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 성적 – 88승 55패 1무(1위, 한국시리즈 우승)
[스포탈코리아] 두산 베어스의 지난 겨울은 근심의 연속이었다. 한국시리즈 패배의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들려온 핵심 전력의 이탈 소식 때문이었다. 그 주인공은 FA 계약으로 NC 다이노스 이적을 발표한 안방마님 양의지였다. 민병헌과 김현수를 이은 또 한 번의 프랜차이즈 스타 이탈이었다. 앞선 2명의 빈자리는 김재환과 박건우로 메워냈지만, 리그 최고의 포수인 양의지의 공백은 도저히 메울 도리가 없어 보였다.
빼어난 성적을 올린 기존의 외국인 투수 조쉬 린드블럼과 세스 후랭코프와는 모두 재계약을 맺었으니, 자연스럽게 외국인 타자 영입이 오프시즌의 가장 중요한 화두로 떠올랐다. 지미 파레디스와 스캇 반 슬라이크의 처참한 실패를 만회하기 위해서라도 뉴 페이스의 성공은 필수적이었다. 두산의 선택은 빼어난 콘택트 능력이 강점으로 꼽혔던 호세 미구엘 페르난데스였다.
모든 FA 대상자들이 팀을 떠난 것은 아니었다. 또 다른 FA 대상자 장원준은 FA 재신청 권리를 포기하고 재계약을 택했다. 하지만 하락세가 완연했던 장원준에게 시즌 내내 선발 자리를 지켜주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장원준의 대체자로 떠오른 선수는 첫 풀타임 선발투수에 도전하던 영건 이영하였다. 두산은 경험 많은 권혁과 배영수를 영입해 투수진 뎁스를 보강하며 오프시즌 영입을 마쳤다.
잠실구장에서 열린 한화 이글스와의 시즌 개막전에서 두산은 산뜻한 승리를 거뒀다. 하지만 다음날 곧바로 10점 차의 대패를 당하며 일말의 불안감을 안은 채로 시즌을 시작해야 했다. 불안은 오래지 않아 현실이 됐다. 두산은 첫 한 달 동안 선두를 질주했지만, 점진적인 경기력 저하를 노출한 끝에 전반기 종료 시점에는 리그 3위까지 내려앉고 말았다. 전반기 마지막 시리즈였던 KT 위즈와의 시리즈에서는 일방적인 스윕 패배로 팬들에게 격세지감을 느끼게 했다.
작년에 비해 확연하게 약해진 타선이 가장 큰 문제로 지목됐다. 양의지의 공백은 예상대로 거대했고, 최주환의 부상 이탈과 오재원의 극심한 부진도 무시할 수 없는 골칫거리였다. 가장 큰 문제는 4번 타자 김재환의 침묵이었다. KBO 리그의 공인구 교체가 불러온 타구 비거리 감소는 홈런왕 김재환에게서 홈런을 앗아가고 말았다. 각종 팀 공격 지표에서 신기록을 세웠던 지난해, 두산의 팀 OPS는 리그 평균(0.803)을 큰 폭으로 뛰어넘는 0.862에 달했다. 올해의 두산 타선은 그에 비하면 여러모로 평범한 수준이었다. 팀 OPS 부문에서 리그 3위를 차지하기는 했지만 실제 수치는 리그 평균(0.722)과 별 차이가 없는 0.745에 머물렀다.
그래도 투수진에서는 기대 이상의 선전이 이어졌다. 린드블럼은 압도적인 연승 행진을 이어갔고 양의지의 보상 선수로 팀에 합류한 이형범은 팀의 마무리 자리를 꿰찼다. 유희관은 바뀐 공인구의 최대 수혜자로 올라섰고, 이영하는 팀의 새로운 영건 에이스로 자리를 잡았다. 두산이 다소 침체된 타선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상위권에서 버틸 수 있던 원동력은 바로 이 기대 이상의 투수력이었다. 두산은 팀 평균자책점(3.51)과 팀 투수 WAR(23.64)에서 모두 리그 2위를 기록했다.
