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대전, 이상학 기자] 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로선 단순한 1승이 아니었다. 두 번의 고의4구 작전이 적중하면서 1-0 승리를 거둔 김태형 롯데 감독의 판단력과 심리전이 돋보였다.
롯데는 지난 2일 대전 한화생명이글스파크에서 벌어진 한화 이글스와의 원정경기를 1-0으로 승리했다. 7연승 중이던 한화의 기세를 꺾으며 2연패를 끊고 분위기 반전 계기를 마련했다.
선발투수 나균안이 6이닝 4피안타 3볼넷 10탈삼진 무실점 호투를 펼쳤고, 7회 구원으로 나온 신인 전미르가 1이닝 무안타 1볼넷 1탈삼진 무실점으로 데뷔 첫 승을 거뒀다. 8회 손호영이 결승타를 터뜨린 가운데 9회말 마무리 김원중이 두 번의 만루 위기를 극복하며 1점차 짜릿한 승리를 거뒀다.
김원중은 9회말 한화 선두타자 하주석에게 볼넷을 내준 뒤 대타 최인호에게 좌측 펜스를 직격하는 2루타를 맞아 무사 2,3루 위기에 몰렸다. 이어 이재원 타석 때 초구 바깥쪽 낮은 포크볼을 던진 뒤 롯데 덕아웃에서 자동 고의4구 사인이 나왔다. 올해 8타수 무안타로 아직 첫 안타를 신고하지 못한 이재원 대신 3할 타자 문현빈과 승부를 선택했다.
김원중은 초구 바깥쪽 낮은 포크볼로 문현빈의 방망이를 이끌어냈고, 2루 땅볼이 됐다. 전진 수비를 하고 있던 롯데 내야는 4-2-3 병살타로 연결했다. 이어 계속된 2사 2,3루 요나단 페라자 타석에서 김태형 감독은 다시 한 번 고의4구 사인을 냈다. 그 다음 타자 채은성을 상대로 김원중은 포크볼로 헛스윙 삼진 처리하며 두 번의 만루 위기를 실점 없이 막았다.
3일 대전 한화전이 우천 취소된 뒤 취재진을 만난 김태형 감독은 “투수뿐만 아니라 타자도 2,3루와 만루 상황은 심리적으로 다르다. 2,3루 상황이 투수도 그렇지만 타자 입장에서도 (만루보다) 여유가 있다. 노아웃이기도 하고, (이재원 타석에) 초구 포크볼에 내야 땅볼이 나올 수도 있을 것 같아 초구는 봤다. 그 다음에 고의4구로 문현빈과 승부했는데 운 좋게 잘됐다. 김원중이 잘 던졌다”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무사 만루 상황이 되면 투수가 불리한 게 맞다. 볼넷 하나면 밀어내기 실점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타자 입장에서도 만루 상황에서 심리적인 압박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 김 감독의 말. 2년차로 스무살밖에 안 된 문현빈도 만루에서 그만큼 부담을 느끼거나 해결하기 위해 달려들 것이라고 봤고, 결과적으로 초구 포크볼에 문현빈이 어정쩡한 스윙으로 병살타를 쳤으니 김 감독의 이론이 적중한 셈이다.
이재원에게 바로 고의4구를 안 내고 초구를 본 것은 김원중의 포크볼로 내야 땅볼 유도를 기대한 것이었다. 하지만 찰나의 순간에도 고민한 김 감독은 “초구부터 고의4구를 하려고 했는데 이재원이 초구를 잘 친다. 포크볼 낮게 떨어지는 걸 툭 쳐서 내야 땅볼이 될 것을 생각해 하나 본 것이다”고 설명했다.
1점차 리드 상황에서 9회 무사 2,3루에 1루를 채우는 만루 작전은 정석적인 전략이긴 하다. 태그 아웃이 아닌 포스 아웃 상황이라 수비하기에도 편하다. 하지만 김원중의 제구가 꽤 흔들리고 있었고, 상대 타자가 올 시즌 8타수 무안타 중이었던 이재원이었으며 다음 타자가 타격감 좋은 문현빈, 페라자, 채은성 순이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절대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 무사 만루에 내야를 앞당긴 전진 수비까지, 김 감독의 빠른 판단과 과감한 승부수가 통했다.
2사 2,3루에서 페라자를 고의4구로 거를 때는 투수 김원중에게 의사를 물어봤다. 김원중이 벤치 판단에 맡긴다는 제스처를 취하면서 타격감이 절정인 페라자 대신 채은성과 승부했다. 김 감독은 “투아웃에는 2,3루 상황에서 던지는 것이 편하지만 포크볼을 강하게 던지다 보면 폭투가 나올 수 있다. (페라자 상대로) 너무 어렵게 가면 폭투가 나올 수 있다. (만루에서) 채은성을 상대로 맞으면 어쩔 수 없는 건데 김원중이 잘 던져줬다”고 말했다.
김 감독은 “결과가 좋으면 좋은 거고, 안 되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그렇게 할 때는 감독이 책임지는 것이다”며 “어제 경기가 만약 넘어갔다면 데미지가 컸을 것이다. 초반에 한화에 점수를 쉽게 줬으면 어려운 경기가 됐을 텐데 선발 나균안이 워낙 잘 던져줬다. 전미르한테도 믿음이 많이 갔다. 한화 타선이 좋으니까 힘으로 붙어보려고 했다. 최준용이도 잘 던졌고, 어제는 우리한테 기운이 많이 온 것 같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한편 롯데는 4일 한화전 선발투수로 애런 윌커슨을 예고했다. 3일 한화전 선발로 예고됐으나 우천 취소된 이인복은 5일 사직 두산 베어스전으로 등판 일정이 바뀌었다. 한화는 4일 롯데전 선발 예정이었던 류현진이 하루 더 휴식 의사를 밝혀 5일 고척 키움 히어로즈전에 나선다. 3일 예고된 문동주가 하루 늦춰 4일 롯데전에 출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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