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뉴스 | 채준 기자]
우리는 이런저런 문화 속에서 살아간다.
이미 되어진 문화 속에 놓여진 나는, 그 문화들을 선택하고 기획하기도 한다. 해마다 새해가 되면 그 한해를 어찌 보낼 것인지 계획을 세운다.
"삶은 디자인이다. 디자인한다는 것이 이미 '문화'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문화란 만든다는 것이다. 자연이 있는 것에다가 인간이 무언가를 한 것이 디자인이며 문화"라고 북디자이너인 정병규는 말했다. 또한 "도스토옙스키에게 산다는 것은 이득을 챙기기 위해 계산서를 작성하거나 장부를 마음대로 쓰는 것과는 전혀 다른, 하나의 예술작품을 만드는 일과 같았다." 라고 '무엇이 인간인가'에서 작가 오정우는 말했다.
새해를 맞이하며, 올 한해도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나도 디자인을 해보려고 했다. 과연 그것이 한 점의 그림과 같은 삶에 한 부분이 될 수 있을지, '단순하게 살기'로 정한 나의 한 해를 담담한 수채화처럼 힘을 빼고 그릴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런데 일 년은 고사하고 오늘 하루도 단순하게 살기란 쉽지가 않다. 그저 매일 먹고 사는 일만으로도 많은 일을 했다고 생각해도 괜찮은 그런 나이가 되었지만, 나에게 남겨진 시간이 너무 찬란해서 그럴 수는 없다. '오늘은 무엇을 하면 좋을까?'라고 생각하면 벌써 머릿속에는 별별 생각들이 마구 뛰어들어 뒤죽박죽이 된다. 사람들은 내게 '이젠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라, 여행하며 살아라' 등등 충고들을 한다. 내 친구 중에는 '천재인데도 열심히 살기'까지 하고 있는 '여백서원'의 전영애 교수가 있다. 그 친구는 다시 태어나도 전생에 다하지 못하고 간 일이 있었다고 하며, 현세의 전공인 '괴테'를 또 연구하며 괴테의 삶을 실천하며 살 것 같다.
그 친구는 그동안 정신의 집인 책들뿐만이 아니라 여백서원에 있는 여섯 채의 크고 작은 집들을 지었다. 그런 그는 여백서원에 이어 '젊은 괴테의 집'을 작년 가을에 완공했는데 새해 벽두부터 그 입구의 길을 확장하느라 포크레인으로 작업하는 것을 보니 말이다. 그런저런 생각을 하며 나는 이 시간에도 세 가지 일을 한꺼번에 하고 있다. 유튜브로 새벽예배의 설교로 '하나님 나라의 도전'을 들으며, ThinkWise로 읽었던 책을 맵핑하며, 또 sns에 올리는 글을 쓰고 있다. "새해,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답으로 '단순하게 살기'를 택하면서도 말이다. 이 불합리함, 이게 아날로그 적 인간이 아닐까? 참으로 단순하지 않은 게 인간이고 인간의 생각이고 인간이 살아가는 일들이라고 생각한다.
21세기에 단순하게 산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핸드폰에서 AI, 챗GPT를 해보려니, 앱을 다운을 받으라하고 또 가입하라 했다. 그리고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입력하라고 한다. 물건을 사려고 인터넷의 쇼핑몰에 들어갔다. 주문을 하려니 비밀번호를 누르라 한다. 그런데 이 아날로그인 내 머리는 비밀번호를 기억해내지 못하고 있다. 무언가 기호와 영문자를 합하라는 바람에 기본적으로 쓰는 번호에다 무언가를 더 붙였었는데 무엇을 몇 개 붙였었는지 잊어버렸다. 기계에서는 또 '잊어버렸으면, 어떻게 하고 어떻게 하라'고 한다.
인터넷으로 쇼핑하려고 하다가 비밀번호를 잊어버려 들어갈 수 없어 난감했다고 친구에게 말했더니 그 친구는 "비밀번호들을 핸드폰 노트에 쫘~악 입력해 놓으라"고 하면서 자기 핸드폰의 노트에 입력된 번호들을 보여주었다. 그 적어 놓은 번호들이 열 개도 넘는 것이 아닌가? 그러고도 업데이트할 때마다 또 고쳐놓는다고 한다. '아이고! 복잡해라! 안 사고 말겠다'고 나는 투덜거렸다. 물건 사는 것을 포기하고 빨래나 하려니 새로 산 세탁기에 기능이 너무 많아서 무엇을 눌러야 할지 모르겠다. 매뉴얼은 왜 그리 복잡한지 읽어봐도 무슨 말인지 이해가 가질 않는다. 아무리 첨단의 기능이 많아도 사용할 줄을 모르니 무용지물이다. 문명의 기기들도 나를 단순하게 살도록 내버려 두질 않는다.