시즌이 막바지에 이르자 두산에게도 기회가 찾아왔다. 두산은 9월 19일 문학구장에서 열린 SK와의 더블헤더 경기를 싹쓸이하며 SK와의 시즌 전적을 9승 7패의 우위로 마무리했다. 이 승리는 기정 사실 같았던 SK의 정규시즌 우승을 무너뜨리는 기폭제가 됐다. 기세를 탄 두산은 SK의 부진을 틈타 승차를 계속 줄여 나갔고, 결국 9월 28일 한화전에서 연장까지 간 끝에 승리를 거두며 선두 탈환을 이뤄내고야 말았다.
정규시즌 마지막 경기가 열린 10월 1일. NC와의 경기에서 8회 초까지 5:2로 끌려가던 두산은 8회 말 동점 적시타를, 9회 말 끝내기 안타를 차례로 만들어내며 대역전극의 주인공으로 올라섰다. 시즌 최종 성적은 SK와 완벽하게 동률인 88승 55패 1무. 하지만 정규시즌 우승은 상대전적에서 우위를 차지한 두산의 몫이었다. 작년에 이어 페넌트레이스를 재패하며 한국시리즈 직행 티켓을 손에 넣었다.
Most Valuable Player
투수 MVP: 조쉬 린드블럼
30경기 20승3패 194.2이닝 ERA 2.50 FIP 2.87 189탈삼진 ERA+ 164.4 WAR 6.86
두산에서의 첫 시즌을 보낸 지난해, 린드블럼은 골든글러브와 최동원상을 동시에 수상하며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한 해를 보냈다. 하지만 린드블럼의 진짜 커리어 하이 시즌은 놀랍게도 2019시즌이었다. 린드블럼은 여름까지 다승∙평균자책점∙이닝∙탈삼진 모든 부문에서 리그 선두 자리를 놓고 경쟁했고, 최종적으로도 평균자책점을 제외한 모든 부문에서 선두 자리에 올랐다. 8월까지는 1점대의 가공할 평균자책점을 유지했는데, 시즌 막판 다소 부진하며 양현종(2.29)에게 평균자책점 1위를 내준 것이 옥에 티였다.
린드블럼의 등판이 곧 두산의 승리를 의미한 한 해였다. 2019시즌 린드블럼의 등판 경기에서 두산은 24승 6패를 거두며 무려 0.800의 승률을 기록했다. 압도적인 리그 1위 기록이었다(2위 김광현, 0.700). 린드블럼은 개인 승률 부문에서도 0.870으로 팀 동료 이영하(0.810)를 큰 차이로 제치고 리그 선두에 올랐다.
시상식의 계절, 린드블럼은 먼저 최동원상 2연패를 해냈고 양의지와 양현종을 제치고 시즌 MVP까지 수상했다. 남아있는 투수 골든글러브 역시 린드블럼의 수상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고 있다.
타자 MVP: 호세 미구엘 페르난데스
144경기 197안타 15홈런 88타점 0.344/0.409/0.483 OPS 0.892 wRC+ 154.7 WAR 5.04
야심 차게 영입한 호세 미구엘 페르난데스 역시 기대 이상의 활약을 펼쳤다. 두산은 본래 다른 수비 포지션을 소화해줄 수 있는 자원을 물색하고 있었지만, 양의지의 이적 발표 이후 타격 능력을 우선시하는 쪽으로 영입 노선을 변경했다. 이 선택은 두산의 올 시즌을 구해낸 ‘신의 한 수’가 되어 돌아왔다.
정규시즌의 페르난데스는 그야말로 완벽했다. 197안타를 때려내면서 리그 최다 안타 타이틀을 거머쥐었는데, 이는 2014년 서건창의 201안타에 이은 역대 단일 시즌 최다 안타 2위 기록이었다. 비결은 바로 비범한 콘택트 능력. 체격이 주는 인상과는 달리 페르난데스는 타석에서의 정교함이 돋보이는 유형의 타자다. 전체 투구의 48.2%에 배트를 냈던 적극성에도 불구하고 삼진 비율은 8.4%에 불과했다는 점이 이를 잘 드러내준다.
