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애순·관식에게 아이유X박보검의 위로, '폭싹 속았수다' [Oh!쎈 리뷰]
입력 : 2025.03.30기사보내기 :  트위터  페이스북

[OSEN=연휘선 기자] "매우, 수고하셨습니다". 문학소녀가 억척스러운 아줌마가 되고, 무쇠도 녹일 법한 파도가 몰아치는 인생. 그 계절들을 버틴 전국의 애순이, 관식이에게 작가가 해주고 싶은 말이 이랬을까. '폭싹 속았수다'가 아이유, 박보검 등의 입을 통해 시청자들에게 진한 위로를 건넸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폭싹 속았수다'(극본 임상춘, 연출 김원석)가 지난 28일 공개된 16회(최종회)를 끝으로 막을 내렸다. 작품은 로그라인에서 알 수 있듯, 제주에서 태어난 요망진 반항아 애순이(아이유, 문소리)와 팔불출 무쇠 관식이(박보검, 박해준)의 모험 가득한 일생을 사계절로 풀어냈다. 아이유와 문소리가 각각 애순의 젊은 시절과 중년 이후를, 박보검과 박해준이 각각 관식의 청년기와 중년 이후를 보여줬다. 여기에 아이유는 애순과 관식의 장녀 금명 성인 역할까지 맡아 활약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따라 사계절처럼 4개의 막으로 풀이된 작품은 몰아보기 시청이 흔한 넷플릭스에서 첫 시청 패턴으로도 진한 여운을 남기며 종영했다.

# 아이유X박보검 기대작...'민폐 촬영' 잡음은 있었다

상암벌을 꽉 채우고도 남는 가수 겸 연기자 아이유 그리고 '보검매직'이라 불리는 배우 박보검의 만남으로 화제를 모은 '폭싹 속았수다'는 기획 단계부터 방송가 최고의 기대작이었다. '동백꽃 필 무렵'으로 따뜻한 감성과 필력을 인정받은 임상춘 작가와 '미생', '시그널', '나의 아저씨'로 섬세한 연출을 호평받은 김원석 감독의 작품인 만큼 웰메이드도 기대됐다. 

그러나 촬영 단계에서는 잡음도 있었다. 약 600억 원이라는 막대한 제작비가 알려지며 기대감에 거품이 끼는 것은 아닌지 기우를 자아냈다. 여기에 고창의 청보리밭 축제에서 시민들을 통제하며 촬영을 진행한 것이 알려져 '민폐 촬영'으로 거센 비판을 받기도 했다.

기대와 우려가 공존하는 가운데 지난 7일 첫 공개된 '폭싹 속았수다'는 1막부터 모든 우려를 종식시켰다. 반감도 희석시키다 못해 과몰입했다는 반응이 속출했다. 뚜껑이 열린 '폭싹 속았수다'는 여러 방면에서 이해를 부르는 수작이었다. 

단지 사랑 이야기로만 묶기엔, 애순과 관식의 생애는 퍽 고달프다. 속을 알 수 없는 바다에 아빠도, 엄마도 내준 애순은 남여 차별이 극심했던 제주에서 어린 시절 내내 식모처럼 자랐다. 육지로 나가 시인이 되고 싶다는 문학소녀였지만 부모 없는 처지에 꿈이 꺾였고, 유일한 기댈 곳이 돼준 첫사랑 관식과 야반도주까지 한 끝에 결혼했다.

시어머니, 시할머니 층층시하 호된 시집살이도 참고 견뎠건만. 눈에 넣어도 안 아픈 딸 금명을 시댁에서 '살림 밑천' 삼아 해녀를 만들려 해 뛰쳐나왔다. 바다에 잡아먹힌 부모 같은 꼴을 만들지 않으려 밥상까지 엎은 그 결심에는 무쇠처럼 단단한 관식의 한결같은 애정이 있었다. 

# '빌런'이 없다...납득이 다 되잖아 납득이

관식의 애정은 단단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갑갑하기도 하다. 이팔청춘이 되도록 제대로 된 고백 한 번 안 하고 내내 애순이 양배추만 대신 팔아줘 낳아준 엄마 속을 뒤집는다. 한여름에 땀범벅이 돼도 말없이 긴팔을 챙겨 입는 모습처럼. 하지만 그 안에는 "양배추 달아요" 한 마디를 못하던 문학소녀에 대한 온정이, 선장에게 맞은 상처에 가슴 아파할 아내에 대한 배려가 있었다. 

