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뉴스 | 박정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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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 포수 양의지. /사진=두산 베어스 |
포수는 야구에서 아주 중요한 포지션이다. 그런데도 푸대접을 받는 경향이 있다. 무엇보다 무거운 장비를 챙겨야하고, 힘든 훈련을 견뎌야해 야구에 갓 입문하는 꿈나무 선수들이 포수로 나서길 꺼린다. '좋은 포수'가 잘 발굴되지 않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야구 입문서로 잘 알려진 레너드 코페트의 '야구란 무엇인가'나 잭 햄플의 '야구 교과서'만 보더라도, 포수는 별도 항목으로 제대로 다루고 있지 않다. 경기력 측면에서는 타격(타자), 피칭(투수), 수비, 베이스러닝(주루)이 주내용이다. '야구 교과서' 제1장은 '투수와 포수' 항목인데, 내용은 대부분 투수와 관련된 것들이다. 포수와 관련해서는 투수와 교환하는 사인, 투구의 선택에서만 일부 다뤄진다. 포수를 투수에 종속된 포지션으로 여기는 것일지도 모른다. 일반 야구팬이 포수의 세계를 깊이 있게 이해하기 힘들기 때문에 입문서에서 다루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포수는 생각보다 많은 임무를 안고 있다. 투수와 함께 구종, 로케이션 등 투구 내용을 결정한 뒤 포구하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일이다. 위기에 빠진 투수를 다독이고, 벤치의 작전 지시를 전달하는 메신저 역할도 한다. 유일하게 모든 수비수와 마주보고 그라운드를 전체적으로 바라보는 위치에 자리해 수비 형태를 조정하고 주자 견제를 지시하는 등 다양한 역할을 한다. 그래서 포수는 공격보다 수비에 더 큰 비중을 둔다. 경기를 읽는 눈, 포구 능력, 투수를 대리한 타자와의 신경전과 볼 배합, 블로킹, 주자 견제와 도루 저지 능력 등이 포수에게 요구되는 자질들이다. 감독은 타격은 쓸 만하지만 수비에서 불안한 '공격형 포수'보다는 타격 성적은 조금 떨어져도 수비력에서 안정감을 주는 '수비형 포수'를 더 선호한다. 타격은 다른 선수로 대체할 수 있지만, 포수의 임무는 아무 선수에게나 맡길 수 없기 때문이다. 곳간 열쇠를 아무한테나 맡기지 않는 심정이라고 할까. 포수에게 안방마님, 살림꾼이라는 별명이 괜히 붙은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타격을 무시할 수는 없다. 당연히 포수라도 방망이까지 잘 치면 금상첨화다. 수비에서 체력 소모와 역할 책임이 크기 때문에 타격에 큰 부담을 지우지 않을 뿐이다. 리그를 대표하는 포수이면서 타격에서도 빼어난 성적을 거둔 포수는 그리 많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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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저리그에서 세 차례나 '포수 타격왕'에 오른 미네소타 트윈스의 조 마우어. /사진=OSE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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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마우어의 명예의 전당 입성을 알리는 그래픽. /사진=MLB 공식 SNS 갈무리 |
2024년 미국프로야구(MLB) 명예의 전당에 새로 헌액된 세 명의 '레전드 선수' 가운데 공수를 겸비한 포수 조 마우어(41)의 이름을 만날 수 있다. 텍사스 레인저스 시절 추신수(42·SSG 랜더스)의 팀 동료였던 3루수 아드리안 벨트레(45)의 헌액에 가려 국내 팬들에게는 큰 주목을 받지 못하지만, 마우어는 MLB를 대표하는 공수 겸장의 포수다.
마우어는 2001년 MLB 신인드래프트 1라운드에서 미네소타 트윈스에 지명돼 2004년 빅리그에 데뷔한 뒤 마지막 2018시즌까지 단 한 번도 팀을 옮기지 않은 '원클럽맨'으로 큰 인기를 누렸고, 포수로서 세 차례(2006, 2008, 2009년)나 타격왕을 차지한 것으로 더욱 유명한 선수다. 깔끔한 스윙에서 나오는 정교한 타격이 일품이었다. 일반적으로 포수는 타율이 조금 떨어져도 일발장타를 갖춘 거포형 선수를 떠올리는데 마우어는 전혀 다른 유형이었다. 교타자에 더 가까웠다.