또 페르난데스는 그야말로 시즌 내내 맹타를 휘둘렀다. 나머지 두산 타자들이 좀처럼 페이스를 찾지 못하던 시즌 초부터 페르난데스의 타율은 4할을 넘나들었고, 풀타임 지명타자로 나선 덕인지 시즌 막판까지도 타격 페이스가 떨어지지 않았다. 한국시리즈에서의 부진이 옥에 티였을 뿐 시즌 전체를 놓고 본다면 올해 두산의 명실상부한 최고 타자였다.
Most Improved Player
투수 MIP: 이영하
29경기 17승4패 163.1이닝 ERA 3.64 FIP 3.99 90탈삼진 ERA+ 112.9 WAR 3.03
생애 첫 풀 타임 선발투수 보직에 도전한 이영하의 2019시즌은 출발부터 성공적이었다. 이영하는 첫 10경기에서 6승 무패 ERA 2.37의 쾌투를 펼치며 린드블럼의 뒤를 잇는 차세대 에이스로 일찌감치 눈도장을 찍었다. 6월 1일 KT 위즈전에서 4이닝 13실점으로 급격하게 제동이 걸리기도 했지만 다시 페이스를 회복하면서 규정 이닝을 훌쩍 넘긴 163.1이닝으로 시즌을 마무리했다. 시즌 종료 후에는 프리미어 12 대표팀에도 승선하면서 두산을 넘어 리그를 대표하는 차세대 에이스로 발돋움한 기념비적인 시즌이었다.
5선발로 시즌을 시작했던 이영하가 2선발급의 활약을 해낼 수 있었던 비결은 피홈런 억제에 있었다. 이영하가 올 시즌 기록한 9이닝당 피홈런 0.28개(리그 2위)는 잠실구장을 홈으로 쓴다는 이점을 감안하더라도 충분히 인상적이었다. 구종 단위로 봤을 때는 느리고 낙차 큰 슬라이더를 커터에 가까운 형태의 슬라이더로 바꾼 선택이 주효했다. 이영하의 슬라이더는 평균 구속이 1년 사이에 시속 128km/h에서 134km/h로 6km가량 상승했고 피OPS는 0.858에서 0.533으로 크게 줄어들었다.
타자 MIP: 박세혁
134경기 123안타 4홈런 63타점 0.279/0.346/0.390 OPS 0.736 wRC+ 101.3 WAR 2.97
박세혁은 지난해까지 단 한 번도 시즌 100경기 출전을 경험해보지 못했다. 양의지의 자리를 이어받아야 한다는 사실도 그에게는 대단한 부담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박세혁은 올 시즌 양의지의 후계자 역할을 더없이 훌륭하게 수행해냈다.
수비는 예상대로 안정감이 있었다. 선발 출전 경험이 늘어날수록 특유의 섬세한 수비력과 경기 운영 능력이 빛을 발했고, 체력적으로도 아무런 문제를 노출하지 않았다. 박세혁은 리그의 모든 포수들 가운데 가장 많은 수비 이닝(1071.2)과 두 번째로 많은 출전 경기수(135)를 소화하며 두산의 새로운 주전 포수로 자리를 굳혔다.
타석에서의 생산력 역시 떨어지지 않았다. 박세혁이 기록한 0.736의 OPS와 101.3의 wRC+(조정득점생산력)은 300타석 이상을 소화한 리그 포수들 가운데 5위에 해당하는 준수한 성적이었다. 빠른 발을 살려 포수 단일 시즌 최다 3루타 기록을 갈아치우는 ‘진기명기’를 선보이기도 했다(9개). 중요한 순간에서의 활약도 인상적이었다. 정규 시즌 최종전에서의 우승을 결정지은 끝내기 안타, 결승 3루타로 데일리 MVP를 차지했던 한국시리즈 3차전에서의 맹활약 등이 대표적인 장면이다.
