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연휘선 기자] 올봄 극장가 최고의 화제작, 영화 '승부'에 대한 바둑 황제 조훈현 국수의 인터뷰가 포착됐다.
1일 영화 '승부'(감독 김형주, 제공/배급 바이포엠스튜디오, 제작 영화사월광, 공동제작 BH엔터테인먼트) 측은 작품의 실제 모델이 된 조훈현 국수와의 인터뷰 전문을 공개했다.
'승부'는 대한민국 최고의 바둑 레전드 조훈현(이병헌)이 제자와의 대결에서 패한 후 타고난 승부사 기질로 다시 한번 정상에 도전하는 이야기로, 현재 대한민국 박스오피스 1위를 석권하며 전국 극장에서 절찬 상영 중이다.
다음은 조훈현 국수의 인터뷰 전문이다.
Q. 바둑계를 뒤흔든 세기의 대결, 사제지간 이야기에 대한 영화화 제안을 받았을 때 어떤 느낌이었는지
Q. 영화를 보고 난 후 느낌은 어떠신가요?
A. 옛날 생각이 많이 나네요. 아, 저럴 때 저랬었나 하고. 이병헌 배우님께서 굉장히 연기를 잘해주셔서 뜻은 잘 전달이 된 것 같아요.
Q. 이병헌 배우는 국수님 역할을 잘 해내기 위해 국수님의 업적과 이야기뿐만 아니라 패션, 습관 등까지 많이 찾아보고 공부했다고 합니다. 이병헌 배우가 연기한 조훈현은 어땠나요?
A. 사실 바둑이란 게, 이게 참 그려 내기가 힘들어요. 바둑이 내면적이지, 외면적인 건 아니거든요. 그런데도 보면 저를 많이 나타냈어요. ‘어? 이거 내가 옛날에 저랬는데? 저런 분위기였는데’ 하는 마음이 들어요. 그때의 분위기라든가, 거기에 알맞게 연기하셨다는 거는 대단한 명연기라고 생각이 듭니다.
Q. 영화 속 ‘조훈현’의 의상은 어떻게 보셨나요? 실제 국수님의 모습을 잘 아는 가족과 친구, 그리고 팬들까지 주변 반응을 예측해 보신다면?
A. 옷에 대해 많이 신경 썼다고 얘기 들었습니다. 사실 그때는 저는 의상은 신경을 안 썼고. 보통 아내가 다 해줬으니까 “이거 입어” 그러면 그걸 입고 나가고 그랬었죠. 영화 보니까 옷이 자주 바뀌더라고요. 이제 영화를 보고 아시는 분들에게 연락이 오겠죠. 잘 봤다든가 내용이 어떻다든가. 그런데 솔직히 아는 사람들은 나쁘게 얘기는 안 할 거예요. 아무리 나쁘게 봐도 “잘 봤어, 재밌었어” 그러지. 그니까 솔직히 얘기해서 저는 거기는 별로 안 쳐주고요. 바둑을 모르시고, 또 조훈현이라는 사람을 모르시는 분들의 반응이 궁금합니다. 저 자신도.
Q. 영화에서 표현된 조훈현과 실제 조훈현의 가장 닮은 부분과 다른 부분을 꼽는다면?
A. 제가 스승님에게 배운 게 있어요. 그걸 그대로 이창호에게 물려준 건데. 스승은 가르치는 게 아니고, 그냥 이끌어주는 거예요. 그 길로 가게끔. 영화를 보니까 막 이제 야단도 치고 하는데, 그건 영화니까 그렇고 실제로는 아니거든요. 저는 그게 아니고. 이창호가 알아서 저렇게 컸고 알아서 잘한 거지, 제가 저렇게 잘 가르친 건 아닙니다.
Q. 사제지간의 대국을 스크린으로 본 소감은?
A. 영화를 보니까 옛날 생각이 떠오르더라고요? 사실 거의 비슷하게 그려냈어요. 경기에서 졌을 때 아픔이라든가, 또 싸울 때 아픔이라든가. 그런 게 사실 좀 저로서는 저걸 어떻게 그릴 것인가, 어떻게 연기를 할 것인가 궁금했는데 아주 잘하신 것 같아요. 물론 뭐 영화가 실전이랑 똑같이는 못 그리는 거지만, 대부분 잘 그려냈고. 그래서 저 개인적으로는 만족합니다.
