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탈코리아] 한준 기자= 승승장구하던 맨체스터 시티(이하 맨시티)가 올 시즌 첫 2연패를 당했다. 그것도 안방에서 연이어 패했다. 올 시즌 프리미어리그 홈 경기에서 10전 전승을 기록 중인 맨시티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와의 FA컵 64강전에서 2-3으로 패한 것에 이어 리버풀과의 칼링컵 준결승 1차전에서 0-1 패배를 당했다. FA컵 타이틀 방어에 실패했고, 칼링컵 우승 전선에 비상이 걸렸다.

물론 상대팀이 잉글랜드를 대표하는 강호 맨유와 리버풀이었다는 점에서 맨시티의 패배를 이변이라고 부르기에는 무리가 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맨시티가 이들을 상대로 승리하는 것이 이변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올 시즌은 상황이 다르다. 맨시티는 앞서 맨유와의 리그 원정 경기에서 6-1 대승을 거뒀고, 8일 전에 치른 리버풀과의 리그 경기에서도 3-0 완승을 거뒀다. 압도적인 힘의 차이를 보여준 것이다. 맨시티는 올 시즌 전 유럽이 인정하는 막강 전력을 구축하고 있다.

잘 나가던 맨시티가 연속 패배를 당한 이유는 무엇일까? 맨시티의 로베르토 만치니 감독은 맨유, 리버풀과의 경기 전부터 주축 선수들의 연이은 전력 이탈을 우려했다. 수비와 중원의 중추인 투레 형제가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참가를 위해 코트디부아르 대표팀에 차출됐고, 주장 뱅상 콩파니는 맨유전에 당한 퇴장으로 4경기 출전 정지 징계를 받았다. 설상가상으로 경미한 것으로 알려진 플레이메이커 다비드 실바의 발목 부상이 장기화 조짐을 보였다. 만치니 감독은 “불행하다”고 표현했다.

2년 사이에 2억 5천만 파운드를 투자해 자신이 원하는 ‘더블 스쿼드’를 구축한 만치니 감독의 불만을 적지 않은 이들이 투정으로 여겼다. 맨시티는 4명의 이탈 선수를 대신할 자원이 충분해 보였기 때문이다. 수비수 졸레온 레스콧, 미드필더 나이젤 데용과 아담 존슨, 플레이메이커 사미르 나스리는 어느 팀에 가도 주전 자리를 꿰찰 수 있는 선수들이다. 게다가 맨시티가 자랑하는 화려한 공격진(세르히오 아구에로, 마리오 발로텔리, 에딘 제코)가 정상적으로 소집된 상태였다. 선수가 부족하다는 만치니 감독의 말은 엄살로 들릴 수 밖에 없었다.



맨체스터 시티, 안방 2연패의 원인은 ‘척추 손실’

하지만 리버풀과의 경기에서 뚜껑을 열어보니 맨시티의 경기력은 재앙에 가까운 수준이었다. 이탈한 주전 선수들의 공백은 컸다. 맨시티가 잃은 4명의 선수 중 3명, 센터백 뱅상 콩파니, 미드필더 야야 투레, 플레이메이커 다비드 실바는 맨시티의 ‘중심 기둥’이다. 조 하트 골키퍼와 함께 만치니 감독이 선발 라인업을 결정할 때 가장 먼저 써내려 갈 이름이다. 단순한 선수 3명이 아니라 가장 중요한 선수 3명을 잃은 것은 엄살로 치부하기엔 전력 손실이 극심하다. 과거 레알 마드리드 갈락티코 1기는 호나우두, 라울, 피구, 지단, 베컴 등 화려한 공격진을 자랑했지만 클로드 마켈렐레와 페르난도 이에로라는 두 중심축을 떠나보냈기 때문에 메이저 트로피를 하나도 함께 들지 못했다.

스페인 축구계에서 최고의 명장으로 꼽히는 루이스 아라고네스 감독은 일명 ‘안전 통로’로 불리는 팀의 척추를 세우는 것이 팀 빌딩의 관건이라고 말해왔다. 아라고네스 감독은 포메이션의 중앙을 관통하는 골키퍼, 센터백, 중앙 미드필더, 공격형 미드필더 포지션이 확고해야 팀이 흔들리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이 중앙 기둥이 제대로 확립되지 못한다면 아무리 화려한 선수가 많아도 팀의 전력으로 온전히 반영되지 못한다.

