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 성적 : 48승 93패 3무(10위)
‘꼴찌’
[스포탈코리아] 학창시절 시험을 평소보다 못 친 친구가 있으면 놀리곤 했다. 뭐했기에 영어가 그렇게 나왔냐. 수학은 또 왜 그러냐. 다들 웃으면서 말하고 당사자도 분하기는 하지만 웃으면서 넘길 수 있다. “다음 시험 때 두고 봐!”
그런데 다음 시험에서 친구가 꼴찌를 해 버린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저번처럼 가서 놀리자니 상도덕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는 거 같고, 반대로 아예 안 놀리자니 괜히 찜찜하다. 꼴찌에게 괴로운 것은 놀림보다 무관심이다.
롯데 자이언츠가 올 시즌 꼴찌에 등극했다. 평소에도 ‘시험을 잘 치는 친구’는 아니었지만 꼴찌도 아니었다. 마지막으로 꼴찌를 한 건 15년 전인 2004년이었다.
평소에는 ‘꼴데’라며 놀려대던 다른 팀 친구들은 조용하다. 맨날 공부 못한다고 놀렸던 롯데가 진짜 꼴찌를 해 버리니 다들 머쓱한가 보다. 팬들도 화를 내기보다는 무관심으로 응답했다. 9월 23일 사직에는 1752명만이 찾아왔고 마지막 홈 경기인 10월 1일에도 1842명만이 경기를 함께했다.
2019년의 자이언츠
겨우내 양상문 감독을 선임하면서 롯데가 꾸던 꿈은 전혀 다른 것이었다. 적어도 최하위는 아니었다. 양 감독은 “단 하루도 헛되이 보내지 말라”면서 선수들을 독려했다. 2018년 포스트시즌 탈락에 충격을 받은 롯데팬들은 베테랑 감독이 팀을 빠르게 수습해 다시 가을에도 야구하기를 바랐다.
그런데 뭐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 롯데의 올 시즌 최종 성적은 48승 93패 3무로 승률 0.340에 그쳤다. 4년 연속 꼴찌를 했던 2004년에도 승률은 0.410이었다. 10구단 체제가 자리 잡고 144경기를 치른 이후 50승을 넘지 못한 팀은 없었다. 당연히 롯데보다 낮은 승률을 기록한 팀도 없었다. 팀에는 10승 투수가 없고 100개가 넘는 폭투와 수많은 실책이 쏟아졌다. 2017년 80승으로 0.563의 승률을 기록했던 롯데 자이언츠는 어디로 간 것일까.
올 시즌이 시작되기 전 팬들이 전망한 롯데의 강점은 공격력이었다. 공격력은 리그에서 충분히 경쟁력이 있으니 투수진만 잘 만들어나가면 선전을 바랄 수 있는 상황이란 것. 하지만 타선은 기대를 저버리면서 리그 하위권으로 처졌다. 투수진도 작년보다 나아지지 못한 채 하위권에 머물렀다.
월별 분석도 특별히 필요 없을 정도로 골고루 못했다. 승이 패보다 많았던 달이 단 한 달도 없었다. 5월 마지막 날 롯데는 승패마진 -15로 이미 최하위였다(21승 36패). 6월에는 분전해서 승패마진 -2를 기록했지만 7월-10, 8월 -6, 9월 이후 -12을 기록했다. 4월에 기록한 6연패를 시작으로 7연패 네 번, 8연패 한 번을 기록한 롯데에게 순위 상승은 없었다.
악재도 겹쳤다. 초반에는 주전 중견수 민병헌이 사구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했다. 새로운 외국인 선수들도 자리를 잡지 못했다. 2루를 지키던 카를로스 아수아헤는 0.252의 타율을 남긴채 6월 초 제이콥 윌슨으로 교체됐다. 부상과 부진에 신음하던 제이크 톰슨도 함께 팀을 떠났다.
7월 19일에는 감독, 단장 동반 사퇴라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34승 58패를 기록하던 시점에서의 불명예 퇴장이었다. 공필성 코치가 감독대행으로 나섰지만 남은 50경기에서 14승을 추가하는 데 그쳤다.
