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목소리] 현역 은퇴, 유소년 어드바이저로 새 출발…'제주 전설' 구자철, ''韓 축구 생각하면 설레서 잠 못 자'' [전문]
입력 : 2025.01.14기사보내기 :  트위터  페이스북
[SPORTALKOREA=신문로] 배웅기 기자= 구자철(35)이 17년 만에 축구화를 벗고 제주SK FC 유소년 어드바이저로 새로운 출발을 알렸다.

구자철은 14일 오전 10시 30분 서울 종로구 소재 축구회관에서 현역 은퇴 기자회견 및 제주 유소년 어드바이저 위촉식을 진행했다. 이광용 아나운서가 진행을 도맡았고, 구창용 제주 대표이사가 위촉식에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지난 2007년 K리그 드래프트 3순위로 제주 유니폼을 입은 구자철은 K리그 통산 116경기 9골 21도움(K리그1 95경기 8골 19도움, 플레이오프 3경기 1도움, 리그컵 18경기 1골 1도움)을 기록하며 명실상부 레전드로 자리매김했다.

특히 2010시즌 활약이 압권이었다. 구자철은 30경기에 나서 5골 12도움을 뽑아냈고, 같은 해 열린 대상 시상식에서 K리그 도움왕·팬타스틱 플레이어·베스트 일레븐 등을 싹쓸이하는 영예를 안았다.

이후 구자철은 VfL 볼프스부르크(34경기 2도움), 아우크스부르크(155경기 23골 13도움), 1. FSV 마인츠 05(42경기 8골 4도움), 알 가라파 SC(45경기 8골), 알 코르 SC(11경기)를 거쳐 2022년 제주로 금의환향했다.

국가대표팀에서도 대체 불가한 존재였다. 구자철은 2011 아시아축구연맹(AFC) 카타르 아시안컵(3위) 득점왕, 2012 제30회 런던 올림픽 동메달 등 숱한 성과를 비롯해 2번의 국제축구연맹(FIFA) 월드컵(2014 브라질, 2018 러시아) 무대를 누비며 A매치 통산 76경기 19골을 터뜨렸다.

2024시즌을 마지막으로 축구화를 벗게 된 구자철은 이제 제주 유소년 어드바이저로 활동하며 유럽 구단 시스템 벤치마킹, 유소년팀 해외 연수 기회 제공, 외국인 영입 스카우팅, 팬 밀착 마케팅 등 팔방미인으로서 활약을 이어갈 예정이다.


▲ 이하 구자철 일문일답.

- 현역 은퇴 소감.

홀가분하다. 세상에 나와 대한민국 축구를 위해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이렇게 많은 분이 와주셔서 더욱 무한한 책임과 감사를 느끼는 것 같다.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

은퇴는 수년 전부터 생각하고 준비해 왔다. 축구화를 신고 뛰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은퇴 후에도 한국 축구를 위해 제가 받은 사랑과 경험을 전하고 싶었다. '우리 세대는 간과하지 말자', '지나치지 말자', '한국 축구를 위해 역할을 해내자'는 생각으로 수년 동안 준비했다. 독일에 있을 때 지도자, 행정, 경영, 유소년 등 다방면에서 심혈을 기울였다. 특히 아우크스부르크 시절 (바이에른) 뮌헨을 왔다 갔다 하며 프런트에 들어가 배우기도 했다. 저를 키우고 낳아주신 구단에서 유소년 어드바이저로 직책을 주신 만큼 서두르지 않되 매듭을 짓는 걸 목표로 하겠다.

- 선수로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축구화를 신고 있을 때는 아니다. (런던 올림픽) 동메달을 걸고 단상에 올라갈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 것 같다. 시상식 때 태극기 올라가는 모습을 보며 메달 걸던 때를 잊을 수 없다.

- 한일전은 절대 지지 않는다는 정신이 큰 화제가 됐다.