그는 2006년 타율 0.347를 기록하며 1980년 조지 브렛 이후 두 번째로 아메리칸리그 포수 타격왕을 차지했고, 메이저리그 전체 타격 1위에 오른 최초의 포수로도 이름을 남겼다. 2008년에도 타율 0.328로 1위에 올라 아메리칸리그 최초로 두 차례 타격왕을 차지한 포수로 또 이름을 새겼다. 2009년에는 0.365의 역대 포수 최고 타율로 포수 최초 3번째 및 2년 연속 타격왕을 거머쥐었고 28홈런, 96타점, 94득점, 출루율 0.444, 장타율 0.587, OPS 1.031으로 장타력까지 더해 아메리칸리그 최우수선수(MVP)와 골드글러브까지 수상했다. 또 리그 최고 타율, 출루율, 장타율을 모두 달성한 첫 포수로도 새 역사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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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수 타격왕' 조 마우어. /사진=OSEN |
6차례 올스타에 선발됐고, 실버슬러거를 5회 수상한 것뿐 아니라 골드글러브도 3차례 품에 안았다. 공수를 모두 갖춘 포수였다. 개인 통산 성적은 빅리그 15시즌 동안 1858경기에 나서 타율 0.306(6930타수 2123안타) 143홈런 923타점 1018득점 52도루 OPS 0.827을 거뒀다. 2013년 뇌진탕 부상을 당한 뒤 2014년부터는 1루수로 자리를 옮겼다. 2016년에는 박병호(KT 위즈)와 함께 이 자리를 지켰다.
미네소타는 마우어의 현역 마지막 경기였던 2018년 10월 1일 시카고 화이트삭스와 홈경기에서 프랜차이즈 스타를 위한 예우 차원에서 그를 1번타자 포수로 출장시켜 화려한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게 했다. 이듬해 6월 16일 미네소타의 영구 결번 행사를 통해 '등번호 7'까지도 은퇴식을 가졌다. 그는 2018시즌을 마치고 은퇴한 지 5년이 지나면서 새롭게 명예의 전당 후보에 이름을 올렸고, 벨트레와 함께 첫 도전에 곧바로 입성하는 데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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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수 헐크파운데이션 이사장이 지난해 10월 28일 서울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2023 노브랜드배 고교동창 대회 올스타전에서 포수 장비를 갖추고 미소 짓고 있다. /사진=김동윤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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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 포수 양의지. /사진=두산 베어스 |
'포수 타격왕'은 수비 부담이 큰 포지션의 특성상 매우 드물게 탄생한다. 한국프로야구(KBO리그)에서는 2023년까지 42년 역사에서 단 두 명만이 달성했다. 1984년 삼성 라이온즈 이만수(타율 0.340, 300타수 102안타)와 2019년 NC 다이노스에서 뛰었던 양의지(타율 0.354, 522타수 185안타)뿐이다. 포수 출신의 백인천(1982년)과 최형우(2016, 2020년)가 타격왕을 차지한 적이 있지만 이미 포수 마스크를 벗은 지 오래된 뒤였다.
그렇다면 포수로서 KBO MVP의 영예를 안은 선수는 몇 명이나 될까. 이 역시 단 두 명에 불과하다. 1983년 삼성 이만수와 2000년 현대 유니콘스 박경완이 그 주인공이다. 그 힘든 포수 타격왕을 차지하고 수비력에서도 최고 선수로 인정받는 양의지조차 MVP를 받지 못했다. 이만수도 포수 타격왕에 오른 해에는 MVP를 수상하지 못했다. '양의지도 MVP를 받지 않았나'라고 고개를 갸우뚱한다면, 양의지가 2010년 신인상을 받고 2016년과 2020년 각각 두산 베어스와 NC의 챔피언 등극을 이끌며 한국시리즈 MVP를 두 차례 수상한 데서 오는 기시감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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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 와이번스(현 SSG 랜더스) 코치 시절의 박경완. /사진=OSEN |
포수가 중요한 자리지만 수치로 환산할 수 없는 부분이 많고 긴 페넌트레이스에서 꾸준히 활약을 펼치는 것이 상대적으로 힘들기도 해서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부인할 수 없다. 포수로서 계량되지 않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팀에 기여하는 공헌도까지 투표 행위에 잘 반영되지 않는다. 한국시리즈에서 MVP를 받은 포수도 양의지 외에는 1991년 해태 타이거즈 장채근뿐이다. 역시 양의지와 장채근, 단 두 명만이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양의지의 뒤를 이어 KBO리그에서 '포수 타격왕'에 도전할 선수가 또 언제나 등장할 수 있을까.
박정욱 기자 star@mtstar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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