Q. 실제 영화의 주인공으로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또는 인상에 깊었던 장면이 있으실까요?
A. 실제와는 조금 다르지만, 제자 이창호를 가르치는 과정, 그런 장면들은 마음에 들었습니다.
Q. 전설이라는 수식어가 아니고서는 설명할 수 없는 최고의 바둑 기사이자 이 시대 최고의 승부사이십니다. 승부의 첫째 조건은 ‘기세’이며, 승부사라면 어떤 승부에서도 자신만만한 기세를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셨는데요, 2025년의 조훈현 국수님도 여전히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나요?
A. 지금은 일선에서 물러섰기 때문에 생각이 조금 다를 겁니다. 그때는 사실 최정상을 위해서만 공부를 했고, 싸워왔고, 젊었으니까 그런 자신도 있었고. 해야만 했기 때문에 했지만 지금은 하고 싶어도 따라 주지를 않아요. 그래도 지금 젊은 사람한테는 패기라든가 공부라든가, 노력하는 건 권해드리고 싶어요. 그게 뭐 사실 별거 아니지만 뭐 모든 공부라든가, 경험을 쌓으면요. 언젠가는 그게 도움이 됩니다. 제가 경험해 무언가 지금 생각해서는 쓸데없는 얘기 같을진 모르지만 결국은 무언가는 도움이 되더라고요. 그래서 뭐든지 배우고 노력하고 하다 보면 아마 앞으로 전진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합니다.
Q. 조훈현 국수님이 이창호 국수의 인생에 큰 영향을 끼친 것처럼, 이창호 국수 역시 조훈현 국수님의 인생에 큰 영향을 끼쳤을 것 같은데요. 돌이켜봤을 때 한 인간으로서, 또 동료이자 후배 바둑 기사로서 어떤 영향이 있었나요?
A. 일단 제가 뭘 가르친 것도 없는데, 세계에서 바둑으로 1인자가 되었고, 컸기 때문에 그거에 대해서 정말 내가 아무리 가르쳤다 해도 본인이 노력하지 않고 공부하지 않으면 될 수 없거든요. 그런 사람의 스승인 제가 더 고맙게 생각하고요. 또 내가 생각하기에는 남한테 욕은 안 먹는 거 같아요. 제자가 욕먹으면요, 본인도 그렇지만 스승으로서는 사실 잘못 가르친 거거든요. 그래서 무엇보다도 욕먹지 않는 제자가 돼 가지고, 또 본인이 잘해서 1인자가 돼 주어서 그걸로 만족해야 되지 않나 그렇게 생각합니다.
Q. “젊었을 때는 정상을 지키기 위해 험한 승부를 마다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승부를 떠났다. 바둑을 통해서 내 인생을 살 뿐이다”라고 하셨습니다. 바둑을 통해서 배운 인생의 태도와 깨달음이 무엇일까요?
A. 깨달음이라는 게 끝이 없거든요. ‘여기까지’라는 건 없는 것 같아요. 제가 하다 보면. 이제 계속해서 앞으로 가는 거고, 전진하는 거거든요. 그니까 계속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이제 더 많은 어려움도 닥치고. 또 거기를 또 돌파하면 또 다른 벽이 막히고. 또 그걸 돌파하면 올라가야 되니까. 그게 뭐 여기까지 오면 된다, 깨달으면 된다 그거는 아닌 것 같아요. 사람 나름의 벽이 있고 그 한계가 있는 거거든요. 그니까 끝없이 배우는 거죠. 그래서 제 바람은 앞으로는 얼마나 더 살지는 모르지만 과연 내가 죽음에 이르렀을 때 과연 얼마큼 깨달았느냐, 어떤 인생을 살아왔느냐 그게 제 자신도 가장 궁금해요. 그래서 뭐 여기서 멈췄다. 그건 아닌 것 같고. 계속해서 어떤 하루를 살더라도, 1년을, 10년을 살더라도 계속 저는 앞으로 내 길로 전진한다는 마음가짐이 있거든요. 그니까 멈춤이 없기 때문에 여기까지 왔으니까 끝났다, 그런 건 아닌 것 같아요. 계속해서 하루하루를 살더라도 계속 전진하고 있는 거기 때문에. 사실 죽을 때까지. 이제 누구나가 최상의, 말하자면 깨달음을 얻었느냐. 뭐 그걸 얻었느냐, 내 인생이 만족하였느냐, 어떻게 너무 잘못됐느냐. 그거는 뭐 물론 죽고 나서 깨달아서는 소용이 없겠지만 거기까지는 가봐야 될 것 같아요.