결정적 순간
많은 팬들이 올 시즌을 곱씹어 보면서 팀이 망가진 순간을 찾아봤을 것이다. 올 시즌을 망친 결정적인 장면은 2019년이 아니라 2018년 10월 19일이었다. 이 날 롯데 자이언츠는 조원우 감독을 해임하고 양상문 당시 LG단장을 신임감독으로 선임했다. 당시 롯데는 양상문 감독의 선임 이유에 대해 “감독으로서의 역량과 단장, 해설위원 등 많은 경험을 갖고 있으며, 구단 출신으로서 선수들의 성향 및 팀의 문제점을 잘 파악하고 있다. 중장기적 전력 강화를 위해 변화를 선택했다.”고 밝혔다.
감독 한 명, 코칭스태프 몇 명이 바뀜으로서 중장기적 전력 강화가 이루어질 수 있을까. 모두가 반신반의하는 가운데 베테랑 감독에게 막연한 희망을 건 채 겨울과 봄이 지나갔다. 방송과 기사를 통해서 롯데 선수들이 어떤 마음가짐으로 캠프를 소화하고 있는지, 새로 뽑힌 외국인 선수들의 기량은 어떤지, 기대를 걸고 있는 유망주들은 진화하고 있는지 여러 가지 이야기가 팬들에게 전해졌다.
그러나 롯데 구단이 말했던 “중장기적 전력 강화를 위한 변화”는 찾기 힘들었다. 단적인 예로 양상문 감독은 부임 후 인터뷰에서 “한 시즌을 끌어가기 위해서 투수 쪽의 양적인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한 바 있다. 만약 롯데가 양상문 감독과 함께 팀의 중장기적인 플랜을 그렸다면 오프시즌에 ‘투수 쪽의 양적인 보완’이 이뤄졌어야 한다. 또한 젊은 투수들의 성장을 도울 수 있도록 퓨처스 시설을 확충하거나 새로운 육성 시스템을 갖출 준비를 했어야 한다.
하지만 현장과 프런트는 다른 움직임을 보였다. 좌완 불펜이 많지 않은 상황에서 이명우가 방출됐다. 시장에는 베테랑 좌완투수 권혁이 풀렸지만 현장에서는 젊은 투수를 키우겠다며 고사했다. 1월 29일에는 공식 자료를 통해 팀 선발의 한 축을 맡아줬던 노경은과의 계약을 포기한다고 전했다.
거침없는 행보와는 달리 결과는 참혹했다. 10승을 기록한 선수가 없었고 투고타저를 정면으로 역행한 선발진의 평균자책점은 5에 육박했다. 공인구가 바뀌기 전에 4.08의 평균자책점과 3.41승의 sWAR을 기록했던 노경은의 공백이 생각날 수밖에 없었다. 좌완 불펜을 ‘키워서’ 쓰겠다던 롯데의 바람도 이뤄지지 않았다. 고효준은 무려 75경기에 등판해야 했다(ERA 4.76). 양상문 감독이 직접 언급했던 정태승이나 한승혁은 올 시즌 1군에서 얼굴을 보기조차 힘들었다. 말로는 중장기적인 변화를 외쳤지만 롯데 구단이 당장의 급한 불을 끄기 위해 비전 없이 감독 교체를 단행한 것이 아닌지 의심이 드는 대목이다.
MVP
올 시즌 롯데에서 가장 가치 있는 선수(MVP)를 꼽으라면 누구를 고를 수 있을까. 어려운 질문이지만 투타에서 한 명씩은 꼽을 수 있다. 바로 전준우와 레일리다.
전준우의 올 시즌 sWAR은 4.24승으로 리그 타자들 중 12번째였다. 특히 공인구가 바뀌면서 리그 전체적으로 홈런이 크게 줄어들었음에도 22개의 홈런(리그6위)을 치면서 한 방이 있는 타자임을 증명했다. 국내 선수로만 한정하면 박병호, 최정에 이은 3위다. 전반기(OPS 0.872, 17홈런)에 비해 후반기(OPS 0.774, 5홈런)에는 조금 주춤했지만 주춤한 성적조차 롯데 타선에서는 단비와 같았다.
