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고성환 기자] 1년 전만 해도 나폴리의 '푸른 철기둥'으로 불렸지만, 그새 많은 게 바뀌었다. 김민재(28, 바이에른 뮌헨)가 이젠 팀의 약점으로 취급받고 있다.
바이에른 뮌헨은 1일(이하 한국시간) 독일 뮌헨 푸스발 아레나 뮌헨에서 열린 2023-2024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UCL) 4강 1차전에서 레알 마드리드와 2-2로 비겼다.
안방에서 승리하지 못한 바이에른 뮌헨은 레알 마드리드 원정에서 꼭 이겨야만 결승에 오를 수 있게 됐다. 양 팀은 오는 8일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서 2차전을 치른다.
김민재가 오랜만에 UCL 무대에서 선발로 나섰다. 지난 2월 라치오와 UCL 16강 1차전 이후 처음이었다. 김민재는 마테이스 더 리흐트의 무릎 부상과 다요 우파메카노의 발목 부상으로 기회를 잡으며 에릭 다이어와 호흡을 맞췄다.
김민재로서는 빼앗겼던 주전 자리를 되찾아올 수 있는 소중한 기회였다. 월드클래스가 여럿 있는 레알 마드리드를 상대로 좋은 활약을 펼쳤다면 토마스 투헬 감독의 마음을 다시 사로잡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결과는 최악이었다. 김민재는 생애 처음으로 밟은 UCL 준결승 무대에서 두 번이나 실점 빌미를 제공하고 말았다. 그는 전반 24분 비니시우스 주니오르를 쫓아 튀어나갔다가 뒷공간을 허용했다. 이를 놓치지 않고 토니 크로스가 정확한 패스를 찔러넣었고, 비니시우스가 일대일 기회를 잡으며 선제골을 터트렸다.
김민재와 우측 풀백 요주아 키미히의 호흡이 맞지 않았다. 김민재는 실점 직후 키미히를 바라보고 소리 치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무언가 약속된 플레이가 어긋났는지 이례적으로 화를 내는 모습이었다.
이후로는 한동안 안정적인 활약을 펼쳤다. 김민재는 정확한 전진 패스로 팀이 페널티킥을 얻어내는 데 일조했고, 적극적인 수비로 한 발 빠르게 공을 끊어내는 등 존재감을 드러냈다. 후반 들어서는 다시 뛰쳐나가는 수비를 펼치며 재미를 보기도 했다.
문제는 경기 막판 터졌다. 김민재는 바이에른 뮌헨이 2-1로 앞서고 있던 후반 37분 박스 안에서 드리블하는 호드리구를 막으려다 발을 걸어 넘어뜨리며 반칙을 저질렀다. 키커로 나선 비니시우스가 침착하게 페널티킥을 성공하면서 2-2 균형을 맞췄다. 결국 바이에른 뮌헨은 다 잡았던 승리를 놓치며 아쉬움을 삼켜야 했다.
경기 후 김민재는 혹평을 피하지 못했다. 독일 '빌트'는 '재앙'이라는 표현까지 쓰면서 최하점인 평점 6점을 줬다. 사실 좋은 평가를 내린 곳이 없었다. '스폭스'와 '스포르트'도 김민재에게 평점 5.5점을 매겼고, 'TZ'도 5점을 부여했다.
'바바리안 풋볼 웍스'도 김민재를 무승부의 원흉으로 꼽았다. 매체는 "김민재가 바이에른 뮌헨을 비기게 만들었다. 공격에서 기회를 놓친 부분도 있긴 했다. 하지만 바이에른 뮌헨은 두 번의 직접적인 실책이 없었다면 2-0으로 이겼을 것"이라며 "더 리흐트의 부상은 정말 최악의 시기에 발생했다"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김민재가 바이에른 뮌헨의 약점이라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리버풀에서 수비수로 뛰었던 제이미 캐러거는 'CBS 스포츠'에 출연해 "김민재 탓이다. 바이에른 뮌헨이 8강에서 아스날을 이긴 이유는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야쿠프 키비오르를 상대했기 때문이었다. 키비오르는 아스날을 위태롭게 했다. 오늘은 김민재가 그랬다"라고 꼬집었다.
이어 캐러거는 "바이에른 뮌헨은 경기를 더 지배했고, 더 나은 팀이었다. 하지만 수비수 때문에 실망스러운 결과를 낳았다. 아스날도 똑같이 그랬다. 바이에른 뮌헨이 아스날의 약한 부분(키비오르)을 공략했듯이 이번엔 레알 마드리드가 바이에른 뮌헨의 약한 부분(김민재)를 공략한 것처럼 보인다"라고 덧붙였다.
