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인터뷰] 최강희, ''이천수는 애정 아닌 애증덩어리''
입력 : 2012.01.12기사보내기 :  트위터  페이스북
"이천수, 고종수 이후 가장 안타까운 선수"
"왕따 문제 모두가 함께 고민하고 없어져야 할 현상"
"일본은 죽을 때까지 영원히 이겨야 할 상대"
"소녀시대 보다는 티아라! 난 티아라의 노인네 팬"

[스포탈코리아] 주사위는 던져졌고, 시간은 정해졌다. 최강희 감독이 미디어들을 상대하는 첫 날의 마지막 인터뷰. 배정받은 시간은 15분이었다. 오전 10시부터 인터뷰를 시작한 최강희 감독의 상태는 굳이 눈으로 확인하지 않아도 그려질 만했다. 아예 인터뷰의 틀 자체로 바꾸기로 했다. 무거운 주제 혹은 비슷한 질문보다는 축구와 시사 그리고 인물을 망라한 ‘키워드 그물’을 준비했다.

인터뷰 장소에서 만난 최 감독은 “오늘 안에만 끝내달라”라며 특유의 사람 좋은 웃음을 지어보였다. 인터뷰는 ‘스포탈코리아’가 제시하는 키워드에 감독이 당장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들을 풀어내는 식으로 진행됐다. 민감하거나 복잡한 생각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키워드에는 대답하지 않을 수 있는 ‘우대권’도 하나 준비했다. 그러나 최 감독은 “패스는 안 한다. 오기가 있지”라고 말하며 성큼 다가섰다.

언제나 그렇듯 최 감독은 거침이 없었다. 현란한 말의 드리블은 축구의 경계를 훌쩍 뛰어넘어 사회와 연예계를 노크하기도 했다. 질문 그물에 걸려 펄떡이는 최 감독의 ‘싱싱한’ 말을 모아 들여 여러분에게 공개한다.

쿠웨이트
한국의 밥이지. 한국이 넘어야 할 작은 산이다. 충분히 준비만 잘하면 얼마든지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좋은 분위기, 좋은 선수 구성은 내 임무다. 한국축구가 쿠웨이트를 걱정하면 안 된다. 그러면 월드컵 나가지 말아야지. 그 정도의 자신감은 있다. 우리 선수들에게도 자신감을 심어줘야지. (쿠웨이트전)뒤에는 더 큰 봉우리들이 도사리고 있다.

참치
동원 참치? 몸에 좋은 생선, 즐겨 먹는 생선. 지동원을 바라고 한 질문은 아니지?(웃음)

이천수
(키워드를 보고 미묘한 웃음을 머금었다) 애정이 아닌, 애증의 덩어리다. 항상 안타깝게 생각을 하고 있다. 고종수를 볼 때와 비슷한 감정이다. 정말 좋은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꽃을 피우지 못했거나, 너무 일찍 졌다라고 할까. 난 운동 선수도 예술가와 같다고 생각한다. 스타는 성격이 평범하지 않다. 독특해서 그런 그림과 음악을 만들어 내는 것 아닌가? 어렸을 때부터 독특한 성격을 잘 인도해주면서 살려줘야 하는데, 한국 문화는 틀 안에 집에 넣으려 하고 인정을 안 하려 하니 이런 현상이 나온 것 같다. 재능을 잘 알고 인정하고 있었다. 여담이지만 고종수도 마지막에 대전에 가려고 할 때 영입하려고 했었다. 그런데 구단에서 일언지하에 거절당했다. 선입견 때문이었다. 고종수 이후로 가장 안타깝게 생각하는 선수였다.



왕따
요즘 신문지상을 가득 채우고 있는 단어. 이게 일본에서 넘어온 것인가? 우리가 어렸을 때만해도 이렇게 심한 현상으로는 없었다. 힘없는 한 사람을 가혹하게 여럿이 괴롭히는 좋지 않은 행동이다. 본인이 당해보지 않고는 심정을 모르지 않을까? 이 문제에 관심이 많아서 컬럼과 기사를 읽어보니 가족들까지 엄청난 피해를 받는다는 것을 알게 됐다. 빨리 없어져야 할 현상이고, 모든 이가 함께 고민해야 할 현상이다. 난 팀을 운영할 때도 파벌, 편 가르기, 놀음은 절대 악이라고 생각한다. 팀이 망하는 지름길이다.