하이라이트: 기적 같은 통합 우승
극적으로 직행 티켓을 따낸 두산의 한국시리즈 상대는 디펜딩 챔피언 SK를 꺾고 올라온 키움 히어로즈였다. 잠실에서 열린 대망의 1차전, 무려 5번의 비디오 판독이 이뤄진 이 혈전에서 두산은 오재일의 끝내기 안타로 승리를 챙겼다.
시리즈의 분수령은 2차전이었다. 키움은 6회까지 5:2로 리드하며 승기를 잡았지만 9회 믿었던 불펜진의 방화로 결국 경기를 내주고 말았다. 이번에는 지난해 한국시리즈에서 아픔을 겪었던 박건우가 끝내기 안타의 주인공이었다. 두산은 역대 최초로 포스트시즌에서 2경기 연속 끝내기 승리를 거두는 진기록을 세웠다.
당시 양 팀은 키움 송성문의 ‘막말 파문’으로 기싸움이 절정에 다다른 상태였는데 이렇게 2차전을 허무하게 내주면서 키움 측의 기세가 완벽하게 꺾여버리고 말았다. 고척에서 열린 3차전에서 키움 타선은 두산 마운드를 상대로 한 점도 만들어내지 못했다. 믿었던 에이스 브리검도 조기 강판의 수모를 겪었다. 두산은 박세혁의 전 타석 출루와 박건우의 공수 맹활약을 앞세워 3차전마저 무실점으로 가져갔다.
이어진 4차전에서는 베테랑 오재원을 필두로 한 하위 타선이 제 몫을 해냈다. 연장 10회 말, 누구보다 설렌 얼굴로 마운드에 오른 배영수는 박병호를 삼진으로, 샌즈를 투수 땅볼로 잡아내며 시즌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장식했다. 시리즈 최종 스코어 4대 0. 한국시리즈 MVP로는 1차전과 4차전의 결승타의 주인공 오재일(타율 0.333 1홈런 6타점 OPS 0.980)이 선정됐다. 두산의 프랜차이즈 통산 6번째 한국시리즈 우승이었다.
마치며
팀을 통합 우승으로 이끈 김태형 감독은 시즌 종료 후 3년 28억 원에 재계약을 체결하며 역대 최고 대우를 받는 감독이 됐다. 바닥까지 떨어졌던 팀을 추슬러 5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과 3번의 우승으로 이끈 명장을 향한 당연한 대우였다.
오랫동안 두산 투수진의 일원이었던 투수조의 큰형 김승회와 정재훈 불펜 코치는 마침내 정식 우승 반지를 손에 넣었다. 시즌의 대미를 장식한 배영수는 후련하게 마운드를 떠났다. 올겨울 팀의 유일한 FA 자격 취득자인 오재원은 한국시리즈에서 본인의 가치를 증명해냈다. 이 베테랑들의 기여를 빼놓고 올해의 통합 우승을 논하기는 어렵다. ‘신구조화’는 2019시즌 두산의 성공을 정의하는 주요 키워드 가운데 하나다.
두산은 지난 몇 년간 코치진과 선수단의 지속적인 인력 유출을 경험해왔다. 거듭된 전력 누수와 지난해 막바지의 ‘뒷심 부족’은 올 시즌을 앞두고도 두산의 전망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웠다. 그럼에도 두산은 기적적인 반전을 만들어내며 영화 같은 ‘해피 엔딩’을 팬들의 눈앞에 선사해줬다.
혹자는 이번 통합 우승을 계기로 ‘왕조’에 대한 해묵은 논쟁을 다시 끄집어낼지도 모른다. 그러나 왕조보다 중요한 사실은 따로 있다. 두산은 그 어느 팀보다도 ‘기적’이라는 표현이 잘 어울리는 팀이라는 사실, 팬들에게 거듭해서 기적을 선사해온 팀이라는 사실이다. 두산 팬들에게 2019년은 그저 ‘미라클’이었다.
