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L 돋보기] 라르손에서 앙리까지…단기 임대로 부활한 전설
입력 : 2012.01.13기사보내기 :  트위터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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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탈코리아] 한준 기자= 아스널의 황금기를 상징하는 하이버리 경기장은 이미 아파트 단지로 변했다. 하이버리에서 다시 축구 경기가 개최될 가능성은 제로(0)다. 하이버리의 왕으로 불렸던 티에리 앙리가 아스널 유니폼을 입고 자신의 통산 득점 기록을 늘리리라는 생각도 이와 같이 제로에 수렴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믿을 수 없는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죽은 하이버리의 왕이 살아 돌아와 아스널을 구했다. 21세기 축구계의 새로운 트렌드, '단기 임대' 덕분에 가능한 일이다.

세계 축구의 정점에 섰던 영웅들은 황혼기를 맞아 고향으로 돌아가거나, 미국 혹은 중동 지역에서 현역 생활을 보낸다. 통상 8월부터 이듬해 5월까지 진행되는 유럽 빅리그와 달리 북유럽이나 미국 등에서는 기후의 차이와 문화적인 이유로 3,4월부터 11,12월까지 시즌 일정이 진행된다. 오프 시즌의 시점이 다르고, 긴 동계 휴식 기간 동안 높은 수준에서 훈련을 하며 감각을 유지하고픈 왕년의 스타들은 빅리그의 친정을 찾는다. 그리고 위기에 빠진 친정은 여전히 건재한 왕년의 해결사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단기 임대의 아이디어는 그곳에서 출발했다.

기간은 현 소속팀의 일정이 시작되기 전, 1월부터 3월까지의 짧은 시간에 불과하지만 핵심 선수의 부상 및 부진으로 고심하고 있는 팀에게는 가뭄의 단비다. 감독에겐 조커카드가 되고 팬들에겐 향수를 자극하며, 선수 본인에겐 최고의 무대에 다시 설 수 있는 '윈윈윈(win-win-win)' 정책. 단기 임대를 통해 빛을 본 전설의 이야기를 한자리에 모았다.

▲ 헨릭 라르손(1971년생, 스웨덴, 공격수)
전성기| '왕 중의 왕'이라는 별명으로 불린 라르손은 스웨덴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라르손은 1993년부터 1997년까지 네덜란드 페예노르트에서 활약하며 두 차례 리그 우승을 이끌었다. 스코틀랜드 셀틱으로 이적한 뒤 유럽 최고 공격수 반열에 올랐다. 1997년부터 2004년까지 221경기에서 173골을 몰아치며 셀틱에 10개의 우승 트로피를 선사했다. 황혼기 무렵에 맞은 전성기에는 당시에서 최고로 평가 받던 FC 바르셀로나로 이적했다. 2005/2006시즌 스페인 라리가, 수페르코파,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루며 유럽 축구계의 정상에 섰다.

임대 시기 및 클럽| 2007년 1월~3월, 헬싱보리(스웨덴)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잉글랜드). 라르손은 바르셀로나에서 두 시즌을 보낸 뒤 유수의 빅클럽이 거액의 이적 제안에도 2006년에 가족, 그리고 친정팀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스웨덴 클럽 헬싱보리로 이적했다. 2006년 스웨덴컵 우승을 이루며 안정적으로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던 라르손은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 겨울 이적 시장을 앞두고 했던 공언, "모두가 놀랄만할 영입이 있을 것"이라는 말의 주인공이었다. 당시 맨유는 뤼트 판니스텔로이의 레알 마드리드 이적 이후 최전방 공격진의 부상과 부진으로 무게감이 크게 떨어진 상태였다. 당시 만 36세의 라르손은 2007년 1월 1일부터 3월 10일까지 정확히 10주간 임대 계약을 체결했다.

