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조형래 기자] 통역이자 개인 매니저 역할과 같았던 미즈하라 잇페이의 불법 도박에 본인의 연루설까지 더해지며 웃을 일이 없었던 오타니 쇼헤이. 하지만 친정팀의 환대에 모처럼 미소를 지었다. 피치클락도 오타니의 친정팀 환대에 잠시 멈췄다.
오타니는 27일(이하 한국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애너하임 에인절 스타디움에서 열린 LA 에인절스와의 시범경기 ‘프리웨이 시리즈’에서 2번 지명타자로 선발 출장했다.
2018년 오타니가 메이저리그에 데뷔하고 또 투타겸업까지 시도할 수 있게 도운 에인절스였다. LA 에인절스에서 보낸 6시즌 동안 만장일치 MVP 2회(2021, 2023)를 차지했다. 오타니가 메이저리그에 진출할 당시에도 많은 팀들이 영입 경쟁에 참전했지만 투타겸업을 확실하게 보장한 에인절스였다. 오타니는 에인절스의 배려와 믿음, 꿈을 현실로 만들었다. 타자로서 통산 716경기 타율 2할7푼4리(2483타수 681안타) 171홈런 437타점 OPS .922, 투수로는 86경기(481⅔이닝) 38승 19패 평균자책점 3.01을 기록했다.
메이저리그 최고의 스타로 지난 시즌 종료 후 FA 자격을 얻어 뜨거운 관심을 받았고 다저스와 프로스포츠 사상 최고액인 10년 7억 달러에 계약을 했다.
오는 29일 정규시즌 개막을 앞두고 시범경기 마지막 점검이자 로스앤젤레스 연고지 구단들의 정기적인 매치업이다. 25~26일에는 다저 스타디움에서, 이날은 에인절 스타디움에서 열렸다. 오타니의 이적 이후 첫 에인절 스타디움을 방문했다.
1회 오타니는 첫 타석에 들어섰다. 이후 한 차례 타임이 불러졌고 이때 에인절스 구단은 오타니를 위한 헌정 영상을 전광판을 통해 틀었다. 구심도 피치클락을 멈췄다. 오타니가 잠시 타석에 물러선 뒤 헌정 영상을 감상하고 팬들의 환대에 답하는 시간을 용인했다.
최근 오타니는 웃을 일이 없었다. 서울 개막시리즈 도중 터진 통역 미즈하라 잇페이의 불법 도박 파문에 연루되어 있다. 불법도박 마권업자인 매튜 보이어가 연방 당국의 조사를 받고 있는 가운데 오타니의 이름으로 보이어의 계좌에 수차례 입금된 내역이 확인됐다. 이는 미즈하라가 불법 도박으로 빚진 금액을 갚기 위한 송금이었다. 미즈하라가 빚진 금액은 450만 달러.
수사 과정에서 미즈하라의 불법 도박 연루 사실을 접한 ‘ESPN’은 미즈하라와의 90분 간 인터뷰를 했다. 이 자리에서 미즈하라는 오타니가 자신의 빚을 대신 갚아줬다는 취지로 말했다. 하지만 오타니 측의 대변인은 미즈하라의 인터뷰를 반박하며 오타니는 대규모 절도의 피해자라고 강조했다. 미즈하라도 첫 인터뷰를 번복했다.
이후 오타니를 둘러싼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고 하지만 자신의 계좌에서 거액을 몰래 송금할 수 있었냐는 의문이었고 오타니가 이를 몰랐다는 게 상식적으로 설명이 안된다고 강조했다. 오타니는 결국 지난 26일 직접 입을 열었다.
오타니는 “며칠 전까지만 해도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잇페이는 내 계좌에서 돈을 훔쳤고, 거짓말을 했다. 개인적으로 내가 믿었던 사람이 이런 일을 저질렀다는 게 매우 슬프고, 충격을 받았다”고 미즈하라에 배신감을 표하며 “잇페이가 도박 중독에 빠져 빚을 지고 있다는 사실조차도 몰랐다. 난 빚을 갚거나 도박업자에게 돈을 지불하는데 동의한 적 없다”는 말로 자신은 이 사건과 무관하다고 힘주어 말했다.