2011년 8월 11일 (일본) 삿포로였다. 제가 독일에 진출하고 처음 아시아로 와서 A매치를 치른 것이었다. 비행기를 타고 볼프스부르크, 하노버, 프랑스, 인천을 거쳐 경기 이틀 전 삿포로에 도착했다. 그때 기억을 잊을 수 없다. '몸을 어떻게 하지?'라는 생각이 들더라. 결국 0-3으로 졌다. 대선배님들부터 이어온 한일전을 져서는 안 된다는 정신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굉장히 부끄러웠다. 단 한 순간도 잊지 못했고, 다음 한일전을 지면 축구를 그만두겠다는 필사즉생의 마음으로 런던 올림픽 동메달 결정전에 들어갔다. 진다는 생각이 들지 않고 나의 앞을 가로막는 사람은 절대 용서하지 않겠다는 그런 경기가 있다. 기필코 승리해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했고, 경기 후 인터뷰에서 1년 전 패배의 부끄러움을 원동력 삼았다고 이야기한 기억이 난다.

- 태극마크를 달고 가장 기억에 남는 골 세 가지를 꼽자면.

첫 골은 2009 FIFA U-20 이집트 월드컵 미국전에서 넣은 페널티킥 골이다. 세리머니할 때 팔을 벌리고 전율을 느꼈다. '내가 이 전율을 느끼기 위해 지난 과정의 고통을 견뎌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도 팔에 전율이 느껴지는듯한 착각이 일어난다.

두 번째 골은 2011 아시안컵 호주전이다. 바레인과 첫 경기에서 멀티골을 넣었을 때는 그저 좋았다. 호주전에는 원하는 대로 볼 터치가 돼 구석으로 차 넣었다. 중요한 골이었고, 짜릿함이 저의 발끝에 남아있는 기분이다.

마지막 하나는 정확히 언제인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우즈베키스탄과 할 때 (홍)철이가 하프라인에서 크로스를 올리고 (김)신욱이가 돌려놓은 볼을 제가 골로 연결한 적 있다. 이상하게 이 골이 잊혀지지 않는다. 영상을 돌려보면서 수많은 골이 기억에 남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골은 이렇게 세 가지다.

아, 한일전 골은 빼면 안되는데 3+1은 안될까. 사실 제가 출전한 메이저 대회에서 골을 넣지 않은 적이 없다. 청소년 월드컵, 올림픽, 아시안컵, 월드컵 등 모든 대회에서 득점을 했다. (런던) 올림픽 때는 유독 골이 들어가지 않더라. 특히 브라질과 4강전 때 골을 넣어 사상 최초 결승 진출을 이루고 싶다는 이상한 욕심이 있었다. 다행히도 지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 하나로 나간 한일전 때 1년 전 그 아픔과 부끄러움을 털어버리는 골을 넣을 수 있었다.

- 선수로서 미련이 남는 순간이 있다면.

너무 많다. 하지만 이 질문에 대답하고 싶은 아픔과 속죄의 순간이 있다. 지금까지도 마음에 두고 있는 2014 월드컵이다. 아쉬움을 떠나 제가 너무 어렸다. 사실 은퇴를 한다고 하면 대표팀 최연소 주장이자 월드컵 주장이라는 타이틀이 따라온다. 개인적으로는 자랑스럽지 않다. 돌이켜보면 너무 어렸다. 저는 프로이자 월드컵에 출전하는 대표 선수라면 사회적 책임이 따른다는 생각을 한다. 그때는 이런 생각을 해보지 못했고, 부족한 시기였다. 경험을 통해 많이 성장했지만 저의 부족함 때문에 아쉬운 결과가 나왔고, 국민 분들께 죄송했다. 월드컵으로 하여금 생계를 유지하고 덕을 보는 분들이 계신데 제가 책임감이 없지 않았나 싶다.