레일리는 롯데 투수진 가운데 가장 좋은 성적을 기록했지만 승수는 5승에 불과했다. 장시환과 다익손이 기록한 6승보다도 적은 수치. 후반기 10경기에서 0승 7패를 기록한 것이 결정타였다.
하지만 승수를 제외한다면 레일리는 올 시즌도 무난하고 예측 가능한 성적을 기록했다. 레일리가 지난 네 시즌 동안 기록한 성적은 일정했다. 약 30번 선발로 등판해 4점대 초반의 평균자책점으로 180이닝 가량 던지고 10승 전후를 거두는, sWAR 4승 정도의 활약이었다.
올 시즌에도 언제나처럼 181이닝을 소화했고 3.88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으며 sWAR도 4.10으로 무난했다. 차이점이 있다면 피홈런. 공인구 효과 덕인지 피홈런이 지난 시즌 24개에 비해 10개로 크게 줄었다.
‘레일리’스러운 성적을 기록했지만 승수가 5승에 그친 건 본인의 문제라기보다는 팀의 문제였다. 레일리 등판 시 타선의 득점지원은 지난 시즌 5.05점에서 올 시즌 3.68점으로 급감했다. 불펜도 도와주지 않았다. 올 시즌 롯데 불펜은 레일리가 승리투수 요건을 갖추고 내려간 후 6번이나 동점 혹은 역전을 허용했다. 타선과 불펜이 철통 같이 레일리의 승리를 막아낸 셈이다.
기량발전상
눈에 띄는 선수는 대부분 투수였다. 장시환은 5월과 7월을 제외하면 무난한 활약을 보여주면서 로테이션을 지켰다. 데뷔 전 기대를 모았던 서준원도 약간은 아쉬웠지만 선발로 16경기를 소화하면서 가능성이 있음을 보여줬다.
타자 중에는 강로한이 돋보였다. 데뷔 후 처음으로 100경기 이상을 소화한 강로한은 sWAR도 0.76승을 기록하며 팀 내 타자들 가운데 6위를 기록했다(아수아헤 제외). 뛰어나지는 않았지만 기대 이상의 활약을 보여준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가장 주목해야 할 선수는 박세웅이다. 엄밀히 말해 박세웅이 받아야 할 상은 기량’발전’상이 아니라 기량’회복’상이다.
2017년 12승을 올리며 차세대 안경 에이스로 각광 받았던 박세웅. 박세웅이 2017년 기록한 빠른 공의 평균 구속은 143.3km/h였다. 하지만 2018 시즌에는 부상 여파로 빠른 공 구속이 141.5km/h로 하락했다. 구속과 함께 성적까지 하락한 것은 물론이었다. 올 시즌 돌아온 박세웅은 직구 구속을 143.8km/h까지 끌어올렸다.
돌아온 직구 구속과 함께 눈에 띄는 것은 구종별 구사비율이다. 박세웅은 원래 스플리터 의존도가 높은 투수였다. 특히 좋았던 17년에는 던진 공의 22.8%가 스플리터였고 작년에는 24.3%가 스플리터였다. 하지만 올 시즌은 스플리터를 줄이는 대신(16.3%) 슬라이더와 커브 비중을 늘렸다. 구속뿐 아니라 구종 배합까지 다르게 가져간 것이다.
이런 변화 덕에 박세웅은 60이닝 동안 평균자책점 4.20을 기록하면서 성공적인 복귀를 알릴 수 있었다. 후반기 8번의 선발 등판에서는 3.32의 평균자책점으로 3승을 수확했다. 롯데에게는 박세웅의 건강한 복귀만큼 반가운 소식은 없었을 것이다.
LVP
그렇다면 가장 가치가 낮았던 선수(LVP) 타이틀은 누구에게 수여해야할까. 이 부문에서는 여러 선수들의(또는 포지션의) 치열한 경합이 예상된다. 후보로는 [팀의 심장이라고 불리던 그대], [또 터지지 않은 그대], [포수 같지 않은 그대]들이 있다.
가장 억울해 할 선수들은 아마 [팀의 심장이라고 불리던 그대들]일 것이다. 주인공은 손아섭과 이대호.
