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준의 축구환상곡] 1,200억이 아깝지 않은 산체스와 세스크
입력 : 2012.01.16기사보내기 :  트위터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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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탈코리아] 한준 기자= FC 바르셀로나(이하 바르사)는 2011년 여름 통산 네 번째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뤘고, 스페인 라리가 3연패를 달성했다. 축구 역사상 최고의 팀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그럼에도 전력 강화를 위해 1,200억원에 달하는 거액을 투자했다. 이 엄청난 돈은 단 두 명의 선수를 데려오는 데 쓰였다. 바로 칠레 공격수 알렉시스 산체스(24)와 아스널로 떠났던 바르사 유스 출신 미드필더 세스크 파브레가스(25)다.

일각에서는 두 선수에 쓰인 엄청난 액수의 이적료가 과했다는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주젭 과르디올라 감독은 허투루 돈을 쓰지 않았다. 아르센 벵거 감독만큼이나 효율적인 선택을 해왔다.

과르디올라의 팀은 매 시즌 끊임없이 교훈을 얻고 진화하고 있다. 현대 축구는 날이 갈수록 경쟁이 심화되고 있다. 정상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 더 많은 노력과 투자가 필요하다. 과르디올라 감독은 매년 여름 이적 시장이 열릴 때마다 지난 시즌에 드러난 팀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한 최적의 선택을 해왔다.

물론 실패 사례도 있었다. 6관왕을 달성했지만 2009년 데려온 스웨덴 공격수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와 우크라이나 수비수 드미트로 치그린스키는 거액을 투자하고도 1년 만에 헐값에 떠나보내야 했다. 이 사건으로 인해 과르디올라 감독이 팀 지휘력에 비해 영입에 능숙하지 못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 육성만큼이나 성공적인 바르사의 영입책

하지만 과르디올라 감독의 영입은 성공사례가 더 많다. 2008년 부임 첫 시즌에 데려온 세이두 케이타, 제라르 피케, 다니 아우베스는 과르디올라 감독이 13개의 우승컵을 차지하는 과정에서 분명한 일등공신이었다. 현재까지 바르사의 뼈대 역할을 하고 있다. 2010년 영입한 아드리아누는 팀의 부상으로 흔들릴 때 마다 여러 포지션을 소화하며 감초역할을 했고, 하비에르 마스체라노는 센터백으로 눈부신 변신에 성공했다.

엄밀히 따지면 이브라히모비치 역시 메시의 옆에서 조연으로 전락한 사실에 대한 자존심 문제로 떠났을 뿐 기량 자체에는 문제가 없었다. 남아 있었다면 바르사의 또 다른 공격 옵션으로 중용될 수 있었을 것이다. 명백한 실패 사례를 꼽는다면 치그린스키를 비롯해 알렉산더 흘렙, 마르틴 카세레스정도다. 성공 사례와 비교한다면 적은 숫자다.

2011년 영입한 산체스와 파브레가스는 과르디올라 감독이 지난 몇 년간 영입한 선수들 가운데에도 걸작이라 평할 만 하다. 놀라운 것은 이러한 평가를 입단 반 년 만에 얻었다는 것이다.

바르사는 16일 새벽(한국시간) 레알 베티스와의 경기를 끝으로 라리가 19라운드 일정을 마쳤다.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코파 델레이 16강전 등을 마치고 정확히 2011/2012시즌의 반환점을 돈 것이다. 반환점을 돌아 2012년을 맞은 바르사의 현재 상황은 냉정히 말해 좋지 않다. 5관왕 달성으로 2011년을 보냈지만 2012년의 일정은 가시밭길을 예고하고 있다. '숙적' 레알 마드리드는 올 시즌에도 바르사가 참가하고 있는 세 개의 대회에서 우승 경쟁을 벌이고 있다. 코파 델레이 8강전 외나무 다리에서 만났고, 라리가에서는 바르사와 맞대결 패배에도 승점 5점 차이로 앞서가고 있다. 현재의 기세라면 챔피언스리그에서도 마주칠 가능성이 높다. 매 경기가 살얼음판같다. 한 번이라도 삐끗하면 그 뒤가 천길 낭떠러지다.