활약상| 라르손은 프리미어리그, FA컵, 챔피언스리그 등 세 개 대회의 13경기에 출전해 3골을 넣었다. 중요한 것인 세 개의 대회에서 가장 결정적인 3경기에서 모두 득점했다는 사실과, 라르손이 뛴 13경기에서 맨유가 단 1패 만을 기록(10승 2무 1패)하며 빼어난 성적을 거뒀다는 것이다. 라르손은 1월 7일 애스턴 빌라와의 FA컵 64강전에 출전해 선제골을 기록하며 팀의 2-1 승리를 이끌었다. 3월 7일 릴과의 챔피언스리그 16강 2차전 홈 경기에서 결승골을 기록하며 올드 트래퍼드에서의 마지막 경기에 주인공이 됐다. 맨유는 10주간 펼쳐진 라르손의 놀라운 활약에 시즌 말까지 임대 연장 제안을 했으나 라르손은 원소속팀 헬싱보리와 신의를 지켰다. 그는 "나는 애초부터 10주의 기간동안 계약했다. 내가 가지 않으면 헬싱보리는 공격수가 없고, 준비할 수 있는 시간도 없다. 맨유에서의 시간은 행복했고, 맨유를 사랑하지만 나는 약속을 지켜야한다"는 말을 남기고 맨유를 떠났다. 짧고, 굵은 활약이었다.

수집한 트로피| 2006/2007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우승. 맨유는 야심차게 트레블(3관왕)에 도전했지만 UEFA 챔피언스리그 준결승전에서 AC 밀란에 패해 탈락했고, FA컵 대회에 결승전에서 첼시에 패했다. 맨유 팬들 사이에는 라르손이 남아있었다면 3관왕 달성이 가능했을지 모른다는 아쉬움이 아직도 남아있다.

말말말| "라르손은 신의를 지키는 남자다. 일에 대한 그의 헌신적인 자세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 36세의 나이지만 몇 년은 프리미어 리그에서 더 뛸 수 있다. 그는 정말 환상적인 선수다. 붙잡을 수 있다면 무슨 일이라도 하고 싶다." - 알렉스 퍼거슨(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감독)

그 이후| 라르손은 헬싱보리로 돌아와 2007년부터 2009년까지 3시즌 동안 30골을 기록하며 활약했으나 우승은 이루지 못했다. 2008년에 스웨덴 대표팀에 복귀해 유로2008 본선에 참가했다. 2009년 말에 클럽팀과 대표팀에서 모두 은퇴를 선언했다. 은퇴와 함께 2009년 스웨덴 2부리그 소속의 란즈크로나 BoIS의 감독으로 부임해 지도자 경력을 시작했다.



▲ 데이비드 베컴(1975년생, 잉글랜드, 미드필더)
전성기| 잉글랜드를 대표하는 오른발, 세계 최고의 축구 아이콘, 설명이 필요 없는 '슈퍼스타' 베컴은 세계적인 명문클럽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레알 마드리드를 대표하는 선수다. 베컴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1993년부터 2003년까지 10년 동안 399경기에서 87골을 기록했다. 황금의 오른발로 맨유 역사상 최고의 7번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맨유에서 프리미어리그 우승 6회를 비롯해 1999년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포함한 트레블의 주역으로 활약했다. 2000년부터 2006년까지는 잉글랜드 대표팀의 주장으로 영국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인정 받았다. 2003년에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해 2006/2007시즌 라리가 우승의 주역으로 활약했다. 레알 마드리드의 인기를 전 세계로 확장시킨 주역이다. 파비오 카펠로 감독과의 불화, 라몬 칼데론 회장의 갈락티코 숙청 과정에서 2007년 레알 마드리드를 떠나 LA 갤럭시로 이적했다.