프로가 되면 제주라는 사회에 어린이의 꿈이자 동경의 대상이 됐으면 좋겠고, 배울 수 있는 행동과 말을 해야 한다고 제주 후배들에게 항상 이야기를 한다. 저는 제주가 제주도 전반의 꿈이자 모든 이의 희망이 됐으면 한다. 비단 어린이뿐만은 아닌 것 같다.


- 이청용(울산 HD)과 기성용(FC서울)이라는 동기와 황금세대를 이뤘다. 은퇴를 결심하고 나눈 이야기가 있다면.

청용이와 성용이는 저에게 큰 힘이 되는 친구다. 저희가 단체 채팅방이 하나 있는데 아주 사소한 것까지 이슈가 있을 때마다 시끄러워진다. 제가 은퇴한다고 했을 때도 통화를 했지만 굉장히 아쉬워하면서도 고생했다는 말을 많이 해줬다. 친구들에게 정말 고맙고 청용이와 성용이를 같은 선수로서 존경하며 장점을 많이 따라가려고 노력했다. 그만큼 훌륭하고 성실한 선수들이다. 부정적인 생각이 들 때도 마음을 바로잡게 해주는 친구들이다. 한국 축구를 사랑하는 마음은 저보다 크면 컸지 작진 않을 것이다. 제가 제안을 많이 받고 하니 '하나만 해라. 먼저 은퇴를 하니까 잘하고 있어야 한다' 같은 조언을 해주더라. 아마 친구들도 빠르게 은퇴하지 않을까 싶은데 부끄럼 없이 최선을 다하겠다. 이 자리를 빌어 고맙고 영광이었다는 말을 하고 싶다.

성용이는 유럽 돌아다니며 지도자 수업을 받고 있다. '너 뭐할 거야' 물으면 '지도자는 하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저희는 공통적으로 '행정과 지도자 다 배워라. (자격증) 다 따놓고 어떻게 돌아가는지 보라"고 이야기한다. 제가 섣불리 친구들의 미래를 이야기할 수는 없다. 저 역시 A급과 P급 차례로 지도자 자격증을 따야 하고 행정적으로는 제주를 위해 천천히 도움을 주고 싶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욕심 내서 서두르다 일을 그르치지 않는 것이다. 성용이, 청용이와는 한국 축구에 긍정적인 일을 조금 더 현명하고 지혜롭게 해야 한다는 생각을 공유하고 있다. 만약 독단적인 생각으로 한다면 일을 그르칠 확률이 높다고 생각한다. 다행히도 저에게는 성용이와 청용이라는 큰 힘이 되는 친구가 있다.

- 유소년 어드바이저로서 어떤 노하우를 제주에 전수하고 싶은지.

뭔가를 급하게 바꿀 생각은 없다. 기존에 국내에서 일하는 분들에 대한 존중과 동경심이 있다. 제가 우월하거나 더 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올해는 옆에서 지켜보면서 어려움을 겪을 때 도움을 청하는 역할을 할 것이고 제가 해야 할 일이 늘어났을 때 조금 더 적극적으로 해보고 싶다. 지금은 시기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성용이와 청용이보다 1년 정도 일찍 은퇴를 하지 않을까 싶었다. 2~3년이면 더 좋다.(웃음) 저는 아직 현장의 어려움을 모른다. 우리 유소년이 긍정적으로 발전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확고하다. 매듭지을 때까지 포기하지 않고 최대한 지혜롭고 현명하게 임하겠다.

- 데뷔 당시와 지금의 K리그에 차이가 있다면.

제가 2007년부터 2010년까지 K리그에서 뛰었고, 2022년 12년 만에 돌아왔다. K리그에서 배출한 유럽 리거가 더욱 많아졌다. 수준과 행정적인 부분도 좋아졌다고 생각한다. 한국 축구 시장은 무한한 가능성을 갖고 있다. 우리가 온 길보다 가야 할 길이 더 많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저는 어떻게 한국 축구에 도움이 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면 설레서 잠을 못 잔다.

