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대전, 이상학 기자] “유명한 선수든 신인이든 야구장에선 똑같은 프로 선수 신분이다.”
프로야구 KIA 타이거즈는 지난 30일 대전 한화전을 앞두고 선발 라인업에 변화를 줬다. 주전 중견수 최원준에게 휴식을 주면서 신인 외야수 박재현(19)을 1번 타자 중견수로 내세웠다. 박재현의 데뷔 첫 선발 경기. 4연패로 시즌 초반 출발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이범호 KIA 감독은 분위기 전환용으로 박재현 1번 카드를 꺼냈다.
이범호 감독은 “뭔가 다른 느낌으로 물꼬를 한번 터보고 싶다. (최)원준이가 많이 뛰기도 했고, 하루 쉬게 해줄 겸해서 (박)재현이가 들어갔다. 팀이 침체된 느낌인데 젊은 친구가 나가서 막 움직이고 하면 괜찮아지지 않을까 싶어 변칙적으로 기용했다”고 밝혔다. 인천고 출신 우투좌타 외야수로 올해 3라운드 전체 25순위로 입단한 19세 신인 박재현은 시범경기에서 타율 4할대(.417) 맹타를 휘두르며 빠른 발로 누상을 휘젓고 다녔다. 팀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으며 개막 로스터까지 든 신인의 패기에 기대를 걸었다.
데뷔 첫 선발 경기였지만 하필 상대가 메이저리그 통산 78승 투수 류현진(38)이었다. 무려 19살 차이가 나는 베테랑으로 이름값에 짓눌릴 수 있었지만 박재현은 거침없었다. 1회 첫 타석 초구부터 과감하게 배트를 냈다. 시속 142km 직구에 타이밍이 조금 늦었지만 좌익수 앞에 떨어지는 안타가 됐다. 프로 데뷔 첫 안타를 류현진에게, 그것도 초구를 쳐서 만든 것이다.
1루에 나간 박재현은 나성범 타석 때 2루 도루까지 성공했다. 메이저리그에서 10시즌 통산 도루 허용이 11개에 불과했고, 도루 저지율이 42.1%에 달할 만큼 주자를 묶는 데 능한 류현진은 지난해 KBO리그 복귀 시즌에도 100이닝 이상 던진 투수 34명 중 도루 허용이 두 번째 적은 2개에 불과했다. 도루 저지 4개로 저지율 66.7%. 1루를 바라보며 던지는 좌완 투수로 주자 견제에 유리한 점이 있지만 슬라이드 스텝이 빨라 도루 타이밍을 쉽게 주지 않는다.
적절하게 견제를 하면서 타자뿐만 아니라 주자와 타이밍 싸움에도 능하다. 1루 주자는 류현진 상대로 도루를 성공하기도, 시도하기도 어렵다. 그런데 19세 신인이 데뷔 첫 안타 감흥이 가시기도 전에 류현진의 허를 찔러 2루 훔쳤다. 류현진에게 데뷔 첫 안타에 이어 첫 도루까지 기록하며 존재감을 보였다.
이후 4타석에선 삼진 2개 포함 모두 아웃으로 물러난 박재현은 “첫 안타가 나오긴 했는데 전체적으로 타이밍이 다 늦었다. 타이밍을 앞으로 가져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오늘 당일 선발 통보를 받고 긴장되긴 했는데 경기를 앞두고 있는 만큼 긴장하는 것보다 나가서 어떻게 해야 할지만 생각했다”고 말했다.
선발 첫 타석부터 만난 류현진과 대결에 대해 박재현은 “물론 부담됐지만 유명한 선수든 신인이든 똑같은 프로 선수라는 신분으로 야구장에 들어간다. 이기겠다는 생각만 했다”며 “안타를 친 것은 운이 좋았다. 그 다음, 다다음 타석에서 왜 류현진 선배가 메이저리그에 갔다 왔는지 알 수 있었다. (5회) 삼진을 먹을 때 공도 ABS 끝에 살짝 걸쳤다. 컨트롤이 너무 좋으셨다”고 말했다. 바깥쪽 낮게 들어간 직구가 ABS 보더라인에 깻잎 한 장 차이로 묻었다.
류현진도 1회 안타, 도루를 연이어 허용한 뒤 박재현과 승부에서 힘을 줬다. 3회 2루 땅볼로 선행 주자가 아웃되고 박재현이 1루에 나갔는데 류현진은 세 번이나 견제구를 던지며 신경썼다. 박재현은 1회 도루 상황에 대해 “(류현진이) 견제할 생각이 별로 없으신 것 같아서 다리를 들기만 하면 바로 뛰자는 생각을 했는데 잘됐다. (3회에는) 처음보다 리드를 조금 더 타이트하게 가져가서 그런지 견제를 하신 것 같다”고 설명했다.
박재현의 존재감은 중견수 수비에서도 빛났다. 승부에 큰 영향을 미친 호수비가 있었다. KIA가 5-2로 역전한 7회 무사 1,2루에서 한화 안치홍이 우중간 쪽으로 장타성 타구를 날렸다. 1루 주자까지 홈에 들어올 수 있는 2루타가 될 것으로 보였지만 박재현이 전력 질주한 끝에 왼팔을 쭉 뻗어 공을 낚아챘다. 2실점을 막는 결정적인 호수비로 KIA의 5-3 승리에 기여했다. 데뷔 첫 선발 출장 경기에서 팀의 4연패를 끊는 데 앞장선 것이다.
박재현은 이 수비에 대해 “우연인지 모르겠는데 타구가 오기 전 ‘어떤 공이 오든 끝까지 뛰자’고 생각했다. 그 생각을 하자마자 타구가 오더라. 잡든 못 잡든 끝까지 뛰자고 했는데 뛰다 보니 가까워져 잡을 수 있었다”며 스스로도 신기해했다.
6회 동점 솔로 홈런을 터뜨린 외국인 타자 패트릭 위즈덤과는 덕아웃에서 둘만의 신나는 세리머니로도 눈길을 끌었다. “광주에서 위즈덤 선수와 출퇴근을 같이 하면서 자연스럽게 얘기를 많이 하고 친해졌다”며 웃은 박재현은 “이렇게 빨리 선발 기회가 올지 몰랐다. 오늘 하루는 성장하는 하루였다. 완벽했던 건 아니지만 1회부터 9회까지 뛰면서 무엇이 문제이고, 수정해야 할지 알아갈 수 있었다”며 다음 경기를 기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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