임대 시기 및 클럽| 2009년 1월~6월, 2010년 1월~3월, LA 갤럭시(미국) -> AC 밀란(이탈리아). 베컴은 2006년 독일 월드컵 이후 대표팀 주장직을 반납했고 이후 대표팀의 부름도 받지 못했다. 잉글랜드는 유로2008 본선 진출에 실패했고, 베컴은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 선수 생활의 대미를 장식하길 꿈꿨다. 레알 마드리드 시절 자신을 중용하지 않았던 카펠로가 잉글랜드 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했지만 카펠로는 라리가 우승을 이룬 베컴의 성실함을 인정했다. 하지만 미국 메이저리그의 수준과 겨울의 긴 휴식기가 경기력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생각했다. 베컴은 이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2009년 1월 이탈리아 명문클럽 AC 밀란 단기 임대를 선택했다. 당초 임대 계약은 3월까지였지만 밀란 역시 짧은 기간동안의 인상적인 활약에 임대 연장을 제안했고, 베컴 역시 시즌을 모두 보내고 싶다는 뜻을 보였다. LA 갤럭시의 동의로 시즌 말인 6월까지 임대 기간을 늘렸다. 2010년 두 번째 임대 시기에는 3월에 아킬레스건 부상을 입으며 임대 생활이 끝났고 수 개월 동안 재활 작업에 임하게 됐다. 월드컵 출전도 무산됐다.

활약상| 베컴은 2008/2009시즌 세리에A 18경기에 출전해 2골 5도움을 기록했다. 1월 25일 볼로냐와의 20라운드 원정 경기에서 1호골을 신고했고, 곧바로 21라운드 제노아전에서는 프리킥 득점을 쏘아올렸다. 라치오와의 22라운드 원정 경기에서 2개의 도움을 기록하며 3-0 완승을 이끌며 절정의 활약을 펼쳤다. 베르더 브레멘과의 UEFA컵 두 경기에도 출전했다. 2009/2010시즌에는 세리에A 11경기에서 1개의 도움을 올리는 데 그쳤다. 친정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챔피언스리그 16강 2연전에 출전하며 감격의 순간을 맞았으나 인상적인 활약을 펼치지 못했다.

수집한 트로피| 밀란은 베컴이 활동한 시즌을 무관으로 마쳤다.

말말말| "베컴은 기대할 수 있었던 일 이상의 것을 해줬다. 그는 진정한 프로다." - 카를로 안첼로티(당시 밀란 감독)

그 이후| 2009년의 임대 기간 연장과 2010년 아킬레스건 부상으로 미국 축구 팬들은 베컴이 메이저리그를 경시한다며 비판했다. 2011년 1월에는 토트넘 홋스퍼에서 함께 훈련하며 단기 임대 및 이적 가능성이 수면 위로 떠올랐으나 갤럭시의 반대로 무산됐다. 2011년 부상에서 복귀한 베컴은 갤럭시에 헌신했고, MLS컵 우승을 이끌며 야유를 갈채로 바꾸었다. 2011년 MLS 올해의 재기상을 받았다. 베컴은 2012년 1월 이적 시장에서 프랑스 클럽 PSG의 이적 제안을 받았으나 고심 끝에 갤럭시와 연장 계약을 체결했다.



▲ 랜든 도너번(1982년생, 미국, 공격수)
전성기| 미국 축구가 낳은 최고의 스타 도노번은 1999년 바이엘 레버쿠젠과 6년 계약을 맺었다. 그는 2001년 새너제이 어스퀘이크로 임대되어 두 차례 MLS컵 우승과 함께 프로 경력을 시작했다. 2003년과 2004년에 올해의 선수상을 받은 도너번은 2005년에 레버쿠젠으로 돌아왔으나 7경기에 나서는 데 그쳤다. 선발 출전은 2회에 불과했다. 주전 입지 다지기에 실패한 도너번은 LA 갤럭시로 이적하며 미국 무대로 돌아왔다. 미국 대표팀의 핵심 공격수로 2002년 한일 월드컵 8강, 2005, 2007 북중미 골드컵 우승 등을 이끌었다. 갤럭시의 주장으로 두 차례 MLS컵 우승을 이뤘다. 미국 올해의 선수상을 4차례나 탔다. 미국 대표 선수로 139경기에 출전해고, 최다골(49득점)과 최다 도움(47어시스트)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임대 시기 및 클럽| 2009년 1월~3월, LA 갤럭시(미국) -> 바이에른 뮌헨(독일), 2010년 1월~3월, LA 갤럭시(미국) -> 에버턴(잉글랜드), 2012년 1월~3월 LA 갤럭시(미국) -> 에버턴(잉글랜드). 도너번은 현역 생활의 전성기를 맞아 독일 무대 재진출을 꿈꿨다. 2009년 1월 주전 윙어들의 잦은 부상 속에 최고 명문 뮌헨이 단기 임대를 제안했다. 도노번은 5차례 친선전에서 4골을 기록하며 맹활약을 예고했다. 그는 5차례 분데스리가 경기와 DFB 포칼에 출전했으나 대부분 교체 투입되어 큰 인상을 남기지 못했다. 하지만 2010년 에버턴에서는 맹활약을 펼쳤다. 임대 연장 제의를 받았으나 갤럭시가 거부했다. 에버턴은 도너번 임대에 매력을 느껴 2012년에 또 한번 단기 임대했다.