야구공작소
김태근 칼럼니스트 / 에디터=이의재
기록 출처: STATIZ
사진=뉴시스
[스포탈코리아] 두산 베어스의 지난 겨울은 근심의 연속이었다. 한국시리즈 패배의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들려온 핵심 전력의 이탈 소식 때문이었다. 그 주인공은 FA 계약으로 NC 다이노스 이적을 발표한 안방마님 양의지였다. 민병헌과 김현수를 이은 또 한 번의 프랜차이즈 스타 이탈이었다. 앞선 2명의 빈자리는 김재환과 박건우로 메워냈지만, 리그 최고의 포수인 양의지의 공백은 도저히 메울 도리가 없어 보였다.
빼어난 성적을 올린 기존의 외국인 투수 조쉬 린드블럼과 세스 후랭코프와는 모두 재계약을 맺었으니, 자연스럽게 외국인 타자 영입이 오프시즌의 가장 중요한 화두로 떠올랐다. 지미 파레디스와 스캇 반 슬라이크의 처참한 실패를 만회하기 위해서라도 뉴 페이스의 성공은 필수적이었다. 두산의 선택은 빼어난 콘택트 능력이 강점으로 꼽혔던 호세 미구엘 페르난데스였다.
모든 FA 대상자들이 팀을 떠난 것은 아니었다. 또 다른 FA 대상자 장원준은 FA 재신청 권리를 포기하고 재계약을 택했다. 하지만 하락세가 완연했던 장원준에게 시즌 내내 선발 자리를 지켜주기를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장원준의 대체자로 떠오른 선수는 첫 풀타임 선발투수에 도전하던 영건 이영하였다. 두산은 경험 많은 권혁과 배영수를 영입해 투수진 뎁스를 보강하며 오프시즌 영입을 마쳤다.
잠실구장에서 열린 한화 이글스와의 시즌 개막전에서 두산은 산뜻한 승리를 거뒀다. 하지만 다음날 곧바로 10점 차의 대패를 당하며 일말의 불안감을 안은 채로 시즌을 시작해야 했다. 불안은 오래지 않아 현실이 됐다. 두산은 첫 한 달 동안 선두를 질주했지만, 점진적인 경기력 저하를 노출한 끝에 전반기 종료 시점에는 리그 3위까지 내려앉고 말았다. 전반기 마지막 시리즈였던 KT 위즈와의 시리즈에서는 일방적인 스윕 패배로 팬들에게 격세지감을 느끼게 했다.
작년에 비해 확연하게 약해진 타선이 가장 큰 문제로 지목됐다. 양의지의 공백은 예상대로 거대했고, 최주환의 부상 이탈과 오재원의 극심한 부진도 무시할 수 없는 골칫거리였다. 가장 큰 문제는 4번 타자 김재환의 침묵이었다. KBO 리그의 공인구 교체가 불러온 타구 비거리 감소는 홈런왕 김재환에게서 홈런을 앗아가고 말았다. 각종 팀 공격 지표에서 신기록을 세웠던 지난해, 두산의 팀 OPS는 리그 평균(0.803)을 큰 폭으로 뛰어넘는 0.862에 달했다. 올해의 두산 타선은 그에 비하면 여러모로 평범한 수준이었다. 팀 OPS 부문에서 리그 3위를 차지하기는 했지만 실제 수치는 리그 평균(0.722)과 별 차이가 없는 0.745에 머물렀다.
그래도 투수진에서는 기대 이상의 선전이 이어졌다. 린드블럼은 압도적인 연승 행진을 이어갔고 양의지의 보상 선수로 팀에 합류한 이형범은 팀의 마무리 자리를 꿰찼다. 유희관은 바뀐 공인구의 최대 수혜자로 올라섰고, 이영하는 팀의 새로운 영건 에이스로 자리를 잡았다. 두산이 다소 침체된 타선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상위권에서 버틸 수 있던 원동력은 바로 이 기대 이상의 투수력이었다. 두산은 팀 평균자책점(3.51)과 팀 투수 WAR(23.64)에서 모두 리그 2위를 기록했다.