생명이 있다는 것은 욕망이 많다는 것이다. 그것을 좋은 의미로 말하자면 비전이 많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새해에는 무엇을 하고 싶은가, 무엇이 되고 싶은가'를 덕담처럼 사람들이 물어본다. 그렇게 물어보니 나도 그저 '단순하게 살기'로 정한 것뿐이다. 21세기, 요즘 유행이 '미니멀라이프'이니까 나도 따라 해보았다. 그런 결심이 작심삼일이 되지 않아야지 생각하며 책상에 앉았다. 그런데 나의 발목을 잡는 것은 인터넷뿐만이 아니라 내 책상 둘레의 책들이었다. 책상 부근과 책장에 책이 넘쳐나고 있으니, 머릿속이 단순해질 수가 없었다.
이 책을 보다가 보면 저 책이 눈에 들어와서 그것을 집어들고 그러느라 책상에 앉아서도 머릿속이 복잡하다. 작년에 이미 책을 많이 정리하고 버렸음에도, 종류별, 장르별, 별별 책들이 나를 바라보고 있으니 단순하게 살 수가 없다. 책들마다 사연이 있는 생명체처럼 버티고 있으니 마구 버릴 수도 없다. 내 방에도 거실에도 그 외의 다른 방들에도 책들이 넘쳐나서 책장 앞에도 두 줄 세 줄 쌓아놓고 살고 있다. 그것조차도 북디자이너인 남편이 책 디자인이라는 하나의 문화를 지향하다 보니 일어난 현상이지 않을까 하고 위안을 삼아본다. 그런 것을 바라보면서도 단순하게 살려고 했는데 책들이 내 욕망을 부추기고 내 비전을 흔드니 나는 단순하게 살 수가 없다.
사람들마다 자기 전문 영역의 무언가 때문에 복잡하게 사는 게 아닐까? 괴테의 삶을 보아도 결코 내가 아는 것처럼 파우스트를 쓴 작가이지만은 않았다. "인간은 지향이 있는 한 방황한다"라고 말했던 괴테는 소설가이며 자연과학의 분야에도 큰 업적을 남겼고 색채학자이며 그림을 그려서 남긴 화가이기도 했다. 괴테도 그 지향점이 성숙해지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노력과 방황과 좌절을 느꼈을 것인가? 벽같이 느껴지는 그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 얼마나 좌충우돌했었을까? 지향점에 다다르기 위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했을 것이다. 그런 괴테를 생각하며 나도 이제는 목표 외의 것들을 정리하려고 한다. 눈에 보이는 것들을 단순하게 하려고 한다. 지향하는 것으로 채우려면 생각의 공간도 보이는 공간도 비워야 한다.
멋진 그림에는 군더더기가 없다. 아름다운 음악에는 쓸데없는 장식을 붙이지 않는다. 이우환의 무심히 그어내린 선에서, 김창렬의 물방울 그림에서, 쿠사마 야요이의 땡땡이로만 그득찬 화폭에서 단순함을 본다. 수많은 글을 썼고 강의를 하셨던 이어령 선생님은 마지막에 '눈물 한 방울' 이라는 책을 남기셨다. 눈물 한 방울, 그 안에서 무한히 반복되었던 삶의 무게를 느끼게 된다. 너무 가득차서 단순한 것을, 단순하지만 단순하지 않은 인생을 본다. 기교를 절제하고 그저 툭 던지는 것처럼 말을 걸어오는 트롯트 한 곡에도 그렇게 부르기 위해 얼마나 연습을 했었는지를 가수들은 말한다.
많은 연습을 통해 자기라는 힘을 뺄 수 있어야 예술로 승화되는 것을 보게 된다. 예측하기 어려운 인생을 다듬어 그 삶이 예술이 되기까지는 얼마나 많은 실패와 성공의 반복이 있었을까? 삶, 이보다 더 아름다운 예술은 없지 않을까? 단순한 것이 그저 단순한 것이 아니다. 나도 욕망을 무한히 빼내고 삶을 단순하게 디자인하고 싶다.
- 서승옥행정사법인 CST 부설 ICST의 전문위원
문화체육 전문 행정사법인 CST는
문화예술, 콘텐츠, 저작권, 체육, 관광, 종교, 문화재 관련 정부기관, 산하단체의 지원이나 협력이 필요한 전반 사항에 대해서 문서와 절차 등에 관한 행정관련 기술적인 지원을 포괄적으로 펼치고 있다.