Q. 기자간담회 때 이병헌 배우가 '올인'의 차민수, '승부'의 조훈현이라는 리빙 레전드를 연기하게 됐다고 언급한 적 있습니다. 두 분의 인연에 대해서도 설명해주신다면.
A. '올인'이라는 드라마에 차민수 사범의 얘기가 먼저 나왔거든요. 좀 오래된 이야기지만, 이병헌 배우님께서 아주 잘해주셨는데 그거는 약간 액션이라고 할까? 약간 그런 쪽에서 아주 재밌게 봤고요. '승부'의 바둑은, 말이 승부지 실제로는 내면적인 싸움이거든요 사실. 그래서 이런 연기도 완벽하게 해내시는 걸 보니 연기력이 대단하시고, 또 잘해주신 것 같아요.
Q. 국수님의 모토인 無心(무심). 너무 유명하지만, 무심이라는 마음가짐에 대해 직접 설명 한 번 부탁드립니다. (사사로운 욕심을 비워내고, 평상심으로 최선을 다한다)
A. 사실 모든 일이 욕심이 많기 때문에 사고들이 많이 난다고, 저는 그렇게 생각하거든요. 바둑도 이기겠다는, 물론 이겨야 되겠지만, 이기겠다는 그 욕심. 또 조금 여기서 득을 봐야지 할 때, 그럴 때 역전이 많이 돼요. 제대로만 뒀으면 되는데 여기서 좀 더 많이 이기겠다 했을 때 역전이 많이 되거든요. 그래서 평정심이라 할까. 그니까 평정심, 무심 뭐 거의 비슷한 얘긴데. 욕심을 내지 않고 정확히 그 상황을 바라봐야 되거든요. 바둑뿐만이 아니라 내 인생, 또 지금 현재 이 자리에서 내 상황이 어떤 것인지 그걸 정확히 보는 게 그렇습니다. 이게 이상한 생각이 들면 나는 실력이 여기까지인데 욕심내 가지고 이렇게까지 생각을 하게 되고. 또 어떨 때는 실력은 좀 높은데 어떻게 자기 스스로 비하가 돼 가지고 좀 낮게 생각하고. 그거는 옳지 않거든요. 형세 판단이라든가 상황을 봤을 때. 그니까 무심이라는 게 굉장히 어렵거든요 사실. 그래서 욕심을 버린다는 건데. 제일 첫째가 그냥 아무 생각은 아니지만 욕심을 안 내고 내 현 상황을 제대로 바라보는 것. 흔들리는 상황에, 그 바깥에 상황에서 흔들리지 않는 것. 그게 무심인데 사람인 이상 쉽지가 않아요. 살다 보면 자꾸 생각이 흔들려요. 그래서 뭐든 열심히 했을 때는 휘둘리지 말고 평정심이라 할까, 무심의 경지로써 이걸 바라봐야 해요. 욕심을 안 내고 좀 다시 타협해 보면. 바둑이란 게 조화잖아요. 세상도 조화거든요.
Q. 9살에 프로 입문 후 현재까지도 꾸준히 현역에서 활동하고 계십니다. 엄청난 지력과 체력이 필요한 일인데요, 국수님만의 특별한 관리 비결은?
A. 저는 등산 좋아합니다. 어디 가서 헬스 센터에서 역기 들고 운동하거나 이런 건 아니지만요. 개인적으로는 젊었을 때는 등산을 많이 했고, 지금은 걷기를 좋아해서 동네 한 바퀴 돌거나 뒷산 가는 정도로 체력을 유지합니다. 모든 일이 첫째가 체력이에요. 바둑이고 일이고 첫째가 체력이거든요. 체력에서 정신력이 나오는 거예요. 체력이 없으면 아픈 사람이 병상에 누워서 무슨 운동을 하고 무슨 일을 해요. 솔직히 말해서. 건강해야지 이게 좋은 일도 생기고 일을 할 수가 있거든요. 바둑뿐만이 아니고 모든 일이요. 저는 이제 바둑만 둬봐서 바둑으로 얘기하자면 바둑도 체력입니다. 또 체력에서 나오는 정신력 싸움이거든요. 이제 그래서 이걸 최고조로 올려놔야지만 상대하고 싸울 수 있는 겁니다. 이게 무너지면 질 수밖에 없고 이제 밑으로 내려갈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이게 일단 이제 뭐 체력 관리가 제일 중요합니다.
Q. 마지막으로 영화 '승부' 관객 분들에게 추천 한마디
A. 저도 오늘 처음 봤지만 재미있고. 또 좀 울리는 대목도 있고요. 가슴에 좀 느껴지는 그게 있어가지고. 어쨌든 재밌게 봤습니다. 여러분께서도 많이 봐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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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바이포엠스튜디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