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홍지수 기자] 결국 대한항공이 칼을 빼들었다. 무릎 부상으로 인해 최근 계속 경기에 나서지 못한 요스바니 에르난데스와의 동행을 마치고, 새로운 외국인 선수를 영입했다. 그 주인공은 카일 러셀(등록명 러셀)이다.
러셀은 V-리그 팬들에게 아주 익숙한 이름이다. 한국전력과 삼성화재를 거치며 두 시즌 동안 V-리그에서 활약했다. 타점 높은 공격과 불같은 서브로 강한 인상을 남긴 바 있다. 특히 러셀이 삼성화재에서 세운 기록인 8연속 서브 득점은 지금도 깨지지 않고 있는 V-리그 최고 기록이다.
물론 러셀이 완벽한 외인은 아니었다. 클러치에서의 오픈 공격에는 늘 약점이 있었고, 멘탈적으로도 강인함이 돋보이는 선수는 아니었다. 두 시즌 합산 공격 성공률도 50%를 밑돌 정도로 정교함과는 거리가 있는 선수이기도 하다.
다만 요스바니가 100%의 컨디션으로 봄배구에 나서기는 쉽지 않았던 상황에서, 리그 적응이 수월하고 확실한 강점을 갖고 있는 러셀은 구원투수로 적합한 조건을 갖춘 선수임은 분명하다. 특히 서브가 강한 현대캐피탈-KB손해보험을 상대로 서브에서 맞불을 놓을 수 있는 좋은 카드를 손에 넣은 것은 의미가 크다.
이 시점에서 떠오르는 선수 두 명이 있다. 바로 막심 지갈로프와 아르템 수쉬코다. 두 선수는 지난 시즌 막바지에 기존 외국인 선수를 대체하기 위해 각각 대한항공과 우리카드에 합류했다. 결과는 정반대였다. 막심은 준수한 활약으로 팀의 우승에 기여했고, 아르템은 부진에 빠지는 모습을 보였다. 과연 러셀은 둘 중 어느 쪽의 결말을 따르게 될까. 대한항공의 봄배구 운명이 그의 손에 달렸다.
현대캐피탈이 정규리그 1위 징크스를 깰 수 있을까.
현대캐피탈이 그간 지나온 길을 보면 명가라는 수식어가 아깝지 않다. 2023~24시즌까지 통산 정규리그 1위 5회, 챔피언결정전 우승 4회에 빛난다. 이번 시즌 정규리그 1위도 이미 일찌감치 확정했다. 5번째 우승컵을 눈앞에 둔 상황이다.
다만 현대캐피탈의 정규리그와 챔피언결정전의 통합우승은 2005~06시즌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지금까지 5번 챔피언결정전에 직행해 이때를 제외하고는 전부 우승컵을 놓쳤다. 나머지 3번의 우승은 2위 자격으로 플레이오프(PO)를 거쳐 차지한 것이었다. 1위 징크스라는 말이 나온 배경이다.
이번엔 다를까. 현대캐피탈의 이번 시즌 페이스는 분명 유아독존에 가깝다. 한때 16연승을 질주하는 등 압도적인 기세로 남자부 역대 최단기간 정규리그 1위 확정 신기록까지 작성했다. V-리그 역대 최고의 외국인 선수로 꼽히는 레오나르도 레이바 마르티네스(등록명 레오)와 국가대표 에이스 허수봉이 든든하게 버틴 덕분이었다. 챔피언결정전에서도 이들 쌍포가 정상 가동한다면 19년 만의 통합우승도 꿈이 아니란 평가다.
현대캐피탈의 챔피언결정전 상대는 KB손해보험과 대한항공의 PO 결과에 따라 정해질 전망이다. 현대캐피탈로선 누가 올라오든 탑 독 신분이 유지된다. 두 팀과 시즌 상대 전적에서 크게 앞서 있어서다(KB손해보험은 4승2패, 대한항공은 5승1패).
하지만 이들을 맞는 현대캐피탈의 부담감 또한 만만치 않다. 특히 두 팀과 6라운드 맞대결에서 다소간의 찝찝함을 남기는 바람에 전보다 머리가 복잡해졌다. 외국인 선수 없이 나선 대한항공을 풀 세트 끝에 겨우 잡은 데다 KB손해보험엔 아예 역전승을 허용했다.
더욱이 대한항공이 최근 요스바니 에르난데스를 카일 러셀로 교체하는 강수를 뒀다. 러셀은 두 시즌의 V-리그 경험이 있지만 대한항공 유니폼을 입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때문에 현대캐피탈은 정보의 비대칭성이라는 핸디캡을 안고 가야 한다. KB손해보험전 2연패도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다. 챔피언결정전을 앞두고 고민이 깊은 현대캐피탈이다.
11년 만의 컵대회 우승에 이은 7년 만의 정규리그 1위. 그리고 이제 6년 만의 챔피언결정전 우승에만 성공하면 창단 첫 트레블(컵대회 우승·정규리그 1위·챔피언 결정전 우승)의 퍼즐이 완성된다. 마지막 담금질에 모든 게 달렸다. 현대캐피탈은 끝에 가서 웃을 수 있을까.