시즌이 막바지에 이르자 두산에게도 기회가 찾아왔다. 두산은 9월 19일 문학구장에서 열린 SK와의 더블헤더 경기를 싹쓸이하며 SK와의 시즌 전적을 9승 7패의 우위로 마무리했다. 이 승리는 기정 사실 같았던 SK의 정규시즌 우승을 무너뜨리는 기폭제가 됐다. 기세를 탄 두산은 SK의 부진을 틈타 승차를 계속 줄여 나갔고, 결국 9월 28일 한화전에서 연장까지 간 끝에 승리를 거두며 선두 탈환을 이뤄내고야 말았다.
정규시즌 마지막 경기가 열린 10월 1일. NC와의 경기에서 8회 초까지 5:2로 끌려가던 두산은 8회 말 동점 적시타를, 9회 말 끝내기 안타를 차례로 만들어내며 대역전극의 주인공으로 올라섰다. 시즌 최종 성적은 SK와 완벽하게 동률인 88승 55패 1무. 하지만 정규시즌 우승은 상대전적에서 우위를 차지한 두산의 몫이었다. 작년에 이어 페넌트레이스를 재패하며 한국시리즈 직행 티켓을 손에 넣었다.
Most Valuable Player
투수 MVP: 조쉬 린드블럼
30경기 20승3패 194.2이닝 ERA 2.50 FIP 2.87 189탈삼진 ERA+ 164.4 WAR 6.86
두산에서의 첫 시즌을 보낸 지난해, 린드블럼은 골든글러브와 최동원상을 동시에 수상하며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한 해를 보냈다. 하지만 린드블럼의 진짜 커리어 하이 시즌은 놀랍게도 2019시즌이었다. 린드블럼은 여름까지 다승∙평균자책점∙이닝∙탈삼진 모든 부문에서 리그 선두 자리를 놓고 경쟁했고, 최종적으로도 평균자책점을 제외한 모든 부문에서 선두 자리에 올랐다. 8월까지는 1점대의 가공할 평균자책점을 유지했는데, 시즌 막판 다소 부진하며 양현종(2.29)에게 평균자책점 1위를 내준 것이 옥에 티였다.
린드블럼의 등판이 곧 두산의 승리를 의미한 한 해였다. 2019시즌 린드블럼의 등판 경기에서 두산은 24승 6패를 거두며 무려 0.800의 승률을 기록했다. 압도적인 리그 1위 기록이었다(2위 김광현, 0.700). 린드블럼은 개인 승률 부문에서도 0.870으로 팀 동료 이영하(0.810)를 큰 차이로 제치고 리그 선두에 올랐다.
시상식의 계절, 린드블럼은 먼저 최동원상 2연패를 해냈고 양의지와 양현종을 제치고 시즌 MVP까지 수상했다. 남아있는 투수 골든글러브 역시 린드블럼의 수상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고 있다.
타자 MVP: 호세 미구엘 페르난데스
144경기 197안타 15홈런 88타점 0.344/0.409/0.483 OPS 0.892 wRC+ 154.7 WAR 5.04
야심 차게 영입한 호세 미구엘 페르난데스 역시 기대 이상의 활약을 펼쳤다. 두산은 본래 다른 수비 포지션을 소화해줄 수 있는 자원을 물색하고 있었지만, 양의지의 이적 발표 이후 타격 능력을 우선시하는 쪽으로 영입 노선을 변경했다. 이 선택은 두산의 올 시즌을 구해낸 ‘신의 한 수’가 되어 돌아왔다.
정규시즌의 페르난데스는 그야말로 완벽했다. 197안타를 때려내면서 리그 최다 안타 타이틀을 거머쥐었는데, 이는 2014년 서건창의 201안타에 이은 역대 단일 시즌 최다 안타 2위 기록이었다. 비결은 바로 비범한 콘택트 능력. 체격이 주는 인상과는 달리 페르난데스는 타석에서의 정교함이 돋보이는 유형의 타자다. 전체 투구의 48.2%에 배트를 냈던 적극성에도 불구하고 삼진 비율은 8.4%에 불과했다는 점이 이를 잘 드러내준다.
