 없다. 한 경기 한 경기 하고 있으니 영광이다. 부담보다는 경기를 즐기는 마음"이라며 미소를 지었다.
허훈은 생애 첫 챔프전에서 정상에 오르기만을 꿈꾼다. 그는 "형제 대결이고, 잔치다. 1차전에선 뭘 보여주지도 못하고 졌다. 내 자신에게 화가 났다"라며 "죽기살기로 뛰자는 마음이었다. 다음 경기도 똑같은 마인드로 뛰겠다. 우승하는 그날까지 한 경기 한 경기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의지를 불태웠다. KT와 KCC는 부산으로 자리를 옮겨 내달 1일 3차전을 치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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