활약상| 도너번은 2010년 1월 에버턴 이달의 선수상을 받았다. 프리미어리그 데뷔전이었던 1월 9일 아스널 원정에서 어시스트를 기록하며 2-2 무승부를 이끌었고, 선덜랜드와의 1월 27일 경기에서 데뷔골을 넣어 2-0 승리를 이끌었다. 2월 10일 첼시전에서 어시스트하며 2-1 깜짝 승리를 이끌었고 3월 7일 임대 종료를 앞둔 헐시티전에 1골 1도움으로 5-1 대승의 주역이 됐다. 유로파리그와 FA컵 경기도 경험했다. 올 시즌 다시 에버턴에 임대된 도너번은 11월 7일 탐워스와 FA컵 경기에서 5분 만에 어시스트를 기록하며 2-0 승리를 이끌었다.

▲ 티에리 앙리(1977년생, 프랑스, 공격수)
전성기| 프랑스 모나코에서 1997년 리그 우승,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우승과 유로2000 우승을 이룬 앙리는 이탈리아 유벤투스에서 힘든 시기를 보냈지만 아스널에서 전성 시대를 맞았다. 앙리는 두 차례 프리미어리그 우승, 세 차례 FA컵 우승을 이루며 아스널의 황금기를 이끌었다. 4차례나 프리미어리그 득점왕을 차지했고, 선수들과 기자들이 뽑은 올해의 선수상도 차지했다. 앙리는 프리미어리그 10년간 촤고의 외국인 선수 베스트11에 선정되기도 했다. 아스널이 대대적인 세대교체를 진행한 2007년 바르셀로나로 이적한 앙리는 입단 첫 해 고전했으나 2009년 바르셀로나의 6관왕(챔피언스리그, 클럽월드컵, 라리가, 슈퍼컵, 스페인 수페르코파, 코파 델레이 우승)을 함께 했다. 2010년 여름 미국 뉴욕 레드 불스로 이적해 선수 생활의 황혼기를 보내고 있다.

임대 시기 및 클럽| 2012년 1월~3월, 뉴욕 레드 불스(미국) -> 아스널(잉글랜드). 2011년 메이저리그에서 맹활약하며 올해의 팀에 선정된 앙리는 겨울 오프 시즌을 맞아 친정팀 아스널에서 훈련했다. 훈련 과정에서 앙리의 건재를 확인한 아스널은 마루아네 샤마흐와 제르비뉴가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에 차출되는 기간 동안의 공격진 공백을 메우기 위해 앙리의 단기 임대를 성사시켰다.

활약상| 앙리는 리즈 유나이티드와의 FA컵 64강전에 교체 투입되어 팽팽하던 0-0 승부의 균형을 깨는 결승골을 기록했다. 복귀전에서 곧바로 득점하며 아스널 팬들에게 과거 무패 우승을 달성하는 등 무적의 행보를 보이던 시절의 향수를 자극했다. 활동량은 예전보다 떨어졌지만 문전에서의 감각과 날카로움은 여전했다. 앙리는 최근 아스널 축구가 잃었던 영감을 되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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