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13 MU 200] 맨유닷컴 에디터가 본 '산소탱크’
입력 : 2012.02.06기사보내기 :  트위터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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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탈코리아-맨유특약] ‘두 개의 심장을 가진 사나이’ 박지성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 입단 7년 만에 통산 200경기 기록을 세웠다. 전세계의 수 많은 눈이 박지성의 발끝에 쏠린 시간이었다. 입단 첫 해인 2005년 프리미어리그 사무국에 몸을 담았다가 2008년부터 맨유로 둥지를 옮겨 팬들에게 박지성을 비롯한 맨유의 소식을 전한 '맨유닷컴' 에디터 제임스 턱이 박지성의 통산 200경기를 맞이해 특별한 글을 보내왔다.

내가 본 ‘산소탱크’ 박지성

박지성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에 입단한 것은 지난 2005년이다. 처음 ‘박지성’이라는 이름의 남자가 맨유와 사인을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상당히 흥미로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박지성의 이적일은 정확히 7월 8일이다. 당시 나는 프리미어리그 사무국에서 공식 홈페이지를 담당하고 있었는데, 박지성의 맨유 입단 소식을 그 날 톱 뉴스로 전했다. 알렉스 퍼거슨 감독과 계약서에 사인을 하는 모습은 당시의 나의 흥미를 끌기에 충분했다.

박지성이 맨유에 입단하는 ‘사건’이 일어나기 정확히 두 달 전까지는 그에 대한 강한 인상이 없었다. 우연히 PSV 아인트호벤의 경기를 보게 되었고, 신비한 힘을 가진 선수라고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대한민국 팀에서 가장 눈에 띄는 선수 중 한 명이 바로 그였다.

맨유가 박지성을 영입한 이유는 간단했다. 2004/2005 시즌을 무관으로 마쳤기 때문이다. 에너지가 넘치며, 역동적인 활약을 할 선수가 필요했다. 당시 맨유의 미드필더를 보면 로이 킨이 공백을 보였고, 긱스와 스콜스는 30대에 접어들고 있었다. 플래처는 경험을 쌓는 과정에 있었다. 그 외에 클레버슨, 리암 밀러, 데이비드 벨리온, 키에런 리차드슨이 있었지만 전력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고 있었다.

박지성은 퍼거슨 감독이 구상하는 새로운 맨유를 장식할 잠재적인 선수였다. 한국인 최초로 맨유에 입단했고, 이적료 역시 알려진 바에 의하면 400만 파운드로 높지 않았다. 그리고 박지성은 입단 첫 해부터 즉시 전력으로 활약했다. 첫 해 45경기를 소화했고, 올드 트라포드를 찾는 팬들에게 신뢰를 받았다.

두 번째 시즌이었던 2006/2007 시즌은 10개월간 부상으로 그라운드에 나서지 못했음을 감안하더라도 나름의 활약을 보여줬다. 리그에서 단 여덟 차례 밖에 선발로 나서지 못했지만 다섯 골을 넣으며 높은 골 순도를 보였다. 2007년 3월 블랙번전에서는 두 골을 넣으며 날카로움을 뽐냈다. 하지만 그 경기가 마지막이었다. 부상을 얻었고 미국에서 수술을 해야 했다.

당시 박지성의 수술 소식은 충격적이었다. 퍼거슨 감독은 “박지성은 수술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다. 현재까지 맨유의 의료진이 돌보았지만, 이제는 그 상황을 벗어났다”며 “부상의 원인이나 이유는 명확하지 않다. 하지만 한 가지 명확한 것은 상당히 심각하다는 것이다. 시즌을 소화할 수 없다”며 심각성을 알렸다 “일단 분야 최고의 전문가들이 나설 것이다”고 덧붙였다.

당시 나는 안타까움을 느꼈다. 이제 맨유에서 자리를 잡고 뭔가 제대로 보여주기 시작할 시점에 그런 일을 당했다는 보는 사람을 가슴 아프게 만들었다. 물론 본인이 가장 힘들었을 것이다. 박지성은 오랜 시간 그라운드를 떠나 있었다.

하지만 그는 오뚝이처럼 일어섰다. 그 해 12월 올드 트라포드에 두 발로 걸어 올라갔다. 부상으로 오랜 기간 그라운드를 밟지 못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에너지가 넘쳤고 기민하게 움직였다. 그리고 팀에 보탬이 됐다. 절정은 바르셀로나와의 챔피언스리그 준결승전이었다. 왜 퍼거슨 감독이 그토록 그를 다시 그라운드에 올려 보내고 싶었는지, 왜 우리가 그를 믿어야 하는지 스스로 증명했다.

안타깝게도 첼시와의 결승전에 나서지 못했는데, 한국 팬들 만큼이나 나에게도 충격적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퍼거슨 감독의 결정이었다. 박지성이 결승 무대에 뛰지 않았다고 해서 우승을 이끈 주역이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그리고 정확히 1년 후, 박지성은 지난 해의 아쉬움을 씻었다. 챔피언스리그 결승 무대에 오른 첫 번째 아시아 선수로서의 발자취를 남겼다. 비록 우승을 거두지는 못했지만 박지성의 잘못은 아니다. 선수단 모두가 쉽게 바르셀로나를 당해 낼 수 없었다.



시간은 빠르게 흘렀고, 박지성이 입단한지 일곱 시즌째다. 어떤 바보 같은 사람들은 박지성이 입단할 당시 ‘마케팅용’이라는 수식을 붙였다. 하지만 이제 그에게 붙는 수식은 ‘강팀 킬러’다. 퍼거슨 감독 역시 박지성이 팀의 중심으로서 큰 경기에서 원하는 활약을 해 주는 선수임을 잘 알고 있다. 최근에는 단지 큰 경기에 강한 선수라는 인식만으로는 부족한 듯 하다. 중요한 시점에 골을 넣는 ‘골 순도’까지 높은 선수로 탈바꿈하고 있다. 2009/2010 시즌 아스널과 리버풀을 격침시켰고, 지난 시즌에는 울버햄턴, 아스널, 첼시에게 좌절을 안겼다.

개인적으로 맨유에서 200경기를 맞이하는 박지성을 바라보는 지금, 그 어느 때 보다 그에게 감사하다. 맨유를 거쳐간 수 많은 선수 중 90번째로 많은 출전 횟수를 기록하게 되었다. 판 니스텔루이가 84번째로 많은 출전을 기록했음을 감안하면 박지성의 기록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기록이다.

7년 전, 홀몸을 이끌고 모든 것이 다른 잉글랜드로 날아와 세계에서 가장 치열한 경쟁이 펼쳐지는 팀에서 꾸준할 업적을 쌓은 그에게 찬사를 보낸다. 오래도록 맨유에 남아 자신의 꿈을 이어갈 수 있길 빈다.

글= 맨유닷컴 제임스 턱
정리= 맨유닷컴 김동환(mukorea@manutd.co.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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