또 페르난데스는 그야말로 시즌 내내 맹타를 휘둘렀다. 나머지 두산 타자들이 좀처럼 페이스를 찾지 못하던 시즌 초부터 페르난데스의 타율은 4할을 넘나들었고, 풀타임 지명타자로 나선 덕인지 시즌 막판까지도 타격 페이스가 떨어지지 않았다. 한국시리즈에서의 부진이 옥에 티였을 뿐 시즌 전체를 놓고 본다면 올해 두산의 명실상부한 최고 타자였다.
Most Improved Player
투수 MIP: 이영하
29경기 17승4패 163.1이닝 ERA 3.64 FIP 3.99 90탈삼진 ERA+ 112.9 WAR 3.03
생애 첫 풀 타임 선발투수 보직에 도전한 이영하의 2019시즌은 출발부터 성공적이었다. 이영하는 첫 10경기에서 6승 무패 ERA 2.37의 쾌투를 펼치며 린드블럼의 뒤를 잇는 차세대 에이스로 일찌감치 눈도장을 찍었다. 6월 1일 KT 위즈전에서 4이닝 13실점으로 급격하게 제동이 걸리기도 했지만 다시 페이스를 회복하면서 규정 이닝을 훌쩍 넘긴 163.1이닝으로 시즌을 마무리했다. 시즌 종료 후에는 프리미어 12 대표팀에도 승선하면서 두산을 넘어 리그를 대표하는 차세대 에이스로 발돋움한 기념비적인 시즌이었다.
5선발로 시즌을 시작했던 이영하가 2선발급의 활약을 해낼 수 있었던 비결은 피홈런 억제에 있었다. 이영하가 올 시즌 기록한 9이닝당 피홈런 0.28개(리그 2위)는 잠실구장을 홈으로 쓴다는 이점을 감안하더라도 충분히 인상적이었다. 구종 단위로 봤을 때는 느리고 낙차 큰 슬라이더를 커터에 가까운 형태의 슬라이더로 바꾼 선택이 주효했다. 이영하의 슬라이더는 평균 구속이 1년 사이에 시속 128km/h에서 134km/h로 6km가량 상승했고 피OPS는 0.858에서 0.533으로 크게 줄어들었다.
타자 MIP: 박세혁
134경기 123안타 4홈런 63타점 0.279/0.346/0.390 OPS 0.736 wRC+ 101.3 WAR 2.97
박세혁은 지난해까지 단 한 번도 시즌 100경기 출전을 경험해보지 못했다. 양의지의 자리를 이어받아야 한다는 사실도 그에게는 대단한 부담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박세혁은 올 시즌 양의지의 후계자 역할을 더없이 훌륭하게 수행해냈다.
수비는 예상대로 안정감이 있었다. 선발 출전 경험이 늘어날수록 특유의 섬세한 수비력과 경기 운영 능력이 빛을 발했고, 체력적으로도 아무런 문제를 노출하지 않았다. 박세혁은 리그의 모든 포수들 가운데 가장 많은 수비 이닝(1071.2)과 두 번째로 많은 출전 경기수(135)를 소화하며 두산의 새로운 주전 포수로 자리를 굳혔다.
타석에서의 생산력 역시 떨어지지 않았다. 박세혁이 기록한 0.736의 OPS와 101.3의 wRC+(조정득점생산력)은 300타석 이상을 소화한 리그 포수들 가운데 5위에 해당하는 준수한 성적이었다. 빠른 발을 살려 포수 단일 시즌 최다 3루타 기록을 갈아치우는 ‘진기명기’를 선보이기도 했다(9개). 중요한 순간에서의 활약도 인상적이었다. 정규 시즌 최종전에서의 우승을 결정지은 끝내기 안타, 결승 3루타로 데일리 MVP를 차지했던 한국시리즈 3차전에서의 맹활약 등이 대표적인 장면이다.