나폴리 시절을 생각하면 충격적이기까지 한 비판이다. 김민재는 1년 전만 해도 유럽 최정상급 센터백으로 불리며 영웅 대접을 받았다. 그는 주세페 브루스콜로티의 뒤를 이어 '철기둥'이라는 별명까지 얻었고, 빅리그 입성과 동시에 최고의 스타로 떠올랐다.
나폴리도 무려 33년 만에 스쿠데토(세리에 A 우승)를 획득하며 역사를 썼다. 디에고 마라도나 시절 이후 첫 리그 우승이었다. 그 중심엔 리그 최소 실점을 이끌며 세리에 A 최우수 수비수로 선정된 김민재가 있었다.
김민재는 2023년 발롱도르 순위에서도 22위로 전 세계 수비수 중 1위를 차지하며 '괴물'로 인정받았다. 여름 이적시장에서도 뜨거운 관심을 받았지만, 최후의 승자는 바이에른 뮌헨이었다. 직접 러브콜을 보내며 꿈을 이룬 투헬 감독은 김민재를 끌어안고 환하게 웃었다.
하지만 1년도 되지 않아 상황이 많이 바뀌었다. 김민재는 다이어와 더 리흐트에게 밀려 벤치 신세가 됐다. 김민재 특유의 공격적인 수비가 최근에는 오히려 독이 되고 있는 모양새다.
2차전 출격도 쉽지 않은 분위기다. 당장 일주일 뒤 경기가 열리긴 하지만, 더 리흐트나 우파메카노가 빠르게 회복하면 김민재가 다시 벤치로 밀려날 수도 있다. 실제로 투헬 감독은 경기 후 기자회견에서 김민재를 공개적으로 힐난했다. 그는 "김민재는 그렇게 공격적으로 반격에 참여하면 안 된다. 팀이 공을 갖고 있을 땐 그렇게 할 수 있다. 하지만 중앙 수비수로서 그렇게 자유롭게 반격을 펼칠 수는 없다"라며 "너무 욕심이 많다. 압박 상황이 아니었기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다. 너무 쉬운 문제다. 거기에서 김민재를 도울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라고 역설했다.
또한 투헬 감독은 페널티킥 실점에 대해서도 "김민재는 두 차례 너무 욕심이 많았다. 5대2로 수비 숫자가 많았다. 김민재는 갑자기 불필요하게 호드리구의 안쪽 경고를 막아서려 했다. 그는 패스가 오는 순간 잘못된 위치에 있었다. 다이어가 도와주러 오고 있었지만, 반칙을 범했다. 너무 욕심이었다. 만약 그런 상황에서는 가만히 서 있어야 한다"라고 화를 냈다.
리버풀과 레알 마드리드에서 뛰었던 스티브 맥마나만도 김민재를 다시 볼 수 있을지 의문을 표했다. 그는 'TNT 스포츠'를 통해 "엉성하다. 너무 엉성하다. 저런 도전을 하다니 김민재는 대체 무슨 플레이를 하고 있는 건가?"라며 "김민재는 이 정도 수준에서 잊고 싶은 밤을 보냈다. 과연 그가 다음주 베르나베우에서 다시 뛸 수 있을까?"라고 고개를 저었다.
빌트는 "김민재는 아마도 2차전에서 다시 한번 자기 실력을 입증해 투헬 감독을 기쁘게 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긍정적인 전망을 내놨다. 하지만 김민재가 직접 실수를 주워담을 기회가 사라질 가능성도 커 보인다.
일단 '주장' 마누엘 노이어는 김민재를 감싸안았다. 그는 "우리는 라커룸에서 이야기를 나눴다. 실수는 일어나기 마련이다. 축구의 일부다. 이게 그가 다음 경기에서도 부진할 거란 뜻은 아니다. 오늘도 완전히 나쁘진 않았다. 잘한 부분도 있었다"라며 김민재가 다시 잘할 수도 있다고 옹호했다.
오는 3일 열리는 슈투트가르트전이 중요한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더 리흐트와 우파메카노가 아직 제 컨디션이 아닌 만큼 투헬 감독은 다시 한번 김민재를 내보낼 가능성이 크다. 김민재가 여기서 달라진 모습을 보여줘야만 UCL 무대에서 자존심을 회복할 기회가 올 수 있다.
우선 지나친 공격성을 죽여야 한다. 투헬 감독의 말대로 욕심을 덜고 스스로 모든 공을 처리할 수는 없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이날 뼈저리게 느꼈듯이 김민재 혼자 펼치는 적극적인 전진 수비는 분명 독이 될 위험이 있다. 마이클 오언이 지적한 것처럼 지나치게 공격적으로 나선 건 아닌지 되돌아 봐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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