오타니는 “잇페이가 개막전 경기 후 호텔에서 1대1로 대화를 하자고 말했다. 경기 후 클럽하우스에서 잇페이가 다저스 선수단에 연설을 했고, 그 자리에서 영어로 말했는데 그때 내 옆에 통역이 없었다. 하지만 그 상황에서도 뭔가 잘못됐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되돌아봤다.
이어 “그 미팅이 시작되기 전까지만 해도 잇페이가 도박에 중독돼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이후 호텔로 돌아가서 1대1로 대화했을 때 그에게 엄청난 빚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 자리에서 잇페이는 내 계좌를 이용해 도박업체에 돈을 보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이후 대리인과 이야기할 때 잇페이가 계속 거짓말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다저스 구단과 나의 변호사에게 연락을 취했다. 변호사는 이건 사기이기 때문에 당국이 이 문제를 처리할 수 있게 권유를 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여전히 현지 언론은 오타니 역시 미즈하라의 불법 도박 사건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의견이 대세다. 만약 오타니가 이 사실을 몰랐다면 미즈하라가 공문서 위조 및 신원 도용 등의 혐의를 받게 된다. 아울러 오타니가 대신 빚을 갚아줬다는 사실 자체로도 연방법에 위반된다는 의견도 있다.
오타니 입장에서는 본인의 의사와는 달리 참담한 시간들이 계속되고 있었다. 그러나 최근 논란에도 불구하고 팬들은 오타니의 편이었다. 오타니의 에인절 스타디움 첫 타석에서 따뜻한 박수와 환호성으로 맞이했다. 오타니는 구단의 헌정 영상을 감상하고 팬들의 환대에 미소로 답했다. 오타니가 모처럼 미소지은 날이었다.
그러나 타석에서는 최근의 심란한 감정이 영향을 미치는 듯 했다. 오타니는 1회초 1사 주자 없는 상황에서 맞이한 첫 타석에서 체이스 실세스와 2볼 2스트라이크 승부를 펼쳤지만 6구째 96.1마일 바깥쪽 패스트볼에 헛스윙 하면서 삼진을 당했다. 3회 1사 주자 없는 상황에서 치른 두 번째 타석에서도 오타니는 삼진을 당했다. 실세스와 풀카운트 승부를 펼쳤고 6구째 79.8마일 슬라이더에 헛스윙을 했다. 이후 6회초 3번째 타석을 앞두고 미겔 로하스와 대타로 교체돼 이날 경기를 마무리 했다.
미즈하라가 불법 도박에 연루됐고 해고된 것은 지난 20일 서울 개막시리즈가 끝난 이후였다. 서울 시리즈에서는 20일 2안타, 21일 1안타, 10타수 3안타 2타점의 성적을 남겼다. 하지만 미즈하라 논란이 계속 이어지면서 25일부터 치른 프리웨이 시리즈에서 6타수 무안타 2볼넷의 성적을 기록하고 시범경기를 마무리 지었다. 이제 오타니는 29일,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의 본토 개막전에서 다저 스타디움에서 첫 선을 보인다.
한편, 경기는 오타니가 무안타로 침묵 끝에 다저스가 3-4로 끝내기 패배를 당했다. 다저스는 프레디 프리먼, 윌 스미스, 가빈 럭스가 솔로포 3방을 터뜨렸다. 선발 등판한 제임스 팩스턴은 5이닝 4피안타(1피홈런) 2볼넷 2탈삼진 3실점을 기록했다.
에인절스는 선발 체이스 실세스가 5이닝 2피안타(2피홈런) 무4사구 10탈삼진 2실점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jhrae@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