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휘성, '가요계 김연아' 같은 존재..늘 부족하다는 강박 시달렸다'' [Oh!쎈 이슈]
입력 : 2025.03.20기사보내기 :  트위터  페이스북

[OSEN=하수정 기자] 고 휘성이 세상을 떠난 가운데, 고인의 음악 업적을 되짚어보는 시간이 마련됐다.

19일 유튜브 채널 'AMPLIFIED Podcast'에는 '거목, 휘성'이라는 제목으로 동영상이 업로드됐다. 래퍼이자 진행자 UMC와 김영대 음악평론가는 최근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고(故) 휘성의 가수로서 커리어와 음악 인생을 되돌아보고 추모하는 시간을 가졌다. 

김영대 평론가는 "가수들 중에도 그런 가수가 간혹 있는데, 휘성은 본인의 목소리를 창조해냈다. 본인이 되고 싶은 목소리를 피나는 연습과 노력을 통해서 만들어냈다. 그것자체로도 대단하다. 음악계나 예술계를 보면 천재들의 싸움이라고 생각하는데 단기간으로 보면 그렇다. 근데 장기간으로 보면 천재가 살아남기보단 열정 있고, 열심히 하고, 꾸준히 하고, 오래하는 사람만 살아남는다"고 밝혔다.
 
UMC는 "그것의 아주 훌륭한 사례가 휘성이다. 정말 무에서 만들어낸 보컬이다. (가요계) 10년 선배 현진영과 정반대다. 두 사람 모두 댄서 출신이다. 현진영은 춤을 노력해서 잘 추게 됐고, 목소리를 타고난 사람이다. 근데 휘성은 딱 반대다. 춤 잘추던 아이가 노래를 하고 싶었지만 못했다. 그걸 연습으로 여기까지 만들어낸 사람이다. 커리어를 다시 돌아보니까 이 시대에 이 정도의 시도를 했던 사람도 드물다. 이 한 사람의 실험이 한국 음악 역사의 흐름을 꽤 많이 바꿔놨다는 걸 알 수 있었다"고 말했다.

[OSEN=이대선 기자] 16일 오전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에서 故 휘성의 영결식이 진행됐다.  휘성은 지난 10일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향년 43세. 정확한 사인은 아직까지 알려지지 않았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1차 검사에서 구두로 '사인 미상'이라고 소견을 밝힌 상태다.  휘성은 지난 2002년 정규 1집 'Like A Movie'로 데뷔해 '안되나요', '전할 수 없는 이야기', 'With Me', ‘다시 만난 날’, ‘일년이면’, I’m Missing You', '결혼까지 생각했어', ‘가슴 시린 이야기’, ‘너라는 명작', '불치병', '주르륵', '사랑은 맛있다’ 등 수많은 명곡을 발표했다.  故 휘성의 영결식이 진행되고 있다. 2025.03.16 /sunday@osen.co.kr

2집 수록곡 'With Me(위드 미)'를 들은 뒤, UMC는 "힙합과 알앤비를 우리나라에 주입시키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한 건 YG엔터와 그 소속 가수들이다. 그 바깥에선 휘성부터 생각나는 게 맞다"고 했다.

김영대 평론가는 "휘성은 YG와 파트너십이 있던 기획사(엠보트) 출신이었고, 내 개인적인 가요 역사와 K팝 역사에서 처음 딱 듣고 충격받은 10번 정도의 순간 중 하나였다"며 "더 위대한 곡들도 처음 들었을 땐 충격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는데, '위드 미'는 너무 놀랐다. '이런 게 가능하구나' 싶었다. 그 전 세대도 알앤비는 있었고, 우리나라에 알앤비를 휘성이 들여온 건 아니다. 유영진, 솔리드 등 다들 시도는 했었다"고 말했다.

이어 "휘성이라는 가수의 출발을 알고, SNP(나우누리 시절 힙한알앤비 동호회)가 자랑하는 양대산맥으로 리얼슬로우(휘성 닉네임)와 태완이 있었다. 내가 아는 동생이었는데, 가요계 역사를 뒤바꾸는 곡을 딱 하나 던져놓은 느낌이었다. 그 느낌은 굉장히 독특했다"며 "내 윗세대를 바라본 동경이나 존경심, 로망이 아니라 '내 동생 세대들이 우리와 형들이 못하는 걸 해내는구나' 이런 충격이 짜릿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특히 UMC는 "휘성은 (가요계에) 김연아 같은 존재다. '저 사람이 지금 무슨 토양에서 저런 게 피어났지?' 싶은 거다. 저런 열매가 근거가 없는데 생각이 든다"고 했고, 김영대 평론가 역시 "맞다. 그 과정을 우리가 일일이 본것도 아니고"라고 했다.