한국 축구는 여전히 발전해야 할 여지가 있다. 긍정적으로 이야기한다면 '훌륭한 인프라에서 하고 있지만 변해야 할 게 많다' 정도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1순위는 잔디다. 가장 중요하다. 제주에도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저희는 K리그에서 최고를 다투는 잔디라고 하더라. 팬분들의 즐거움과 선수의 컨디션을 위해 신경 써주시는 구단에 굉장히 감사드린다. 이런 부분을 놓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잔디는 더욱 파고들어야 한다. 이렇게까지 했는데 이 상태면 제도적으로 바꿔야 한다. 날씨가 덥기 때문에 (잔디가) 상하는 것은 사실이나 이를 핑계 삼으면 방치밖에 되지 않는다. 잔디 때문에 피해를 보는 것은 선수와 경기를 보러 오시는 팬분들이다. 축구에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들이 피해를 봐서는 안 된다.

- 현재의 대표팀을 보며 옛 생각이 많이 날 것 같다. 손흥민(토트넘 핫스퍼)과 구자철 리더십을 비교하자면.

글쎄, 흥민이 리더십은 제가 보지 못해 함부로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저의 경우는 워낙 오래 전 일이다. 선수들이 최대한 편안함을 느끼고 구단의 압박에서 자유로운 환경을 조성하고자 노력했다. 경기에 얼마만큼 집중하고 즐기는지가 승패에 큰 영향을 미친다. 제가 할 수 있는 선에서 부담이나 압박을 느끼지 않게끔 말과 행동을 했다.


- 지금 이 시기 은퇴를 결심하게 된 이유와 제2의 인생으로서 궁극적인 꿈이 궁금하다.

근육, 무릎, 발목이 버텨주지 못했다. 예전 같으면 운동하다 근육이나 관절에 데미지를 받아도 이 정도 쉬면 회복될 것이라는 생각이 있었다. 한국에 들어온 후 회복 기간이 감을 잡을 수 없을 정도로 늘어났다. 다시 한번 해보자 해도 도저히 안됐다. 이런 시간이 반복되다 보니 미련 없이 축구화를 벗어야 하는 시기가 왔다고 생각을 했다. 한국에 돌아와 저를 발굴해 주고 키워주신 제주에서 은퇴하는 게 꿈이었는데 이룰 수 있다는 것에 감사를 느낀다. 최종적인 꿈은 마음속에 간직하고 싶다. 차마 입 밖으로는 나오지 않는다.

- 은퇴한 자신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저보다는 지금의 저를 있게 만들어주신 우리 아버지에게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고 제가 일찍 결혼을 했다. 10여 년 동안 신은 축구화가 있는데 아디다스에서 일찍 결혼한다고 하니 되게 싫어하더라.(웃음) 그 주인공인 아내에게 고맙다고 꼭 이야기해 주고 싶다. 정말 고생을 많이 했다. 특히 독일에 있을 때 대표팀 경기하러 가면 한 달에 막 10일씩 자리를 비워야 한다. 그럴 때마다 아이 둘 키우며 이렇게 행복한 가정을 만들어줘서 고맙고 옆에서 도와준 처제에게도 정말 고맙다. 남자는 아무거나 먹고 아무 데서나 자도 이겨낼 수 있다. 그런데 가정이 생기면 가족을 위해 일을 하고 책임감을 갖게 되는 것 같다. 저도 제 자신에게 항상 이야기하지만 가족에게 고맙다. 유년기 때 저를 키워준 부모님께 감사드린다. 이 자리에 설 수 있었던 건 모두 가족의 힘이다.

- 많은 유소년 선수에게 한마디 해준다면.