10년 연속 3할에 도전하던 손아섭은 0.295의 타율을 기록하면서 기록 달성에 실패했다. 타율이 많은 주목을 받았지만 더욱 걱정되는 부분은 장타율 감소다. 장타율은 가까스로 0.400을 기록했고(2018시즌 0.546) 10개의 홈런과 22개의 2루타는 2013년 이후 가장 적은 수치였다.
장타력 감소 문제는 이대호도 마찬가지. 메이저리그에서 플래툰 적용을 받으면서도 14개의 홈런을 때려 냈던 이대호가 올 시즌은 홈런이 16개에 그쳤고 장타율도 0.435로 급감했다. 이대호의 커리어 통산 장타율은 0.527이다.
물론 공인구 영향도 있었고 이대호는 이제 한국 나이로 38살이다. 전과 같은 활약을 펼치는 것이 더 이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두 선수에 대한 의존도가 워낙 컸던 롯데로서는 두 ‘심장’의 부진이 치명타가 됐다.
[또 터지지 않은 그대들]의 대표 주자는 김원중이다. 3월 두 경기에서 11.1이닝동안 2점만 내줬을 때 팬들은 드디어 김원중이 만개했다고 생각했다. 4월 18일 경기가 절정이었다. 이 날 김원중은 7이닝 1실점을 기록하면서 팀의 승리를 견인했다.
하지만 다음 경기에서 3이닝 7실점을 기록하면서 부진이 시작됐다. 5월에는 6점대, 6월에는 8점대, 8월에는 9점대의 ERA를 기록하면서 성장커녕 더 나빠졌다. 결국 9월 9경기에서는 불펜으로만 출전하면서 시즌을 마쳤다. 사실 김원중 외에도 한동희, 윤성빈 등 기대를 모았던 유망주들이 알을 깨고 나오는 데 실패했다. 롯데의 육성 시스템은 몇 년째 사실상 마비 상태다.
마지막 후보 [포수 같지 않은 그대들]. LVP 수상이 가장 유력한 후보다. 나종덕, 안중열, 김준태, 김사훈, 정보근. 수많은 선수들이 돌아가면서 안방을 맡았지만 별 효력은 없었다. 올 시즌 롯데 포수들의 부족했던 점은 다 언급하기도 어렵다. 올해 롯데가 기록한 103개의 폭투가 역대 KBO 최고 기록이라는 점 정도만 말해 둔다.
2020 시즌 전망
롯데는 성민규 신임 단장을 선임하면서 내년 시즌 준비에 돌입했다. 한국에서도 선수 생활을 했고 해설위원을 한 적도 있지만 시카고 컵스의 코치와 스카우트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성 단장은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인위적인 리빌딩은 지양하며 팀을 리모델링하겠다고 말했다. 성 단장의 리모델링에는 퓨처스 강화와 좋은 외국인 선수 발굴이 포함돼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를 증명하듯 롯데는 스카우팅 파트를 강화하는 한편 퓨처스 감독으로 래리 서튼을 임명하며 퓨처스 개혁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프런트 조직도 메이저리그식으로 개편했다.
팀 코칭스태프도 대거 교체됐다. 새로운 감독으로는 허문회 전 넥센 수석코치가 선임됐다. 허 감독은 “그 동안 쌓아온 경험을 바탕으로 데이터에 기반한 경기 운영과 편견 없는 선수 기용으로 롯데가 롱런 할 수 있는 팀이 되는 데 일조하겠다”고 밝혔다.
롯데는 2013년부터 2019년까지 7년 동안 딱 한 번(2017년) 가을무대에 초대받았다. 한마디로 롯데는 약팀이다. 주먹구구식으로 FA 선수들을 사오고 프랜차이즈 몇 명에게 의존해 팀의 전력을 꾸리는 식으로는 연봉 1위 팀은 될 수 있어도 강팀이 되지는 못한다.
결국 롯데가 “중장기적 전력 강화를 위한 근본적 변화”를 이뤄낼 수 있느냐에 앞으로의 성패가 달려있다. 퓨처스 개혁과 스카우팅 파트 강화를 외치는 단장. 데이터 활용과 편견 없는 선수 기용을 말하는 감독. 2020년 롯데는 어떤 팀으로 바뀌게 될까.