황보관
(파안대소 후)내게 유일하게 1승을 거둔 아저씨. 나에게는 1패를 안기고 갔다. 그 1패와 대표팀 감독을 맞바꾼 것은 아니다. 일부러 져줬냐고? 그건 말 못한다. 비밀이니까. 더 궁금하게 만들어야지.(웃음) 선수 생활을 같이 했던 후배다. 착하고 성실하다. 서울 감독이 된 것이 반갑고 좋았다. 일본에서 고생도 많이 했고, 감독과 경영자를 두루 거쳤다. 잘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좋은 결과를 보지는 못했다. (사임이) 남의 일 같지 않았다. 이후 공교롭게 축구협회 들어왔고 기술위원장까지 맡았다. 봉동에 앉아서 ‘잘 됐다’라고 생각했는데, 나에게 화살이 올지는 몰랐다. 총대를 메고 내게 오길래 “이 더러운 X, 저리 안가!”라고 했는데 “대안이 없습니다”라고 설득하더라. 당시에는 눈길도 안 줬는데 이제 한솥밥을 먹게 됐다. 공통적인 목표를 갖고 같은 길을 가고 있다. 아마 운명인 것 같다. 말하고 보니 일부러 져준 것 같은데? 재미난 스토리네.(웃음)



일본
일본은 감독을 그만둘 때까지, 죽을 때까지 영원히 이겨야 하는 상대이자 영원한 숙적이다. 내가 선수 생활 할 때 일본과 맞붙는 것은 축구가 아니라 전쟁이었다. 근성이 있었다. 침략, 위안부 할머니 문제 같은 치욕적인 역사가 있는데, 축구를 통해서라도 통쾌함을 주고 싶은 마음이 컸다. 1992년인가 1993년까지는 우리가 압도적이었는데 이제는 비슷해진 것 같다. 우리는 일본에는 안 진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은 그런 후배들은 없다. 감정이 퇴색됐다. 최종예선전에서 경기를 한다면 선수들에게 표현을 해야하지 않을까? “목숨을 걸어야 한다. 이건 축구가 아니다. 싫으면 보따리를 싸라”라고. (웃음) 스포츠는 스포츠고, 통합의 창이라고 하는데 세계적으로 보면 앙숙도 많다. 양국 관계는 발전해야 한다. 그런데 국민적인 감정은 쉽게 지워지지 않을 것 같다.

조광래
영리하고 능력 있는 지도자라고 생각한다. 수원에서 3년, 군대에서 1년 반 정도 생활을 같이 했다. 누구보다도 잘 아는 선배님이다. 대표팀을 맡았을 때 ‘굉장히 잘 할거다. 효율적으로 끌고 갈거다’라고 생각했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까지 잘 하셨으면 좋겠다라는 마음이었다. 어느 날 경질 이야기가 나오고 바로 내게 화살이 나한테 꽂혀서 굉장히 당황했다. 조 감독님께 전화를 드렸느냐는 질문도 많이 받았는데, 어떠한 위로나 위안도 드릴 수 있는 시기가 아니다. 지금은 아니다.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문제다. 나도 이 모양새가 안타깝다. 잘 추스르시고, 좋은 능력을 K리그나 다른 팀에서 보여주셨으면 좋겠다.



월드컵
올림픽은 종합 스포츠 축제다. 하지만 월드컵, 축구는 단일 종목으로 가장 많은 사람들을 웃고 울릴 수 있다. 우리 국민들을 가장 많이 웃기고 울렸던 무대도 월드컵이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축구를 했고 지금은 축구 지도다. 다소 무리한 목표일 수도 있지만, 그런 꿈을 꾼다. 월드컵을 차지할 꿈을 품어야 하지 않을까? 4년마다 되풀이 되는 축제를 우리도 계속 즐겨야 한다. 월드컵은 축구의 존재 이유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티아라 & 소녀시대
원래는 소녀시대를 좋아했다. 그런데 ‘티아라의 저주’가 나왔다. 서울 월드컵 경기장에서 초록색 옷을 입고 우리를 응원(?)했고, 심우연이 결승골을 터뜨렸다. 급 관심! 좋아하게 됐다. 리더가 은정 양인가? 나도 모르게 팬이 됐다. 전주에도 초청하지 않았나. 아무래도 멀리서 보던 것과는 다르더라. 난 노인네 팬이다.


인터뷰를 마치고 사진 촬영을 했다. 가장 마음에 드는 키워드를 들어달라는 요청에 최 감독은 주저 없이 ‘이천수’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밑에 늘어놓은 카드들을 살펴보다가 “이왕이면 일본을 밟아야지”라며 웃었다. 최 감독은 프로였다. 목소리가 잠기고 갈라지는 와중에도 분위기에 신경을 썼다. 그는 사진기자에게 “이건 죄수들이 사진 찍는 포즈가 아닌가?”라고 물으며 주위 사람들을 웃음 바다로 밀어 넣었다.


인터뷰= 배진경/류청 기자
사진= 이연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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