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뉴스 | 양정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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퓨처스리그 경기에서 자동 볼·스트라이크 판정 시스템(로봇심판)을 바탕으로 한 투구 궤적을 모니터링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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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 심판 운영 개요도. /사진=KBO |
KBO 리그에 이른바 '로봇 심판' 도입이 확정됐다. 이에 많은 변화가 예고된 가운데,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포수들의 생각은 어떨까.
한국야구위원회(KBO)는 지난 11일 "2024년 제1차 이사회를 열고 올 시즌 ABS(자동 투구판정 시스템·Automatic Ball-Strike System)적용을 최종 확정했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ABS는 올 시즌 개막전부터 곧바로 도입될 계획이다.
앞서 KBO는 이미 2020년부터 퓨처스리그에서 ABS를 시범 운영했다. 첫 해에는 LG 이천 챔피언스파크와 마산야구장에서 열린 23경기에서 테스트를 거쳤고, 이후로도 교육리그 등에도 로봇 심판이 적용돼 운영해왔다. 아마추어 리그에서도 ABS로 볼 판정을 하면서 어린 선수들에게는 익숙해지고 있다.
KBO는 다음 시즌 로봇 심판 도입을 위해 만반의 준비를 거쳤다. KBO 심판위원회는 지난달 초 경기도 이천에 위치한 베어스파크에서 동계훈련을 진행했는데, 여기서 ABS와 피치 클락 등 새로 도입될 시스템에 대한 적응에 나섰다. KBO 허구연 총재는 훈련 현장을 방문해 "ABS와 피치클락의 안정적인 운영을 위해 심판위원들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며 의견을 청취하고 철저한 준비를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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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 시스템에 적응 훈련을 하고 있는 KBO 심판들. /사진=뉴스1 |
로봇 심판의 도입은 불필요한 항의를 막아 갈등을 줄일 수 있다는 의의가 있다. 이에 '심판의 밥그릇이 뺏길 수 있지 않나'는 우려에도 오히려 심판들이 환영하고 있다. 동계훈련 당시 허운 전 KBO 심판위원장은 "ABS가 도입된다고 할지라도 심판은 정신을 바싹 차려야 한다. ABS가 전부는 아니기 때문이다. 중요한 부분을 ABS가 해주는 것일 뿐, 더 중요한 게 또 있기 때문이다. 단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는 상황이 어느 정도 해소가 될 거다. 이 ABS가 잘 정착한다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심판들은 정말 '잘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지금도 죽을 듯한 압박감을 받는다고 호소하며 그만두려는 심판이 있다. 그렇지만 다 살려고 하는 것인데, 그러면 안 되지 않나. ABS가 잘 정착돼 이런 스트레스에서 벗어났으면 좋겠다. 그 외에 심판이 할 일은 또 많기 때문이다. 물론 '이게 잘 될까'하는 걱정도 있는 게 사실이다. 정말 성공적으로 잘 됐으면 좋겠다"며 새 제도 도입을 긍정적으로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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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판이 이어폰을 끼고 볼 판정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
이와 함께 볼을 받는 포수의 역할에도 변화가 생기리라는 전망도 나온다. 그동안 포수들은 투구를 받을 때 스트라이크존 바깥으로 들어오는 볼을 안으로 끌어당겨 마치 스트라이크인 것처럼 만드는 프레이밍(Framing), 속칭 미트질을 해왔다. 메이저리그에서는 이미 포수의 중요한 기술로 주목받았고, 아예 WAR(대체선수 대비 승리기여)에도 영향을 끼치는 요인이 됐다. KBO에서도 몇몇 포수들이 현장의 평가나 수치상으로도 모두 뛰어난 프레이밍 능력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눈에 띌 정도로 과도한 프레이밍에 팬들에게는 오히려 좋지 못한 반응을 얻고 있다. 여기에 ABS까지 도입된다면 눈속임의 일종인 프레이밍이 의미가 없어지면서 포수들의 역할이 더욱 줄어들 수도 있다는 우려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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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 롯데 자이언츠 감독. |
현장의 반응은 달랐다. 포수 출신인 김태형(57) 롯데 자이언츠 감독은 "'포수가 이제 프레이밍 할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건 절대 아니다"고 단호하게 밝혔다. 김 감독은 "투수들이 본인 공을 포수가 정확히 잘 잡아줬을 때 느낌이 더 온다. 그렇기에 그 부분에서는 전혀 문제가 없다"면서 "로봇 심판이 도입된다면 시행착오는 있겠지만, 로봇 심판로 인해 포수에 대해 다른 방향으로 가는 건 전혀 없을 것이다"고 말했다.
KBO 리그에서 가장 프레이밍이 좋은 포수로 정평이 난 롯데 유강남(32)도 비슷한 생각이었다. 그는 "ABS를 속이는 건 쉽지 않다"며 "그보다 중요한 건 투수에게 안정감을 주는 것이다"고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유강남은 "로봇 심판이 도입된다고 해서 투수가 던지는 공을 불안하게 잡는다고 하면 그 또한 투수가 공을 던지는 데 있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걸 의식하지 않고 더욱 안정적으로 잡으려고 노력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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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 유강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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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혁. /사진=NC 다이노스 |
또다른 베테랑 포수인 NC 다이노스의 박세혁(34)은 "(로봇 심판의) 스트라이크존이 어떻게 형성되는지는 모르겠다"며 "도입되면 맞춰서 해야 한다. 기계를 속일 수 있는 것도 아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프레이밍에 대해서는 "투수가 던질 때의 느낌이나 보는 시각이 있다"며 "로봇 심판이라고 너무 대충 잡거나 하면 투수들이 밸런스가 흐트러졌다고 생각할 수 있다. 똑같이 잡아줘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현장의 의견을 종합하면 여전히 프레이밍은 포수 능력에 대한 평가에서 빠질 수 없을 전망이다. 하지만 프레이밍의 의미는 다소 달라질 것이다. 이전에는 스트라이크 판정을 받기 위한 용도였다면, 이제는 투수에게 안정감을 주기 위한 목적이 될 것으로 보인다.
양정웅 기자 orionbear@mtstar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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