야구공작소
김철희 칼럼니스트/ 에디터=오연우
‘꼴찌’
[스포탈코리아] 학창시절 시험을 평소보다 못 친 친구가 있으면 놀리곤 했다. 뭐했기에 영어가 그렇게 나왔냐. 수학은 또 왜 그러냐. 다들 웃으면서 말하고 당사자도 분하기는 하지만 웃으면서 넘길 수 있다. “다음 시험 때 두고 봐!”
그런데 다음 시험에서 친구가 꼴찌를 해 버린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저번처럼 가서 놀리자니 상도덕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는 거 같고, 반대로 아예 안 놀리자니 괜히 찜찜하다. 꼴찌에게 괴로운 것은 놀림보다 무관심이다.
롯데 자이언츠가 올 시즌 꼴찌에 등극했다. 평소에도 ‘시험을 잘 치는 친구’는 아니었지만 꼴찌도 아니었다. 마지막으로 꼴찌를 한 건 15년 전인 2004년이었다.
평소에는 ‘꼴데’라며 놀려대던 다른 팀 친구들은 조용하다. 맨날 공부 못한다고 놀렸던 롯데가 진짜 꼴찌를 해 버리니 다들 머쓱한가 보다. 팬들도 화를 내기보다는 무관심으로 응답했다. 9월 23일 사직에는 1752명만이 찾아왔고 마지막 홈 경기인 10월 1일에도 1842명만이 경기를 함께했다.
2019년의 자이언츠
겨우내 양상문 감독을 선임하면서 롯데가 꾸던 꿈은 전혀 다른 것이었다. 적어도 최하위는 아니었다. 양 감독은 “단 하루도 헛되이 보내지 말라”면서 선수들을 독려했다. 2018년 포스트시즌 탈락에 충격을 받은 롯데팬들은 베테랑 감독이 팀을 빠르게 수습해 다시 가을에도 야구하기를 바랐다.
그런데 뭐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 롯데의 올 시즌 최종 성적은 48승 93패 3무로 승률 0.340에 그쳤다. 4년 연속 꼴찌를 했던 2004년에도 승률은 0.410이었다. 10구단 체제가 자리 잡고 144경기를 치른 이후 50승을 넘지 못한 팀은 없었다. 당연히 롯데보다 낮은 승률을 기록한 팀도 없었다. 팀에는 10승 투수가 없고 100개가 넘는 폭투와 수많은 실책이 쏟아졌다. 2017년 80승으로 0.563의 승률을 기록했던 롯데 자이언츠는 어디로 간 것일까.
올 시즌이 시작되기 전 팬들이 전망한 롯데의 강점은 공격력이었다. 공격력은 리그에서 충분히 경쟁력이 있으니 투수진만 잘 만들어나가면 선전을 바랄 수 있는 상황이란 것. 하지만 타선은 기대를 저버리면서 리그 하위권으로 처졌다. 투수진도 작년보다 나아지지 못한 채 하위권에 머물렀다.
월별 분석도 특별히 필요 없을 정도로 골고루 못했다. 승이 패보다 많았던 달이 단 한 달도 없었다. 5월 마지막 날 롯데는 승패마진 -15로 이미 최하위였다(21승 36패). 6월에는 분전해서 승패마진 -2를 기록했지만 7월-10, 8월 -6, 9월 이후 -12을 기록했다. 4월에 기록한 6연패를 시작으로 7연패 네 번, 8연패 한 번을 기록한 롯데에게 순위 상승은 없었다.
악재도 겹쳤다. 초반에는 주전 중견수 민병헌이 사구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했다. 새로운 외국인 선수들도 자리를 잡지 못했다. 2루를 지키던 카를로스 아수아헤는 0.252의 타율을 남긴채 6월 초 제이콥 윌슨으로 교체됐다. 부상과 부진에 신음하던 제이크 톰슨도 함께 팀을 떠났다.
7월 19일에는 감독, 단장 동반 사퇴라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34승 58패를 기록하던 시점에서의 불명예 퇴장이었다. 공필성 코치가 감독대행으로 나섰지만 남은 50경기에서 14승을 추가하는 데 그쳤다.
