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서정환 기자] 코피 코번(25, 삼성)이 없는 가운데 서울 삼성이 더 잘 싸웠다. 김효범 대행의 소통능력이 빛을 발했다.
서울 삼성은 1일 잠실체육관에서 개최된 ‘2023-24시즌 정관장 프로농구 3라운드’에서 서울 SK에게 76-80으로 패했다. 5승 22패의 최하위 삼성은 시즌 첫 연승이 좌절됐다. 8연승을 달린 2위 SK(18승 8패)는 선두 DB(23승 5패)를 맹추격했다.
삼성은 에이스 외국선수 코피 코번이 허벅지 부상으로 결장했다. 평균 23점, 11.1리바운드로 가장 큰 파괴력을 가진 외국선수가 빠졌다. SK 자밀 워니를 상대할 선수가 없어 삼성의 대패가 예상됐다.
결과는 전혀 달랐다. 삼성은 비록 졌지만 마지막까지 끈질기게 달라붙었다. 막판에 승부를 포기했던 전과는 다른 경기력과 자세를 선보였다. 에이스가 빠졌지만 오히려 조직력은 더 좋았다. 방심한 SK가 끝까지 쫓겼고 전희철 감독이 작전시간에 화를 낼 정도였다. 그만큼 삼성은 위력적이었다.
이스마일 레인이 시즌 최고의 활약을 선보였다. 올 시즌 경기당 11분 49초를 뛰었던 레인이 36분 48초를 뛰면서 시즌최다 21점, 11리바운드, 5어시스트를 쏟아냈다. 코번의 빈자리를 완벽히 메우지는 못했지만 확실히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
레인의 잠재력을 이끌어낸 김효범 대행의 소통능력이 인상적이었다. 캐나다 교포인 김 대행은 현역시절 해외동포 자격으로 KBL에서 12년을 뛰었다. 지도자로 변신한 뒤에는 G리그에서 코치로 꾸준한 경력을 쌓았다. 2020년부터 삼성에서 코치를 맡은 그는 은희석 감독의 사퇴로 시즌 중 대행을 맡았다.
김효범 대행의 소통능력은 작전시간에 십분 발휘됐다. 3쿼터 중반 박빙의 순간에서 김 대행은 선수들에게 한국어로 패턴을 먼저 지시했다. 옆에 있는 통역이 그 내용을 영어로 레인에게 전달했다. 여기까지는 다른 팀과 똑같은 광경이다.
이후 김효범 대행은 레인에게 직접 영어로 “패턴이 먹히지 않으면 네가 파고들어서 일대일로 해결해! 고 브로!”라며 강하게 힘을 실어줬다. 통역이 감독의 지시사항을 단순히 전달하는 역할이라면 김 대행이 직접 선수에게 전한 메시지는 힘의 크기가 달랐다. 외국선수가 헷갈리지 않고 정확하게 자신의 역할을 숙지했다. 아울러 감독이 자신을 확실히 밀어준다는 믿음까지 전달됐다.
김효범 감독의 작전시간에는 쓸데없는 짜증이나 질책도 찾아볼 수 없다. 선수들에게 명확한 역할과 메시지를 주고 “에너지 레벨을 올리자”는 격려를 주로 하고 있다. 선수들도 자기 역할을 전보다 잘 숙지하고 있다.
인생경기를 펼치던 레인은 4쿼터 막판 다리에 쥐가 났다. 벤치로 향한 레인은 쉬다가 다시 코트로 나왔다. 코번이 없는 상황에서 자기가 팀을 책임지겠다는 의미였다. 승패를 떠나 삼성이 전보다 훨씬 단단해졌다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었다.
미국 프로스포츠에서 코치와 선수는 ‘파트너’라는 개념이 강하다. 코치가 지시를 내리고 선수가 임무를 수행하는 역할이지만 기본적으로 상호존중이 있다. 한국에서는 감독과 선수가 스승과 제자라는 개념이 강하다. 한국감독이 절대적인 권한을 갖고 외국선수에게 일방적으로 요구사항을 강요하다 서로 문화적으로 충돌하는 장면도 자주 나온다.
국내선수, 외국선수와 모두 직접 소통할 수 있는 김효범 대행은 지도자로서 자기만의 확실한 강점을 보이고 있다. / jasonseo34@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