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탈코리아] 윤진만 기자= 성남 일화 주장 사샤 오그네노브스키(32)가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 클럽의 구애를 받은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사샤는 2011년 8월 프리미어리그 두 구단과 챔피언십 소속 크리스탈 팰리스의 영입 제의가 있었다고 직접 밝혔다. 시즌을 마치고 호주에서 개인 훈련 중인 그는 2일(현지시간) 호주판 ‘헤럴드 선’과의 인터뷰에서 “호주 대표팀 동료 토니 포포비치가 활약 중인 크리스탈 팰리스와 프리미어리그 하위권 팀들이 내게 관심을 보였다”라고 했다.
알려진 대로 이적은 성사되지 못했다. 영국 정부의 까다로운 취업 조건 때문이다. 영국 정부는 잉글랜드 리그로 이적하는 선수들이 취업 비자를 얻기 위해선 지난 2년 동안 A대표팀 일정의 75% 이상을 소화해야 한다고 정했다. 사샤는 2010년 12월 이집트와의 평가전을 통해 뒤늦게 A대표팀에 발탁되면서 이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했다.
사샤는 “이적까지 굉장히 가까웠다. 그러나 나는 더 많은 A매치를 소화했어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고, 결국 EPL 입성은 물건너갔다”라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그는 “나는 이제 서른 두 살이다. 모험을 하기엔 무리가 있다. 가족도 생각해야 한다. 성남시, 성남 구단에 만족한다”라며 잔류 쪽에 무게를 실었다.
그러나 아시아 축구 시장에 중앙 수비 품귀 현상이 일면서 사샤의 잔류를 장담할 수 없다. 중동 및 아시아 지역의 여러 구단이 경험이 풍부한 사샤의 영입에 관심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성남 관계자는 “사샤와의 계약기간은 2012년까지다. 구단 고위층과 사샤가 거취를 놓고 대화를 나누고 있는 걸로 안다”라고 했다.
사샤는 2009년 신태용 감독을 따라 호주 A리그에서 K리그에로 둥지를 옮겼다. 첫 시즌 적응에 애를 먹으며 기대 이하의 실력을 펼쳤지만 2010년에는 조병국과 좋은 호흡을 보이며 성남의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끌었고 자신은 아시아 최고의 선수로 기록됐다. 2011년 여름 FC 서울 이적 파동을 뒤로하고 FA컵 우승의 중심에 서며 최고의 시즌을 보냈다.
사진=이연수기자
사샤는 2011년 8월 프리미어리그 두 구단과 챔피언십 소속 크리스탈 팰리스의 영입 제의가 있었다고 직접 밝혔다. 시즌을 마치고 호주에서 개인 훈련 중인 그는 2일(현지시간) 호주판 ‘헤럴드 선’과의 인터뷰에서 “호주 대표팀 동료 토니 포포비치가 활약 중인 크리스탈 팰리스와 프리미어리그 하위권 팀들이 내게 관심을 보였다”라고 했다.
알려진 대로 이적은 성사되지 못했다. 영국 정부의 까다로운 취업 조건 때문이다. 영국 정부는 잉글랜드 리그로 이적하는 선수들이 취업 비자를 얻기 위해선 지난 2년 동안 A대표팀 일정의 75% 이상을 소화해야 한다고 정했다. 사샤는 2010년 12월 이집트와의 평가전을 통해 뒤늦게 A대표팀에 발탁되면서 이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했다.
사샤는 “이적까지 굉장히 가까웠다. 그러나 나는 더 많은 A매치를 소화했어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고, 결국 EPL 입성은 물건너갔다”라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그는 “나는 이제 서른 두 살이다. 모험을 하기엔 무리가 있다. 가족도 생각해야 한다. 성남시, 성남 구단에 만족한다”라며 잔류 쪽에 무게를 실었다.
그러나 아시아 축구 시장에 중앙 수비 품귀 현상이 일면서 사샤의 잔류를 장담할 수 없다. 중동 및 아시아 지역의 여러 구단이 경험이 풍부한 사샤의 영입에 관심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성남 관계자는 “사샤와의 계약기간은 2012년까지다. 구단 고위층과 사샤가 거취를 놓고 대화를 나누고 있는 걸로 안다”라고 했다.
사샤는 2009년 신태용 감독을 따라 호주 A리그에서 K리그에로 둥지를 옮겼다. 첫 시즌 적응에 애를 먹으며 기대 이하의 실력을 펼쳤지만 2010년에는 조병국과 좋은 호흡을 보이며 성남의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끌었고 자신은 아시아 최고의 선수로 기록됐다. 2011년 여름 FC 서울 이적 파동을 뒤로하고 FA컵 우승의 중심에 서며 최고의 시즌을 보냈다.
사진=이연수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