UMC는 "프로페셔널 커리어를 시작하기 이전의 휘성은 그 누구의 도움도 없었다고 생각한다. 이 상품이 만들어지기까지 그냥 완전히 혼자 만들어냈다. 왜냐면 그 앞에 (국내에선) 할 수 있는 선배가 없다. 결국은 독학"이라며 "데뷔하기 전에 시장을 장악했던 알앤비 스타들의 패턴을 독학으로 배웠다. 마치 UFC를 TV로 보고 선수가 된 사람이 있다면 그와 같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에 적극 공감한 김영대 평론가도 "사실 지금의 K팝 시스템을 운운하는 시장에서 생각해보면 말이 안 되는 상황이다. 한 가수가 그것도 천재적인 재능을 타고 나지 않은 사람이 (알앤비) 보컬을 동경하고, 그 보컬들을 소스 삼아서 연습하고 어느 경지에 이르고, 우리가 그걸 듣고 '우리나라 토양에서 나올 수 없는 보컬리스트'라고 평가하기까지 기적이라고 봐야된다"고 했다.

UMC는 휘성에게 그룹 드루 힐과 멤버 시스코의 앨범이 가장 큰 영향을 줬을 거라며, "당시에 전 세계적인 알앤비의 주요 트랜드를 모두 꿰고 있는 보컬이 돼서 나타난다. 혼자 1~2년 공부하더니 그렇게 됐다"며 놀라워했다.

김영대 평론가는 "지금보니 안타깝다는 생각도 든다. 휘성이 아예 90년대 초반 음악을 시작했다면, 그정도의 압박이 없었을 것 같다. 단순히 스티비 원더, 마이클 잭슨 음악 스타일을 좋아했다면, 어느 정도 타협을 했을 것 같다. 이미 휘성이 꿈을 키우던 시절에는 너무 목을 과하게 쓰는 괴물 보컬들의 향연이 한번 뒤엎고 난 후였다. 거기서 거대한 벽도 느껴야 했을 것"이라고 했다.

UMC는 "10대 후반~20대 초반 시기에 이걸 혼자 연습으로 만들어낸 친구가 라이브에서 노래를 이만큼하고, 패션 감각을 이만큼 갖췄어야 했고, 당시 그 한해에 최고 히트작을 부른 알앤비 가수가 대한민국에 나올 수 있었다. 이 전제는 안 틀리다고 생각한다. 그때 휘성이 안 나왔으면 그만한 가수가 한동안 못나왔고, SM이나 YG가 추구할 수 있는 어떠한 천장도 매우 낮았을 것 같다"고 얘기했고, 김영대 평론가도 "분명히 한계가 있었다. 괜히 우리가 휘성에 놀란 게 아니"라고 했다.

그러나 김영대 평론가는 "휘성도 나름대로 한계가 분명했다. 당연히 한국인으로서 한계가 있었고, 애초에 타고나지 않은 목소리였다. 분명히 우리 시장만을 겨냥했어야 했다. 그 목소리가 갖고 있는 태생적인 한계 때문에 목을 혹사 시켰어야 했다. 당시에도 그게 휘성의 안타까운 한계라고 생각했다. 여기에 타고난 보컬들이 갖고 있는 유연함이 조금 떨어진다. 하지만 나중에는 그 유연함도 만들어낸다. 그게 진짜 대단하고 눈물겹다"고 했다.

이날 '위드 미' ' Incomplete' '7 days' 등 휘성의 다양한 명곡들이 소개됐는데, 김영대 평론가는 "가요 알앤비 발라드 곡도 많다. 근데 이런 건 하나도 선곡 안 했다. 오늘 굳이 피한 이유가 그런 노래를 제외하면 휘성이 뭘 남겼는지 더욱 분명해진다. 가요 발라드가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가요 발라드로서 회상되는 그 사람의 이미지는 '인기 가수'라는 것밖에 없다. 휘성은 '인기 가수'라는 말로 설명하기엔 아깝다"고 높게 평가했다.

UMC는 "이 사람은 노력하는 게 일상이라는 사실을 음악을 듣고 알 수 있다. 그건 후반 커리어에서도 알 수 있다"며 2018년 발표한 EP '우주속에서'를 들려줬다.

이어 "시스코 레벨로 보컬을 돌리던 휘성이 12~3년이 지났더니 케이팝이 부르는 알앤비 정도로 물러선 걸 알 수 있다. 계속해서 기교를 발전시켰지만, 성대수술 잦은 부상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였다"고 했다.