바르사의 경기력은 여전히 훌륭하지만 공격진에는 전력 누수가 분명하다. 네덜란드 공격수 이브라힘 아펠라이는 기대만큼의 적응력을 보여주지 못했을 뿐 아니라 장기 부상으로 전열에서 이탈했다. 12월에는 다비드 비야가 FIFA 클럽 월드컵 대회 기간 중에 정강이뼈 골절로 사실상 시즌 아웃 판정을 받았다. 여기에 1월 오사수나와의 코파 델레이 16강전에서 페드로 로드리게스까지 부상자 명단에 올랐다. 비야와 페드로는 지난 시즌까지 바르사의 선발 공격수였다. 엘클라시코를 앞두고 이들을 모두 쓸 수 없다는 것은 절체절명의 위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산체스와 파브레가스, '챔피언' 바르사가 진화를 위해 내린 선택

하지만 실상 바르사 공격진에는 전혀 위기감이 돌지 않고 있다. 바로 1,200억원을 들여 데려온 산체스와 파브레가스 덕분이다.

산체스의 별명은 '경이로운 소년(Nino Maravilla)'이다. 칠레 역사사 가장 뛰어난 공격수라는 절찬을 받아온 산체스는 자신을 향한 찬사가 거품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바르사 입단 반 년 만에 경이로운 적응력을 보이며 주전 공격수 자리를 꿰찼다.

베티스와의 경기에서 산체스는 원맨쇼를 펼쳤다. 전반 10분 터진 차비 에르난데스의 선제골의 시발점은 산체스였다. 페널티 에어리어 전방에서 완벽하게 공을 컨트롤한 산체스는 베티스 수비의 시선을 빼앗고 밀집 수비 틈 사이로 절묘한 침투 패스를 연결했다. 파브레가스가 이어 받아 시도한 슈팅이 골 포스트를 때리고 나왔고, 차비가 재차 슈팅으로 밀어 넣었다. 골대를 때리지 않았다면 산체스의 어시스트로 기록됐을 것이다.

이어 전반 12분 리오넬 메시의 득점은 분명한 산체스의 어시스트로 기록됐다. 왼쪽 측면에서 날카로운 크로스 패스를 문전으로 배달했고, 메시가 논스톱 슈팅으로 밀어넣었다. 베티스가 이후 두 골을 몰아치며 따라왔다. 후반 31분 산체스는 직접 득점으로 베티스의 숨통을 끊어놨다. 차비의 로빙 스루 패스를 받아 수비 배후를 절묘하게 파고들었다. 수비 견제에도 여유롭게 볼을 키핑한 뒤 깔끔한 마무리 슈팅을 성공시켰다.



▲ 산체스, 경이로운 적응력

산체스는 2010년 남아공 월드컵 당시 칠레의 호날두라는 별명으로 처음 이름을 알렸다. 하지만 산체스는 호날두보다 메시에 가깝다. 169cm의 단신에 공격 포지션 어디에서든 활약할 수 있다. 작지만 단단하고 빠르며 창의적이고 날카롭고 폭발적이다. 바르사의 9번 산체스는 최전방에서 골사냥에 나서고 측면에서 수비를 허물며 2선에서 킬러 패스로 압박을 분쇄한다. 바르사의 패스 플레이와 유기적인 움직임에 완벽하게 녹아들었다. 바르사가 필요로 하는 공격수의 모든 요건을 갖췄다.

산체스는 현재까지 라리가 10경기에서 6골 2도움을 기록했다. 이 6골에는 레알 마드리드와의 엘클라시코 원정 경기에서 승부의 분수령이 된 송곳 같은 마무리 슈팅도 포함되어 있다. 산체스가 바르사의 1군 선수로 우뚝 설 수 있었던 결정적인 골이었다. 입단 초기 갑작스레 찾아온 햄스트링 부상으로 고생했지만 그는 엄청난 회복력과 적응력으로 바르사 공격진의 주전이 됐다. 비야와 페드로가 부상에서 돌아오더라도 경쟁에서 우위에 있는 것은 산체스다.