하이라이트: 기적 같은 통합 우승
극적으로 직행 티켓을 따낸 두산의 한국시리즈 상대는 디펜딩 챔피언 SK를 꺾고 올라온 키움 히어로즈였다. 잠실에서 열린 대망의 1차전, 무려 5번의 비디오 판독이 이뤄진 이 혈전에서 두산은 오재일의 끝내기 안타로 승리를 챙겼다.
시리즈의 분수령은 2차전이었다. 키움은 6회까지 5:2로 리드하며 승기를 잡았지만 9회 믿었던 불펜진의 방화로 결국 경기를 내주고 말았다. 이번에는 지난해 한국시리즈에서 아픔을 겪었던 박건우가 끝내기 안타의 주인공이었다. 두산은 역대 최초로 포스트시즌에서 2경기 연속 끝내기 승리를 거두는 진기록을 세웠다.
당시 양 팀은 키움 송성문의 ‘막말 파문’으로 기싸움이 절정에 다다른 상태였는데 이렇게 2차전을 허무하게 내주면서 키움 측의 기세가 완벽하게 꺾여버리고 말았다. 고척에서 열린 3차전에서 키움 타선은 두산 마운드를 상대로 한 점도 만들어내지 못했다. 믿었던 에이스 브리검도 조기 강판의 수모를 겪었다. 두산은 박세혁의 전 타석 출루와 박건우의 공수 맹활약을 앞세워 3차전마저 무실점으로 가져갔다.
이어진 4차전에서는 베테랑 오재원을 필두로 한 하위 타선이 제 몫을 해냈다. 연장 10회 말, 누구보다 설렌 얼굴로 마운드에 오른 배영수는 박병호를 삼진으로, 샌즈를 투수 땅볼로 잡아내며 시즌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장식했다. 시리즈 최종 스코어 4대 0. 한국시리즈 MVP로는 1차전과 4차전의 결승타의 주인공 오재일(타율 0.333 1홈런 6타점 OPS 0.980)이 선정됐다. 두산의 프랜차이즈 통산 6번째 한국시리즈 우승이었다.
마치며
팀을 통합 우승으로 이끈 김태형 감독은 시즌 종료 후 3년 28억 원에 재계약을 체결하며 역대 최고 대우를 받는 감독이 됐다. 바닥까지 떨어졌던 팀을 추슬러 5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과 3번의 우승으로 이끈 명장을 향한 당연한 대우였다.
오랫동안 두산 투수진의 일원이었던 투수조의 큰형 김승회와 정재훈 불펜 코치는 마침내 정식 우승 반지를 손에 넣었다. 시즌의 대미를 장식한 배영수는 후련하게 마운드를 떠났다. 올겨울 팀의 유일한 FA 자격 취득자인 오재원은 한국시리즈에서 본인의 가치를 증명해냈다. 이 베테랑들의 기여를 빼놓고 올해의 통합 우승을 논하기는 어렵다. ‘신구조화’는 2019시즌 두산의 성공을 정의하는 주요 키워드 가운데 하나다.
두산은 지난 몇 년간 코치진과 선수단의 지속적인 인력 유출을 경험해왔다. 거듭된 전력 누수와 지난해 막바지의 ‘뒷심 부족’은 올 시즌을 앞두고도 두산의 전망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웠다. 그럼에도 두산은 기적적인 반전을 만들어내며 영화 같은 ‘해피 엔딩’을 팬들의 눈앞에 선사해줬다.
혹자는 이번 통합 우승을 계기로 ‘왕조’에 대한 해묵은 논쟁을 다시 끄집어낼지도 모른다. 그러나 왕조보다 중요한 사실은 따로 있다. 두산은 그 어느 팀보다도 ‘기적’이라는 표현이 잘 어울리는 팀이라는 사실, 팬들에게 거듭해서 기적을 선사해온 팀이라는 사실이다. 두산 팬들에게 2019년은 그저 ‘미라클’이었다.
야구공작소
김태근 칼럼니스트 / 에디터=이의재
기록 출처: STATIZ
사진=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