역사적으로 세계 최고의 팀으로 꼽혀온 팀들, 그리고 지금 세계 최고의 팀으로 꼽히는 바르셀로나(발데스-피케-부스케츠-차비-메시)와 레알 마드리드(카시야스-라모스-알론소-외칠)도 이러한 중심 기둥을 구축했다. 맨시티에선 지금 이탈한 3명의 선수가 바로 그런 존재다. 맨시티는 하트가 골문을 장악하고 콩파니가 볼을 처리하며 야야 투레가 볼을 운반하고 실바가 창조적인 패스를 연결하면 아구에로가 마무리한다. 이들 중 한 명만 빠져도 균열이 생긴다.

물론 각 포지션 별로 유사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백업 요원이 존재한다. 한 두명의 이탈은 커버가 가능하다. 하지만 결정적인 경기에선 차이가 날 수 밖에 없다. 단판전으로 탈락 여부가 갈리는 토너먼트 경기, 관록을 갖춘 강호와의 경기에서는 이런 작은 차이가 승패를 가른다. 게다가 3명의 선수가 한꺼번에 이탈했다면 전력 손실은 상상 이상이다. 4명 중 남은 선수가 꼭지점 아구에로라는 점에서 맨시티는 척추를 잃은 채 경기를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맨시티는 리버풀전에서 만성 디스크 환자처럼 무력해 보였다.



콩파니-야야 투레-다비드 실바 동시 결장, 대체 불가능한 치명타

주장 뱅상 콩파니의 공백을 대신한 어린 수비수 스테판 사비치는 무모하고 거친 수비를 펼치다 페널티킥을 내주고 말았다. 이때 내준 실점이 결국 결승골이 됐다. 콩파니였다면 무모한 발길질 대신 노련하게 슈팅 루트를 차단하고 볼을 처리할 수 있었다. VIP석에서 경기를 지켜본 콩파니의 표정은 잔뜩 굳어 있었다. 콩파니의 부재는 팀 정신에도 영향을 미쳤다. 맨시티는 소모적인 감정 싸움으로 시간을 허비했고, 시간이 지날수록 결집력이 떨어졌다. 콩파니의 호통이 필요했다.

전반 13분에 터진 선제골로 원정 팀 리버풀은 경기를 쉽게 풀어갈 수 있었다. 자기 진영에 진을 치고 맨시티에 공간을 내주지 않았다. 맨시티는 리버풀의 전면 압박을 상대로 중원에서 창조성을 발휘하지 못했다. 야야 투레를 대신해 투입된 수비형 미드필더 나이젤 데용과 중앙 미드필더 개러스 배리는 유효한 전진 패스를 하나도 연결하지 못했다. 의미 없는 백패스와 단조로운 측면 패스의 연속이었다. 리버풀의 압박을 상대로 볼을 컨트롤하지도, 운반하지도 못했다. 야야 투레였다면 과감한 전진 패스, 2선 공격진과의 유기적인 연계 플레이, 번개 같은 전방 침투로 차이를 무에서 유를 창조할 수 있었을 것이다.

‘에이스’ 다비드 실바의 부재도 치명적이었다. 맨시티는 왼쪽에 아담 존슨, 오른쪽에 제임스 밀너를 투입했다. 전방 공격수 마리오 발로텔리와 세르히오 아구에로를 수시로 전후로 움직이게 하며 2선 공격을 지원케 했다. 존슨과 밀너는 중앙에서 전혀 창조성을 보여주지 못했다. 중앙 미드필드진으로부터 적절한 지원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단조로운 돌파를 시도하는 데 그쳤다. 발로텔리와 아구에로는 손발이 맞지 않았다. 존슨, 밀너와의 유기성도 떨어졌다. 수비진 사이에 고립되어 의미 없이 뛰어다니는 시간이 길었다.

발로텔리의 선발 투입은 패착이었다. 발로텔리는 발목 부상의 여파에서 완벽히 회복되지 않은 모습이었다. 리버풀 수비의 거친 견제에 평정심을 잃었다. 자신의 감정을 컨트롤하지 못해 경기를 망쳤다. 결국 전반전이 끝나기 전에 교체 아웃됐다. 나스리가 투입되자 실바에게 기대할 수 있는 컨트롤과 드리블, 슈팅과 킬러 패스가 몇 차례 발휘됐다. 하지만 혼자 힘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아구에로는 맨시티 공격의 첨병이다. 하지만 볼을 이어 받지 못하면 무용지물이다. 아구에로는 유효한 공격 기회를 거의 얻지 못했다. 후반 초반 리버풀의 패스 실수로 얻은 기회도 살리지 못했다. 빗줄기와 진눈깨비가 섞여 내린 그라운드에서 볼을 자주 미끄러졌다. 두어 차례 좋은 슈팅이 있었지만 골문을 외면했다. 경기 종료 직전 헤딩슛도 크로스바를 넘겼다. 경기 내내 아구에로의 표정은 어두웠다.