여자 프로배구 흥국생명의 마르첼로 아본단자 감독, 남자 프로배구 현대캐피탈의 필립 블랑 감독이 나란히 ‘증명’이라는 단어를 썼다.
두 팀은 모두 정규리그 1위를 확정지은 상황이다. 챔피언결정전 직행 티켓을 거머쥐며 일찌감치 봄배구 대비에 나섰다. 주전 선수들의 적절한 체력 안배 그리고 그동안 기회를 얻지 못한 이들을 기용하며 점검하기도 했다.
흥국생명은 지난 1일과 6일 정관장, 현대건설전에서 주전 멤버들을 빼고 경기에 나섰다. 특히 시즌 내내 쉼 없이 달려온 세터 이고은, 리베로 신연경, 아웃사이드 히터 김연경 등에게 휴식을 부여하며 컨디션 조절에 나섰다.
현대건설전에서는 ‘젊은 피’ 정윤주, 아닐리스 피치(등록명 피치)가 함께 하기도 했다. 이 외 세터 박혜진과 서채현, 미들블로커 임혜림, 아포짓 문지윤, 아웃사이드 히터 최은지, 리베로 박수연 등이 코트에 나섰다.
아본단자 감독은 ‘서베로’가 아닌 리베로 유니폼을 입고 나선 박수연, 미들블로커 임혜림을 칭찬했다. 그는 “두 선수는 코트에 들어가서 보여주고 있다. 또 다른 옵션이 될 수도 있다. 가끔 이 선수들이 갖고 있는 스킬이 필요하다면 기용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밝혔다.
다만 “최근 경기들은 선수들이 어떤 선수인지 보여줄 기회다. 하지만 기대에 못 미치는 선수도 있었다. 한 시즌 내내 훈련하고 연습한 결과물이다”며 쓴소리를 내뱉기도 했다. 그동안 출전 기회는 적었지만, 어렵게 얻은 기회를 통해 본인을 증명해달라는 뜻이었다.
블랑 감독도 같은 마음이다. 현대캐피탈은 지난 KB손해보험전에서 고열 증상으로 로스터에서 제외된 정태준을 빼고는 베스트 멤버로 나섰다. 하지만 세트스코어 1-3으로 패했다. 상대는 챔피언결정전에서 만날지도 모르는 팀이다. 하지만 5, 6라운드 맞대결에서 모두 졌다.
경기 후 블랑 감독은 “지금 이 시기에서는 우리가 해야 할 것들을 해야 하는 것이 급선무다. 잘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우리가 왜 정규리그 1위를 했는지 선수들 모두 증명을 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아본단자 감독 역시 정규리그 1위 확정 이후 “경기 감각이나 리듬을 위해 선수들을 출전시키겠지만, 승패와 관련이 없는 경기에서 이전과 같은 텐션이 나올지 모르겠다”며 고민하는 모습을 드러낸 바 있다.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는 두 사령탑이다. 그러면서도 챔피언결정전 1차전에 모든 초점을 맞춘 채 플랜대로 움직이고 있다. 한국에서 첫 챔피언결정전 우승 트로피를 노린다.
현대건설이 아시아쿼터 선수인 아웃사이드 히터 위파위 시통(등록명 위파위)의 부상 공백 속에 고예림 그리고 프로 2년차 서지혜를 향한 기대감이 크다.
현대건설은 위파위가 자리를 비운 가운데 3명의 아웃사이드 히터를 활용 중이다. 경험이 풍부한 정지윤과 고예림이 있지만, 그 뒤에는 공수 균형을 갖춘 프로 2년차 서지혜도 있다.
2005년생의 173cm 서지혜는 이번 시즌 들어 17경기 36경기 출전, 41점을 기록 중이다. 지난 한국도로공사, 흥국생명과 6라운드 맞대결에서는 연속으로 선발로 출격했고, 한국도로공사전에서 개인 통산 최다 득점인 11점을 기록하기도 했다.
현대건설은 지난 9일 정관장전 2세트부터는 고예림-서지혜 조합으로도 나섰다.
서지혜는 “위파위의 공백을 메울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자리가 완전히 비어있지 않게 최선을 다하려고 열심히 하고 있다”며 각오를 밝혔다.
후배를 지켜본 정지윤도 “연습 때부터 워낙 업다운이 없어서 묵묵히 본인이 할 수 있는 것을 잘 해내는 선수다. 긴장했다고 했지만 긴장한 것처럼 보이지도 않았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위파위가 자리를 비운 상황에서 서지혜 역시 또 다른 옵션이 될 수도 있다. 강성형 감독은 “어린 선수 답지 않은 과감한 공격을 펼친다. 리시브 등 기본적인 것도 나쁘지 않다”며 기대감을 표했다.
최근 고예림의 공격력까지 살아났다. 아웃사이드 히터들의 공수 균형을 맞춰가고 있는 현대건설이다. ‘디펜딩 챔피언’ 현대건설이 위기를 기회로 만들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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