결정적 순간
많은 팬들이 올 시즌을 곱씹어 보면서 팀이 망가진 순간을 찾아봤을 것이다. 올 시즌을 망친 결정적인 장면은 2019년이 아니라 2018년 10월 19일이었다. 이 날 롯데 자이언츠는 조원우 감독을 해임하고 양상문 당시 LG단장을 신임감독으로 선임했다. 당시 롯데는 양상문 감독의 선임 이유에 대해 “감독으로서의 역량과 단장, 해설위원 등 많은 경험을 갖고 있으며, 구단 출신으로서 선수들의 성향 및 팀의 문제점을 잘 파악하고 있다. 중장기적 전력 강화를 위해 변화를 선택했다.”고 밝혔다.
감독 한 명, 코칭스태프 몇 명이 바뀜으로서 중장기적 전력 강화가 이루어질 수 있을까. 모두가 반신반의하는 가운데 베테랑 감독에게 막연한 희망을 건 채 겨울과 봄이 지나갔다. 방송과 기사를 통해서 롯데 선수들이 어떤 마음가짐으로 캠프를 소화하고 있는지, 새로 뽑힌 외국인 선수들의 기량은 어떤지, 기대를 걸고 있는 유망주들은 진화하고 있는지 여러 가지 이야기가 팬들에게 전해졌다.
그러나 롯데 구단이 말했던 “중장기적 전력 강화를 위한 변화”는 찾기 힘들었다. 단적인 예로 양상문 감독은 부임 후 인터뷰에서 “한 시즌을 끌어가기 위해서 투수 쪽의 양적인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한 바 있다. 만약 롯데가 양상문 감독과 함께 팀의 중장기적인 플랜을 그렸다면 오프시즌에 ‘투수 쪽의 양적인 보완’이 이뤄졌어야 한다. 또한 젊은 투수들의 성장을 도울 수 있도록 퓨처스 시설을 확충하거나 새로운 육성 시스템을 갖출 준비를 했어야 한다.
하지만 현장과 프런트는 다른 움직임을 보였다. 좌완 불펜이 많지 않은 상황에서 이명우가 방출됐다. 시장에는 베테랑 좌완투수 권혁이 풀렸지만 현장에서는 젊은 투수를 키우겠다며 고사했다. 1월 29일에는 공식 자료를 통해 팀 선발의 한 축을 맡아줬던 노경은과의 계약을 포기한다고 전했다.
거침없는 행보와는 달리 결과는 참혹했다. 10승을 기록한 선수가 없었고 투고타저를 정면으로 역행한 선발진의 평균자책점은 5에 육박했다. 공인구가 바뀌기 전에 4.08의 평균자책점과 3.41승의 sWAR을 기록했던 노경은의 공백이 생각날 수밖에 없었다. 좌완 불펜을 ‘키워서’ 쓰겠다던 롯데의 바람도 이뤄지지 않았다. 고효준은 무려 75경기에 등판해야 했다(ERA 4.76). 양상문 감독이 직접 언급했던 정태승이나 한승혁은 올 시즌 1군에서 얼굴을 보기조차 힘들었다. 말로는 중장기적인 변화를 외쳤지만 롯데 구단이 당장의 급한 불을 끄기 위해 비전 없이 감독 교체를 단행한 것이 아닌지 의심이 드는 대목이다.
MVP
올 시즌 롯데에서 가장 가치 있는 선수(MVP)를 꼽으라면 누구를 고를 수 있을까. 어려운 질문이지만 투타에서 한 명씩은 꼽을 수 있다. 바로 전준우와 레일리다.
전준우의 올 시즌 sWAR은 4.24승으로 리그 타자들 중 12번째였다. 특히 공인구가 바뀌면서 리그 전체적으로 홈런이 크게 줄어들었음에도 22개의 홈런(리그6위)을 치면서 한 방이 있는 타자임을 증명했다. 국내 선수로만 한정하면 박병호, 최정에 이은 3위다. 전반기(OPS 0.872, 17홈런)에 비해 후반기(OPS 0.774, 5홈런)에는 조금 주춤했지만 주춤한 성적조차 롯데 타선에서는 단비와 같았다.