채준 기자 cow75@mtstar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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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되어진 문화 속에 놓여진 나는, 그 문화들을 선택하고 기획하기도 한다. 해마다 새해가 되면 그 한해를 어찌 보낼 것인지 계획을 세운다.
"삶은 디자인이다. 디자인한다는 것이 이미 '문화'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문화란 만든다는 것이다. 자연이 있는 것에다가 인간이 무언가를 한 것이 디자인이며 문화"라고 북디자이너인 정병규는 말했다. 또한 "도스토옙스키에게 산다는 것은 이득을 챙기기 위해 계산서를 작성하거나 장부를 마음대로 쓰는 것과는 전혀 다른, 하나의 예술작품을 만드는 일과 같았다." 라고 '무엇이 인간인가'에서 작가 오정우는 말했다.
새해를 맞이하며, 올 한해도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나도 디자인을 해보려고 했다. 과연 그것이 한 점의 그림과 같은 삶에 한 부분이 될 수 있을지, '단순하게 살기'로 정한 나의 한 해를 담담한 수채화처럼 힘을 빼고 그릴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런데 일 년은 고사하고 오늘 하루도 단순하게 살기란 쉽지가 않다. 그저 매일 먹고 사는 일만으로도 많은 일을 했다고 생각해도 괜찮은 그런 나이가 되었지만, 나에게 남겨진 시간이 너무 찬란해서 그럴 수는 없다. '오늘은 무엇을 하면 좋을까?'라고 생각하면 벌써 머릿속에는 별별 생각들이 마구 뛰어들어 뒤죽박죽이 된다. 사람들은 내게 '이젠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라, 여행하며 살아라' 등등 충고들을 한다. 내 친구 중에는 '천재인데도 열심히 살기'까지 하고 있는 '여백서원'의 전영애 교수가 있다. 그 친구는 다시 태어나도 전생에 다하지 못하고 간 일이 있었다고 하며, 현세의 전공인 '괴테'를 또 연구하며 괴테의 삶을 실천하며 살 것 같다.
그 친구는 그동안 정신의 집인 책들뿐만이 아니라 여백서원에 있는 여섯 채의 크고 작은 집들을 지었다. 그런 그는 여백서원에 이어 '젊은 괴테의 집'을 작년 가을에 완공했는데 새해 벽두부터 그 입구의 길을 확장하느라 포크레인으로 작업하는 것을 보니 말이다. 그런저런 생각을 하며 나는 이 시간에도 세 가지 일을 한꺼번에 하고 있다. 유튜브로 새벽예배의 설교로 '하나님 나라의 도전'을 들으며, ThinkWise로 읽었던 책을 맵핑하며, 또 sns에 올리는 글을 쓰고 있다. "새해,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답으로 '단순하게 살기'를 택하면서도 말이다. 이 불합리함, 이게 아날로그 적 인간이 아닐까? 참으로 단순하지 않은 게 인간이고 인간의 생각이고 인간이 살아가는 일들이라고 생각한다.
/사진제공=pixabay |
21세기에 단순하게 산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핸드폰에서 AI, 챗GPT를 해보려니, 앱을 다운을 받으라하고 또 가입하라 했다. 그리고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입력하라고 한다. 물건을 사려고 인터넷의 쇼핑몰에 들어갔다. 주문을 하려니 비밀번호를 누르라 한다. 그런데 이 아날로그인 내 머리는 비밀번호를 기억해내지 못하고 있다. 무언가 기호와 영문자를 합하라는 바람에 기본적으로 쓰는 번호에다 무언가를 더 붙였었는데 무엇을 몇 개 붙였었는지 잊어버렸다. 기계에서는 또 '잊어버렸으면, 어떻게 하고 어떻게 하라'고 한다.
인터넷으로 쇼핑하려고 하다가 비밀번호를 잊어버려 들어갈 수 없어 난감했다고 친구에게 말했더니 그 친구는 "비밀번호들을 핸드폰 노트에 쫘~악 입력해 놓으라"고 하면서 자기 핸드폰의 노트에 입력된 번호들을 보여주었다. 그 적어 놓은 번호들이 열 개도 넘는 것이 아닌가? 그러고도 업데이트할 때마다 또 고쳐놓는다고 한다. '아이고! 복잡해라! 안 사고 말겠다'고 나는 투덜거렸다. 물건 사는 것을 포기하고 빨래나 하려니 새로 산 세탁기에 기능이 너무 많아서 무엇을 눌러야 할지 모르겠다. 매뉴얼은 왜 그리 복잡한지 읽어봐도 무슨 말인지 이해가 가질 않는다. 아무리 첨단의 기능이 많아도 사용할 줄을 모르니 무용지물이다. 문명의 기기들도 나를 단순하게 살도록 내버려 두질 않는다.