맨시티가 자랑하는 화려한 중원 공격이 실종된 상황에서 가장 효과적인 공격 카드는 신체 조건이 뛰어난 에딘 제코였다. 하지만 제코 역시 최근 부상에서 회복해 정상 컨디션이 아니었다. 만치니 감독은 후반 21분에 제코를 투입해 전방의 포스트 플레이를 강화했다. 제코가 투입된 후에야 2선에 숨통이 트였다. 하지만 리버풀은 미드필더 스튜어트 다우닝과 공격수 크레이그 벨라미를 빼고 수비수 호세 엔레키와 제이미 캐러거를 투입해 자물통 수비를 펼쳤다. 페널티 에어리아 안에 무려 6명의 전문 수비수가 배치된 리버풀의 ‘자물통 수비’를 뚫는 것은 바르셀로나가 와도 불가능해 보였다.



리버풀의 ‘캡틴’ 제라드, 맨시티가 갖지 못한 ‘원맨 척추’

리버풀 역시 전력 공백이 적지 않은 상황이었다. 주축 공격수 루이스 수아레스가 인종 차별 발언으로 인한 징계로 이탈했고, 핵심 미드필더 루카스 레이바는 장기 부상 명단에 올랐다. 경기 초반에 유일한 전문 수비형 미드필더 제이 스피어링까지 부상으로 교체됐다. 하지만 ‘영원한 주장’ 스티븐 제라드가 이들 모두의 공백을 커버했다. 깔끔하게 페널티킥을 성공시키며 결승골을 넣었고, 부지런하게 뛰어 다니며 맨시티의 2선 공격을 차단했다. 마지막까지 선수들이 집중력을 잃지 않도록 독려했다.

제라드는 맨시티가 필요로 한 콩파니와 야야 투레, 실바의 역할을 홀로 수행했다. 최근 잦은 부상과 함께 전성기가 지났다는 평가를 듣고 있지만 그가 왜 ‘톱 플레이어’인가를 새삼 깨달을 수 있었던 경기였다. 만약 제라드가 없었다면 리버풀의 공격은 조 하트 골키퍼의 선방을 넘기도, 후반 맨시티의 파상공세를 버텨내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리버풀도 맨시티만큼이나 척추가 흔들리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만치니 감독이 경기 내내 불만 섞인 표정으로 분통을 터뜨린 것과 달리 리버풀의 케니 달글리시 감독은 냉철하게 승리를 이끌어 냈다. 일주일 전 맨시티 원정에서 무리하게 중원 싸움을 시도하고 전진하다가 역습으로 3골을 내주며 무너졌던 달글리시 감독은 선제골 득점 이후 노골적인 역습 작전을 구사하며 실리를 챙겼다. 일주일 전의 완패에서 교훈을 얻고 설욕에 성공한 것이다.

맨시티는 여러모로 최악의 시간을 보냈다. 많은 자금을 투자해 단기간에 강한 팀을 만들어 냈지만 관록은 돈이 아니라 시간과 경험이 가져다 주는 것이다. 전반기 챔피언스리그 탈락, 후반기 안방 2연패는 맨시티의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보여줬다. 맨시티가 더 큰 팀이 되기 위해선 이 실패에서 교훈을 얻고 발전해야 한다. 그리고 척추를 강화해야 한다.

척추를 강화하기 위해선 기량도 기량이지만 제라드처럼 팀의 정신을 대표할 수 있는 선수의 육성이 필요하다. 이날 센터백과 라이트백 역할은 물론 2선 공격까지 가담하고 세트 피스 상황에 결정적인 헤딩슛을 작렬하는 등 투혼을 불사른 마이카 리처즈는 맨시티의 척추가 될 수 있는 유력한 후보자로 보였다. 위기의 1월, 리처즈와 만치니 감독이 맨시티의 병든 척추를 치료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