칠레의 저명한 컬럼니스트 에스테반 아바르수아는 "산체스가 바르사에서 뛴다면 바르사는 두 명의 메시를 보유하게 되는 것"이라고 말하며 그가 칠레 선수로는 처음으로 발롱도르를 받을 수 있는 실력자라고 호평했다. 칠레 축구의 전설 이반 사모라노와 마르셀로 살라스 역시 산체스가 장래에 자신들을 뛰어 넘을 재능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최근 남마 최고 공격수 반열에 오른 움베르토 수아소의 이름은 이미 잊혀졌다. 지금 칠레 축구는 산체스로 통하고 있다.

바르사는 산체스의 영입을 위해 2,600만 유로의 이적료를 이탈리아 클럽 우디네세에 지급해야했다. 여기에 1,150만 유로의 옵션 금액이 포함되어 있다. 한화로 따지면 총액 560억원에 달하는 거액이다. 산체스는 자신의 몸값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산체스는 바르사의 더욱 역동적이고 날카로운 팀으로 거듭나게 하고 있다.

바르사는 그들이 자랑하는 '라 마시아' 출신만으로 순항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라 마시아' 출신인 파브레가스 조차 "입단 초기에는 동료를 방해하는 느낌이 들었다. 우승 경쟁 만큼이나 바르사에서 뛰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고 토로할 정도로 바르사의 플레이에 녹아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콜로콜로(칠레), 리베르 플라테(아르헨티나), 우디네세(이탈리아)를 거쳐 바르사에 안착한 산체스의 적응력은 그래서 더 놀랍다.

▲ 엘클라시코의 활약을 예고하다

산체스와 더불어 파브레가스 영입 역시 올 시즌 바르사가 위기를 극복하고 더 강한 팀으로 발전할 수 있는 열쇠가 되고 있다. 4,000만 유로(580억원)라는 엄청난 액수를 주고 벤치에 앉아 있을 선수를 데려오느냐는 핀잔이 있었지만 중앙 미드필더, 공격형 미드필더, 2선 공격수 역할을 두루 소화하고 있다. 산체스와 마찬가지로 1연 3역을 해내고 있다. 그리고 산체스와 파브레가스는 나란히 무시무시한 결정력으로 바르사의 화력을 더욱 막강하게 만들어 주었다.

파브레가스는 이미 바르사에서 14골을 넣었다. 라리가에서만 9골 5도움을 기록 중이다. '가짜 9번' 역할을 맡아 2선과 전방을 넘나 들며 상대 수비를 교란하고 있는 파브레가스는 바르사가 메시 의존증에서 탈피하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베티스와의 경기에서 골대를 때리며 연속 득점 행진이 멈췄지만 최근 7경기에서 7골을 기록하며 특급 골잡이로 불릴만한 득점력을 자랑하고 있다. 파브레가스 역시 산체스와 함께 지난 엘클라시코 원정 경기에서 득점했다. 두 선수는 베르나베우에서의 득점 만으로도 합계 1,200억원에 달하는 이적료의 값어치를 했다고 할 수 있다.

다가오는 또 한번의 베르나베우 원정(한국시간 19일 새벽 6시)에서 두 선수의 출전 가능성은 100%다. 산체스와 파브레가스는 메시, 이니에스타, 차비와 함께 바르사의 변화무쌍한 공격을 이끌 것이다. 코파 델레이 8강 1차전, 주제 무리뉴 감독과 레알 마드리드는 설욕을 위해 벼르고 있을 것이다. 산체스와 파브레가스가 베르나베우에서 연속 득점에 성공할 수 있을까? 1200억원에 달하는 바르사판 '갈락티코'가 레알 마드리드를 상대로 또 한번 몸값을 증명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사진=ⓒBPI/스포탈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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