그런 관식의 무한한 애정을 받은 까닭일까. 요망진 반항아였던 애순은 관식처럼 때로는 답답하리 만큼 자식에게 무한한 애정을 주는 엄마가 된다. 서울대 간 딸 금명이 똑똑한 머리 내세워 유세 떨듯 뱉는 모진 말도 "아가"라고 웃으며 두 팔 벌려 반긴다. 하지만 이 역시 쉽게 '폭싹 속았수다'에서는 시나브로 이해가 되는 구성이다. 금명의 시선에선 지지리 궁상 같던 애순의 좌판은 성인이 돼도 다 못 키운 자식들 키워내려는 생존의 현장이었다. 부모 가슴에 비수 꽂는 금명의 투정도 첫째로서 받은 무한한 사랑에 그만큼 보답하지 못해 나온 미안함이었고.  

바다처럼 깊은 이해심은 애순, 관식 만의 일도 아니다. 같이 물질했던 광례(염혜란)의 딸이라는 이유로 애순을 딸처럼 보살피는 해녀 이모들은 물론, 가출이나 이혼이 낫겠다 싶을 정도로 못살게 구는 '양씨 집안' 시집 식구들은 오죽하며, 심지어 애순을 재취 들일 뻔 했다가 결국에는 원수 같은 이웃사촌에서 사돈이 된 도동리 부상길(최대훈)까지. 해녀의 의리부터 욕을 부르는 시집살이와 폭력적인 가부장제마저, 어쩌면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이 안의 인물들은 모두 위로부터 보고 배운 것들을 무작정 따라한 것은 아닌지 돌이켜보게 만든다. 마치 우리가 보아온 내 집 혹은 어딘가의 어느 사람들처럼. 

나아가 이 배려와 이해는 카메라 밖으로 번진다. 시청자들로 하여금 현실의 주위를 돌아보게 만든다. 당신의 엄마, 아빠, 자식, 혹은 본인, 스쳐지난 이웃 누구 하나라도 언젠가는 애순이 같고 관식이였고 금명이 아니었느냐고. 아들 낳으라며 팥 뿌려댄 관식의 무당 할머니(김용림)나, 시집살이 내리 쏟아부으면서도 반려견 '효자'나 키운 관식 엄마 계옥(오민애)조차도 언제나 옆에서 볼 수 있던 그저 사람이라고. 흡사 보통 사람들의 지난했던 그 삶도 한편의 드라마라고 위로를 건네는 듯 하다. 이 따뜻한 시선이 베일에 싸인 임상춘 작가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일까 궁금해질 지경이다.

# 눈물, 그거 어떻게 안 흘리는 건데

그렇기에 몰아보기 시청을 과감하게 내려놓은 넷플릭스의 편성을 반긴다. 봄, 여름, 가을, 겨울 1년을 가르는 사계절처럼 '폭싹 속았수다'의 시간은 총천연색으로 나뉜다. 그리고 편견을 부순다. 봄은 파릇파릇하고, 여름은 싱그럽다와 같이 어느 한 단어로 표현할 수 없는 시간들이 4부작씩 나뉜 폭싹의 시간들에 쌓여있다. 16부작이 다 공개된 뒤에도 결코 쉽게 몰아봐서는 안 되는 이유다. 다 보기 전에 눈물이 앞을 가리겠지만. 

"매 회가 눈물바다네". 작품이 공개되는 내내 애청자들 사이에서 쏟아진 말이다. 작품 인증 후기에 "눈이 부었다"는 말이 빈번하게 등장하기도 한다. 격정적인 감정을 끌어올려 과장된 눈물을 자아내는 이야기는 흔히 국내에선 '신파'의 전형으로 통하고는 했다. 그 유래와 과정을 차치하고 결코 호평과는 관계 없던 표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폭싹 속았수다'의 신파는 다르다. 

남자와 여자, 노인과 아이, 기성세대와 청년, 기득권과 소수자, 부와 가난, 인종과 국가 모든 것을 갈라치고 보는 대혐오의 시대. 그 혐오의 한복판에서 '폭싹 속았수다'는 이해심을 당신의 가슴에 격랑처럼 들이치게 한다. 이러한 감정의 파도가 눈물을 자아내는 것이라면 '폭싹 속았수다'는 진정한 신파가 맞다. 그리고 우리는 신파를 좋아했던 게 아닐까. 제대로 된 작품을 못 만났을 뿐.

부모는 그립고 자식은 가슴에 묻고 그럼에도 사랑으로 버텨낸 애순이, 관식이. 이렇게 착한 끝으로 달려가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주위에 많다. 각자의 삶에 지쳐 둘러보지 못했을 뿐. 가족이 아니라도 저마다의 소중한 대상을 품고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은 도처에 깔려 있다. '폭싹 속았수다' 같은 1960년대나 2025년이나, 어느 시골 마을이나 도심이나 가리지 않고. 그렇게 흔하단 생각에 더 돌아보지 못한 시간을 버텨낸 모두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 삼춘들 모다 '폭싹 속았수다'. 

/ monamie@osen.co.kr

[사진] 넷플릭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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