김영대 평론가는 "휘성이 갖고 태어난 불행함이라고 생각한다. 그걸(시스코를) 했어야 됐다는 게. 내 피지컬 이상의 모든걸 갈아 넣어서...마치 야구의 구속혁명 같은 거다. 몇 년을 160km대를 던지고 팔이 아작나서 인대 접합 수술을 해야하는 거다. 알앤비를 부른다는 게 그런 거다. 미국도 다르지 않다. 말이 안된다. 휘성이 그 시절을 지나서 '경쟁력 있는 보컬로 남아줬다는게 감사했다"고 말했다.

[OSEN=이대선 기자] 16일 오전 서울 강남구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에서 故 휘성의 영결식이 진행됐다.  휘성은 지난 10일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향년 43세. 정확한 사인은 아직까지 알려지지 않았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1차 검사에서 구두로 '사인 미상'이라고 소견을 밝힌 상태다.  휘성은 지난 2002년 정규 1집 'Like A Movie'로 데뷔해 '안되나요', '전할 수 없는 이야기', 'With Me', ‘다시 만난 날’, ‘일년이면’, I’m Missing You', '결혼까지 생각했어', ‘가슴 시린 이야기’, ‘너라는 명작', '불치병', '주르륵', '사랑은 맛있다’ 등 수많은 명곡을 발표했다.  故 휘성의 영결식이 진행되고 있다. 2025.03.16 /sunday@osen.co.kr

개인적인 인연을 꺼낸 UMC는 "처음 휘성 군을 만났을 때 이태원의 술집이었다. 그때 2004년이라 앨범 활동 직전이었다. '어떻게 관리하냐?'고 물었더니 '형 저 완전 돼지예요' 그러더라. 티셔츠를 들어올리는데 뼈 밖에 없더라. '이상한 아이네'라고 생각했다.(웃음) 이후 앨범 피처링 작업하러 가서 그의 작업 마인드를 접하게 됐다. 늘 내가 못하고 있다는 강박에 시달리고 있었다. 내가 느끼는 휘성은 그랬다"며 "세상을 다 잡아먹을 것 같은 자신감은 밤이 되면 세상에서 가장 겁 많은 존재로 변화할 수 있다. 그것과 매일 같이 싸우는 거다. 멋진 퍼포먼스를 보여주고 집에 가면 세상에서 제일 못생긴 거울이 기다리고 있는 것. 이 힘든 걸 쉬지 않고 버텨온다는 게 인간 최휘성에게 얼마나 큰 불행이 됐는지 이제야 알겠다. 그래서 지금 많은 지인들이 지켜주지 못해 안타까워한다. 내놓은 작품의 완벽함만큼 딱 괴로워하다가 갔다고 느낀다"며 동생이자 아티스트 휘성의 사망을 슬퍼했다. 

김영대 평론가는 "내가 들었던, 내가 알았던, 주변 지인들에게 들었던 휘성이 딱 그런 모습이었다. 나도 같은 걸 느꼈다. 사람들은 휘성을 대단하다고 했지만 늘 스스로를 부끄러워하고, 뭔가 부족함을 느끼고, 완벽함을 추구하고, 스스로 늘 모자란 존재로 느낀 것 같다"며 "마지막까지도 본인은 (음악을 위해) 뭔가를 하려고 한 것 같다. 물론 세상을 떠났지만, 결국 그렇게 늘 스스로를 모자라고 생각하고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노력하고 버텨내는 사람들이 각 분야에서 유일하게 살아남는다"고 했다.

UMC는 "적어도 지금 30대~40대 한국을 살아온 사람들에게 휘성이란 이름이 어색할 순 없다"며 "다만 이 사람의 전체 플레이 리스트를 못 들어본 분들은 지금부터 디깅을 해보는게 큰 축복이다. 정말 활활 태우고 열심히 살다가 가셨다"며 고인을 애도했다.

한편 고 휘성은 지난 10일 오후 6시 29분쯤 서울 광진구에 위치한 자택에서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향년 43세. 

고인의 영결식 및 발인은 16일 서울삼성병원 장례식장에서 동료들과 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엄수됐으며, 장지는 광릉추모공원이다. 

2002년 정규 1집 'Like A Movie'로 정식 데뷔한 휘성은 '안되나요'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고, '전할 수 없는 이야기', '하늘에서', 'With Me', ‘다시 만난 날’, '미인', 'Good-Bye Luv', '일년이면', 'I’m Missing You', '결혼까지 생각했어', '가슴 시린 이야기', '너라는 명작', '불치병', '주르륵', '사랑은 맛있다', 'Insomnia', '사랑..그 몹쓸병' 등 수많은 명곡으로 큰 인기를 얻었다. 지금도 그의 히트곡들이 엄청난 사랑을 받고 있다.

/ hsjssu@osen.co.kr

[사진] OSEN DB, 'AMPLIFIED Podcast' 채널 화면 캡처, 타조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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