레일리는 롯데 투수진 가운데 가장 좋은 성적을 기록했지만 승수는 5승에 불과했다. 장시환과 다익손이 기록한 6승보다도 적은 수치. 후반기 10경기에서 0승 7패를 기록한 것이 결정타였다.
하지만 승수를 제외한다면 레일리는 올 시즌도 무난하고 예측 가능한 성적을 기록했다. 레일리가 지난 네 시즌 동안 기록한 성적은 일정했다. 약 30번 선발로 등판해 4점대 초반의 평균자책점으로 180이닝 가량 던지고 10승 전후를 거두는, sWAR 4승 정도의 활약이었다.
올 시즌에도 언제나처럼 181이닝을 소화했고 3.88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으며 sWAR도 4.10으로 무난했다. 차이점이 있다면 피홈런. 공인구 효과 덕인지 피홈런이 지난 시즌 24개에 비해 10개로 크게 줄었다.
‘레일리’스러운 성적을 기록했지만 승수가 5승에 그친 건 본인의 문제라기보다는 팀의 문제였다. 레일리 등판 시 타선의 득점지원은 지난 시즌 5.05점에서 올 시즌 3.68점으로 급감했다. 불펜도 도와주지 않았다. 올 시즌 롯데 불펜은 레일리가 승리투수 요건을 갖추고 내려간 후 6번이나 동점 혹은 역전을 허용했다. 타선과 불펜이 철통 같이 레일리의 승리를 막아낸 셈이다.
기량발전상
눈에 띄는 선수는 대부분 투수였다. 장시환은 5월과 7월을 제외하면 무난한 활약을 보여주면서 로테이션을 지켰다. 데뷔 전 기대를 모았던 서준원도 약간은 아쉬웠지만 선발로 16경기를 소화하면서 가능성이 있음을 보여줬다.
타자 중에는 강로한이 돋보였다. 데뷔 후 처음으로 100경기 이상을 소화한 강로한은 sWAR도 0.76승을 기록하며 팀 내 타자들 가운데 6위를 기록했다(아수아헤 제외). 뛰어나지는 않았지만 기대 이상의 활약을 보여준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가장 주목해야 할 선수는 박세웅이다. 엄밀히 말해 박세웅이 받아야 할 상은 기량’발전’상이 아니라 기량’회복’상이다.
2017년 12승을 올리며 차세대 안경 에이스로 각광 받았던 박세웅. 박세웅이 2017년 기록한 빠른 공의 평균 구속은 143.3km/h였다. 하지만 2018 시즌에는 부상 여파로 빠른 공 구속이 141.5km/h로 하락했다. 구속과 함께 성적까지 하락한 것은 물론이었다. 올 시즌 돌아온 박세웅은 직구 구속을 143.8km/h까지 끌어올렸다.
돌아온 직구 구속과 함께 눈에 띄는 것은 구종별 구사비율이다. 박세웅은 원래 스플리터 의존도가 높은 투수였다. 특히 좋았던 17년에는 던진 공의 22.8%가 스플리터였고 작년에는 24.3%가 스플리터였다. 하지만 올 시즌은 스플리터를 줄이는 대신(16.3%) 슬라이더와 커브 비중을 늘렸다. 구속뿐 아니라 구종 배합까지 다르게 가져간 것이다.
이런 변화 덕에 박세웅은 60이닝 동안 평균자책점 4.20을 기록하면서 성공적인 복귀를 알릴 수 있었다. 후반기 8번의 선발 등판에서는 3.32의 평균자책점으로 3승을 수확했다. 롯데에게는 박세웅의 건강한 복귀만큼 반가운 소식은 없었을 것이다.
LVP
그렇다면 가장 가치가 낮았던 선수(LVP) 타이틀은 누구에게 수여해야할까. 이 부문에서는 여러 선수들의(또는 포지션의) 치열한 경합이 예상된다. 후보로는 [팀의 심장이라고 불리던 그대], [또 터지지 않은 그대], [포수 같지 않은 그대]들이 있다.
가장 억울해 할 선수들은 아마 [팀의 심장이라고 불리던 그대들]일 것이다. 주인공은 손아섭과 이대호.