우선 제주에 입단하는 게 가장 중요하겠다.(웃음) 농담이고 다 똑같다. 저는 중학교 2학년 때 목표가 U-20 월드컵 출전이었다. 중학생 시절 백지훈, 박주영, 김진규 형이 U-20 월드컵에 나가면서 공항 인터뷰하던 모습이 머릿속에 있다. 그걸 단 한 순간도 잊은 적이 없다. 밤에 나가 줄넘기를 할 때도 '청소년 대표팀 정말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으로 몇 년을 뛰었다. 목표를 정하는 게 중요하다. 책상에 앉아 떠올리든 저처럼 별을 보며 이야기를 하든 갖고 싶은 목표를 떠올리는 게 첫 번째다. 목표가 없다면 동기부여가 있는 사람과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동기부여는 행동의 차이를 만들어낸다. 제가 모든 유소년을 책임질 수는 없지만 제주만큼은 좋은 선수를 발굴할 수 있게끔 노력하겠다.

- 눈여겨보는 한국 축구의 미래가 있는지?

우리나라에 돌연변이가 하나 있다. 들으면 섭섭할지 모르겠지만 프리미어리그 득점왕을 차지한 흥민이다. (박)지성이 형이 맨유 갈 때 되게 놀랐다. 흥민이가 득점왕 할 때도 정말 멋있더라. (이)강인이가 파리 생제르맹 갈 때도 우리나라에서 빅클럽을 가는구나 싶었다. (김)민재는 이제 뮌헨에서 뛴다. 후배들이 그런 부분을 보며 꿈을 크게 잡았으면 좋겠다. 눈여겨볼 선수는 이제 찾아보겠다. 후배들이 단지 해외 진출에만 목표를 두는 게 아니라 더욱 큰 팀에서 뛸 수 있다는 자신감과 꿈을 가졌으면 하는 마음이다.

- 제주 유소년 어드바이저로서 목표는.

선수 구성의 탄탄한 결실을 맺는 게 목표다. 재정적으로도 선수를 키워내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 이것이 유소년 시스템의 기본적 목표다. 기본 목표에 충실해 좋은 선수를 발굴하고 제주에 왔을 때 더욱 성장할 수 있게끔 하고 싶다. 훌륭하게 안착해 대들보가 되고 유럽 훌륭한 팀에 가는 것이다. 분데스리가 득점왕은 아직 아무도 못했지 않나. 여러 일에 도움 되는 역할을 하고 싶다.


(이하 팬 질문) - 2024시즌 강원FC 양민혁과 2010시즌 제주 구자철을 비교한다면.

양민혁. 토트넘 가있는데 어떻게 이기나. 양민혁 파이팅.

- 해외 진출을 꿈꾸는 후배들이 많다.

저 같은 경우는 계속 해외 갈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 중심에는 지성이 형이 있었고, 이후에 가장 큰 동기부여가 된 게 성용이와 청용이다. 성용이는 저보다 6개월 먼저 갔다. 친구들이 먼저 갔기 때문에 '가고 싶다'에서 '가야 해'로 바뀌었다. 그래서 2010시즌 들어갈 때 제주에도 해외 진출을 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었고, 시즌이 다 끝났을 때는 가야겠다 마음을 먹고 에이전트를 통해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비슷한 또래에게나 혹은 스스로에게 동기부여를 받아야 하는데 얼마나 이루고 싶고 설레하는지가 정말 중요하다. 미친듯이하고 싶어 하면 몸이 움직여진다. 계속해서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고 목표와 기준치를 어떻게 설정하는지가 마음을 이끌어준다. 기술적인 부분은 직접 몸을 부딪히는 게 중요해 말하기 애매하다.

- 어떤 선수로 기억되고 싶은지.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로 올림픽 동메달을 따낸 멤버 중 한 명으로 기억되면 행복할 것 같다. 열심히 뛴 선수이자 좋은 선수로 기억에 남고 싶다. 여러 비행을 많이 하며 보낸 시간에 추억이 많이 서렸다. 긍정적이고 즐거운 이미지로 팬분들을 기쁘게 한 선수로 남고 싶다.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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