생명이 있다는 것은 욕망이 많다는 것이다. 그것을 좋은 의미로 말하자면 비전이 많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새해에는 무엇을 하고 싶은가, 무엇이 되고 싶은가'를 덕담처럼 사람들이 물어본다. 그렇게 물어보니 나도 그저 '단순하게 살기'로 정한 것뿐이다. 21세기, 요즘 유행이 '미니멀라이프'이니까 나도 따라 해보았다. 그런 결심이 작심삼일이 되지 않아야지 생각하며 책상에 앉았다. 그런데 나의 발목을 잡는 것은 인터넷뿐만이 아니라 내 책상 둘레의 책들이었다. 책상 부근과 책장에 책이 넘쳐나고 있으니, 머릿속이 단순해질 수가 없었다.
/사진제공=pixabay |
이 책을 보다가 보면 저 책이 눈에 들어와서 그것을 집어들고 그러느라 책상에 앉아서도 머릿속이 복잡하다. 작년에 이미 책을 많이 정리하고 버렸음에도, 종류별, 장르별, 별별 책들이 나를 바라보고 있으니 단순하게 살 수가 없다. 책들마다 사연이 있는 생명체처럼 버티고 있으니 마구 버릴 수도 없다. 내 방에도 거실에도 그 외의 다른 방들에도 책들이 넘쳐나서 책장 앞에도 두 줄 세 줄 쌓아놓고 살고 있다. 그것조차도 북디자이너인 남편이 책 디자인이라는 하나의 문화를 지향하다 보니 일어난 현상이지 않을까 하고 위안을 삼아본다. 그런 것을 바라보면서도 단순하게 살려고 했는데 책들이 내 욕망을 부추기고 내 비전을 흔드니 나는 단순하게 살 수가 없다.
사람들마다 자기 전문 영역의 무언가 때문에 복잡하게 사는 게 아닐까? 괴테의 삶을 보아도 결코 내가 아는 것처럼 파우스트를 쓴 작가이지만은 않았다. "인간은 지향이 있는 한 방황한다"라고 말했던 괴테는 소설가이며 자연과학의 분야에도 큰 업적을 남겼고 색채학자이며 그림을 그려서 남긴 화가이기도 했다. 괴테도 그 지향점이 성숙해지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노력과 방황과 좌절을 느꼈을 것인가? 벽같이 느껴지는 그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 얼마나 좌충우돌했었을까? 지향점에 다다르기 위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했을 것이다. 그런 괴테를 생각하며 나도 이제는 목표 외의 것들을 정리하려고 한다. 눈에 보이는 것들을 단순하게 하려고 한다. 지향하는 것으로 채우려면 생각의 공간도 보이는 공간도 비워야 한다.
멋진 그림에는 군더더기가 없다. 아름다운 음악에는 쓸데없는 장식을 붙이지 않는다. 이우환의 무심히 그어내린 선에서, 김창렬의 물방울 그림에서, 쿠사마 야요이의 땡땡이로만 그득찬 화폭에서 단순함을 본다. 수많은 글을 썼고 강의를 하셨던 이어령 선생님은 마지막에 '눈물 한 방울' 이라는 책을 남기셨다. 눈물 한 방울, 그 안에서 무한히 반복되었던 삶의 무게를 느끼게 된다. 너무 가득차서 단순한 것을, 단순하지만 단순하지 않은 인생을 본다. 기교를 절제하고 그저 툭 던지는 것처럼 말을 걸어오는 트롯트 한 곡에도 그렇게 부르기 위해 얼마나 연습을 했었는지를 가수들은 말한다.
많은 연습을 통해 자기라는 힘을 뺄 수 있어야 예술로 승화되는 것을 보게 된다. 예측하기 어려운 인생을 다듬어 그 삶이 예술이 되기까지는 얼마나 많은 실패와 성공의 반복이 있었을까? 삶, 이보다 더 아름다운 예술은 없지 않을까? 단순한 것이 그저 단순한 것이 아니다. 나도 욕망을 무한히 빼내고 삶을 단순하게 디자인하고 싶다.
- 서승옥행정사법인 CST 부설 ICST의 전문위원
문화체육 전문 행정사법인 CST는
문화예술, 콘텐츠, 저작권, 체육, 관광, 종교, 문화재 관련 정부기관, 산하단체의 지원이나 협력이 필요한 전반 사항에 대해서 문서와 절차 등에 관한 행정관련 기술적인 지원을 포괄적으로 펼치고 있다.
채준 기자 cow75@mtstar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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