10년 연속 3할에 도전하던 손아섭은 0.295의 타율을 기록하면서 기록 달성에 실패했다. 타율이 많은 주목을 받았지만 더욱 걱정되는 부분은 장타율 감소다. 장타율은 가까스로 0.400을 기록했고(2018시즌 0.546) 10개의 홈런과 22개의 2루타는 2013년 이후 가장 적은 수치였다.
장타력 감소 문제는 이대호도 마찬가지. 메이저리그에서 플래툰 적용을 받으면서도 14개의 홈런을 때려 냈던 이대호가 올 시즌은 홈런이 16개에 그쳤고 장타율도 0.435로 급감했다. 이대호의 커리어 통산 장타율은 0.527이다.
물론 공인구 영향도 있었고 이대호는 이제 한국 나이로 38살이다. 전과 같은 활약을 펼치는 것이 더 이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두 선수에 대한 의존도가 워낙 컸던 롯데로서는 두 ‘심장’의 부진이 치명타가 됐다.
[또 터지지 않은 그대들]의 대표 주자는 김원중이다. 3월 두 경기에서 11.1이닝동안 2점만 내줬을 때 팬들은 드디어 김원중이 만개했다고 생각했다. 4월 18일 경기가 절정이었다. 이 날 김원중은 7이닝 1실점을 기록하면서 팀의 승리를 견인했다.
하지만 다음 경기에서 3이닝 7실점을 기록하면서 부진이 시작됐다. 5월에는 6점대, 6월에는 8점대, 8월에는 9점대의 ERA를 기록하면서 성장커녕 더 나빠졌다. 결국 9월 9경기에서는 불펜으로만 출전하면서 시즌을 마쳤다. 사실 김원중 외에도 한동희, 윤성빈 등 기대를 모았던 유망주들이 알을 깨고 나오는 데 실패했다. 롯데의 육성 시스템은 몇 년째 사실상 마비 상태다.
마지막 후보 [포수 같지 않은 그대들]. LVP 수상이 가장 유력한 후보다. 나종덕, 안중열, 김준태, 김사훈, 정보근. 수많은 선수들이 돌아가면서 안방을 맡았지만 별 효력은 없었다. 올 시즌 롯데 포수들의 부족했던 점은 다 언급하기도 어렵다. 올해 롯데가 기록한 103개의 폭투가 역대 KBO 최고 기록이라는 점 정도만 말해 둔다.
2020 시즌 전망
롯데는 성민규 신임 단장을 선임하면서 내년 시즌 준비에 돌입했다. 한국에서도 선수 생활을 했고 해설위원을 한 적도 있지만 시카고 컵스의 코치와 스카우트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성 단장은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인위적인 리빌딩은 지양하며 팀을 리모델링하겠다고 말했다. 성 단장의 리모델링에는 퓨처스 강화와 좋은 외국인 선수 발굴이 포함돼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를 증명하듯 롯데는 스카우팅 파트를 강화하는 한편 퓨처스 감독으로 래리 서튼을 임명하며 퓨처스 개혁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프런트 조직도 메이저리그식으로 개편했다.
팀 코칭스태프도 대거 교체됐다. 새로운 감독으로는 허문회 전 넥센 수석코치가 선임됐다. 허 감독은 “그 동안 쌓아온 경험을 바탕으로 데이터에 기반한 경기 운영과 편견 없는 선수 기용으로 롯데가 롱런 할 수 있는 팀이 되는 데 일조하겠다”고 밝혔다.
롯데는 2013년부터 2019년까지 7년 동안 딱 한 번(2017년) 가을무대에 초대받았다. 한마디로 롯데는 약팀이다. 주먹구구식으로 FA 선수들을 사오고 프랜차이즈 몇 명에게 의존해 팀의 전력을 꾸리는 식으로는 연봉 1위 팀은 될 수 있어도 강팀이 되지는 못한다.
결국 롯데가 “중장기적 전력 강화를 위한 근본적 변화”를 이뤄낼 수 있느냐에 앞으로의 성패가 달려있다. 퓨처스 개혁과 스카우팅 파트 강화를 외치는 단장. 데이터 활용과 편견 없는 선수 기용을 말하는 감독. 2020년 롯데는 어떤 팀으로 바뀌게 될까.
야구공작소
김철희 칼럼니스트/ 에디터=오연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